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문화예술교육, 다양화 바람을 타다

 

학교 공간에 앉아서 보고 듣기만 하는 문화예술 활동은 지루하다! 직접 체험하고 느끼는 문화예술 활동은 독일에서 새로운 문화예술 분야로 등장하면서 독일의 문화예술 교육이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호해야 한다고만 여겨지던 문화유산들이 학습 자료로 쓰이고, 늘 보기만 했던 춤을 직접 무대 위에서 춰보는 체험을 해보는 등의 활동이 가능해졌다. 이들의 뒤에는 민간단체와 지역민들의 후원과 지지가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학교수업과 동떨어진 문화예술 활동이 아니라, 지역민이 학교교육의 연장선 상에 놓여 있는 문화예술교육을 후원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문화유산이 학교를 만든다(Kulturerbe macht Schule)

 

아침부터 부산하다. 20여명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땅을 파고 있는 모습은 왠지 낯설다. 주변을 둘러보니 유적지 발굴을 하고 있는 곳으로 보이는 이곳에 비전문가들인 어린 학생들의 모습은 부조화스러운 풍경이 아닌가? 좀 더 들여다보니 아슬아슬하기까지 하다. 막 세상 밖으로 나온 깨진 도자기 하나를 조심스럽게 나눠지고 기록에 열심이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누구인가? 궁금증이 커지던 와중에 학생들이 직접 유물 발굴 현장에 참여한다는 현장 책임자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유물 발굴 현장을 학생들에게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는 말에 잠깐이지만 필자의 독일어 실력을 의심했다.

 

우리 모두는 문화유산을 보존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줄 의무를 띄고 있다는 것쯤은 기본 상식으로 알고 있다. 독일이라고 예외이겠나? 하지만 여기에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독일 문화재 보호 재단(Deutsche Stiftung Denkmalschutz)에서는 이 의무를 소극적인 방식으로만 전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2002년부터 이 재단이 시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덴크말 악티브(Denkmal aktiv)”에서는 학교 교과목인 역사 및 지리를 문화유산과 연관시켜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체험을 통해 각인시키는 동시에, 프로그램 이름대로 액티브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자는 취지하에 발족되었다.

 

이 재단이 내세우고 있는 프로그램의 설립목적은 다음과 같다.

– 자국 문화와 역사 및 환경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관심 유발

– 잘 알려지지 않은 기념비에서부터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을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기

– 문화유산에 대한 책임의식 고취

 

이 프로그램에서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점은 문화예술교육을 학교교육과 분리시킨 활동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의 문화예술교육이 참여자들의 문화적 소양을 쌓을 목적으로 회화나 악기를 배워 전시회와 연주회로 성취의식을 고취시켰던 것과 대비된다. 학교 수업을 돕고자 현장학습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지금까지 학교교육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줌으로써 ‘완벽한 학교’ 만들기라는 기본 모토에 좀 더 근접한 모습이다. 이러한 점은 이 재단에서 발간하는 학습교재를 봐도 알 수 있다. 수업교재로 활용가능 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에도 도움이 되는 교재를 출간해 배우려는 자와 가르치려는 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네스코 측으로부터 ‘인류의 문화유산(Welterbe der Menschheit)’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은 교사들을 위한 교재(제목: Welterbe für junge Menschen. Entdenken–Erforschen–Erhalten)은 지난 해 출간되어 이미 유명세를 탄 바 있다.

 

학교교육의 범주 내에서 문화예술교육 목적을 띠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참여하고자 하는 학교들에 한해 독일 문화재 보호재단에서 경제적인 지원과 함께 전문적인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지원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에 따라 맞춤형으로 종일 반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에는 문화유산을 직접 연구하거나 발굴하는 등의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매년 신청 시기는 3월에서 5월 사이이다.

 

<스텝바이스텝> 함부르크 댄스 프로그램

 

음악은 그 종류만큼이나 사람의 취향도 상당히 다양하다. 지금까지 필자는 본지를 통해 다양한 독일의 음악교육을 소개한 바 있다. 뮤지컬, 악기 연주, 전통 무용 및 그룹사운드에 이르기까지 독일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음악활동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중 여기에 순수 지역민들이 운영하고 후원하는 순수 민간단체가 실행하고 있는 댄스 프로그램이 있다. 항구도시 함부르크의 STADTKULTUR HAMBURG e.V.가 진행하고 있는 <스텝바이스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09/10년 학기에 총 10개 학급이 참여한 함부르크 댄스 프로그램 <스텝바이스텝>은 매주 일정시간 전문 댄스교육 전문 강사가 댄스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을 위한 전문 강좌도 열리고 있는데 이러한 피드백 교육을 통해서 ‘몸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더 나아가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신체운동을 통해 학생들의 신체적 및 정신적 발육을 주목적으로 두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어 앞으로는 성장 및 발전에 중요한 자극제 역할과 함께 개인적인 인성개발에도 도움을 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전문 댄스강사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학생들이 신체를 통한 예술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고 가능한 한 많은 무대 위에서 지금까지의 성과를 보여주는 대중성을 키워주는 이 프로그램은 장장 2년간 진행된다.

 

프로그램 <스텝바이스텝>은 함부르크 시내에 있는 학교들을 대상으로 자발적인 신청을 받아 2년간 진행되며 종일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11세-12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 주에 평균적으로 2시간가량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학급의 담임교사도 의무적으로 함께 참석하여 전문 강사와 공동으로 진행한다. 대개 독일에서 진행하고 있는 방과 후 문화예술교육이 그러하듯 참가자들의 성취욕을 높이고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위해 전문적인 공연도 함께 준비된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교들과 함부르크 도시가 공동으로 기획 및 조직하여 매년 함부르크 시에서 대대적인 공연을 하는데, 이 댄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급들은 함부르크 시가 주관하는 학교 연극축제인 <연극이 학교를 만든다(Theater macht Schule)>에도 참여하여 공동무대에 서고 있다.

 

<스텝바이스텝> 프로그램은 단순히 음악과 운동수업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예술 및 언어와 같은 교과목에도 활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연과학 과목에서도 활용 가능하다. 즉, 대기와 물의 흐름을 몸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해 냄으로써 이해력을 돕기도 하고 지식적인 부분을 좀 더 친숙한 방식으로 ‘자기만의 이해법’을 찾아내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특성화 교육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 및 지역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모두가 행복한 프로그램’의 성격을 띠고 있다. ‘모두가 행복한 프로그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로 협력하여 만들어가는 전 과정을 빼놓을 수 없다. 지역 연극단체와 협회, 학생 및 학교 간의 의견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무엇보다도 지역 후원자들에 의해서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1999년 3월에 STADTKULTUR HAMBURG는 함부르크 주에 거주하는 시민들에 의해 설립된 이후로 자체적인 시민단체로서 그 영향력을 키워왔다.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역민들의 후원금만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기관은 도움을 받고 성장한 참여자들이 자연스럽게 다시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 잡는 순화적인 구조를 유지해왔다. 이 기관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운영 프로그램들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는 이미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