예술 활동으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다

하반기 아르떼 아카데미 교원 문화예술교육 연수 과정
<문화예술교육, 예술과 사회의 연결고리 ‘몸, 지금 여기’>

올해도 뜨거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한 학기동안 바쁘고 치열한 학교생활을 마친 교사들은 사실 학생들보다 더 방학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전국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2017년 하반기 아르떼 아카데미 교원 문화예술교육 연수(이하 교원 연수)가 용인 한라인재개발원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진행되는 아르떼 아카데미 교원 연수는 한 번도 못 와본 교사는 있지만, 한 번만 와본 교사는 없다는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연수 과정이다.
“정기적으로 연수를 받으면서 예술적 감성을 일깨우고 싶어요. 늘 틀에 박힌 교사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이들한테 죄를 짓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고등학교 3학년 입시 상담을 진행하느라 방학도 없다는 이현정 선생님(서울누원고등학교)은 본인의 수업이 EBS 수능특강과 달라야하지 않겠냐며 연수 과정 참여 동기를 밝혔다. 교사들이 예술을 통해 자신과 학생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도록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경험하게 하는 아르떼 아카데미 교원 연수 과정. 이번에는 영상, 사진,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예술교육을 하고 있는 A.C.Clinamen의 <문화예술교육, 예술과 사회의 연결고리 ‘몸, 지금 여기’> 연수 현장을 찾아갔다.

  • 빙 둘러서서 동작 따라하기
  • 상대방 표정과 제스쳐 따라하기를 사진으로 찍어 남기기
예술적 감성을 공유하고 이해하기
<이름의 발견> : 작명하기
둘씩 짝지어 서로를 1분 동안 바라보는 수업이다. 관찰을 통해 상대의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 역시 상대로부터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거기에 이제까지 ‘아무개’로 살아왔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설레고 기대되는 바른 척추’ 등의 새 이름으로 연수를 시작한다. 교사들은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자신이 가진 무한한 예술적 감성들을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이름은 곧 자신의 정체성이죠. 그런데 페르난도 페소아(Fernando Pessoa)는 일흔 개가 넘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름의 발견>이라는 활동을 통해서 옆의 사람이 나의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고. 내 감정이 이름이 되기도 하는 게 참 재미있죠. 예술은 상상을 통해서 만들어진 이미지 위에서 노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름을 짓고 놀면서 구속되어 있는 듯한 정체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 A.C.Clinamen 조광희 작가

<예술가의 몸과 시선> : 4인 4색 모둠토론
백남준, 홍현숙, 이완, 김범, 윌리엄 캔트리지, 질리언 웨어링 등 6명의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몸, 지금 여기> 프로그램의 주제를 읽어내고, 우리의 삶과 사회를 돌아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으로 진행되었다.
<기억나는 누군가를 입어보세요> : 1인 즉흥연기
즉흥적으로 기억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하얀 백지 위에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로, 누군가의 친구로, 한 사람의 남편으로 자신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을 만나게 된다. 어린 딸아이의 얼굴을 그린 한 교사는 “엄마, 오늘도 늦게 들어 올거야? 빨리 들어와. 나랑 좀 놀아줘.”라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아마도 그 순간 교사는 딸의 입장이 되어 딸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나보다. 마치 연극 속에서처럼 타인이 되어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 그를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고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기
  • 즉흥적으로 기억나는 사람을 그리는 장면
  • 나에게 이름 붙여주기 / 누군가의 얼굴 그리기 / 상대방 따라하기 활동결과 전시
움직임을 통해 나의 몸과 타자의 몸을 인식하기
<타인의 감정을 느끼다> : 퍼포먼스, 포트레이트(Portrait) 사진
둘씩 짝을 지어 짝의 얼굴 표정과 몸의 동작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까지 따라해 본다. 그리고 이를 포트레이트(Portrait) 사진을 통해 기록한다. 상대가 만들어내는 표정을 보고 깔깔 거리며 웃기도 하고, 서로 그 표정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몇 번을 다시 해보는 팀도 있었다.
그런데 이후 <타인의 감정을 느끼다>라는 마르크스 한센(Markus Hansen)의 작품을 보면서 참여자들은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오른편엔 작가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이 있고, 왼편에는 작가가 그들의 얼굴 표정, 옷차림, 자세 등을 똑같이 모방한 작가 자신의 모습을 찍어 놓은 사진이 있었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다>라는 작품의 제목처럼 상대의 표정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따라했더니 상대방의 보이지 않는 기억과 미세한 감정들까지 소통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강사는 이어서 참여자들의 사진을 마르크스 한센의 작품과 같이 작업을 해서 보여준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심지어 성별도 나이도 너무 다른데 어쩜 이렇게 닮아 보일 수가 있지? 예술작품을 통해 단순한 작업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마르크스 한센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이 시간 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처럼, 우리는 예술을 통해 성별, 인종, 나이를 뛰어 넘어 타인의 이야기, 즉 타인의 삶에 공감하게 된다. 이것은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예술의 사회적․교육적 가치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학교에서는 교과수업을 준비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한 학기 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오늘 1분 동안 가만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3분간 이야기를 주고받고, 타인과 똑같은 표정을 짓는 활동 등을 하면서 타인을 통해서 나를 보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또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학교는 선생님과 학생이 만나는 공간인데도 선생님이 학생의 감정을 읽어주거나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거든요. 이제 학교에 돌아가면 오늘 경험한 감정을 아이들과 함께 나눌 거예요”

