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여행 도구, 장롱 속 악기

김동재 - 신나는섬 멤버, 주말문화여행 ‘장롱에서 꺼낸 악기와 떠나는 여행’ 주강사

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힘,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인터뷰어의 시각에 담았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시선, 움직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길 바라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장롱 속에는 엄마의 운전면허증이, 장롱 위에는 내가 어릴 적 연주하던 악기들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악기의 잠을 깨우는 순간, 우리는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 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의 ‘주말문화여행’이 있으니까.
이 주말문화여행의 하나인 ‘장롱에서 꺼낸 악기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하 ‘장롱악기여행’)은 어쿠스틱밴드 ‘신나는섬’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다. 올해 9월부터 시작된 ‘장롱악기여행’은 좀 독특한 여행이다. 먼저, 참가 신청을 받고 한 기수를 선발한다. 참가자들은 학령기 아동 청소년을 포함한 가족 단위로, 몇 가족이 함께한다. 그들은 신나는섬과 두 번 만난다. 2~3시간 동안 진행되는 첫 번째 만남은 신나는섬과 참가 가족들이 서로의 얼굴을 익히는 시간이다. 그리고 1주일 뒤에 모두들 다시 만나 본격적인 여행을 떠난다. 손에는 각자의 악기가 들려 있는, 당일치기 여행이다.
당신의 동심을 찾아드립니다
김동재는 신나는섬의 멤버이자 ‘장롱악기여행’의 가이드다. 그는 발길 닿는 대로 처음 만난 가족들을 이끈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처음 보는 악기와 조우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연주해야 하지?’라는 호기심처럼,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해야 친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늘 들어요. 약간의 두려움과 호기심 같은 거 말이죠.”
‘장롱악기여행’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장롱 속 악기를 챙겨올 필요는 없다. 장롱이란 그저 그동안 잊고 있던 동심과 추억의 상징일 뿐. 빈손으로 온 가족들에게는 손으로 흔들어 소리 내는 리듬악기 셰이커(Shaker), 입으로 불어서 소리 내는 카주(Kazoo)가 제공된다. 누구든지 곧바로 손쉽게 소리 낼 수 있는 악기다.
“길을 걸어갈 때 악기 든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우쿨렐레, 기타 등등 말이죠. 생각해보면 집에서, 장롱 속에서 잠자고 있는 악기들이 많을 겁니다. 어느 날 그것들을 깨워 여행을 가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오랜만에 꺼낸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연습과 연주를 자주 하면 악기를 왜 장롱에 넣어두겠어요.(웃음) 그래서 처음 만난 가족들과 ‘더듬더듬’ 함께 할 수 있는 노래들을 골라서 함께 합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은 다 함께 모여 <곰 세 마리>, <동네 한 바퀴>, <섬집아기>, <퐁당퐁당>, <앞으로> 등을 함께 연주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는 시구처럼, 이들, 그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는 음악이, 그리고 신나는섬이 있다.
“역시 예상대로 합주는 더듬더듬했어요.(웃음) 여행을 가면서 참가한 가족들과 신나는섬의 멤버들이 석양이 지는 하동 벌판을 배경 삼아 <앞으로>를 연주하면서 걸어가는 것을 상상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기도 했죠.”
‘장롱에서 꺼낸 악기와 함께 떠나는 여행’
하동 악양면 평사리로 여행을 떠났던 1기 가족들
김동재는 ‘장롱악기여행’을 다녀온 뒤, 참가자들이 추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사진들을 연이어 영상을 만들어 게재한다. 하지만 낯선 이들과의 여행이 어디 쉬울까.
“그렇죠. 힘들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네 가족이 참여한 여행이었어요. 아이들은 언제 봐도 늘 귀여워요. 그런데 아버지들이 늘 힘들게 하세요.(웃음)”
대한민국의 아버지. 그들은 강하다. 그 강인함은 하나밖에 없는 가족을 모진 세상으로 지켜내는 큰 힘이지만, 때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을 때도 그 감정과 기분을 채우는 단단한 자물쇠가 된다. ‘장롱악기여행’이 빗장을 푸는 것은 악기를 재우고 있는 장롱의 문뿐만 아니라 이런 이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경상도 분이셨어요. 여행 시작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안 하시더라고요. ‘꿔다놓은’ 보릿자루 그 자체셨죠.(웃음) 신나는섬 멤버들과 참가자들의 합주를 위해서 셰이커나 카주의 기본적인 연주법을 알려드리는데, 저희가 알려드린 것만 묵묵히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별다른 감흥이 없으신가보다 했어요. 그날 작별 인사를 하면서 신나는섬 멤버들과 멀리서 서로 안녕을 외쳤죠. 그런데 그분이 웃는 얼굴로 “저희도 즐거웠어요!”라고 크게 인사를 하시더라고요. 또 다른 일화는 2기랑 함께 갔던 경기도 포천에서의 일이에요. 블루베리 농장이 있었는데, 한 분이 그 잎사귀를 따더니 그것으로 풀피리를 부시더라고요. 참으로 무뚝뚝해 보이셨는데. 그 모습이 아직도 제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어요.”
