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이 아프리카 나미비아 여행 중에 만난 와푼다페이는 노래를 잘 했고, 처음 본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영특한 소녀였다. 그녀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아이들은 기타를 무척 좋아했다. 깡통으로 몸체를 만들고, 자전거 브레이크 줄로 현을 만들어 연주하고는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하림은 한국에 돌아가면 와푼다페이에게 기타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렇게 ‘기타 포 아프리카(Guitar For Africa)’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하림은 2008년 방송 차 나미비아에 다녀온 뒤로 ‘기타 포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만들어 온 노래들로 공연을 열어 모금한 기부금으로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기타를 보내주는 것이다.
‘하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떤 자유다. 음악이나 프로젝트나 늘 필요한 것은 ‘영감’인데, 그것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같다.
어떤 생각과 행동이든 간에 예술가에게는 영감이 되고, 그러한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영감은 모든 것에서 온다. 화분 키우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친구들 만나는 것 모두.
며칠 전에는 아프리카의 말라위에 다녀왔다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진행하는 평창문화올림픽 ODA ‘아트 드림캠프’를 위해 말라위 카롱가에 여덟 명의 예술가와 함께 다녀왔다.
평창문화올림픽 ODA ‘아트 드림캠프’란 무엇인가?
겨울이 없는 남반구의 아이들에게 2018년에 개최되는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고, 겨울에 대한 감수성과 만나게 하는 것이다. 말라위 외에도 콜롬비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으로 각각 나뉘어 방문해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아트 드림캠프’의 하나로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아프리카 현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들로 공연을 열고, 그 기부금으로 아프리카의 재능 있는 아이들에게 기타를 보내자는 취지에서 2008년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단순기부가 아닌 정신적 교감을 통한 교류활동 추진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해지는 아프리카>와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당신을> 같은 노래를 아프리카어와 영어로 들려주고 왔다.
바쁠 텐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으며, 또 진행하고 있다.
2012년에는 도하프로젝트(project DOHA)의 기획자로 활동했다. 서울 금천구에 주둔하던 육군 도하부대가 떠나고 남은 빈자리에 예술가들이 모여 자신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프로젝트였다. 이전에 홍대 앞에 연 개인 작업실 아틀리에 오(atelier O)에서 레지던시를 운영한 적도 있었다. 도하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데에는 10년간 홍대에서 작업실을 운영했던 기억들과 그곳에서 느낀 문제점, 그리고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도하프로젝트는 즐겁게 지내던 동지들과 함께 했던 것이라면, ‘기타 포 아프리카’는 운영자라고 할까? 책임 의식을 갖고 한 것이다.
위와 같은 여러 프로젝트들은 본인의 음악 외에도 주위 환경과 사람들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본인만의 이유가 있을 텐데. 사실 음악이란 사람들과 나누고 공유하는 데에 그 가치가 있지만, 그 음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란 철저히 ‘음악가만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공동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에는 남모를 힘겨움도 있을 것 같다.
프로젝트란 나의 생각을 여물게 만드는 일이다. 예전에는 예술에 대한 생각을 관철시키는 도구로 활용했었고. 그래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생각을 만들 수 있었고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100퍼센트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고백하고 싶다. 그럴 때마다 내 자신에게 다시 묻는다. ‘그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무엇인가?’라고. 지금은 프로젝트를 통하여 오히려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다.
‘아트 드림캠프’ 1차 년도인 2016년은 예술가를 해외에 파견하는 방식이었다. 언어가 아니라 음악과 예술로 소통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이는 비단 ‘기타 포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와 소통하고자 할 때도 느낄 것 같다.
어려운 점은 없다. 국경을 넘어도 음악으로 소통하는 유전자는 어느 나라 사람이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동료 음악가들에게 굳이 좋은 음악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할 때도 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음악가는 얼마나 어안이 벙벙할까. 하지만 음악가들 스스로가 소통하기 위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음악을 통한 주인 ‘의식’보다 구도자의 ‘마음’을 가질 때에야 늘 편해진다.
‘기타 포 아프리카’는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나?
말라위에서는 2주 정도 진행되었다. 최종적으로 공연을 하는데, 그 과정이 참 중요하다. 카롱가 지역에 ‘루스빌로 뮤직센터’라는 곳이 있다. 그 시설을 드나드는 아이들은 현지에서 비교적 형편이 좋은 축에 속한다. 내가 무엇을 가르친다는 마음은 애초부터 없다. 나와 동료들이 만든 노래를 그들이 함께 부를 수 있도록 고치고 함께 노래했다. 그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의 이론을 가르쳐 주었고.
*루스빌로 뮤직센터 – 성악가 김청자가 2010년 설립한 말라위 최초의 전문 음악교육기관. 루스빌로(Lusubilo)는 말라위어로 ‘희망’을 뜻함.
