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을 깨는 수업혁명을 위하여

책으로 만나는 문화예술교육

  • 수업비평
    『수업비평』
    (윤양수, 살림터, 2014)
  • 예술수업
    『예술수업』
    (오종우, 어크로스, 2015)
교사(예술강사)의 성찰과 성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자주 모니터링하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곤 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한 사람의 예술강사 혹은 교사의 성찰과 성장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성찰과 성장을 위한 ‘도구’가 부재하다는 점을 실감한다. 한 사람의 교사 혹은 예술강사가 일종의 매개자라고 할 때, 그런 매개자들을 ‘재(再)매개’할 수 있는 교육적 도구로서 ‘수업비평’을 활성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진행되는 컨설팅 혹은 모니터링 같은 제도들이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컨설팅과 모니터링 제도로는 ‘자족과 자폐의 나르시시즘’이라는 회로 안에 갇힌 것으로 간주되는 학교 안팎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컨설팅은 하나의 팁(tip)에 불과하고, 모니터링은 평가지표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지금은 ‘더 나은 실패’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2003년 12월부터 지금까지 학교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동료들과 함께 수업비평 워크숍을 진행하는 교육과 나눔의 공동체 ‘다온’의 수업비평 경험은 학교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교육 수업의 변화를 위해 참조할 점이 적지 않다. “최신 트렌드와 메이크업 기술로 시선을 사로잡는 스펙터클한 수업공학이 탄생한다”고 한 윤양수 선생님의 날선 비판은 문화예술교육 수업의 경우 또한 동일한 문제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윤양수 선생님의 『수업비평』은 교육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생성문법’을 수업비평에서 찾고자 한 학교 교사들이 모둠을 이루어 워크숍을 진행한 결과물을 묶은 것이다. 책에는 초등학생 및 고등학생들과 진행한 수업에 대한 자세한 비평문이 수록되어 있다. 초등학교 5-6학년생들과 함께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한 계유정사를 다룬 조경삼 선생님의 수업에 대해 “이 수업에서는 ‘동전 던지기’를 생략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식이다. 재판 형식과 디베이트(debate) 포맷의 혼용에 따른 혼란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디베이트와 토론의 차이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예리한 지적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일본 교육자 사토 마나부가 제안한 ‘배움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협력수업을 수년째 진행하는 이우학교 방지현 선생님의 고3 대상의 독서 수업이 퍽 인상적이었다. 윤양수 선생님은 이 수업에 대해 “교과의 경계와 중력을 터널링(tunnelling)하고 있다”고 상찬한다. 수업문화의 변화를 꾀하려는 ‘균열의 쾌감’을 맛보았기에 가능한 표현이었으리라. 윤양수 선생님이 지금 여기의 교사는 학습하는 전문가(professional learner)로서 학인(學人)들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도 수긍이 된다. 수업비평을 내부자비평 혹은 동료비평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법하다.
그런데 수업비평은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야말로 더 절실히 필요한 교육적 도구가 아닐까 한다. 수업비평 워크숍을 통해 예술강사 동료들과 함께 동반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는 예술강사들이 자신의 수업 내용을 얼마나 외부에 ‘개방’하는 용기를 발휘하느냐 하는 점이다. ‘자족과 자폐의 나르시시즘’을 벗어나기 위한 차원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각 광역센터에서 예술강사들에 대한 ‘재매개’ 교육을 더 강화하고, 모니터링 방식에서도 예술강사의 성장을 돕는다는 차원에서 새로운 변화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적 있는 [지지봄봄](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센터 발행) 같은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을 각 광역센터에서 발행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 수업혁명은 현장에서 새로운 ‘수업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이 점에서 『예술수업』은 좋은 참고서가 될 법하다. 성균관대 오종우 교수가 2009년부터 진행해온 교양강좌 <예술의 말과 생각> 강의록을 정리한 『예술수업』은 ‘인문학의 전위(前衛)’로서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 인문학자의 강의실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예술 장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안목으로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예술수업』을 예술강사 동료들과 공부하는 것으로 수업비평을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무엇보다 특정 예술장르의 기법이 아니라 예술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문화예술교육 수업 현장에 모니터링 등을 가보면 간혹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특정 예술장르의 ‘기법’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교육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기법 혹은 기능교육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법을 가르치느라 “예술의 반대말은 추함이 아니라 ‘무감각’”이라는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 <간이휴게소>(1927)라는 그림을 설명하면서 “타력(惰力)이 붙어 관습화하면 그것의 의미를 삭제한다”는 표현에 오래 눈길이 머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교육의 타력(惰力)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나도 알고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업 현상을 함께 관찰하고 연구하고 소통하는 실천공동체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술강사의 성찰과 성장의 도구로서 ‘수업비평’을 적극 검토하며,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제도의 ‘외부’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윤양수 선생님 등이 참여한 『수업의 정치』(2015)라는 책을 곁들이면 더 좋은 길라잡이가 되리라 믿는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1898)에 대해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가 “이 작품을 읽고 나니 다른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 펜이 아닌 막대기로 쓴 것처럼 여겨지는군요”라고 한 평이 『예술수업』을 덮고 난 뒤에도 잊히지 않는다. 문화예술교육 수업 현장에서도 그런 강렬한 경험이 실현되는 수업혁명이 이루어지길 나는 희망한다.
이미지 제공 _ 살림터, 어크로스
고영직 _ 문학평론가
고영직 _ 문학평론가
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겨레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최근 『자치와 상상력』(공저)이라는 책을 펴냈다.
gohy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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