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영국의 새로운 셰익스피어 학습모델 Learning and Performance Network

셰익스피어는 영국에서 정규교육을 받는 모든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공부하는 유일한 작가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의 문학 텍스트는 고어로 쓰여 있어서 시험성적과 평가에 쫓기는 영국의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는 어렵고, 부담스럽고, 지루한 존재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oyal Shakespeare Company, 이하 RSC)가 ‘셰익스피어 가르치기: 이제는 변화할 때! (Teaching Shakespeare: Time for Change)’라는 캠페인을 펼치게 되었다. 이 캠페인의 일환으로 2006년 가을부터 시작된 RSC Learning and Performance Network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의 희곡작품을 평면적 문학텍스트로만 접하는 것을 넘어서서, 공연과 접목시킨 입체적인 교육방법을 통해 보다 재미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RSC의 Learning and Performance Network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셰익스피어에 대해 느끼는 간극을 좁히기 위한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그러면서도 교사를 일차적인 교육대상으로 삼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프로그램 담당자 재키 오한론(Jacqui O’Hanlon: Head of Professional Development)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교사 한 사람을 변화시키면 그 교사가 가르치는 학생 30명, 100명, 1000명 그 이상까지 엄청난 교육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요. 그래서 Learning and Performance Network 프로그램에서는 교사를 변화의 주체로 삼습니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학생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새로운 교육방법론으로 훈련된 교사들은,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일깨워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총 3년간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RSC Learning and Performance Network를 살펴보면 첫 1년간은 선별된 교사들 (대개는 영어/드라마 교사들)에게 워릭대학교와 RSC 간의 협동과정으로 마련된 PGCE프로그램(고급교직과정)을 제공한다. 교사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사회 이슈들과 결합시켜 새롭게 해석하는 학문적 훈련을 받게 되고, 공연텍스트라는 전제 하에 다양한 연극적 기법을 활용한 입체적인 교수법을 배우게 된다. 훈련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은 RSC가 고등교육진흥원(Higher Education Funding Council)으로부터 마련한 재원을 활용한다.
2년 차에는 프로그램의 포커스가 실제 교육현장으로 옮겨진다. PGCE를 마친 교사들은 지난 1년간 배우고 익힌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하여 학생들과 셰익스피어 작품을 함께 공부하고 이를 공연으로 직접 올리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RSC는 교사들과 학생들을 위해 전문배우들과 극장스텝들로 구성된 전문 워크숍을 제공하여 프로그램의 긴밀성을 유지한다. 연극작품을 올리는 학교들은 RSC가 주도하는 연극 페스티벌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다.
3년 차로 접어들면 페스티벌에서 뚜렷한 재능을 나타냈던 학생들을 선별하여 RSC의 청소년 극단 (RSC Youth Ensemble) 회원으로 영입하고, 이들의 잠재적인 역량을 전문적으로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교사들은 희망자에 한해서 PGCE연수를 석사과정으로 발전시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3년에 걸친 RSC의 Learning Network 프로그램은 상당히 고무적인 시도이다. 그러나 선별된 몇 명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했던 이 프로그램의 효과를 3년이 지나고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RSC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재키 오한론은 이에 대해 ‘키워드는 바로 네트워크’라고 답변한다.
“PGCE 교육을 받는 교사들은 훈련기간 중에도 각 학교가 소속된 지역의 다른 파트너 학교들과 연계해서 지속적인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셰익스피어를 새롭게 가르치고자 고민하는 다른 많은 교사들과 그들이 배우고 터득한 방법을 공유합니다. 또한 Learning and Performance Network 은 3년짜리 프로그램 1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년 프로그램에 참여할 교사들의 신청을 받아서 3년짜리 프로그램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몇 년 후에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들만 보더라도 엄청난 인프라가 될 거예요. RSC의 지원을 바탕으로, 참여했던 교사들과 학생들로 일종의 동문회(Alumni)를 구성할 것입니다. 이렇게 형성되는 네트워크를 통해 셰익스피어를 공연텍스트로서 접근하는 새로운 교육모델이 전국적으로 전파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프로그램 명칭에 Education이 아닌 Learning가 쓰인 것이 인상적이다. RSC는 일련의 교육프로그램을 ‘Education’이라는 용어로 지칭했었는데 2년 전쯤부터 ‘Learning’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Education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수동적인 느낌으로 변질된 것 같아요. 어떤 때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는 다소 경직된 느낌이 듭니다. RSC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교육이란 나이성별에 상관없이 삶의 전 과정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이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간에 이뤄지는 보다 유기적인 상호 배움의 과정인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볼 때, Learning이라는 말은 보다 포괄적으로 ‘과정’을 강조하는 우리의 교육이상에 더 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공연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희곡임을 감안한다면,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읽고 무조건 외워야 하는 난해한 문학작품(Literature)으로서가 아니라 이를 직접 연극(Performance)으로 올리는 기회를 통해 셰익스피어를 재미있게 학습하도록 하는 것! 이는 현실적인 교육 여건들을 이유로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당연한 교육방법인 것이다.
‘이제는 변해야 할 때’라는 RSC의 슬로건은 교육방법을 거창하게 바꾸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쩌면 그 동안의 주입식 교육은 학생들과 셰익스피어 사이의 관계를 낯설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서로 소통하고 함께 체험하면서 얻을 수 있는 ‘배움’의 본질을 잊게 했던 건 아니었을까. 이런 의미에서 RSC의 Learning and Performance Network은 새로운 교육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잊고 있던 ‘배움’의 본질로 가까이 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