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 소학교에서 진행한 ‘전통문화를 활용한 연극놀이 교사연수’

 

 

세련되고 당찬 모습의 교장 선생님과 푸근한 어머니 같은 당서기님이 연수 전날 환영회부터 작별의 순간까지 직접 참석해 주었다. 특히 두 분은 소가툰이 조선족 민족학교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 이번 연수에 거는 관심과 기대가 지대해 보였다.
반면 조선족 교사는 20~40대 여성이 대부분이었는데, 방학 중에 이런 장시간의 연수는 처음이었는지 퇴근 이후까지 연수가 진행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중국에서 조선족 교사 임금은 매우 낮은 편이고, 더욱이 조선족 문화의 보수성 때문에 교사가 가사노동까지 도맡아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연수가 반강제적이었던 점도 일부 교사의 자발성을 저해하는 이유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오후 4시 반 이전에 연수를 마치기로 약속하고 연극놀이터 해마루와 소가툰 소학교 교사들의 첫 만남인 <놀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놀다가 시간가는 줄을 몰랐던 아이들처럼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활용한 연극놀이’ 프로그램은 크게 전래놀이, 전래노래, 민요, 풍물, 굿을 중심영역으로 하고, 전통문화를 놀이, 몸짓, 율동, 재담과 이야기가 펼쳐지는 현재의 연극 형태로 체험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연수는 4일 간 하루 6시간씩 진행되었으며, 소가툰 소학교 교사 40여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하였다.
가물가물하던 전래놀이와 노래를 기억해 내어 새롭게 만들고 서로의 몸을 두드려 잊혀졌던 장단을 일깨우면서 춤을 추듯 몸짓을 주고 받는 사이에, 어느덧 수줍어하던 교사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순수한 열정이 차올랐다. 아마도 이번 연수를 강의나 풍물강습쯤으로 이해했던 교사들에게 놀이와 예술적 체험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이 조금은 낯설었는지도 모르겠다. 연수 평가에서 어느 분은 이렇게 ‘유희하면서 공부’하는 연수인 줄 몰랐고, 처음에는 외래어를 많이 쓰고 진행이 빨라서 알아듣기 쉽지 않았다는 말로 첫 만남을 소회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연수 분위기는 뚜렷하게 달라져갔고 다음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갔다는 것이다.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던 장단놀이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워하는 교사들에게 연수는 이미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조선족 교사들은 아우라지 나루터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정선 아라리, 신고산 타령의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을 노래했고, 놀이하듯 강강술래를 합창하면서 서로를 감고 풀어나갔다. 한반도 비무장지대 어디쯤, 백두산 천지 어디쯤에서 가끔 열린다는 시장을 상상하고, 흥부네 박씨도 팔고, 마시면 예뻐지는 삼다수도 팔고, 천둥 번개도 한 번 팔아보는 연극놀이를 하면서 거침없이 놀기 시작했다. 우리 역시 용기 백배해서 연수 마지막 날 펼쳐진 마당놀이 배뱅이굿에는 강사진 전원이 약장수로, 각설이로, 사이비 무당으로 등장했다.
소가툰 식구들은 관객이면서 때로는 참여자가 되었고, 몇 분이 세월이, 네월이, 함경도 할마이 등 즉석에서 역할을 맡아 한마디씩 거들 때마다 박수와 웃음보가 터져 나왔다. 급기야 교문을 걸어 잠그고 야외 교정에 성찬을 차린 후, 모두들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느라 밤이 깊어지는 줄 몰랐다.
 

우리는 코리아언어문화교육센터 유병수 박사의 배려로 심양에서 멀지 않은 압록강 너머 북한이 보인다는 단동을 여행했다. 배를 타고 100여 미터 전방에 북한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에 손을 들어 화답하는 북한 주민과 아이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감회와 서글픔이 밀려왔다. 평소에는 전통문화가 삶과 분리된 채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박제화되어가는 것을 경계했지만, 하나의 민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 온 기구한 역사와 분단의 엄연한 현실을 직접 보게 되니 더없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당도한 심양시의 조선족 거주지 역시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아서 아직도 말투에 경상도 방언이 묻어난다고 했다. 실제로 연수 도중에 밀양아리랑을 익숙하게 부르는 분들이 있어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연극놀이터 해마루는 이번 연수를 통해 전통 문화의 또 다른 ‘원형질’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내심 했었다. 하지만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의 젊은 교사들과의 만남에서 체제와 국경, 10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하나의 뿌리’를 재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연수 기간 내내 우리를 사로잡았던 것은 문화의 다양한 접경지대에 있는 조선족 교사들의 교육적 현실과 풋풋한 호기심, 순수한 열정이었다.
 

우리가 만난 교사들 중에는 신고산타령을 멋들어지게 부르는 분이 있는가 하면 한국 드라마 제목을 줄줄 꿰고 있는 분도 있었다. 부모들이 모두 돈 벌기 위해 장기간 외국에 체류하고 있어서 조선족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가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하는 교사와, 자신은 ‘쑥과 마늘’의 자손이라면서 조선족의 문화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분을 만나기도 했다. 한국과의 문화교류에 큰 기대를 갖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대중문화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시는 교장선생님 말씀을 듣기도 했다.
연수 도중에 달려와 전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상기된 어조로 말씀하시던 젊은 소학교 교사를 보면서 이번 연수가 서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떤 만남으로 계속될지 하는 기대감과 동시에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편으로 조선족과 우리가 느끼는 동질감만큼 서로 다른 상황과 조건, 다양한 문화적 차이는 무엇을 통해 극복하여 서로의 성장을 북돋우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지 의문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문화예술은 서로의 예술적 장기를 뽐내는 경연장이 아니며, 문화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강연장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 만남과 소통, 예술적 체험을 바탕으로 서로를 빛내고 아름답게 가꾸는 삶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다음 연수는 서로의 문화적 뿌리를 확인하는 과정을 넘어서 조선족과 한국을 새롭게 연결하고 과거와 미래가 함께 창조적 상상력을 일깨우는 작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동북아시대를 열어갈 21세기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로서 문화교육의 의미를 나누는 또 하나의 터전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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