올해는 ‘아트 드림캠프’ 1차 년도에 각국에서 만난 아이들을 한국으로 초청한다. 이들이 모이는 평창은 겨울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중동, 중남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아이들이 평창의 눈 내리는 풍경을 처음 접할 텐데, 겨울을 테마로 한 음악이나 프로그램도 생각 중인가?
그러한 취지는 당연히 담겨 있지만 아직 고민 중이다. 2년 전에 사이판 섬을 처음 가봤다. 야자수, 해변의 모래, 태양에 매료되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그곳만의 문화와 선물 아닌가? 그래서 낯선 풍경과의 만남이 굉장히 로맨틱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겨울의 낭만을 체험하지 못한 그들에게도 눈이라는 존재가 그럴 것이다. 내가 사이판 섬에서 ‘세상에 이런 곳이 있구나!’라는 감탄을 그들도 느꼈으면 한다.
  • 평창문화올림픽 ODA 2016 아트 드림캠프 – 아프리카 말라위 ‘기타 포 아프리카’ 활동 영상
아프리카 현지에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은 금방 적응이 된다. 해 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나면 된다. 다만 함께 하는 멤버들과 마음가짐을 맞추는 일이 필요했다. 풍족한 곳에서 간 우리들이 어떻게든 그들을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멤버들이 욕심을 내면서 마음이 맞지 않을 때도 있다. 물론 순수하고, 선의에 가득한 욕심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욕심을 버리고, 순하게 하라”고 충고한다.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조심스러울 것도 있을 것 같다. 조용히 그들의 방식대로 살던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문물을 만나면서 눈을 뜨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왜 가만히 잘 살고 있는 우리 아이의 인생을···” 이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풍성하게 지원하는 행위가 ‘봉사’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그것이 그들의 문화에 피해를 줄 때도 있다. 나조차도 ‘이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그냥 내버려두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물론 행할 때는 선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뭔가 잘못된 방식과 과정에 대해 반성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나라에서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곳의 상황을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이 행하는 도움을 정당화하려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음악을 하면서 세계를 돌아다녀보면 불균형이란 게 보이고 느껴진다. 그것을 바로 잡고 싶은 생각과 마음은 누구에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프로젝트가 그것을 해결하리라는 것은 동화 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함께 하는 멤버들에게 “욕심을 버리고, 순하게 하라”고 충고하는 것인가?
그렇다. 선의의 온도가 올라가 있되, 주는 이도 받는 이도 불편할 정도로 뜨거워서는 안 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늘 후유증이 생긴다. 예전에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달려들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아프리카를 다녀오면 그 과정으로부터 내 스스로를 해방시키려고 노력한다. 뜨겁게 지나온 과정을 차갑게 바라보는 것이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의를 베푸는 데에도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생만큼 기쁨과 보람도 있지 않은가?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몇 년 전에 ‘기타 포 아프리카’를 통해 기타를 선물했던 레베카를 이번에 말라위에서 다시 만났다. 선물 받던 때가 10대 후반이었는데, 지금은 20대 여성이 되었다. 그 기타가 그녀의 성공에 많은 도움이 되었단다. “레베카, 이렇게 성장하고 변화된 너를 통해서 내가 또 다른 아이들에게 기타를 줄 수 있게 도와 달라”며, “열심히 해 달라”고 기분 좋은 부탁을 했다. 이제는 아프리카 아이들 같지 않고, 그냥 동생들 같다.
하림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남긴 ‘결과’와 ‘결과물’보다는, 그 ‘선의’에 대해 매번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결론은 이심전심. 음악을 위해 마음을 모은다기보다 마음이 통할 때까지 음악을 아낌없이 나누고, 음표 한 방울까지 기분 좋게 쓰는 음악가. 눈 내리는 풍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들과 하림이 함께 부를 노래는 무엇일까?
아프리카 말라위 카롱가에서 진행된 ‘기타 포 아프리카’
하림
하림

1996년 3인조 그룹 ‘VEN’의 리드보컬로 데뷔한 이후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극 <천변살롱> 음악감독, EBS 라디오 진행자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작업실 ‘아뜰리에 오’를 열고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으며, 군부대가 이전한 자리의 빈 목욕탕에서 예술가들과 함께한 ‘도하프로젝트’, 40년 된 슈퍼마켓을 돕기 위한 ‘부여슈퍼 프로젝트’ 등 커뮤니티 기반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008년 아프리카 여행 중 만난 소녀와의 약속으로 ‘기타 포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2016년 평창문화올림픽 ODA ‘아트 드림캠프’의 일환으로 ‘기타 포 아프리카’를 기획해 지난 12월 말라위 카롱가에서 현지 청소년 및 지역주민과 음악을 나누고 돌아왔다.
사진 _ Studio E
송현민
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기획실장.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 하는 사람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