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프랑스 정부의 여름방학 문화예술교육 사업 ‘시간의 문’

 

 
올 여름 프랑스 정부가 펼치는 문화예술사업 중에 필자가 관심 있게 지켜본 사업은 바로 “시간의 문”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시간의 문” 행사는 여름 방학이 한창인 7월에 약 2주간 펼쳐지는 프랑스에 문화 소외계층 어린이 및 청소년을 위한 문화부 사업으로 그들이 프랑스 역사와 문화 유산 그리고 유적지 등을 좀 더 재미있게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문화 예술 역사 체험 사업이다.
본 사업은 사회 통합과 기회 평등의 차원에서 평소 문화와 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여름 방학 동안 문화 유적지를 둘러보게 하고 문화예술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평소에도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문화와 문화유산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유발하기 위함에 그 목적이 있다.

본 사업은 일단 문화부가 전국의 문화 유적지 및 박물관 중에 본 사업에 참여를 원하는 곳의 신청을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참가 문화 유적지 및 박물관은 정부의 보조금과 메세나 기업의 후원금으로 각종 문화 예술 단체 및 협회의 도움을 받아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각종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또한 그들은 대도시 외곽 지역과 미개발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센터, 어린이집, 청소년문화센터 등에 본 사업을 알려 본 프로그램에 참가할 어린이 및 청소년들의 신청을 받는다.

얼핏 보면 프랑스 정부의 “시간의 문” 사업은 문화 유적지나 박물관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하고 있는 단순한 문화예술사업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대중교육단체,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단체, 기업재단 등이 협력하고 거기에 화가, 연극인, 무용가, 음악가 등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이루어 지는 프랑스 정부의 사회적이고 문화예술적인 거대한 규모의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라 할 수 있겠다. 본 사업의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을 이끌어 가는 주체인 예술가들은 역사와 문화유산에 관련된 새로운 형태의 공연 및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참가 어린이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 그들이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비평적 시각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올해는 퐁텐블루 성(chateau de Fontainebleau)을 비롯한 프랑스 전국 14개 지방의 21개 곳 (박물관, 유적지, 역사적 건축물 등)에서 7월 7일부터 23일까지 약 250여 개 단체의 4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참여하여 본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다.

 

 
그 중 필자가 직접 찾아가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의 문” 프로그램을 즐기고 온 곳은 파리에서 약 17km쯤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포르-로와이얄 박물관(Musee de Port-Royal des Champs)이다.
13세기 초에 건립된 유명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학교와 곡식 창고 등 주변에 몇몇 건물을 합해 세워진 포르-로와이얄 박물관 주위에는 숲이 우거져 있고 들판이 펼쳐져 있어 아이들의 야외 활동에 더없이 좋아 보였다.

포르-로와이얄 박물관에 “시간의 문” 사업 협력관인 클라라 씨와 약속이 된 날 아침 10시. 박물관 앞에 버스가 하나 둘씩 도착하더니 아이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자연 속에 놓여져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리 저리 뛰고 있었고, 그들을 하루 종일 인솔하시기 위해 함께 오신 여러 복지 기관, 시청, 어린이 집 종사자 분들은 아이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쓰시면서도 은근히 아이들 못지않게 하루 동안 있을 “시간의 문” 프로그램에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드디어 팀 별로 시간간격을 두어 박물관 입장이 시작되고,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난 얼굴로 박물관 문을 향해 뛰어가다시피 한다. 그러나 문을 통과하기 바로 직전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한 아가씨. 그녀는 매우 이상한 행동들을 하며 자신이 “시간의 문”을 발견했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 “시간의 문”을 통과하면 아주 옛날 옛적 과거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그녀의 얘기는 바로 박물관의 문이 그 시간의 문이라는 것.
그녀는 그 문을 통과해 과거로 가기 위해서는 문을 통과하기 전에 자기가 하는 대로 춤을 추어야 한다고 넌지시 말해 주더니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춘 아이들은 어느새 박물관 문을 통과하여 드넓은 박물관 안에 자연이 인도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는 순간 어디선가 또 불쑥 튀어나온 한 아저씨. 그는 이상한 차림으로 아무런 말 없이 한참을 아이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여기저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 아이의 모자를 벗기면서 그 아이에게 하는 말 “이것이 대체 무엇인가? 모자가 뭐 이렇게 생겼담? 모자 위에 뭐라고 써있네. 아……디…다…스…. 아~ 당신의 이름이 아디다스인가 보오! 옷차림도 참 괴상도 하지…… 요즘 이 곳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자주 출현한다더니 당신들도 그 일행들인가 보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연구 가치가 충분히 있겠는걸!”