장롱 속 잊고 있던 악기, 마음속에 잊고 있던 동심. 그것을 찾는 기쁨, 찾아주는 기쁨이 ‘장롱악기여행’이 김동재에게, 참가자들에게 주는 소소한 기쁨이다.
음악과 여행이 어우러지도록
‘장롱악기여행’을 함께 하는 신나는섬은 바이올린, 아코디언, 퍼커션, 기타, 우쿨렐레, 하모니카 등으로 구성된 5인조 밴드다.
“밴드의 명칭은 사실 별다른 생각 없이 지었어요. 그런데 지어놓고 보니 ‘신나는’과 ‘섬’이라는 부조화가 재밌게 다가오더라고요. 섬은 흔히 고립을 뜻하잖아요. 이율배반에서 오는 재미? 우리는 늘 동화에서 일어날 법한 상상을 많이 해요. 우리의 노래 중 <야옹군 답장 부탁해>는 고양이한테 편지를 주는 내용이고요, <크루멜리스>는 동화 속 말괄량이 삐삐가 먹었던 초록색 콩의 이름이에요. 우리의 음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가족 어드벤처’라고 할까요?”
김동재는 고교 시절 사물놀이를 접하며 음악에 눈떴다. 그러던 중 신해철과 그룹 넥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깨닫는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음악이, 신기한 음악들이 있다니! 아버지가 취미로 치던 기타를 잡은 때는 고3 시절. 대학에서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노래패에서 활동했다. 졸업 후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다가 20대 말미에 음악으로 삶의 방향을 결정했다. 2011년부터 신나는섬을, 그리고 작년에 또 다른 밴드 ‘오즈(OZ)’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기타, 우쿨렐레, 하모니카, 타악기를 다루며, 요새는 만돌린과 벤조(기타 모양의 민속악기) 배우기에 빠져 있다.
“현재 지역아동센터에서 수업도 하고 있어요. 8~9년 정도 되었죠. 제가 사회에 처음 나가 가르쳤던 초등학생 중에 지금은 대학생이 된 아이들도 있어요. 그중에 음악 관련 협동조합을 만들어 사회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어린아이들의 삶에 다가간 음악이 그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동재와 신나는섬은 유랑프로젝트 ‘다니다’ 등을 비롯하여 여행과 음악이 함께 하는 길을 걷고 있다. 2015년 라오스에서의 일이다. 여행 도중 김동재가 탄 버스가 고장 났다. 무료함 속에 그는 우쿨렐레를 꺼내들었다. 연주가 시작되고 음악이 번지니 ‘2시간 30분’ 동안의 기다리는 시간은 곧 공연 시간이 되었다. 누군가는 빈 깡통에 돌을 넣어 옆에서 ‘합주’를 하기도 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들려서는 우쿨렐레를 신기하게 바라본 사장에게 악기를 알려주고 귀빈 대접을 받기도 했다. 음악이 있는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 음악을 입히며 재밌게 살고, 음악을 통해 교감하는 법을 체득하고 있다. 때로는 우락부락 캠프와 같은 문화예술 캠프에 참가하여 이러한 노하우와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음악이 있는 섬, 신나는 섬으로!
김동재는 ‘장롱악기여행’을 통하여 참여하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고 싶은 곳이 많다. 세상은 넓고, 음악은 많으며, 장롱 속에서 잠을 털어내지 못한 악기는 얼마나 많던가!
“여행지를 선정할 때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을, 그리고 여행은 ‘유유자적’ 콘셉트로 합니다.”
주어진 시간은 당일 하루지만, 음악과 함께 최대한 유유자적하려 한다. 목적 없는 느린 시간과 흐름 속에서, 너와 나 사이에 잊고 있던 소통의 기운을 참가 가족들이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다.
“가족 밴드! 멋있지 않아요?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내 소리를 듣는 것도 있지만, 남의 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예전에 일본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한 가족이 함께 모여 연주를 하는 거예요. 엄마와 아빠, 딸과 사위가 함께요. 연주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악기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연주하는 동안 눈 맞춤을 하고요. 서로를 알아가는 순간이죠. 음악과 함께.”
그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아무것도 살지 않을 때, 그 사이는 적막하다. 하지만 그 섬이 ‘신나는 섬’이어서 음악이 함께 할 때, 그동안 잊고 있던 너와 나, 가족의 소중함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오늘, 우리 집의 장롱을 한번 뒤적여 보자.
김동재
김동재

어쿠스틱밴드 ‘신나는섬’ 멤버로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2011년 음악으로 만난 지인들과 결성한 ‘신나는섬’에서 어쿠스틱 악기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운드에 대한 시도를 거듭하며 창작과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음악으로 아이들과 만나왔으며, 2015 인문예술캠프 ‘달빛감성’ 청년참여형 프로그램, 2016 창의예술캠프 ‘우락부락’, 2016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주말문화여행에 작가로 참여했다.
· 신나는섬 홈페이지
관련링크
·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홈페이지 www.toyo.or.kr
영상 _ 강장원(미술작가)
송현민
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기획실장.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 하는 사람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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