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문화예술교육을 만나다

군은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처음으로 단체성을 경험하는 곳으로, 가정과 학교에서는 표출되지 않았던 다양한 개인적 특성이 나타나고 또래 동료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군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문화예술이라는 세계를 통해 장병들이 군복무 간 자신을 계발함은 물론, 긍정적인 자아상을 바탕으로 튼튼한 부대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실제 이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나 병영 현장에서 수 개월간 다양한 장르를 통해 병사들과 함께해 온 문화예술인들이 말하는 사업의 필요성은 의외로 단순하다.
20사단과 함께 사업을 진행해 온 밀머리미술학교 박찬국 대표의 말을 옮겨 본다. “문화예술은 즐거운 경험입니다. 동료들과 문화라는 코드로 한 공간에서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그 자체가 지루할 수 있는 군 복무에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지난해와 금년도 20여 개 부대에서 실시한 「군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서 부대마다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공통적인 반응은 단체로 하는 활동을 싫어하는 병사들의 속성으로 초기에는 다소 피동적인 분위기가 있었으나 몇 주 지나지 않아 교육시간이 재미있고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군은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집단으로만 인식되었고, 그래서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한 강한 훈련만이 군의 존재가치에 부합되는 활동이요, 병영 내 복지나 여가선용은 이러한 존재가치와 관련지어질 때만 의미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져 왔다. 따라서 기존 병영 내 복지는 장병들의 건강을 담보할 수 있도록 잘 먹고 잘 입히고 잘 재우는 것에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군대의 모 집단인 국가와 사회가 점차 삶의 질을 중시하게 되고 입대하는 장병들 또한 잘 먹는 것보다는 군 복무를 재미있고 가치 있게 하는 것에 대한 관심으로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병영 내 동아리 활동과 「군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이 시행을 거듭할수록 좋은 평가를 받고, 희망하는 부대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이라고 할 것이다.

 
 
아울러 이 사업을 주관하는 실무자 입장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은 사업의 가시적인 결과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 군의 문화활동은 부대별로 일정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특기병 위주로 진행되어온 것이 현실인데, 「군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철저하게 과정을 중시하고 그 속에서 교육의 목적을 추구하는 활동인 만큼, 장병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끌어내는데 중점을 두고 시행해야 한다.
지휘관에게 보여 주거나 상급부대에 제시하기 위한 활동으로 진행된다면 이 사업이 갖고 있는 최대의 장점인 자발성과 창의성을 살려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군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이제 겨우 1년의 시행 경험 밖에 없는 걸음마 단계에 있다. 경험이야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나 다른 사회집단 또는 외국의 사례를 통해 간접적으로 취하면 되겠지만, 문제는 이 사업을 시범사업 수준에서 전군적 사업으로 확대하는 일이다.
현재 육군의 경우 이 교육을 실시하는 부대는 전체 부대의 1% 미만 수준이다. 20여 개 부대 정도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직접 강사나 희망단체를 접수 받아 부대와 연결할 수 있겠지만, 실시하는 부대 수가 100개를 넘어 육군의 전 대대급 부대로 확대되면, 더구나 한 부대에 한 가지 장르가 아닌 수 개의 장르로 확대된다면 현재와 같은 지원체제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도 이미 인지하고 있기에 100여 개 부대로 확대되는 2008년도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시스템은 지역별로 군부대와 지자체, 그리고 지역 문화예술단체를 네트워크로 묶어서 운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군으로서는 지역의 능력 있는 전문가와 문화시설을 공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지자체 입장에서는 장병들의 문화예술적 욕구를 지역 문화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며, 지역 내 많은 문화예술인들에게는 그들의 활동기반을 마련해 주는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의 경우 경기문화재단을 통해 경기도의 몇몇 부대를 대상으로 콘텐츠와 강사를 지원해 오고 있으며, 별도로 초급간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병영 문화예술교육 확대를 위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군의 인식 변화이다. 일부에서는 문화예술하면 자칫, 병사들을 나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강한 육군 건설”이라는 육군의 지향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걱정스러운 시선도 있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까지 문화예술활동이 교육의 보조수단 정도로 인식되어 왔으며 그나마도 사업 분야가 점점 축소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를 사회로 돌려보면 지금 이 시대는 문화의 시대이고 문화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는 시대이다. 또한 문화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적 영역이 아닌 세대를 이해하는 핵심코드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화는 국가적으로도 국가 성장 동력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국가사회를 모체로 하는 우리 군도 이러한 경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 군대만의 독특한 문화를 창조해 내야 하는 요구도 받고 있다. 군과 전투를 소재로 한 변변한 영화나 뮤지컬 한편 없는 것이 우리 군의 현실이 아닌가?

결론적으로 신세대 장병들의 문화예술적 욕구는 결코 무시되거나 경시할 수 없는 군 운영의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야 할 것이며, 「군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신세대 장병들의 문화적 욕구 충족과 이를 통한 긍정적인 무형전력 창출이라는 방향으로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군의 존재가치가 국가방위라는 전통적 영역에서 국민편익 지원과 국가이익 증진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군 복무를 통해 문화예술을 접한 병사들이 전역 후 사회에서 문화예술의 핵심적인 소비자 계층이 될 것이라면, 이 또한 우리 군이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