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중동 지역, 이 땅의 문화예술은 끝났는가?

 
대략 100만 여 명이 희생당한 오랜 전쟁으로 인해 650만 이상의 아프가니스탄의 난민들은 가까이는 이란과 파키스탄, 멀게는 유럽과 북미, 호주 등으로 광범위하게 흩어져서 고단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특이한 형태의 아프가니스탄 문화의 세계화가 발생한다.
난민 1세대들은 고국의 문화를 잊지 못한 채 힌두쿠시 산과 라일리 사막 그리고 카불 강변에서 듣던 고향의 대중가요를 추억하며 향수하는 문화를 가졌다. 그러나 유, 소년기에 이주한 1.5세대 혹은 난민 생활 중에 해외에서 태어난 2세대들은 이전 세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난민 1세대는 스스로를 ‘이민자 아프간(Diaspora Afghan)’이라 칭하며 고향의 문화를 잊지 않고 공유함으로써 종교적, 민족적 결속력을 응집해 왔다. 반면 이들의 자녀세대인 1.5세대나 2세대는 그들이 자라난 환경인 북미와 유럽의 문화를 흡수한 후 스스로의 아프간 전통문화적 배경과 결합해 독특한 예술성을 꽃피웠다. 스스로를 A.N.G 즉 ‘신세대 아프간 (Afghan New Generation)’이라고 칭하는 자녀 세대는 힙합과 팝 등 서방 세계의 음악적 형식을 빌려 스스로의 정체성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문제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세계로 뻗어나간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문화의 세계화’를 꾀하고 있다면, 내부의 상황은 어떨까?
중동 지역은 오래 전부터 예술가들이 대접받지 못하던 사회였다. 탈레반이 주창하는 극 보수적 이슬람은 노래 부르고 춤추며, 그림을 그리거나 화려한 컬러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할 정도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1970년대 중반, 당시 총리의 아들이 가수로 데뷔해 국민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이 그야말로 역사에 기록된 빅 이슈일 정도였다. 종교적 배경에 더해 오랜 내전에 시달린 중동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이 꽃피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운 좋은 난민들처럼 선진국으로 망명을 떠날 수 있는 재력이나 능력도 없던 가난한 예술가들은 험한 세월을 몸으로 막아서며 살아왔다. 당대 최고의 중동 지역 예술가들, 즉 우리나라로 따지면 인간 문화재나 무형 문화재급의 예술가들은 전쟁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그분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겨울을 지나 내년 봄까지 살아계실 수는 있을까’라는 걱정이 진심으로 우러날 만큼 상황도, 생활도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오래된 전쟁으로 인해 후학 양성이나 예술 중흥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슬람 국가의 학교에서는 미술, 음악 등의 문화예술교육 커리큘럼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도제 형태의 문화예술교육이 중동 지역의 예술을 면면히 이끌어 왔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위에 적은 것처럼 몇 개월 앞을 근심해야 할 정도이니, 그야말로 ‘갈 길은 먼데 해는 지고…’라는 탄식이 나올 만하다.
이 시점에서 중동 지역의 문화예술 부흥을 위해 남은 숙제는 ‘균형’ 이다. 해외에서 최첨단의 문화를 경험하고 있는 1세대, 1.5세대, 그리고 2세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중동 지역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전통문화 예술가들과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더불어 양측의 역량이 문화예술교육으로 잘 이어진다면 중동 지역의 문화예술 부흥을 기대해볼 만 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