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가 넘도록 여전히 환한, 길어야 3달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여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독일 사람들의 마음이 분주해지는 시기다. 대부분의 연방주에서는 이맘때면 심야 박물관 탐방행사를 여는데 긍정적인 호응과 함께 입소문을 타면서 더 많은 관람객들이 참여하고 있다. 물론 이는 다시 상승작용을 일으켜 다양한 문화행사 마련에 기여한다.

 

구 동독 도시의 밤은 설렌다!

 

불과 일주일 전, 각각 구 동독지역인 할레/라이프찌히와 마인츠에는 열린 “심야 박물관 프로그램(Museumsnacht)”에 참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다. 프로그램 내용은 간단했다. 새벽까지 박물관은 개방되고, 밤이라는 시간이 주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이곳을 즐기는 것이다. 가끔 시간적 여유를 내서 둘러보는 박물관, 관람객이 모두 떠난 밤시간에는 어떤 모습일지,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지에 대한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 프로그램을 알리는데 큰 효과로 작용했다.

유난히 오후 해가 길었던 그날, 길가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든다. 바로 할레와 라이프찌히를 분주히 다니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한 사람들이다. 가족 단위 또는 친구들과 함께 한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 안은 정보교류가 한창이다. 오후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박물관을 개방하지만 같은 시간대에 관람할 수 있는 박물관의 수가 70군데가 넘기 때문에 사전에 꼼꼼한 계획이 필수다. 16세 미만의 학생들에게는 모든 관람비가 무료고 어른들도 8유로라는 가벼운 금액으로 모든 박물관 및 공연관람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족들의 문화행사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단단한 체력도 받쳐줘야 한다”고 몇몇 관람객들이 귀띔해주었다.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박물관 여행

 

라이프찌히 도시의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도시 박물관에서는, 18세기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후 밤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무리 사이로 어린 학생들도 눈에 띈다. 그 시기에 학생들의 생활이 기록된 고서가 우연히 발견되면서 알려지게 된, 당시 이 지역 학생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되면서 관람객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한편, 세계적인 음악가 바흐 박물관에서는 바흐의 생애와 음악사에 남긴 영향들을 설명하고 바흐의 음악에 맞춰 조명을 자유롭게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 프로그램은 각자 준비물로 챙겨온 티셔츠에 색깔을 입히면서 음악과 빛, 그리고 색이라는 세 가지 조화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하얀색 낡은 티셔츠를 가져와 바흐의 음악에 맞춰 다양한 색을 입혀 본 마쿠스(Marcus, 8세)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녁시간에 박물관에 올 수 있는 것은 여름뿐이에요. 익숙하지 않는 시간대라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어요”라는 말을 남기며 서둘러 다음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별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은 정해진 시간표대로 진행되고 있어서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의 경우 늦으면 참여하기가 힘들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인츠에서는 개인 갤러리 및 아뜰리에와 박물관 연계 행사들이 다양해, 유독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색들의 한 여름밤의 꿈’ 이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회에서는 총 4명의 작가들이 추상적, 실험적, 표현주의적인 방식을 이용한 그림을 전시해 여름 밤 문화행사라는 전반적인 취지에 맞는 행사로 호응을 얻었다. 여름을 상징하는 다양한 색들을 적극적으로 그림에 활용해 생명력 넘치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많은 색을 사용하긴 했지만 오히려 어두운 느낌을 주는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까다로운 관객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그림들로 가득했다. 전시회 장은 그림을 전공하는 학생부터 자신만의 ‘한 여름밤의 꿈’을 표현하고 있는 꼬마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유달리 참여연령이 다양했다. 그 밖에도 자연역사 박물관에서는 남아프리카를 알아보는 퀴즈 프로그램을 열어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또한 여름 밤이면 유독 생각나는, 맥주에 대한 지역 역사를 되짚어 보는 프로그램도 높은 인기를 끌었다. 마인츠 도시 박물관에서 개최한 이번 행사는 마인츠가 19세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약 40개의 맥주 제조업체가 있었던 맥주의 도시였다는 사실을, 당시 물건들로 증명하면서 도시의 역사를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마인츠가 맥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문화예술 프로그램, 시민의 여가문화를 바꾸다

 

불과 일년에 하루뿐이지만 심야 박물관을 찾는 시민들에게 이 행사는 중요하다. 퇴근 후 개인 시간을 철저하게 지켜지는 것으로 잘 알려진 독일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에 속하는 밤 시간을 활용해 문화행사 참여를 유도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박물관 관람시간을 낮 시간에서 밤시간으로 전환한 것에 불과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던 것이 그 이유다. 두 도시가 마련한 프로그램들의 대다수가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이라는 점도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지역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와의 접목이라는 것 그리고 밤이라는 낯선 시간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제공이라는 것의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면서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문화라는 단어 속에 포함되는 모든 개념들, 예술, 생활모습 그리고 음식문화에 이르기까지 긴 여름 밤을 즐기기 위한 관객들의 행렬은 이른 새벽까지 계속됐다.

 

글_성경숙 독일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