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교류를 넘어 협력으로

문화예술교육 국제심포지엄 ‘문화예술교육, 지역성의 재발견:아시아·전통·삶’

국경을 넘어 공통적 문화권을 형성해 가는 지구촌(村) 시대, 세계는 지역의 또 다른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세계 대다수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바, 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상호 협력하기 위해 지난 5월 ‘2015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을 맞이하여 부산에서 ‘문화예술교육, 지역성의 재발견: 아시아·전통·삶’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가까이 있지만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예술교육 현황, 주요활동 등을 공유하고 국가 간 협력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해 보는 자리였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었다.
왼쪽부터 데이비드슨 헵번, 에그버트 위츠(인도네시아), 조셉 곤잘레스(말레이시아), 에바 살바도르(필리핀), 칼얀 쿠마르 차크라바티(인도)

왼쪽부터 데이비드슨 헵번, 에그버트 위츠(인도네시아), 조셉 곤잘레스(말레이시아), 에바 살바도르(필리핀), 칼얀 쿠마르 차크라바티(인도)

위협과 도전과제를 발견과 새로운 기회로
‘예술교육의 비전(Vision for Arts Education)’ 발제를 맡은 데이비드슨 헵번(Dr. Davidson Hepburn, 제35차 유네스코 총회 의장)은, 예술교육이 다양한 주제의 복잡한 융합이지만 때로는 이러한 어려운 조합들이 사회 발전을 이끄는 통찰력을 제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개인적 성취감과 사회적 투자를 유도·촉진시킨다는 점에서 예술교육은 중요하며, 예술에는 사회적 가치·신념·갈등상황과 문화유산이 표현·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유네스코가 예술교육에 있어서 국제사회의 아이디어·지식·실행노하우 등의 교환을 장려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21세기에 들어서 발견되는 학교에서의 창의예술교육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가히 예술(the art of the 21st century)이다”라고 표현하면서, 이러한 긍정적 경향은 지속적인 세계화의 산물이라는 점과 현재 전 지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폭력성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예술교육의 역할을 강조했다. 학교와 교육기관들이 지속적으로 예술교육을 제공할 필요성이 생김에 따라, 예술교육의 미래는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고 그 전망 역시 밝다는 것이다.
예술교육은 예술계에 있어서 시각예술, 공연예술, 무용, 영화 등 다방면의 분야를 아우르는 역할을 하며(여기서의 ‘분야’는 예술계·문화계·법조계 등 사회 전반적인 분야를 의미하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바, 예술교육이 단순히 ‘학교’라는 울타리 내에서만 이루어지지는 않아야 한다는 그의 설명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또한 성공적인 예술교육의 조건으로 사회구성원의 참여(engagement)를 꼽았던 점 역시 문화예술교육 구현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사회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예술교육을 통해 문화가 발전하고 국가문화경쟁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발표의 말미에 “미래를 보기 위해 현재를 보자.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자. 전 지구적 위협과 도전과제가 예술교육을 통해 재능발견과 기회창출로 전환될 수 있도록 새 시각(new eyes)을 갖자. 진정한 탐험은 단순한 발견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라는 설명은 그가 강조한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키워드였다.
인성, 역량, 지식을 갖춘 창의적 촉진자
‘인도네시아 예술과 문화의 활력 증진(Enhancing the vitality of Indonesian Arts and Culture)’을 제목으로 인도네시아 끄롤라재단(KELOLA Foundation)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한 에그버트 위츠(Egbert Wits)는 예술교육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미약함을 매우 아쉬워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미약한 만큼 인도네시아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세계은행, 포드재단, 아시아문화위원회, 유네스코-아쉬버그장학재단 등 개인·재단·기업들의 후원을 많이 받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후원 범위를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프로그램 준비과정과 예술가들의 수요파악을 위한 경청이 그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현재까지 4,000명 이상의 예술가가 끄롤라재단의 지원을 받았고, 예술계 인력의 역량강화를 위한 인턴십 프로그램, 혁신적 공연예술 지원 프로그램, 여성예술가를 위한 프로그램, 노동자·농부 등 소외계층을 위한 연극교육 프로그램, 영상·연극적 요소를 활용해 청소년들의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는 창의적 공동체 프로그램 등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예술교육 매개자들에게 필요한 자질을 ‘창의적 촉진기술’이라고 칭하며, 첫째, 겸손·인내·경청 등으로 대변되는 인성, 둘째, 사람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역량, 셋째, 교육에 대한 지식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인성이 없으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역량이 없으면 예술교육을 실행할 수 없으며, 지식이 없으면 교육의 효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들을 통칭 ‘촉진자(facilitators)’라고 하는데, 지칭하는 용어의 의미와 역할은 다를지라도 문화예술교육 진흥을 위해 일하는 현장 사람들은 작아진 지구촌 전 지역에 두루 존재함을, 그리고 그들에게 요구되는 자질도 엇비슷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창의적 촉진

