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문화예술교육 ”지금 이 순간도 연극이 될 수 있다”

육군 26사단의 125대대와 228대대는 지속적으로 병사들이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병영문화를 부대에 정착시키려는 운영 목표가 명확하게 수립되어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두 부대의 지속적인 동아리 활동을 한 장병들은 본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기대와 적극성을 보여주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는 사병은 무대디자인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으며, 동생은 미용업계에서 활동하는데 이후에 특수분장을 배워서 동생과 같이 공연분야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병사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병들은 연극공연을 단 한 번도 관람해 본 적 없었지만 낯선 것에 대한 도전 의식과 연극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만으로 참여한 순수한 청년들이었다. 프로그램의 성격상 참여 인원을 최대 20명 이내로 제한하려 했지만 두 부대 모두 25명 정도의 인원이 참석하는 등 높은 관심이 수업을 활기 있게 하였다.

참여자들은 연극에 대한 경험과 인식에서 큰 차이가 없었으며, 모두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228대대의 병사들 중에는 기존의 영상제작 활동으로 연기를 전공한 병사와 작품제작의 경험이 있다는 정도였다. 모든 참여 사병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며, 타인의 행동과 표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기표현’이라는 공통 과제를 함께 진행하기에 적합했다.

군부대 문화예술교육이 한 개 대대를 대상으로 운영되지만 대대에 소속된 각기 다른 중대 및 포대원들이 참여하다 보니 서로 관계 맺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일반적으로 군의 생활 단위가 중?포대라서 자기 대대원끼리는 선임병과 후임병이 모두 편안하게 지내지만 다른 중?포대원 간에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이 공간 속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색해하기만 했다. 실질적으로 서로 다른 포대의 참여자들끼리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이 시간이 아니면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없는 환경을 고려할 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기획과정에서 충분히 예측한 부분이지만 참여자들의 상황과 환경 속에서 어떻게 그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은 연극적인 놀이와 즉흥성을 강조하는 창조적 연극인 것은 물론 마지막 시간을 공연발표로 정하여 참여자들이 다양한 연극적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의 목표에 도달하도록 하였다. 자기표현력 향상을 위한 연극놀이 부분은 두 부대에서 일관성 있게 진행되지만 최종적인 공연발표는 옴니버스 형식의 극과 상황극이라는 차이를 두어 군부대 연극교육의 방향성을 찾아보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연극을 활용한 자기표현력 향상 프로그램이 공연을 목적으로 하는 연극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공연발표가 무대화를 위한 무대가 아닌 ‘자기발견’과 ‘자기표현의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하는 기회가 되도록 교육의 방향을 잡았다.

교육 과정 중에는 자기소개와 입대 전 자기 생활을 이야기하는 ‘관계형성’과 ‘자기개방’ 시간이 있었다. 참여자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심리적으로 부끄러워하거나 꺼려하는 부분은 없었지만 자기를 드러내기에 적절한 표현은 무엇이며,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서툴렀다.

실제로 군생활에서는 다양한 표현이 요구되기 보다는 관등성명과 같이 절제된 표현을 쓴다는 점에서 생활환경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려했던 사병들 상호 간에 계급에 따른 경직성과 무거움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과 시간 안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든 것이 군대환경이라기 보다는 자기표현의 경험과 기회 부족이 컸던 것 같다. 일주일에 단 한 번,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참여자들의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놀랍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대략적으로 프로그램이 6회 정도 진행되자 나타나기 시작하여 8회 정도에 이르자 표현의 결과들이 놀랍게 달라졌다. 더 이상 무엇을 표현할 때 초조하거나 망설이는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면에서 부대는 이 프로그램에 더욱 만족해 했으며, 또한 그전에는 토요일 오전 동아리 활동 시간을 부대원들은 편안한 시간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동아리 활동에 대한 다양한 욕구들을 증가시켰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12회라는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다 보니 너무나 조급한 면이 없지 않았다. 실제적으로 참여자들의 변화가 빠른 시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기의 감정과 사고를 이끌어내고 강화시키는 여유로움이 없었다는 점에서 년간 30회 정도 진행되는 장기 프로그램으로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군부대 내에는 20명 이상의 인원이 신발을 벗고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활동할 수 있는 실내공간이 존재하지 않아 프로그램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부분은 앞으로 병영생활문화가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목적 실내공간의 필요성이 부각되어 건축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병의 인상 깊은 한 구절을 함께 나눠보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연극이란 특정 인물과 특정 상황에 한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도 연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