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습한 제주도 날씨 때문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오늘은 뒷마당에서 쪽 염색을 하는 날이다. ‘모다드렁 허게맛심’(모두 다 같이 합시다)이라는 제주도 방언이 웃음 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은 뒷마당에 모여 집에서 가지고 온 옷을 진한 감색 염료에 담가 쪽 물을 들인다. 낡은 옷이 새 옷으로 다시 생명력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문화파출소 제주서부는 작년 말 전국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열었던 곳이다. 용담지역은 제주공항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지만, 문화 소외지역이다. 그곳에 위치한 문화파출소 제주서부는 깔끔하게 재단장 된 단정한 2층 건물로 앞마당과 뒷마당이 널찍하여 다양한 문화예술활동 거점으로 발전하기에 좋아 보였다.
2017년 4월, 소통으로 마을에 문화예술거점을 마련해보자고 뜻을 모은 제주도 태생 동갑내기 세 명이 모여 지역밀착형 문화예술거점 공간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주인공인 오고운 컬쳐트리 대표, 김기완 이미지팩토리 대표, 박금옥 아트창고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세 분의 소개를 부탁한다.
오고운(이하 오): 문화파출소에서는 운영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전공은 교육학이다. 학교교육이 아닌 사회교육에 문화예술교육을 접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화예술교육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11년부터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대표로 있는 컬쳐트리에서는 제주의 전통 종이 오리기를 접목한 프로그램 운영을 했었고 요즘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힙합을 통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직접 강사로 활동하기보다는 기획자로서의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김기완(이하 김): 사진, 영상으로 장애인 단체에서 교육을 해 왔고, 현재는 문화파출소의 프로그램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교육 사업은 10년 정도 했다. 지역특성화 단체인 아트리치에서 성인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진행하고 있다.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말과 글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실제로 신체적 장애가 있어서 표현이 어렵기도 하고 스스로 위축되어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작품을 만들다 보면 자기의 속마음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예술이라는 게 그런 거다. 자기를 표현하면서 불편함이 해소가 되고 이 과정이 작품으로 나타나게 되면 보람을 느낀다. 사진이나 영화의 이미지로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박금옥(이하 박): 아트창고라는 문화예술단체에서 시각예술 작가들과 함께 마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시골 마을에 문화거점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이웃 아저씨들을 보통 삼촌이라고 부른다. 삼촌들에게 “농사짓는 데 도와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면 오히려 사람 손이 더 망친다고 다 거부하더라.
그래서 방법을 바꿔 봤다. 마을에는 된장이나, 제주도 전통 식재료를 만드는 마을 기업들이 있다. 그곳에서 작가와 함께 음식을 매개로 시골문화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자 한다. 예로 들어 테이블 위에 음식을 세팅하고 사진을 찍어 설치 작업에 녹여 내거나, 생산물을 함께 판매하는 그런 일을 해왔다.
Q. 문화파출소 사업에 참여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오: 우연한 기회로 시작하게 됐다. 우리 세 명은 동갑내기 제주도 토박이로 각자 자신의 예술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지역인 제주도 구도심을 위해서 재미있는 일, 좋은 일, 의미 있는 일에 대해 함께 고민해 오다가 마침 문화파출소 운영단체 공모가 눈에 들어왔고, “우리 이거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한 것이 시작이다.
김: 문화파출소 사업은 제주도의 한 단체가 꾸려가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끼리 뭉쳐서 이 사업을 수행해 보자고 한 거다.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최대한 많은 지역 주민들에게 예술을 하는 즐거움 느끼게 해보자는 지향점이 생겼다.