예술교육 매개자들에게 필요한 자질 ‘창의적 촉진’

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가꾸는 예술교육
인도계 말레이시아인 조셉 곤잘레스(Dr. Joseph Gonzales), 국립 문화예술·유산교육원 무용과) 학장은 ‘현대사회와 말레이시아의 전통무용의 하나인 막용(Makyung) 간의 연관성 유지’를 주제로 말레이시아 전통예술교육 사례를 소개했다. 백발의 노신사는 다양한 문화·전통·혈통이 공존하는 국가 출신답게 문화다양성 존중을 위한 전통예술교육의 중요성과 본인의 노력을 열정적으로 피력하였다.
말레이시아와 같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는 것은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이점을 지닌다. 다문화와 함께 성장하며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표자는 내부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인종·종족 간 미묘한 관계에 따른 지역 알력다툼과 수많은 소외집단들이 사회에 파생된다는 사실과 이러한 부작용들이 공연예술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며,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설명하였다.
말레이 지역무용의 근본이 된 다양한 음악리듬의 이나(Ina), 아랍문화에서 유래한 자핀(Zapin), 말레이 전통에서 유래한 무용 타리안 아슬리(Tarian Asli), 결혼식 무용 테리나이(Terinai) 등 말레이 전통무용은 유래부터 문화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KFC와 맥도날드에 친숙한 요즘 세대에게 이러한 무용이 기반이 된 전통연극을 소개하려는 노력은 어려운 일이지만 말레이 정체성 유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 자핀
  • 테리나이
말레이시아 전통무용 자핀(Zapin, 왼쪽), 테리나이(Terinai, 오른쪽)

