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11월 11일부터 14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제78회 전미 커뮤니티 예술교육 연례 컨퍼런스(78th Annual Conference for Community Arts Education)’가 열렸다. 전미 커뮤니티 예술교육단체 조합(National Guild for Community Arts Education)이 주관하는 본 컨퍼런스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참여하는 것은 작년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이다. 특히 올해는 2015 문화예술교육 매개자 해외 탐방 조사를 통해 선발된 예술강사와 함께할 수 있어서 더 뜻깊은 자리였다.
올해 컨퍼런스의 주제는 ‘예술교육을 어떻게 확산시킬 수 있을까?(How We Can Authentically Do Good)’라는 물음과도 관련이 깊었다. 11월 12일 열린 메인 컨퍼런스의 기조 발제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은 문화예술교육의 리더로서 타인에게, 그리고 지역사회로 문화예술교육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의 직업이 예술강사인지, 문화예술교육 기획자인지, 행정가인지에 따라 그 대답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나흘 동안 진행된 컨퍼런스는 예술강사, 기획자, 행정가, 교사 등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에 따라 다양하게 강의를 접하고, 체험하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세부 세션들이 구성이 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미국 내 예술강사를 주제로 진행된 사전 컨퍼런스와 예술교육자-참여자의 협력프로젝트 사례인 ‘코크리에이트(CoCre8)’, 그리고 현장탐방을 통해 방문했던 클레이 스튜디오(THE CLAY STUDIO)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예술강사, 서로 협력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다
– 사전 컨퍼런스 ‘예술강사 개발: 집단 행동 전략’
컨퍼런스 첫날, 예술교육 컨설턴트이자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에릭 부스(Eric Booth)가 예술강사들을 위한 사전 컨퍼런스에서 매우 재미있는 질문을 꺼냈다.
“만약 당신의 자동차에 예술강사에 대한 스티커(Bumper Sticker)를 붙인다면 어떤 문구를 써 넣고 싶나요? 만약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만난 상대에게 문화예술교육과 예술강사에 대해서 2분 동안 설명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설명하고 싶고, 왜 그런 설명을 하고 싶나요?”
현장에 모인 참여자들은 예술강사를 “그들이 믿는 예술교육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사람(linker)” “자동차를 운전하듯 예술교육적 행위를 실천하는 자(artistic driver)” “예술교육으로 이 세상을 흔드는 자(rock the world)” 등 다양한 표현으로 묘사했다. 두 가지 질문으로 시작된 사전 컨퍼런스는 자연스럽게 문화예술교육과 예술강사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토론하고 공유하는 장으로 이어졌다.
이어 미국 예술강사들이 주로 고민하고 있는 8가지의 구체적인 주제를 안내하고, 주제중심으로 자발적인 모둠을 만들어 토론하고 발표할 수 있도록 했다. 8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예술강사로서 성공적이고 혁신적이었던 사례 공유하기(Sharing Innovation)
2. 1분짜리 ‘예술강사’ 영상 만들기(Create a Video Library of TA Tips)
3. 예술강사 활동자금 조성방법(Funding the Teaching Artist Field : Past, Present and Future)
4. 문화다양성과 예술교육의 관계(Centering the Work : Social Justice and Teaching Artistry)
5. 왜 우리는 예술강사 일까? 예술강사의 철학 논의 (The Teaching Artist Philosophy Project)
6. 노인 대상 문화예술교육과 예술강사(National Field of Teaching Artist in Creative Aging)
7. 예술강사 활동의 단점들(Teaching Artist Compensation : Opeing the Secrets, Transparently)
8. 예술강사 활동의 미래 상상해보기(Inspiration, Aspiration, and Innovation Among Teaching Artists : Collaboratively Imaging the Future)
위 주제들 중 우리는 ‘예술강사가 가져야 할 철학’을 주제로 한 모둠에 참여하여 더욱 깊이 있게 토론하고, 고민해볼 수 있었다. 모둠별 토론을 통해 미국의 예술강사들도 그들의 정체성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 고민의 결과로 2013년 예술강사조합(TAG/ Teaching Artist Guild)에서 ‘예술강사 선언문(The Teaching Artist’s Manifesto)’을 작성·발표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성명서에는 예술강사가 어디에서 일을 하는지, 예술교육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등이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날 모둠별 토론회는 각자가 생각하는 예술강사가 가져야 할 철학을 예술강사 선언문으로 정리하고, 이를 다른 모둠과 함께 발표하여 공유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사전 컨퍼런스는 끝이 났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만든다
– 코크리에이트 ‘협력적 예술교육을 위한 공간을 새롭게 상상하기’
제목부터 재치 있는 코크리에이트(CoCre8, 일명 cocreate) 프로젝트를 통해 이번 컨퍼런스의 핵심단어라 할 수 있는 ‘협력’에 대한 단편적인 예시를 볼 수 있었다. 코크리에이트 프로젝트는 2013년 시카고 대학의 스마트 미술관(SMART MUSEUM OF ART)과 아츠+퍼블릭 라이프(Arts+Public Life), 어반 게이트웨이즈(URBAN GATWAYS)가 함께 시작한 예술교육 협력 프로젝트의 시범사업이다. 서로 다른 3개 기관이 협력하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지만, 프로젝트 자체가 지닌 ’협력‘의 의미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코크리에이트가 지향하는 프로젝트의 방향성 중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구성원에 있다. 전통적인 예술교육은 예술강사가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팀티칭(예술강사-교사)의 구조였다면, 코크리에이트는 이러한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해체하고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하여, 일방적인 주입방식을 지양하고 교육 수혜자로부터 자연스럽게 유도해내는 교육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인 예술교육 현장에서 참여자는 ‘예술강사-수혜자’의 구조로 진행된다면, 코크리에이트는 ‘문화기관+예술강사+교사+학생’이 하나의 구성원(주체)이 되어 6주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이들이 만난 예술작품을 재창조한 ‘프로젝트 전시회’를 진행함으로써 서로를 격려한다.
