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노철환(아르떼 프랑스 통신원)
파리시청이 주관하는 성인을 위한 강좌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파리 외곽지역의 소요사태는 진정 국면에 이르렀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11월 14일 저녁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번 사태는 나라 전체가 나서서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에게 직업 훈련과 고용 기회를 창출해 치유해야 할 심각한 병의 징후”라고 말했다. 이번 소요 사태는 자유 평등 박애의 허울 좋은 포장으로 힘겹게 덮여있던 인종과 종교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이 표면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과 고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9월 1일 20개에 달하는 파리의 구 청사들 앞에는 기다란 줄이 늘어서 있었다. 15구청사 앞, 이른 발품을 판 사람들은 한 장의 종이를 든 채 미소를 지으며 구청문을 나섰다. 그들의 손에 쥐여 있는 종이는 파리시청에서 주관하는 성인강좌(Cours municipal d’adultes) 신청용지였다.
파리시청은 파리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의 성인1)대상 강좌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초중고등학과정, 불어와 외국어, 컴퓨터, 산업기술, 공예, 요리 및 예술 분야에 걸친 190여 개의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800여명에 이르는 각 분야 전문 강사진들은 파리시청과 각 구청 그리고 관계 기관들과의 원활한 협조 하에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2). 파리시청의 발표에 의하면 매년 3만 명 이상이 본 강좌들을 수강한다고 한다. 저렴한 수강료와 잘 구성된 프로그램 그리고 우수한 강사진이 파리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각양각색 예술 강좌 파리시청이 주관하는 강좌들은 프로그램 진행 기간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9월 하순부터 이듬해 6월말까지 진행되는 연간강좌(cours annuel)와 이를 둘로 나눈 반년강좌, 여름 바캉스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여름강좌(cours d’ete)가 그것이다.
수강료는 강좌에 따라 다른데, 프랑스의 여타 교육비와 비교해 무척 저렴한 편이다. 가장 저렴한 강좌는 프랑스인 문맹인을 대상으로 한 여름 강좌로서 총 60시간에 해당하는 수강료가 23유로3)에 불과하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프랑스어 수업도 60시간에 80유로, 90시간에 110유로, 120시간에 145유로이다. 사설 교육기관의 수강료와 비교해볼 때 적게는 1/3에서, 많게는 1/10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수준이다.
파리시청이 주관하는 성인 강좌는 다수의 예술 강좌들로 구성되어 있다. 개설된 강좌들은 주로 공예와 시각예술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카펫 공예, 섬유 디자인, 실내 장식, 공간 구성, 벽 장식, 보석 세공 같은 실용적인 것에서부터 회화의 원근법, 스토리보드 작성, 색상과 색채, 시각 구성, 흑백 예술 사진, 스튜디오 사진 작업, 르포 사진, 일러스트레이션과 나레이션 등 보다 전문적인 분야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예술 분야 강좌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회화 분야에는 미술학교입학을 위한 입학준비 과정(Preparation aux concours d’entree dans les ecoles d’art)이 있다. 데생과 색깔의 운용 기술에 대해 가르치는 이 강좌는 말하자면 우리나라 미술입시학원의 수업에 해당한다. 주 2회, 일일 6시간씩 이루어지는 강좌의 1년치4)수강료는 145유로이다.
회화 분야 강좌 중 해부 형태학(Anatomie morphologie) 수강료는 파리시 성인 강좌 중 가장 비싼 220유로, 우리 돈으로 약 27만원 정도인 셈인데, 실제 모델을 놓고 데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과 1년치 수강료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랄 만큼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강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수강 인원은 강좌당 10명에서 20명 정도이다. 초보자와 숙련자의 인원 조정이나 수강 신청자가 의사를 바꾸어 빈자리가 생기면 강좌 시작 2달 이전에 추가 수강자를 받는다. 수강자가 많은 언어 분야 강좌는 단계별 반편성이 이루어지고 참가 인원과 강사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예술분야의 경우 같은 수강자의 실력 정도에 따른 소모임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흥미로운 강좌 중 하나인 제본(Reliure) 수업에 참여해 보았다. 옛날 책이나 고급 책의 제본 방식을 배우고 직접 작업해보는 연간 강좌로 주당 1회 3시간씩 4개 반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 강좌는 각 반당 18명 내외가 수강하고 있다. 각 반의 수업은 수강자의 수준에 따라 4-5명으로 이루어진 소모임 형태로 진행된다. 강사인 피에르 루(Pierre Roux)씨에게 강좌진행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강좌를 2년 혹은 3년째 듣는 분들이 절반을 넘고 있습니다. 초보자들은 종이를 이용한 제본의 기초부터 시작하고, 숙련자들은 가죽을 이용한 고급 제본을 직접 제작해봅니다. 저는 수준별로 나누어놓은 소모임을 오가면서 개별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수강자중 한명인 크리스토프 갈티에(Christophe Galtie)씨는 제본 강좌를 선택한 까닭에 대해 묻자“시나리오를 쓰는 딸에게 멋진 선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제 두 달째 접어들고 있는데 실과 본드로 엮는 기본적인 제본 방식은 익혔죠. 이번 성탄절에 깜짝 선물을 할 겁니다.”라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제본 강좌의 연간 수강료는 110유로인데, 여기에는 강좌에서 사용되는 도구 사용과 재료비 일체가 포함되어 있다. 책 제본에 필요한 재료들은 적지 않다. 작업대와 바이스, 자, 칼, 바늘 등 작업에 필수적인 공구들을 비롯해, 제본에 필요한 실과 본드 종이 그리고 표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마분지나 가죽 등 소모재료들이 제공되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재료비를 생각하면 참으로 매력적인 조건이다.
이것이 문화적 잠재력 파리의 면적은 106㎢ 정도로서 서울의 약 1/6 규모이다. 파리시청이 발표한 2004년 통계에 따르면 파리의 시민은 2,142,800명으로서 서울의 1/5 수준이다. 그런데, 작년 한해 동안 파리를 찾은 관광객의 숫자는 무려 2,600만 명이라고 한다. 파리시민수의 12배를 웃도는 수치이다. 파리 시내에는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센터를 비롯한 수많은 박물관들이 있다. 2004년도 이곳들의 상설 전시를 찾은 관람객 숫자가 67만명 그리고 특별 전시회를 찾은 이들이 45만3천명이라고 한다. 파리를 세계 문화의 수도라고 외치는 이들의 자부심이 허황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다양한 교육을 통해 시민들의 접근 가능성을 높이는 프랑스의 예술 교육 정책은 파리의 예술적 위상을 굳건히 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2006년 예산안 중 문화 예술비가 8.2% 감액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게 며칠 전이다.
1)여행객을 포함해 수강 기간 동안 파리에 머무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2)강좌들은 교육원들에서뿐만 아니라 파리 곳곳에 위치한 초중고등학교 및 직업 전문학교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3)대략 3만원 정도이다.
4)본 강좌는 9월 26일에서 이듬해 5월 29일까지 이루어진다. 다른 연간 강좌보다 기간이 짧은 까닭은 미술학교들의 입학 시험이 5,6월 경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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