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사회문화예술교육

2016 글로벌 문화예술교육 탐방 프로젝트 <A-round> 탐방기① 일본

‘글로벌 문화예술교육 탐방 프로젝트 <A-round>’(이하 <A-round>)는 국내 문화예술교육 매개인력의 해외탐방 지원을 통한 역량강화 사업으로 2015년부터 시행되었습니다. 2016년에는 8월부터 11월까지 총 7팀 16명이 미국, 유럽, 아시아 지역 각국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탐방‧조사 했습니다.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로서의 고민과 탐구점 그리고 생생한 해외 문화예술교육 사례들을 [아르떼365] 독자들과 함께 세 차례에 걸쳐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 장애 예술 프로젝트, 지역거점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에서 기획자와 예술가로 10년 가까이 참여 해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문화예술 콘텐츠나 교육 방법론보다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삶의 태도, 비언어, 비가시적 활동의 기록,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화예술교육의 형태나 내용은 다르더라도 10년 이상 지속성을 가지고 활동해오고 있는 일본의 사례들을 접하게 되면서 그들의 활동 철학과 운영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가 방문했던 ‘아뜰리에 코나스(アトリエ・コクーンス)’, ‘코코룸(ココルーム)’은 각각 20년, 10년 이상 일본 오사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활동하는 공간이다. 두 공간은 15분 내외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활동의 결이 다르고 지향점이 달라 흥미롭게 두 공간을 비교 분석할 수 있었다. 아뜰리에 코나스의 경우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여 시작한 장애인 보호시설로 처음부터 예술의 방점을 두고 활동했던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장애인’이라는 철학아래 직업활동 지원으로 시작하여 ‘장애’라는 특수성을 예술로 풀어내는 창작활동으로 변모해왔다. 코코룸이 위치한 가마가사키(釜ケ崎, 현 아이린지구(あいりん地区))는 근대사회에서 새롭게 생성된 도시 빈민들이 거주하는 마을로 지도에서도 지워버린, 일본의 대다수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기피하는 지역이다. 코코룸은 가마가사키에 거주하고 있는 홈리스, 일용직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하며 일본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사회 밖의 공동체’를 표방하는 활동을 전개해 왔다.
코나스 장애인 창작자들의 창작활동(왼쪽)과 작품 저장고
각자의 시간과 리듬이 존중받는 아뜰리에 코나스
일본 사회에서 30년 전만 해도 장애인은 지역에서 보이지 않게 집안이나 시설에 격리되어 왔었다. 그러다 1981년 ‘어떤 장애도 사회 안에서 같이 살 수 있다’는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 이념이 일본에 들어왔고, ‘장애인도 태어난 그 지역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부모회가 결집되어 그 활동이 아뜰리에 코나스(アトリエ・コクーンス), 이하 코나스)로 이어졌다. 코나스의 공간은 오래된 일본 가옥을 개조하여 입구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장애인들의 창작활동이 밖에서도 보이도록 되어있다. 창작활동은 코나스의 활동의 30% 정도이며, 그 외 지역 청소활동, 쿠키 판매, 해외전시, 공모전 참가 등의 대내외 활동을 꾸준히 지역 사람들에게 알려 지역사회 안에 장애인에 대해 끊임없이 말 걸기 하고 있다.
코나스의 장애인 창작자들은 각자의 집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코나스에서 함께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 코나스에 오는 것 자체가 사회활동의 일환이었다. 또한 코나스에서 지향하는 창작 활동의 목적은 잘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장애의 특수성 – 사회, 혹은 관계 안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거나, 단순한 일을 수행하지 못하는 산만함, 자폐성 등을 어떻게 예술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방점을 두어 창작을 재촉하거나 결과물을 칭찬하지 않았다. 각자의 시간과 리듬을 존중하고 창작 활동 그 자체를 격려할 뿐 결과물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는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일 년에 한 점의 그림을 그리는 장애인의 작업 속도를 존중하며 그가 작업하는 과정을 오히려 더 관찰하고 독려하는 코나스 서포터즈들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같이’ 살아가는 코코룸
코코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묵게 되면서 가마가사키 지역을 세세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가마가사키 지역 안, 삼각 공터에서는 매일 점심 무료배식을 하고 있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약 200명의 사람들 중 대다수가 노인 남성이었다. 길거리에 앉아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고, 그런 풍경이 흡사 서울의 동묘를 연상시켰다. 코나스와 다르게 안정적인 지원체계가 없는 코코룸은 매해 기업이나 국가 예술, 복지 지원금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원금(조성금)은 운영비로 사용할 수 없어 게스트 하우스 수익금으로 임대료나 스태프 인건비를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스태프들이 장기적으로 코코룸에서 활동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코코룸이 운영하는 가마가사키예술대학 참여자 혹은 코코룸에 머무르다 가는 사람들은 감정 표현에 서툴거나 생존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폭력적으로 표출하여 참여자 간 또는 스태프들과의 관계에 트러블이 빈번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감정 수업>을 하는 등 물리적, 감정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들은 내가 경험했던 커뮤니티 예술교육과 많이 닮아있었다. 소외된 지역에 예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하는 예술가 혹은 예술교육강사에게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거나 폭력적인 상황 안에서 중재자 역할을 요구하며 서로 상처만 입고 헤어지는 경우를 경험했고, 지원이 끝나면 다른 소외지역으로 이동할 뿐이지 개선되거나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예술이 혹은 개인이 지역 문제의 완화제처럼 사용되는 상황은 일본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숱한 우여곡절에도 코코룸의 활동이 10년 이상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억지로 그들의 삶을 개선하려 하거나 헌신이나 봉사가 아닌 ‘그들이 여기 있다’, ‘그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담백한 신념 때문인 것 같았다.