코크리에이트는 하나의 프로젝트에 4개의 기관, 4명의 예술강사, 8~10명의 교사가 3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참여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두가 서로가 가진 다양한 기술과 관점 등을 공유하며 배우는 사람(learner)이자 가르쳐주는 사람(teacher), 만드는 사람(maker)으로서 역할을 감당한다는 점에서 예술교육의 협력형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두드러졌다. 강연자는 학생들을 제외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하고 운영해 나가는 데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공통의 관심사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일방적인 하향식 의사결정이 아닌, 상향식 의사결정도 흔하게 일어난다는 점과 참여자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없다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이러한 코크리에이트의 지향과 협력을 위한 노력들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이 아니었을까.
문화예술교육 매개자로의 성장과 커뮤니티 예술교육의 확장
– 클레이 스튜디오 현장탐방
컨퍼런스 마지막 날인 11월 14일 오전. 컨퍼런스가 열리는 메리어트 다운타운 호텔 3층 로비에는 현장탐방을 가기 위해 목적지별로 모인 참가자들이 그동안 못 다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이트 비지트(Site Visit)는 참가자가 가고 싶은 목적지를 선택하여 교육 장소에 방문하는 프로그램으로, 우리는 필라델피아 올드 시티에 위치한 클레이 스튜디오(THE CLAY STUDIO)를 방문했다.
클레이 스튜디오는 4층 건물로, 1층에는 전시물과 갤러리샵이 있고, 2층부터 4층에는 공예작업장이 있다. 공예작업실에는 전기 가마(kiln)를 비롯한 각종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도자를 빚고 굽는 전 과정이 한 장소에서 가능하다는 것과 도심에 공방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클레이 스튜디오의 미션은 도예경험을 위한 독특한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래서인지 결코 넓지 않은 공간 속 선반위에는 많은 작품들이 오밀조밀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클레이 스튜디오에서는 도자공예에 관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었다. 도예 교육프로그램은 운영시간과 교육대상의 폭이 매우 넓어 평일 오전, 오후, 저녁, 주말 등 참여가능한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고, 참여 대상도 가족단위, 직장인, 성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성인 대상 프로그램은 물레를 이용하는 도예교육, 물레 없이 손으로만 만드는 도예교육, 이슬람식 문양 디자인해보기 같이 특정 주제와 관련된 프로그램과 가마에 도자기 굽는 기술, 가마관리법, 유약 바르기 등 도예 작업 과정별 프로그램이 매우 다양하게 운영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클레이 캠프’였다. 6세 이상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7,8월(약 2개월 간)에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으로 기본 3시간 프로그램을 선택에 따라 연장할 수도 있다. 매주 금요일에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또한 캠프에는 클레이메이션 캠프, 지역 미술관 탐방, 유적지 탐방 등의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클레이 스튜디오(THE CLAY STUDIO)
클레이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스태프 대부분은 세라믹아트 전공자였다. 클레이 스튜디오에 상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레지던트 예술가, 교육프로그램의 해설자 역할을 하는 강사(Instructor)와 예술전공자가 인턴처럼 직업 체험형으로 근무하는 노동교환프로그램(Work Exchange Program)도 있다. 이들은 클레이 스튜디오 시설을 이용하면서 교육, 시설관리, 고객서비스, 이벤트준비, 작품 판매까지 스튜디오 운영에 관련된 대부분의 일을 나누어서 하고 있었다. 클레이 스튜디오의 이러한 운영방식은,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도예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예술가를 필요한 업무에 활용할 수 있고, 도예 전공 예술가로서는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과 공간을 제공받을 수 있으며,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이고 순환적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다.
문화예술교육, 함께 공감하고 고민하기
리더십, 협력/파트너십, 네트워킹, 창의적인 청소년 역량개발 등의 키워드를 가지고 미국 전역의 예술교육 관계자들(예술강사, 기획자, 행정가, 교사, 대학생 등)이 관심영역에 따라 다양한 세션들에 참석할 수 있도록 구성된 ‘제78회 전미 예술교육 연례 컨퍼런스’는 미국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예술교육에 대한 사례들과 그들의 고민하고 있는 지점들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컨퍼런스에 참가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참여자들의 태도였다. 우수사례를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민하고 있는 어려움을 스스럼없이 다른 이들에게 털어놓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며, 각자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통해서 창출하는 가치에 대해서 공감하며 끊임없이 토론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2명 이상의 구성원, 혹은 2개 이상의 기관이 함께 사업을 추진하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네트워킹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의 저변을 넓혀가는 것 역시 ‘협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크리에이트의 사례처럼 매개자와 수혜자를 위한 기획이나 행정의 지원역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프로그램 안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진정한 협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컨퍼런스는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사례를 공유하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 속에서 어떠한 일을 할 수 있을지 점검하고 네트워크를 확대하여 각자의 기관 혹은 개개인이 서로에게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좋은 컨퍼런스를 짜임새 있는 글로 소개해 주신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본 컨퍼런스를 진행하신 분들에게서 전문적인 퍼실리테이션, 코칭 기법이 느껴지고, 참여자들에게서도 주도적인 참여, 열린 마음이라는 마음가짐이 느껴집니다. 이런 좋은 컨퍼런스가 한국에서도 열릴 날을 기대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