박: 제주도 태생 친구들이 모여서 문화파출소 제주서부를 제대로 해 보기로 했다. 모든 사람이 거부감 없이 찾아오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 모여져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우리는 제주도 토박이니까 지역사람들에게 맞는 방법으로 커뮤니티를 활성화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 지역은 공항하고 가깝지만, 도시화 되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문화 활동의 기회가 드문 동네여서 문화파출소가 좋은 문화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Q. 컬쳐트리 등 세 개의 단체가 모여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박: 나는 조각 전공이라 예술활동에 익숙하고, 오고운 대표는 교육을 전공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능력이 있고, 김기완 대표는 사진과 영상 분야를 전공하여서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해 줄 수 있는 관계이다.
김: 역할분담이 되고 나니 일이 확 줄었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한다는 점 때문에 업무 부담이 줄어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게 되더라. 기획, 운영, 결과보고에 이르는 사업 운영 전반을 혼자서 감당해 왔었는데, 지금처럼 한 부분을 전담하게 되니 더 깊게 고민할 수 있게 되어 좋다.
Q. 지난 한 달간 문화파출소를 직접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
오: 6월 초에 공모선정이 됐고 이후 세팅 작업이 한 달간 진행됐다. 7월부터 수업을 진행하여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수업과 관련된 내용은 배워가는 단계다. 단시간 내에 세팅을 완료하고 여러 가지 행정적인 조건들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사실 부담이다. 또한 문화파출소 운영을 뒤늦게 시작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그런 시선들이 사실은 프로그램 운영 자체보다 더 부담스러운 부분인 것 같다.
김: 한 달 운영했는데, 반년은 지난 느낌이다. 기획단계에서 너무 진을 뺐다.(웃음) 아직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문화파출소 제주서부가 위치한 용담이라는 지역은 문화예술 향유의 변방이다. 시간에 쫓기고 생활에 치여 단순한 감상조차 버거운 실정에서 문화예술을 향유 할 수 있는 계기를 확산시켜 보자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박: 파출소 문턱이 많이 낮아졌지만 아직은 막연한 거부감이 있다. 지금보다 문턱을 더 낮춰서 누구나 들어서기 어렵지 않은 곳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느끼고 있다.
Q. 문화파출소 제주서부에서 특히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오: 문화파출소 제주서부는 이 지역에 사는 모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제주도에서 살아온 토박이나 최근 이주를 해 온 사람, 인종, 국적을 불문하고 이 지역에 사는 모두가 우리의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수업이 주로 오전과 낮에 진행되어 아직은 30~60대 여성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다섯 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손글씨 수업과 염색 수업, 목공 수업이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아이들이 팀을 만들어 돌아다니면서 마을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는 ‘용담기록’, 매월 첫째 토요일에 제주도 지역의 미술관을 방문하는 ‘한 달에 한 번 미술관’ 프로그램도 있다.
김: 제주도 어르신들은 다소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부분이 있어 마음을 쉽게 안 연다. 지속해서 찾아뵙고 인사도 하면서 마음을 여는 끈기가 필요하다. 대신 서로 마음을 트게 되면 좋은 관계가 오래간다. 제주도 출신만이 알 수 있는 퉁명하지만 끈끈한 정서를 잘 이용해서 좋은 참여자들을 한 달 만에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다. 앞으로 좀 더 노력해서 이분들이 즐겁게 문화예술을 누리고 작가로서 작품도 만들어 볼 그런 기회를 지속해서 제공하고자 한다.
