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가 직접 읽어주는 청소년 문학교육 프로그램 ‘학교 안의 작가들’

[미국] 작가가 직접 읽어주는 청소년 문학교육 프로그램 ‘학교 안의 작가들(Writers in Schools)’

지난 4월 4일 오전에 열린 ‘학교 안의 작가들(PEN/Faulkner Writers in Schools)’은 문학진흥 비영리재단인 PEN/Faulkner와 국회도서관의 서적센터가 공동 주최한 청소년 문학교육 프로그램이다. 1989년 이후로 ‘PEN/Faulkner Writers in Schools’은 유명작가를 미국 도시 지역의 공립 고등학교로 초대하여 직접 작품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문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국회도서관 서적센터는 80개가 넘는 전국 규모의 독서진흥 파트너와 함께 일해왔는데, 이번 행사는 PEN/Faulkner재단과 함께 주최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특히 이번 ‘학교 안의 작가들’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미국 스릴러 소설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과 그의 가족들이었다. 스티븐 킹의 부인 터비사와 아들 오웬 역시 모두 소설가이다. 그래서 세 명의 킹 가족이 직접 자신들의 작품의 일부를 고등학생들에게 읽어주고 이어 질의응답시간을 통해 소설가의 삶과 창작열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는 시간을 가졌다. 일반 비공개로 이루어진 이 행사는 워싱턴 DC 지역의 공립 고등학교 중 Cardozo High School과 McKinley Technology High School, 두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과 교사들이 참석했으며, 청중석은 150여 명의 참석자로 가득 찼다.
무대 위에는 스티븐 킹 가족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고 터비사가 먼저 자신의 소설작품의 일부분을 낭독했다. 그리고 이어서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이 작가 본인의 실제 삶과 자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터비사 킹은 미국 남부에서의 어린 시절과 어머니의 관계 등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면서, 캐릭터를 소설 내에서 그려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작품 창작과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 순서로 스티븐 킹의 첫째 아들인 오웬이 수퍼히어로에 대해 쓴 자신의 소설의 처음 부분을 읽었다. 오웬 킹은 어린 시절 만화를 무척 좋아했는데, 스파이더맨, 수퍼맨, 배트맨 등 다양한 영웅들이 나오는 만화에 열중하다가 만화형식 특유의 가벼움에서 좀 더 나아가고자 직접 수퍼히어로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작가가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최근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예술학 석사 학위를 받기도 한 그는 “부모님이 소설가라는 자신의 가족환경이 부담스럽기 보다는 자연스레 문학창작의 길로 이끈 좋은 도우미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 가족 모두가 책을 읽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오웬의 부인 또한 소설가로, 또 다른 작가 세대를 이루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스티븐 킹은 아직 출판되지 않은 자신의 미공개작의 부분을 낭독하고 이 작품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이 작품은 약 20년 전에 구상했는데 더 이상 생각을 전개할 수가 없어 손을 놓았다가 아주 오랜 후인 최근 다시 작업을 시작해 마무리 중인 작품이다. 1970년대 초반 그는 교사로 재직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소설가의 길을 걸어왔다. 현재 미국의 문화계에서 호러와 스릴러 소설의 대명사인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주 TV로 시청하시던 공포 영화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고백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산책을 하면서 작품의 줄거리를 구상하고, 한 작품 당 창작에 소요되는 시간은 짧으면 몇 개월에서 길면 몇 년까지, 작품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한 시간이 좀 넘는 낭독시간 이후 고등학생들이 직접 마이크를 들고 질문을 하고 킹 가족이 답변을 하는 질의응답 시간이 30분 정도 이어졌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질문을 미리 종이에 적어 준비해왔으며, 작가의 작품과 삶, 그리고 가족관계에 대해 다양한 내용의 질문을 던졌다. 특히 소설가라는 커리어에 대한 호기심 섞인 질문도 인상적이었고 청소년으로서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관심들을 바탕으로 스티븐 킹과 그의 가족들의 일상과 작품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질문들도 돋보였다.
킹 가족 일원 세 명 모두 무척 유머가 있어 토론과 질의응답 시간은 시종일관 유쾌했고 흥미로웠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느껴질 법한 권위 의식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고 자신을 애써 꾸며서 멋진 이미지를 만드려는 노력 또한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티븐 킹은 매우 활달했으나 무척 솔직해 보였고 부정해야 할 때는 거침없이 “No”를 외치는 사람으로 보였다. 이러한 초청 강연자들의 태도는 참석자의 태도 또한 진솔하게 만들었다.

‘학교 안의 작가들’ 프로그램 진행 내내, 스티븐, 터비사, 오웬, 세 명의 강연자 모두 강조한 것은 어린 시절의 독서와 문화환경이 성인이 된 후 겪는 여러 체험과 커리어에 미친 영향이다. 특히 터비사는 엄마가 아이를 따뜻하게 안고 함께 읽는 독서가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지에 대해 열정을 담아 이야기했다.

독서가 중요한 것은 다만 책 안에 많은 지식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책 안에 들어있는 생생한 캐릭터들의 모험과 체험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 자체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는 우리의 사고를 깊게 하고 시야를 넓혀 주고 세계관을 변화시키며, 궁극적으로 우리를 성장시킨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독서활동에 대해 많은 우려를 하는 미국의 교육계와 문화계를 생각해 볼 때, 스티븐 킹 가족과 워싱턴 DC 지역의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의 진솔한 대화는 많은 의미를 지닌다. 결국 독서와 문학에 있어 중요한 것은 책, 스토리, 지식 등이 아니라 책을 읽고 쓰면서 생각을 변화시키고 성장해 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는 앞으로 사회에 나가 성장해 나갈 청소년들에게 많은 독서를 권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된다.

 
 
 
프로그램 전체를 참관하면서 청소년 시기에 이렇게 직접 유명 작가를 만나 삶과 문학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 학생들에게 참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이 프로그램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스티븐 킹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롤 모델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에게 좀 더 의미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어른들이 할 일이며 그 과정에서 예술은 가장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청소년에 대한 우려와 사회문제가 많은 미국이지만, 이와 같은 청소년 문학교육 프로그램이 계속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면 많은 희망을 가져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청소년의 삶의 변화가 이 프로그램을 주관한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일 것이다. 문학작품을 통해 기성세대와 차세대가 따뜻하게 화해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참으로 멋진 목표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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