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변가와 함께한 야밤토크

 

작업실은 매우 조용하고 정갈했다. 그는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함을 깨우려는 듯 키보드 건반을 두드리며 필자의 질문에 말을 이었다. 한번 말이 트이자 꽤 달변이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물론 처음부터 영화음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죠. 하지만 음악을 시작하자 오랜 세월을 작곡가로서 남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장르 구분 없이 여러 스타일을 접하고 작업할 수 있는 영화음악을 선택하게 되었죠. 이 방면은 음악적인 연구의 폭이 넓고 공부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서 무엇을 시도해도 싫증을 느끼지 않아요.”

 

그의 영화음악 첫 단추는 1998년 대학로의 재기 넘치는 이야기꾼이자 충무로의 기대주였던 장진감독의 연출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부터 시작된다.

 

1990년대 말미를 시점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재권 음악감독은 소위 충무로의 ‘가장 잘 나가는 감독’인 강우석, 최동훈, 류승완과 함께 <바르게 살자>, <국경의 남쪽>, <박수칠 때 떠나라>, <피도 눈물도 없이>, <실미도>, <범죄의 재구성>, <한반도>, <킬러들의 수다>, <굿모닝 프레지던트> 등 30여 편에 이르는 작품들의 음악을 담당해왔다. 거의 15년 동안 해마다 두 작품은 해온 셈이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접근

 

인터뷰를 위한 사전조사였지만, 그의 필모그라피를 살펴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그 연유는 영화 대다수가 기대를 하고 직접 관람했던 작품이기도 했거니와 적어도 한 번 즈음은 주말 TV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눈대중이라도 스쳐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 석 자는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지켜봐 주는 예의 있는 영화 마니아에 의해서만 회자할 뿐 스크린 속 주인공에 집착하는 인내심 없는 대중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물론 음악으로 기억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프란시스 레이가 작곡한 ‘러브스토리’의 운치 있는 주제곡이나 ‘황야의 무법자’하면 떠오르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들이 좋은 예입니다. 하지만, 저의 지론은 약간 다릅니다. 영화에서 음악이 튀어버리면 작품을 관통하는 맥락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만약 저의 주관으로 음악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일반 대중음악의 가치관을 따랐을 겁니다. 작품의 정서와는 상관없는 유려한 멜로디만 적절하게 배치하면 되겠죠. 하지만 영화음악을 포함한 매체음악은 가장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가령 공포스러움을 표현해야 한다면 누구나 들어도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음악을 적절하게 작곡할 수 있어야 하고 로맨틱한 장면에 들어가는 음악이라면 누가 들어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장면 속에서 도출해내야 하는 겁니다.”

 

유추하건대 작곡가가 자기의 직관적인 표현과 감정이 아닌 어떤 정해진 틀과 막연함에 의해서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도 연출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대변해야 한다면 굉장히 고통스러운 작업일 것이다. 특히 독일에서 8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영화현장은 낯설었고 자신이 표출하고자 하는 감성을 때로는 접어야 했다. 하지만, 매년 작업을 해오면서 느꼈던 ‘갈등’과 ‘번민’은 연륜이 쌓이면서 희석되어 갔다. 지금 그는 사심을 버리고 영화음악에 몰두할 수 있는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다고 했다.

 

“작품의 콘셉트를 얻는 방법은 시나리오마다 소재마다 각각 다릅니다. 매개체를 파고들 때가 있는가 하면 100% 정서적으로만 대하는 작품도 있고, 때로는 아예 머릿속을 비우고 장면으로만 다가갈 때도 있지요.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을 함께하는 많은 스태프와 나누는 공통의 생각과 감정입니다. 현장의 분위기가 그대로 영화에 녹아내리는 정서나 구상을 장면에 이입해 유효적절이 잘 채워주는 것이 영화음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저의 주안점입니다.”

 

창작자의 유연한 사고방식을 존중

 

한재권 음악감독은 국내에서 음대 작곡과에 재학 중 음향공학을 전공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그것은 음악을 단순히 예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보다는 ‘재료’라는 측면으로 접근하고자 함이었으며 철저히 물리적인 방법으로 공부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영화와 음악을 철저히 분석하고 분류하는 습관은 이 시절 생성되었다고 한다.

 

“독일의 예술교육시스템은 창작자의 유연한 사고방식을 존중해주는 교육방법입니다. 어떤 방향을 정해놓고 맞추기보다, 또는 조정이나 주입이 아닌, 개개인이 가진 개성과 특징을 거스르지 않고 약간의 간섭 정도에서 현장교육이 진행됩니다. 요즘 학교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학생들과 나누고 있는데, 당시의 경험과 교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제자 중 누군가는 저처럼 창작자가 될 수도 있으니깐요. ‘가르친다’라는 느낌을 최소화하고 동료나 선배처럼 학생들과 대화하고 의견을 교환합니다.”

 

덧붙여 그가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나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영화음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자체의 학습보다는 인문학적인 소양과 영화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은 숙명적으로 평생 각오를 해야 하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관람하는 등의 인문학적 활동은 창작을 하는 데 있어 영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나 예술가가 누구인지 질문하자 대번 우문임을 역설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기본적으로 영화음악가들에게 ‘가장 좋은’이라는 명제는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이라는 것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경험을 누구 하나 명확하게 제시해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없던 음악을 창조하는 이들에 대한 무한 존경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딱 꼬집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굳이 이야기해야 한다면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영화음악가부터 엄청난 저력을 가진 대가들까지 모두 존경을 보내고 관심이 있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영화음악가이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공연음악가이기도 하다. 한재권 음악감독에게 마지막으로 영화음악과 다른 공연음악의 차이점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영화음악은 완투해야만 하는 선발투수의 입장이고 공연음악은 경기마다 성격이 달라서 상황에 따라 선발투수로 혹은 마무리 투수로 심지어 중간계투로 나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주로 던지는 공의 성격도 상당히 다르고요. 그런 측면에서 공연음악이 저에게 있어서는 난이도가 더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어떤 글에서 장진 감독은 그의 음악을 가리켜 “훌륭한 조연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부각시키거나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 속에 섞여 대화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조력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 새벽 1시가 훌쩍 넘은 시간. 그의 전화기는 연신 지인들의 문자로 시끄럽다.
그는 배낭을 훌쩍 둘러매고는 필자를 다독인다. “제 친구들과 한 잔 하시죠?”

 

지인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영화음악가 한재권을 낮에 사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심하게 야행성이고, 술과 사람을 매우 좋아해서 사전에 연락을 취하고 찾아가더라도 인터뷰 자리는 어느새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종국에는 고깃집이나 횟집에서 대담이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부응하듯 그는 약속시간을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늦은 시간에 잡았다.
어둠이 이미 짙게 내려앉은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그가 설명해준 작업실 건물에는 한 줌의 빛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걸어 잠긴 현관 앞을 서성이며 불안한 듯 연신 초침을 바라보았다.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뒤적이며, 통화를 시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라 눈앞에서 함박웃음을 머금은 한 사내가 점점이 다가왔다. 손에는 그가 무한정 마실 수 있다는 맥주 캔이 비닐봉지에 담겨 경쾌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글_임종세 서울지역통신원 l 사진 이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