코코룸 야외 정원(왼쪽)과 인포샵
고유성을 만나는 창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
코나스나 코코룸의 활동을 배워온다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의 활동을 같이 나눈다는 생각으로 탐방에 임했다. 장애인을 장애를 가진 교육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라는 특성을 가진 개개인을 위해 10년 정도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제도가 부럽기도 했고, 제도로 확립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활동해온 코나스 뿐 아니라 그들의 활동을 지지해준 장애인 창작자와 부모님들의 신뢰관계까지 엿볼 수 있었다. 장애 관련 지원금이 작은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게 자립은 중요한 부분이라 빨리 경제활동으로 환원될 수 있는 직업훈련의 비중이 크다. 장애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할 때마다 일상을 충분히 공유하는 시간 없이 10주 프로젝트, 일주일 2시간 정도의 예술교육으로 교육대상자들의 생활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겨나도록 성과를 강요한다거나, 성급한 결과물을 요구하면서 예술교육이 체험 콘텐츠의 하나로 소모되는 상황들과 비교했을 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변화는 단시간 내에 생겨나지 않으며 뛰어난 소수의 사람들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인정, 지속적인 관심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탐방을 통해 이벤트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일상에서 향유할 수 있는 장애 문화예술교육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코코룸 또한 척박한 환경 안에서 카페, 게스트 하우스 등 형태를 다양하게 만들어가며 활동의 지속성을 꾀하고 있었다. 가마가사키 지역에 머물면서 빈곤을 ‘나와는 관계없는, 혹은 관계없고 싶은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가마가사키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만 가면 나오는 관광객들이 가득한 대형 쇼핑 거리는 안전하고 깨끗했다. 그 건물을 지었을지도 모르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늙어가는 도시로 돌아오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풍경은 서울에서도 빈번히 볼 수 있고, 빈부의 격차, 문화예술의 격차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가속화되고 있다. 장애 혹은 빈곤은 당사자가 아니고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사회적 이슈이고, 그 이슈가 주는 중압감이 문턱이 되어 소통이 힘들어진다. 문화예술교육이 사회의 정답을 내놓는 역할은 아닐 것이다. 다만 문화예술이 소통의 방법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코나스나 코코룸에서 창작한 작품들이 주는 원시성(비언어, 교육되지 않은 표현을 빗대어 표현)은 충분히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고, 작품으로 장애인, 빈곤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고유성을 만나는 창(窓)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코나스와 코코룸에서 만난 단상들을 떠올리며 글을 마친다. 코나스에서 만난 창작자 우에노 씨는 수줍게 검지를 뻗어 손을 스치는 인사를 우리에게 건넸다. 코코룸에선 스태프 아코 씨가 차려준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눠 먹었다. 언어화된 소통이 아닌 눈빛, 체온, 시공간의 비언어적 교감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록할 것인가, 그 기억을 다른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나눌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앞으로도 일본에서 느낀 단상을 가지고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갈 것이고, 개인의 단상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의 담론이 될 수 있도록 워크숍, 기록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김지영
김지영
미술작가로 작품 활동과 문화예술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자리짜기 좋은 사회-방학동양말목 이야기》(2016) 전시 기획,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제작지원작품 <불온한 공동체 불화하는 말들의 기록>을 전시했다. 2013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 ‘예술가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 2014 서울문화재단 지역특성화교육 ‘방학 불로장생’, 2016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 아르떼 아트큐브 ‘양말목 놀이터’ 등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기획자, 강사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blue-flo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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