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섹션의 스토리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
국민의 삶과 국가 전체를 변화시키는 독서
필자가 자주 찾아가는 동네 공립도서관 한 책장 옆에는 아주 인상적인 독서 권장 포스터가 붙어있다. 영부인 로라 부시가 책을 들고 앉아있는 홍보 포스터다. 마치 광고의 한 장면 같은 사진에 영부인이 직접 포즈를 취한 것이 한국인으로서는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전 국민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직접 알린다는 컨셉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정부라는 백악관 차원의 노력이며,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포스터였다. 그런데 영부인의 독서권장 활동은 포스터 촬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해마다 워싱턴DC 중심부인 내셔널 몰(The National Mall), 그러니까 국회의사당과 워싱턴 모뉴먼트 사이의 잔디밭에서 하루 동안 펼쳐지는 내셔널 북 페스티벌(National Book Festival)은 로라 부시가 주최하고 국회도서관(The Library of Congress)이 주관한다. 올해로 6년 째, 9월30일 10시부터 5시까지 열린 이번 행사는 입장 및 모든 관련 강연과 교육 프로그램이 무료로 제공되며 10만여 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해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내셔널 북 페스티벌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좋아하는 작가들과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올해 역시 ‘소설과 환타지(Fiction & Fantasy)’, ‘미스터리와 스릴러(Mysteries & Thrillers)’, ‘역사와 전기(History & Biography)’, ‘어린이(Children)’, ‘청소년과 어린이(Teens & Children)’, ‘시(Poetry)’, ‘가정과 가족(Home & Family)’ 등의 섹션 아래 약 70여 명의 화려한 수상 경력을 지닌 유명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시인들의 강연이 펼쳐졌다. 로라 부시는 “내셔널 북 페스티벌은 가족과 친구들이 독서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미국의 가장 사랑받는 작가들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연령에 제한 없이, 모든 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다”라고 중요성을 강조했다.
워싱턴 모뉴먼트가 뒷배경으로 자리잡은 북 페스티발 현장
국회도서관의 제임스 빌링턴(James H. Billington)은 “이 페스티벌의 문학과 글에 대한 애정은 모든 이에게 평생을 걸쳐 계속되어야 하며 독서가 얼마나 우리의 삶과 국가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영감이 가득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이 말을 증명하듯, 북 페스티벌 곳곳에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가득했고, 모든 주와 수도DC, 미국관할지역을 대표하는 부스 52개가 모인 ‘Pavilion of the States’은 독서와 책이 미국 전체를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사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워싱턴 내셔널 북 페스티벌의 문화예술교육적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독서를 통해 연령에 제한 없이 모든 이들을 성장시키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또한 끊임없이 변해가는 이 사회 속에 꾸준히 책과 문학을 통해 교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워싱턴 북 페스티벌의 모든 코너는 문화 예술적 가치로 가득하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어린이와 청소년 분야의 문학, 독서, 문장력(literacy)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자.
미국의 모든 주를 대표하는 부스들로 이루어진 Pavilion of the States.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
먼저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가득한 ‘미국이여 책을 읽자(Let’s read America)’가 눈에 띄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자리를 가득 매운 이 텐트 안에는 재미있으면서도 독서의 중요성을 살리는 여러 활동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주한 두 텐트에는 어린이 섹션과 어린이?청소년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하루종일 이 영역의 유명작가들과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강연과 사인회를 펼치며 아이들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미국의 교육방송인 PBS에서 어린이 인기프로그램의 주인공들과 캐릭터들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에 환호하는 어린이들과 부모들로 페스티벌은 열기가 가득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은 책을 읽는 활동에 그치지 않고 그리기, 공작, 연극, 놀이 형식의 활동과 책 내용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의 체험전시물들까지 전시되어 있어 행사의 다채로움을 여실히 보여줬다. 어린이들을 교육으로 이끄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놀이를 내세워 각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어린이들이 장기적으로 책을 가깝게 여기고 그 안에서 세상을 배워나갈 수 있게 하려는 의도가 쉽게 다가왔다.
‘Letters About Literature’ 시상식에서 개회사를 진행중인 제임스 빌링턴.
청소년 섹션의 하이라이트는 ‘문학에 대한 편지(Letters About Lirature)’ 시상식이었다. 이 행사는 해마다 4~12학년(우리나라 학제로 초등 4학년부터 고등 3학년까지)을 대상으로 스스로 그들 자신을 변화시킨 작가에게 편지를 쓰는 콘테스트다. 올해는 4만8천명의 지원자 중에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세 영역에서 각각 두 명씩 총 여섯 명의 수상자가 선정되었다. 수상자들은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자신의 편지를 낭독하고 가족들과 함께 백악관을 방문, 영부인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Letters About Literature’ 시상식에 참여한 어린이, 청소년 수상자들.
각별한 의미를 담은 ‘문학에 대한 편지
디지털 중심으로 변화하는 세상에 책을 가까이 하기 힘들어지면서 컴퓨터와 영상매체를 통한 자극적인 대중문화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점이 많다. 시상식의 한 관계자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읽기, 쓰기를 배우지 못하면 평생 그 차이를 따라잡기가 어렵다는 한 연구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그만큼 유년기의 문장력 교육과 독서는 중요하다는 것. 하지만 단지 그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강압적인 교육방법은 이 시대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통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또한 다문화와 다인종으로 형성되어있는 미국사회에서는 좀 더 실질적이고 학습자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방법론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문학에 대한 편지’ 시상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수상자 필립 브로크먼의 시상.
독서와 문학이라는, 조금은 큰 명제의 틀을 벗어나 문학작품 속의 주인공들과 진심으로 교감하며 그 글을 창작한 작가들에게 자신의 숨결을 담은 글을 전달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이끄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 상은 미국 전역을 대표하는 여섯 명의 수상자 이외에도 각 주마다 선정된 수상자들의 작품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어린이들에게도 문학에 대한 애정에 자극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1977년 대중의 독서와 책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기 위해 설립된 국회도서관의 도서센터가 주관하며, ‘준비, 앉자, 읽자 (Ready. Sit. Read)!’라는 도서센터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어린이 섹션의 프로그램에 참석중인 가족들.
이외의 페스티벌의 교육적 행사로는 참석자들이 웹사이트와 CD롬을 통해 국회도서관과 국립 오디오ㆍ비주얼 보존센터 등의 활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고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참석자들로 시종일관 북적거렸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주최된 북 페스티벌. 정치ㆍ사회적으로 상징적인 건물이 가득한 내셔널 몰에서 책과 문학을 향유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미국사회의 긍정적인 미래와 문학교육에 대한 청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싸인을 해 주고 있는 유명한 어린이 도서인 매직 스쿨버스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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