그는 다름 아닌 프랑스의 수학자ㆍ물리학자ㆍ철학자ㆍ종교 사상가 ‘블레즈 파스칼’. 유고집 <팡세>와 수학에서 <파스칼의 정리>로 유명한 그는 현재는 17세기이고 수녀로 있는 그의 여동생을 방문하러 이 곳 포르-로와이얄 수도원에 왔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이 날 아침 내내 파스칼 씨 이후에도 17세기의 여러 인물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수도원 생활 이야기를 들려준 파스칼 씨의 여동생 쟈클린 수녀님, 길 안내를 해 주신 백작 부인, 시를 읊는 음유시인, 여러 물체들을 이용해서 소리를 연구하시는 악기 발명가, 중세시대에 집 짓는 방법과 돌을 다루는 법을 알려 주신 두 분의 석공 아저씨 등등. 아이들은 그들의 옛날식 의상과 말투, 그리고 그들이 들려주는 17세기 시대 생활 이야기에 매우 신기한 듯 숨소리도 내지 않고 그들을 경청하였다.

오전 시간은 이렇게 연극을 통한 이 곳에 얽힌 역사 이야기와 함께17세기 과거 여행을 한 후 이 곳을 서커스 예술로 표현한 전문 서커스 단체의 흥미로운 공연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의 문” 오후 프로그램은 각종 문화예술 체험 교실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예술을 체험해 봄으로써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하여 문화와 예술을 생활화하게 하기 위한 목적의 ‘문화 예술 체험 교실’은 연령대(5-7세 반. 7-11세 반, 12-17세 반으로 나누어 운영)에 맞게 각기 다른 수업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간단한 기초 동작을 배우는 ‘서커스’ 교실, 수줍어하는 성격의 아이들이 인간의 감정을 얼굴 표정으로 표현해 보는 ‘연극’ 교실, 정확성과 끈기 그리고 옛 장인들의 기술을 배워보는 ‘석공업’ 교실, 아이들 자신의 음악 세계를 창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리 발견’교실. ‘리듬과 타악기’ 교실, 자연과 환경을 배우는 ‘식물과 나무’ 교실, ‘야채’ 교실, 그리고 미술 교실, 판화 교실, 인형극 교실 등등. 이 수 많은 체험 교실은 모두 문화 단체, 각종 예술 단체, 환경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연극인, 화가, 서커스인, 음악가 등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풍부한 각 분야에 선별된 전문가들이 와서 직접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었다.

대자연 속에 이 곳 저 곳 흩어져 각기 자기가 속 해 있는 체험 수업에 몰두되어 있는 아이들, 그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을 돌봐주시는 인솔자 여러분들, 갖가지 예술을 아이들에게 열정적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는 예술 강사 분들, 그리고 뒤에서 묵묵히 오늘 프로그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박물관 관계자분들. 모두 각기 자기가 맡은 역할에 충실히 임하면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 필자는 한동안 이날의 그들의 모습을 잊기 힘들 것 같다.
이날 그 곳에서 필자가 만난 사람들마다 필자가 한 말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땐 왜 이런 교육 프로그램이 없었는지 몹시 안타깝다. 여기 이 아이들이 부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