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태권도원으로 가는 마을길엔 벌써 계절이 바싹 다가와 있다. 울긋불긋한 산과 쌀쌀해진 바람은 곧 겨울이 온다고 아우성들이다. 옷깃을 여미고 황량한 태권도원을 가로질러 T1경기장으로 들어서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아이들의 후끈한 열기와 함성이 체육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원색 티셔츠를 입고 앉은 아이들이 가을 단풍보다 아름답다.
“자, 2박 3일 동안 잘해보자는 의미에서 우리 선생님들이 어린이들에게 큰절 한번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선생님들의 큰절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입소식이 시작되고, 대전 남선초등학교 아이들의 기운찬 대취타 공연으로 2박 3일 간의 2015년 예술꽃 씨앗학교 성과 공유회 ‘예술이 꽃피는 숲’의 포문이 열린다.
예술꽃 씨앗학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농어촌 등 문화소외지역 소재 전교생 400명 이하 소규모 초등학교 전교생을 대상으로 4년간 지속적으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번 성과 공유회 ‘예술이 꽃피는 숲’에는 올해 지원이 끝나는 4년차 예술꽃 씨앗학교 10개교의 학생과 교직원 450여 명, 1~3년 차 예술꽃 씨앗학교 학교장 및 교직원, 사업관계자 100여 명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관람이 아닌 놀이, 경쟁이 아닌 만남
학교 안팎의 ‘발표회’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혹시 관심 없는 내빈 소개를 한참 듣다가, 재미없는 긴 축사를 듣느라 하품하던 일이 떠오르지는 않는지. 다른 공연은 보는 둥 마는 둥 무대에 오르고 나면 집이 멀어 나머지 공연을 뒤로 하고 버스로 이동해야 했던, 그런 경험들이 생각나는 건 아닌지.
“전에는 아이들이 의상 갈아입고 공연 준비하느라 다른 학교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체험형으로) 하니 여유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 권영오(남원초등학교 교사)
무엇보다 이번 성과공유회가 특별한 이유는 권영오 교사의 말처럼 2014년까지 해 왔던 하루짜리 ‘발표회’ 형식이 아니라, 2박 3일 체험형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번 성과 공유회는 무엇보다 참가 학생들이 직접 체험하고 협력하여 공동의 경험을 할 수 있는 놀이와 친교의 시간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첫 날 T1경기장에서 열린, 종이컵을 활용한 바디타, 컵타, 컵으로 작품 만들기를 해 보는 ‘오프닝 놀이’부터 씨앗학교 둘째 날 연계 체험놀이와 예술가 체험놀이 등의 프로그램을 배치함으로써 참가자(어린이) 중심의 행사를 운영하고자 한 흔적이 엿보였다.
“‘레’는 기억나나? 니 까먹었제?”
경남 거제 창호초등학교 친구의 애정 어린 타박(?)에 난생 처음 플루트를 배워보는 전남 담양 고서초등학교 친구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아이들은 어제보다 훨씬 친해진 모양이다. 별것도 아닌 일에 ‘까르르’ 웃고 장난을 친다. 1층 나래홀에서는 전북 군산 당북초등학교 아이들과 부산 서명초등학교 아이들이 함께 배 깔고 나란히 엎드려 <당북아리랑>을 <서명아리랑>으로 바꾸어보는 작업이 한창이다.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들을 가르쳐주고 새로운 것을 배워보는 씨앗학교 연계 체험놀이 시간이다.
평소 학교 간 만남에서 이런 경험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누가 누가 잘하나’ 하는 식의 행사에서 다른 학교 아이들을 경쟁자로 만나기 십상이다. 이번 성과발표회에서는 아이들이 서로에게 배우며 함께 노는 ‘연계 체험놀이’뿐만 아니라 각 학교 발표가 시작되기 전 짝꿍 학교의 응원 영상을 틀어주거나, 공연이 끝난 뒤 궁금했던 것을 묻고 답하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짐으로써 공연 무대를 훨씬 더 따뜻한 소통의 시간으로 만들어주는 장치들이 눈에 띄었다. 문화예술은 ‘경쟁’보다는 ‘만남’으로 함께할 때 풍성해진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되지 않을까.
평소 학교 간 만남에서 이런 경험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누가 누가 잘하나’ 하는 식의 행사에서 다른 학교 아이들을 경쟁자로 만나기 십상이다. 이번 성과발표회에서는 아이들이 서로에게 배우며 함께 노는 ‘연계 체험놀이’뿐만 아니라 각 학교 발표가 시작되기 전 짝꿍 학교의 응원 영상을 틀어주거나, 공연이 끝난 뒤 궁금했던 것을 묻고 답하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짐으로써 공연 무대를 훨씬 더 따뜻한 소통의 시간으로 만들어주는 장치들이 눈에 띄었다. 문화예술은 ‘경쟁’보다는 ‘만남’으로 함께할 때 풍성해진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색다른 공간에서 다른 선생님들도 만나보고, 다른 형태의 경험을 해 볼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사실 공연 자체가 그런 것이죠.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같이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될 수 있고.”
– 최용규(담양 고서초등학교 강사, 한국연극협회 광주지부 극단 도깨비 대표)
우리가 건져야 할 질문들
그것이 국고 지원 사업이든, 학교의 방과 후 교육과정이든, 동사무소 노래교실이든, 유치원 졸업식이든 한 기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그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가 열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는 많은 현장이 내용의 질이나 양에 신경을 쓰느라 그것을 담는 그릇, 즉 형식에는 별 신경을 기울이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예술꽃 씨앗학교 성과 공유회 ‘예술이 꽃피는 숲’이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사업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고민, 즉 ‘성과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성과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예술꽃 씨앗학교만 해당하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짙게 물든 잎을 단 나무들이 이루는 가을 숲에서 귀한 질문들을 길어가는 길, 더 이상 쓸쓸하지 않다. 게다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성, 함께 부르는 노래가 오래도록 귀에 쟁쟁 머무를 테니.
- 예술꽃 씨앗학교는
- 전교생 40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에 최대 4년간 전교생의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선정된 학교에는 전문 예술강사 활용, 교육기자재 구입, 예술 현장 관람 등을 위한 예산이 최대 연 8천만 원까지 지원된다. 학교는 국악, 서양악, 미술, 연극, 통합예술교육 등 자율적으로 분야를 선택해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학생들은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문화적 감수성과 창의성, 표현력과 협동심을 함께 키운다. 또한 농산어촌, 도심 속 취약지역 등 문화소외지역의 학교들을 중점적으로 선정하는데, 학교와 지역사회 연계 차원에서 학부모 강좌와 재능나눔 활동 등을 통해 지역 공동체에도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 현재 전국에 총47개 학교가 예술꽃의 씨앗을 심고 새싹을 가꾸고자 노력하고 있다.
- – 예술꽃씨앗학교 홈페이지
- 이은진 _ 칼럼니스트
- 지역, 교육 및 육아, 커뮤니티 언저리에서 끄적거리고 싶은 사람. 지리산 자락 경남 함양에서 커피를 내리며 산다.
svjin9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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