– 서울아주초등학교 홍영순 교사

“<타인의 감정을 느끼다> 수업에서 ‘타자 되기’란 엄마가 아이의 표정을 보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표정을 짓고 따라하게 되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수업에서 표정을 흉내내는 시도는 타인과의 감정적 교류, 즉 소통의 시도로 이어지거든요. 그래서 오늘 처음 만난 사람과 짧은 시간이지만 눈을 마주치고 똑같은 표정을 지어보려는 경험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A.C.Clinamen 이재원 작가

짝지어 상대방의 손가락이 이끄는대로 따라하면서 율동하기
<타임잇셀프> : 온전히 나와 우리가 되어보는 경험, 퍼포먼스
이 시간은 자신의 몸과 자신이 위치해 있는 시공간에 최대한 집중하여 온전히 자신을 느끼는 작업이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걷기, 보기, 마시기, 눕기’와 같은 행위들을 극대화하면서 몸의 감각기관을 확장하여 인식해보고, ‘신체 만다라’나 ‘몸 소리 내기’ 활동을 통해 몸으로 생성되는 타인과의 관계성을 느껴보았다. 교사들은 일상에서 말하기나 글쓰기와 같은 언어적 활동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비언어적 활동의 기회가 적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는 활동에 대해서 반응이 더욱 좋은 편이다. 이렇게 몸의 감각이 깨어나고 타인과 몸으로 소통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현재 지식 위주로 진행되는 교육방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사물과 사물 안에 깃든 자신의 내면 마주하기
<멀고도 가까운> : 시 콜라쥬를 통해 만나는 타자들
교사들은 까만 비닐봉지 안에 사물 한 가지씩을 준비하여 갖고 온다. 그리고 서로의 비닐에 담긴 물건이 무엇일지 상상하면서 ‘시’를 만든다. 각자가 쓴 시는 ‘콜라쥬(Collage)’ 활동을 통해 새로운 하나의 ‘시’로 만들어진다. 중요한 것은 이 사물의 근원(origin)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물의 역사를 전혀 모르는 타인에 의해서 발견되는 예측하지 못했던 이야기로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과 이명을 마주하게 하는 시간이다.
예술작업 역시 작가의 창작과정 자체도 중요하지만, 예술작업을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관객의 행위도 역시 중요하며, 이것은 또 다른 창작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의도는 하나지만, 그것은 수천 수만 가지로 읽혀지고 각자의 삶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여기서부터 예술교육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전체 참가자가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리더 한 사람의 지시대로 동작을 따라하기
<나와 당신의 지형도> : 나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
마지막으로 진행된 이 시간은 1박2일 동안 다양한 예술적 방법으로 생성된 교감, 공감, 소통이 총체적으로 일어나는 듯 했다. ‘교사’들이 소통하고 싶은 다양한 주제들을 수집한 후, 지형도라는 공간 설치 작업으로 시각화하고, 각각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삶에 위로가 되어주는 과정이었다.
“이번 연수의 목표는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예술작업과 연결시켜서 내가 곧 타인이고 타인이 곧 내가 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을 들여다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앞의 과정을 겪는 교사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죠. 전에 교사들을 만나보니 학교라는 공간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폐쇄적인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연수에 참여하는 분들은 모두 다른 학교에서 오기 때문에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 A.C.Clinamen 강현아 작가

1박 2일, 무려 15시간의 연수는 끝이 났지만, <몸, 지금 여기> 수업을 했던 공간은 연수기간 동안 참여자들이 발견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양한 예술작품이 꽉 채워진 미술관 같은 느낌이랄까. 참여자들 역시 처음 강의실을 들어섰을 때와 달리, 각자 돌아갈 학교에 또 다른 생기를 불어넣어줄 무언가를 찾은 듯한 표정이었다.
“예술은 고정관념에 대해서 계속해서 물어보는 작업이에요. ‘한쪽에서만 보지 말고, 아래서도 보고 위에서도 봐봐. 그러면 다르게 보여’ 라고 얘기해주는 것이거든요. 인식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죠. 교사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고정된 관념을 ‘예술’이라는 것을 매개로 한번쯤은 탈피해보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서 교육현장에서도 아이들을 만날 때 이제까지는 ‘얘는 이런 아이야’라고 단정 했다면, 지금부터는 ‘다르게 보기’와 ‘질문하기’를 통해 아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A.C.Clinamen 김현주 작가

이번 연수는 ‘타자의 눈을 열심히 들여다보면 그 안의 나를 보게 된다. 이러한 타자와의 소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어쩌면 나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라는 통찰로 교사들을 이끌어주는 시간이었다.
‘중력에서 벗어나는 힘, 중력을 이탈하려고 하는 힘’이라는 뜻을 가진 클리나멘(Clinamen)이라는 단체 이름과 같이, 관성적으로 살아온 자신들의 삶과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인식하고 성찰하면서 뜨거운 방학을 연수로 가득 채운 교사들의 열정이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소리
김소리_극단 북새통 예술교육팀장
극단 북새통 예술교육팀장. 창작놀이터 사이에서 대표. 배우와 예술교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 삶과 예술, 도시와 지역, 세대와 세대를 넘나드는 공연 창작과 예술교육에 관심이 있다.
tankso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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