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forest)을 체험하며 자연을 배우는(education) ‘포레듀케이션(foreducation)’이라는 신조어가 주목받고 있다. 말 그대로 산림교육이고, 숲으로부터 운동감각과 자기주도적인 창의 학습을 동시에 실현하자는 취지다. 실제 조사된 효과도 있다.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가 200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숲 속 어린이집의 아이들이 일반 어린이집 아이들보다 신체발달 및 사회성과 창의성 면에서 20% 이상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가 말해주는 것처럼 숲은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교육 환경이 되지만, 그러나 불행히도 모두가 숲을 가질 수는 없다.
숲과 비슷한 환경 안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놀이와 교육의 공간을 설계한 사례들이 있다.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에서, 잔디와 흙이 있어 안전한 바닥 위에서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소리를 만들고 음식을 준비한다. 대단히 거창한 프로젝트도 아니다. 유아교육 경험이 있는 부모들이 햇살 가득한 제 집 마당을 활용해 자연과 예술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 DIY형 작은 놀이터일 뿐이다. 돈도 많이 안 썼다. 대개 재활용품과 할인마트에서 구한 품목들로 공간의 기둥을 세웠다.

뒷마당의 작은 미술교실
20년 경력의 LA 출신 유아교사 메리 체리(Meri Cherry)는 직접 운영하는 유치원의 뒷마당에 작은 아틀리에를 만들어 놨다. 아이들은 부주의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일을 벌이기 시작하는 순간 옷도 공간도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으니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껴 본원과 분리된 별도의 공간을 설계하게 되었다. 연중 온난한 도시의 아열대성 기후 덕분에 아이들은 사계절 내내 여기서 마음껏 그리고 칠하며 본능으로 예술을 만난다.
그녀가 만든 아틀리에 안에서는 도화지의 개념이 없다. 벽과 문, 바닥과 소품 등 공간 안팎을 둘러싼 모든 것이 캔버스가 된다. 그녀가 여행지에서 가져왔다는 큰 조개, 현관 앞에 설치한 투명 아크릴판 또한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그리기 활동에 필요한 모든 재료들도 신중하게 골랐다. 요거트와 식용 색소를 활용해 화려한 색감의 안전한 물감을 만들고, 다양한 표현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붓과 분무기를 함께 배치해 놨다.
그녀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공간임을 강조한다. 일단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그의 남편과 사촌이 나무와 망치로 기둥과 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종 할인 마트와 거라지 세일(garage sale, 자기 집 차고에서 하는 중고 물품 세일)로부터 구한 값싼 장비를 배치했다. 그런 합리적인 공간에서 아이들은 칠하고 반복하면서 화려한 작품 세계를 펼친다.

소리를 만드는 벽
영화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가 생각난다. 록 밴드의 보컬리스트와 촉망받는 첼리스트 사이에서 태어난 어거스트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본능적으로 음악으로 받아들인다. 도시의 소음, 물건과 물건이 부딪히는 파열음도 소년 어거스트는 음악적 영감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아이가 어거스트 같은 천재 뮤지션으로 태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환경을 만난다면 음악적 경험을 조금 더 일찍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유아 창의 교육 전문 사이트 펀 앳 홈 위드 키즈(funathomewithkids.com)를 운영 중인 시애틀 출신의 아시아 시트로(Asia Citro)는 집 앞마당에 자신의 두 아이를 위한 공연장을 설계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작은 통나무 벽을 설치했고, 거기에 각종 타악기를 걸어 놨다. 악기라고 해서 대단한 것이 아니다. 지역 마트에서 구한 냄비와 체, 금속 선반 등이 전부다. 악기를 때릴 수 있는 드럼 스틱 또한 별 게 아니다. 스푼이나 거품기 같은 막대기 모양의 주방도구가 그 역할을 한다.
아시아 시트로는 유아 교육 관련 서적을 지속적으로 출간하는 작가로, 이전에는 과학 교사로 일했다. 그런 경험은 틀을 깨는 사고방식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제약 없는 교육이야말로 아이의 창의성과 상상력 확대에 기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당의 작은 콘서트홀도 그런 믿음에서 출발한 공간이다. 이미 걸어둔 악기들은 언제든지 교체 가능하다. 악기가 바뀌면 소리도 바뀐다. 그녀의 아이들은 일상적인 악기로 세상에 없는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마당의 오픈 키친
네 살짜리 꼬마 딤플스의 오후 일과는 좀 바쁘다. 소년은 머핀을 만들고 스튜를 만든다. 때때로 파이와 케이크에 도전한다. 어렵지 않다. 일단 식재료가 풍성하다. 진흙과 자갈이 지천이다. 그리고 그런 식재료를 닦고 섞고 조리할 싱크대가 있다. 즉 딤플스는 오픈 키친을 두고 있는 꼬마 주방장이다.
호주 사우스 웨스트에 거주하는 네 어서(Nae Author)는 집 앞 마당에 작은 주방을 만들었다. 그녀의 아이 딤플스가 소꿉놀이 하는 공간의 이름은 ‘더 머드 키친(The Mud Kitchen)’이다. 아이의 야외활동을 위한 최상의 재료는 흙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플라스틱 완구류 대신 각종 재활용품을 쓸어왔다. 버려진 캐러밴에서 싱크대를 가져왔고, 거기에 나무를 엮어 주방 시스템을 구축했다. 안 쓰는 냄비와 주전자, 머핀 틀 등 각종 주방도구도 가져다놨다. 수도도 연결했다.
딤플스의 친구들도 그 주방에 자주 찾아온다. 그리고 ‘마스터 셰프’ 흉내내기를 즐긴다. TV에서 본 내용을 따라하지만, 이제 TV를 더는 찾지 않는다. 직접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더 사랑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진흙을 만지며 주방활동의 기본을 익히고 새로운 레시피를 창조하고 있다.

이민희
이민희 _ 자유기고가
음악 매거진 <프라우드>, 나무 매거진 <우드 플래닛>에서 에디터로 활동했다. 글을 쓰고 있지만 창조가 아니니 전달자로 살고 있다고 믿는다. 더 잘 전달하고자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찾으려 애쓰고 있다.limini@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