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문화예술교육」 연극수업을 마치고

강사 분들과 함께 병사들을 지도하고 도와줘야 할 정훈공보장교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연극부원 모집 공고에 대한 장병들의 반응은 내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반응과 함께 주말로 편성된 교육시간에도 불구하고 자기 시간을 쪼개려는 지원자들이 몰렸다. 연극경험이 전혀 없는 병사들이 대부분이고, 그 중에는 부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을 고쳐보겠다고 지원한 병사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기대하는 마음과 하고자 하는 의욕으로 빛났다. 이거 뭔가 될 수도 있겠다, 라는 어렴풋한 희망이 생긴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드디어 첫 수업, 서울에서 먼 길을 오신 강사 분들과 첫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 어색할 법도 한데, 역시 연극을 직접 하시는 분들이라 달랐다.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풀어주시면서 병사들이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수업의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연극수업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발성연습이라든지, 몰입연습이라든지, 어려운 연극수업이 아니라, 서로 공을 주고받고, 서로의 별명을 지어 부르는 정도였다. 자신의 속을 열어 보여주는 일에 익숙해지는 일이 연극수업의 시작이었다. 어색해 하던 병사들도 그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자기 자신의 몸에 익숙해졌다. 주어진 주제를 자신의 생각대로 몸으로 표현하는 과제 앞에서도 떨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수업 때 했던 가면 만들기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서로의 얼굴에 석고를 붙여 가면서 즐거워하고, 그러면서 자기에게만 꼭 어울리는 다양한 가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면을 쓴 채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을 몸으로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얼굴을 가리자 어색함이 사라지고, 실제 연극배우들의 움직임에 가까운 부드러운 동작들이 우리 병사들의 몸짓에서 드러났다. 처음에는 쭈뼛쭈뼛하기만 했던 병사들의 그러한 변화는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발표회를 준비하던 중에 동해에서 공연한 뮤지컬 <메노포즈>를 관람했던 일도 좋은 경험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어려워했던 몸을 움직이는 일,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진짜 배우”들을 보면서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직접 공연을 관람한 경험은 우리가 무대에 서는 데에도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마침내 그날은 왔다. 발표회 당일, 공연을 준비한 연극부원들은 물론이고 베테랑 선생님들과 나조차도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긴장에 발을 굴렀다. 공연이 이루어진 연대교회를 가득 채운 우리 대대원들의 시선이 하나하나 연기자들에게 꽂히는 것 같은 무서움도 있었다. 다시 한 번 걱정이 되었다. ”과연 우리가 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울리고 무대가 열리자, 우리 연극부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대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연기는 다소 어색하고 촉박한 시간에 맞춰 제작한 소품들은 엉성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자리에 함께 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과연 이 교육을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걱정했던 나의 우려를 걷어내듯이, 우리 연극부원들을 훌륭하게 공연을 마쳤다.

 
 
그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 문화예술교육의 목표는 참여 장병들의 자신감을 높이고 좋은 문화적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교육과정을 통해 치유 받고 자신감을 얻은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아니, 이 과정에 참여했던 우리들 모두가 그것을 얻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앞에 주어진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어떤 무대가 수백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하는 연극무대보다 두렵겠는가.

* 본 원고는 <사회문화예술교육 군/특수분야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사례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