국립문화예술·유산교육원에서는 인종·종족적 배경과 무관하게 예술교육을 제공하는데, 이는 예술이 어느 특정 전문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일상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교육이 힌두적·애니미즘적 기원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정부의 아젠다에 따라 변형·재가공이 이루어질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정치․문화적 특수성이 문화예술교육과 연관되는 사례였다는 점에서 말레이시아의 문화예술교육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의 민주화와 분권화를 강조하는 역사적 경험
‘예술교육-필리핀 국민의 삶에 중요한 예술(Arts education : “Art matters to the lives of Filipinos)’라는 주제로 발제한 에바 살바도르(Eva Salvador) 필리핀 문화센터 예술교육부 부장은 필리핀의 근현대사로 말문을 열었다.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른 예술형태, 예술가와 예술교육 수혜자의 변화를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970~80년대 계엄령(Martial Law) 시절에는 특수계층만이 예술교육의 수혜를 입었지만 동시에 저항예술의 시기이기도 했기에 많은 필리핀 예술가들이 서로의 예술경험을 공유하고 배우며 성장해 나가는 시기였다. 우수 예술가 양성과 예술교육을 지원하는 필리핀 문화센터는 1989년 민중혁명(People Power Revolution) 발생 이후 예술의 민주화와 분권화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으며,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환경이 난제로 작용하고는 있지만 지금도 왕성히 활동 중이라고 한다.
필리핀 문화센터의 예술교육 관련 부서는 예술교육부, 관객개발부, 예술가양성부, 문화관리부 등 4개 분과로 나누어진다. 관객개발부서의 ‘관객’은 예술교육의 일반적인 수혜자로 지칭되는 학생집단 외에도 예술계 전문가, 연구자, 지역 현장 활동가 및 민·관을 포함한다. 여기서 진행하는 강의 시리즈와 교육투어의 대상이 비단 학생과 교사뿐만 아니라, 국회의원과 국회직원도 포함된다는 사실이 흥미를 끌었다. 의외로 예산 확보를 위한 시연 및 설득 작업은 꽤나 성공적이어서 든든한 우군이 되어 주고 있다고 한다.(자세한 내용은 자료집 참조)
한편, 문화관리부서는 예술가들이 문화기관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제안서 작성, 예산 확보, 단체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 등을 통해 수혜자들이 자생력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필리핀 예술계와 경향을 이해하는데 상대적으로 취약한 외국인 행정인력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인 ‘아츠 멘토십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공간을 활용한 필리핀 지역사회 청소년 교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특히 눈길을 끌었는데, 작고한 필리핀 국민예술가 고(故) 라몬 오부산(Ramon Obusan)을 기념해 만들어진 지역사회 문화하우스 ‘바하이 니 쿠야(Bahay Ni Kuya)’는 해당 지역사회 청소년들이 민속무용·음악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마약·매춘에 노출되기 쉬운 지역 아동·청소년들이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민관이 함께 만드는 미래
마지막으로 칼얀 쿠마르 차크라바티(Shri Kalyan Kumar Chakravarty, 전(前) 인도 라리트 카라 아카데미 총장)는 아시아 예술교육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역설하였다. 민·관·학을 두루 거친 이 인도학자는 전인적 인격형성을 위한 예술교육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술교육은 첫째, 재능 있는 소수만을 위한 권리가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진 보편적 권리이다. 둘째, 다양한 지성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균형적인 인지 및 정서발달을 추구하고, 사회·경제적 발전을 위한 창조산업을 장려해야 한다. 넷째, 이와 관련하여 모든 이해관계자 사이의 파트너십이 형성되어야 한다. 다섯째, 예술교육 관련 데이터·지식을 축적하는 정보뱅크 등이 개발되어야 한다.”
  • 인도 보팔 인류박물관
  • 인도 보팔 인류박물관
인도 보팔 인류박물관(Museum of Mankind, Bhopal, Central India) 건축현장

지역기반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한 ‘탈박물관화(脫博物館化, demuseumization)’의 예시로 인도 보팔(Bhopal)지역의 인류박물관(Museum of Mankind)을 소개하며 다시 한 번 공공기관 관계자들에게 각성의 메시지를 던졌다. 공공문화기관에서 하는 일은 지역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아니라, 지역민과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류박물관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서 지역민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재능과 창조적 에너지가 정부관계자들에게 더 큰 활기를 주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예술이 가진 시너지의 힘이 있기에 예술관련 기관 간 협력이 중요하고, 시각·공연·전통예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 간 파벌적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시아 문화예술교육 협력의 초석
아시아는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다는 점을 넘어 국가별 문화정체성과 국가 간 문화적 친밀성이 높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발제에 이어 보다 풍성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아시아 국가 간 협력에 관한 토론도 이루어졌다. 작게는 페이스북부터 크게는 온라인 교류를 위한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 정기적 만남을 통한 예술교육 지원기관 간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의견, 예술교육자 역량강화를 위한 방법론 공유 등 매개자 교육에 있어서의 협력을 도모해 보자는 의견, 예술교육자 커뮤니티를 통한 예술교육 매개자들 간의 역량교류 및 문화예술교육 국제 연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한편, 예술축제·예술중심의 행사에서도 예술교육을 포괄하여 그 중요성을 환기·확산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예술교육 시행에 있어서의 기금확보가 어렵지만 중요하다는 의견, 장기적인 예술교육 효과분석 연구에 있어서 역시 아시아 국가 간 협력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예술교육의 중요성, 진흥·협력의 필요성에 있어서 각 국가 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이 이번 국제심포지엄의 가장 큰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지속적인 아시아 국가들 간의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한 교류가 더욱 다양해지고 심화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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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현

이다현 _ 정책연구팀
likethestars@art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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