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고 바람 조차 어디로 사라진 싱그러운 5월의 오후. 서울 한 복판은 휴일을 즐기러 나들이 나온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소 상기된 기분으로 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다가오는 고소한 내음이 코끝을 감싸 돈다. 그리고 도심 속을 가르는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다양한 나라 별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여러 명의 아가씨들이 특유의 민속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어깨가 들썩들썩 발걸음이 사뿐사뿐, 지나가는 객들도 흥이 절로 난다.
먹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한 문화종합선물세트
‘2012 지구촌 한마당 축제’가 열리고 있는 무교동의 소로. 각국 부스에서 마련한 고유음식과 간단한 기념품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1996년에 시작되어 어느새 17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행사는 서울을 대표하는 페스티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삭막한 도심의 일상을 타개해줄 다채롭고 신나는 프로그램을 들고 거리를 찾아왔다. 5월 가정의 달에 맞춰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문화종합선물세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 훗카이도, 민스크 등의 해외도시 초청 공연단의 이색적인 무대는 물론 60 여 개국을 아우르는 음식전과 풍물전, 외국어린이 그림전, 외국인공연단 거리공연 등 따사로운 햇빛과 웃음 가득한 5월, 어린이날인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에 걸쳐 화려하게 펼쳐졌다. 물론, 이틀에 이 모든 것을 관람하고 시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두 시간만 투자하여 느리게 걷다 보면 피부색이 다르고 복장이 다른 세계 여러 민족의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의 스트레스가 일갈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여기저기서 타악기 소리와 노래가 흥얼거리며 발길을 잡아당기지만 그래도 관람객의 관심을 가장 끌어당기는 것은 바로 음식이다. 일렬로 늘어선 각 국의 부스너머로 손님들의 주문에 장단을 맞춘 참가자들의 일손이 분주하다. 인디아의 커리에서부터 터키의 케밥,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수제 소시지까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취향과 입맛에 맞추어 즉석에서 음료와 함께 시식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한 참을 멍하니 무엇을 먹어볼까 고민하다 전통의상을 입은 키르기스스탄 아낙네의 손짓에 마음이 끌려 무심코 전통 단호박빵과 아이얀이라는 이름의 수제 요구르트를 골라보았다.
입 맛을 돋구는 향긋함이 혀끝을 감아 돌고 새콤한 요구르트는 산들해진 기분에 덧대 청량감을 더해준다. 배를 채우고 발걸음을 옮겨 걷다보니, 부스 끝에 마련된 무대너머 모잠비크의 전통악기인 ‘팀빌라’에 맞춰 정열적으로 몸을 흔들어대는 마푸토 전통공연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춤에 대한 몰입은 객석의 호응을 이끌어 내고, 그에 더욱 신이 나듯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흑인 특유의 리듬감은 여러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이들이 특유의 힘과 에너지로 한 켠에 마련된 공연장을 달군다면, 동 시간대 거리에서는 백러시아로 잘 알려진 벨로루시 쿠팔링카의 민속공연단이 좁은 인도를 장악하며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낸다. 특유의 곱고 아리따운 민속의상에 머리에 단 꽃 장식은 금발 미녀들을 더욱 우아하고 신비롭게 만든다. 음악은 매우 낙천적이고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특히, 슬라브적인 전통음악에 맞춰 추는 열정적인 춤과 후렴구인 듯한 휘파람 소리를 입맞추어 내는 모양새는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든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나눔축제
공연이 끝나고 여기저기서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에 화사한 미소로 화답하는 공연단의 모습이 정겹다. 좁게 난 도로 사이로 인파를 헤치고 광장을 나아가자 넓게 퍼진 서클 안에서 각국의 젊은이들이 긴장이 고조되는 음악너머로 무예를 겨루고 있다. 태권도 시연인가 생각하고 어깨너머로 참관해보니 어째 품세가 조금 다르다. 이 곳은 바로 축구와 삼바의 나라 브라질의 부스 앞. 카포에라라는 무술시범이 한창이다. 카포에라는 무예와 음악, 춤의 요소들이 결합한 형태의 무술로서 앙골라에서 브라질로 끌려왔던 노예들에 의해 만들어져 전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브라질 시범단들과 어우러져 합을 겨루고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에서 ‘나눔과 화합’이라는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본다.
서울광장 파릇한 잔디밭 너머 분수대에서는 부모 손에 이끌려 나온 아이들이 벌거벗은 채 물놀이에 한참이다. 가까이 다가와 보니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의 아이들이 저마다의 즐거운 소리로 아우성이다. 피부색이 달라도 지역이 달라도 아이들의 언어는 다 똑같은가 보다. 그들의 둘러싼 부모들의 얼굴에도 오늘만큼은 화색이 돈다.
돌아 나오는데 광장의 중앙무대 한 켠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의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공연단의 연습이 한참이다. 앞서의 벨로루시 미녀들과는 또 다른 맵시와 자태를 뽐내는 모습에 다가가 사진을 요청했더니 흔쾌하게 받아준다.
광장을 둘러싼 청계천의 한 켠 에서는 사랑의 동전던지기 행사가 한참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갈망하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기 위한 이벤트인데, 한 켠으로는 ‘나눔’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어있다. 비단 축제가 눈요기거리와 먹거리뿐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라는 점에서 그 느낌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이틀간에 펼쳐진 서울 속의 지구촌축제, 이제는 비단 한류라는 현상에 기댄 호기심의 도시가 아닌, 웅장한 코스모폴리탄의 위상을 가진, 서울을 진정으로 느끼게 한 축제였다.
글_ 임종세 통신원ㅣ사진_ 두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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