현재 우리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용담기록’ 프로그램은 특정 지역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활동이다. 이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서 세대간․이웃간의 소통을 추구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지역에 가서 단순하게 풍경이나 유물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이 지역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찾아 뵙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통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현재 우리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용담기록’ 프로그램은 특정 지역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활동이다. 이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서 세대간․이웃간의 소통을 추구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지역에 가서 단순하게 풍경이나 유물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이 지역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찾아 뵙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통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박: 이전부터 마을에서 부녀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문화예술활동을 진행해 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그분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어려워하시더라. 이 때문에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제주도 사투리가 많이 없어졌는데, 친근감 있게 다가가기 위해 제주도 사투리로 안부를 물어보며 주민들에게 다가가기도 한다. 우선 지역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소문이 나서 요즘은 옆 동네 분들이 문화파출소에 많이 찾아온다. 우리 전략이 어는 정도 통해서 홍보가 된 것 같다. 처음에는 용담 2동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제주도 어디에서 오시더라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것이 소문이 나서 요즘은 옆 동네 분들이 문화파출소에 많이 찾아온다. 우리 전략이 어는 정도 통해서 홍보가 된 것 같다. 처음에는 용담 2동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제주도 어디에서 오시더라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문화파출소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문화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기획서 상에서는 문화예술거점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문화파출소에 가면 뭔가 내 것을 한 번 만들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오가면서 어떤 아이디어가 필요할지 나눌 수 있는 자유롭고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화파출소 제주서부가 지향하는 교육은 전문 강사를 초빙해서 진행하는 기존의 방식보다는 아는 것을 서로 나누는 상부상조의 개념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더 아는 것을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려고 한다.
문화파출소 제주서부가 지향하는 교육은 전문 강사를 초빙해서 진행하는 기존의 방식보다는 아는 것을 서로 나누는 상부상조의 개념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더 아는 것을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려고 한다.
김: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경찰청(지방청)에서 문화파출소 사업 운영을 위한 뼈대를 만들어주었지만, 거기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하는 것은 결국 지역 주민들이다. 주민들이 이러한 주체성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무언가에 가르침을 받으러 오는 분들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하는데 ‘우리 셋은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라는 점을 분명히 전하고 참여자들이 진정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돕고 싶다.
여기서 5분쯤 내려가면 바다가 있고 10분쯤 가면 한라산이 있다. 자연이 전부 우리 앞마당이고 뒷산이다. 문화파출소라는 공간도 좋지만, 제주도라는 공간에서 지역주민들하고 산책하듯이 대자연의 품 안에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장이 열린다는 점이 다른 문화파출소와의 차별점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5분쯤 내려가면 바다가 있고 10분쯤 가면 한라산이 있다. 자연이 전부 우리 앞마당이고 뒷산이다. 문화파출소라는 공간도 좋지만, 제주도라는 공간에서 지역주민들하고 산책하듯이 대자연의 품 안에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장이 열린다는 점이 다른 문화파출소와의 차별점이 아닌가 싶다.
Q. 문화예술교육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오: 교육학에서는 교육을 공교육과 그 밖의 교육으로 분리해서 접근하고 있다. 그런데 공교육이 가르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지적인 측면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그 외 부분은 굉장히 무시되고 있다. 이러한 격차를 사회교육이 해결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라든가 지역의 문화예술재단, 작은 예술단체들이 하는 활동이 교육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 사람을 총체적으로 완성해 가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에 기본적인 바탕이자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하면 꼭 교육이라는 개념을 갖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생활에서 우리가 했던 모든 것들이 해당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전문적인 예술이 아닌 것은 예술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하나씩 물렁물렁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어떤 한 사람에 동력을 이끌어주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해야 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김: 문화예술교육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작가와 관객 간에 유대관계가 생성되고 스스로 문화예술활동의 일부가 되어 직접 만지고 작업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단계까지가 문화예술의 범주다. 문화예술의 향유 과정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이 모여서 충실하게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도 안 막는다. 일부러 사람들에게 나의 관점을 관철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간혹 ‘진심이 뭐야?’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우리 행동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몸의 아우라로 ‘이게 우리의 진심이다.’ 라고 소통을 하게 되면 의심 없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렇게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끝까지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 그 훌륭한 수단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생각한다.
- 이보늬
- 연극분야 예술강사. 세월초등학교 연극 창의체험 수업, 연천 에코+연극 꿈의 학교, 이주 청소년 연극 수업 등 다양한 현장에서 참여자들과 문화예술교육으로 만나왔다. 2014년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된 문화예술교육 국제실행 매뉴얼 개발 시범사업, 2015년 문화예술교육 매개자 해외 탐방조사(미국 필라델피아)에 참여하였다.
bonui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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