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작곡을 했다. 음계나 화성이 아니라 일상의 감정과 이야기, 음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곡을 완성한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에서 마치 새 친구를 만나듯 악기의 소리와 특징을 요모조모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음악을 만난다. 그래서인지 꼬마작곡가들이 만들어낸 멜로디는 아이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노래하는 듯 하다. 지난 11월 29일 토요일, 꼬마작곡가 아산 작품발표회 현장을 아르떼365가 찾았다. 관객석 여기저기서 작은 폭소가 터져 나왔고, 곡이 끝났을 때 관객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꼬마 작곡가

 

아이들의 ‘동화’가 음악으로 탄생

 

꼬마작곡가 아산 작품발표회의 주제는 ‘동화’이다.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인 기존의 ‘동화’ 개념도 있지만 ‘아이 동(童)’자에 ‘빛날 화(華)’라는 주제로 ‘아이들의 빛나는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음악동화’ 라는 부재를 갖고 있다.

 

12명의 꼬마작곡가가 선보인 11개의 곡(1곡은 공동작곡)은 저마다 자신과 자신이 지어낸 상상 속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줄거리를 만들었고, 그리고 그 이야기 위에 적절한 악기와 화음을 찾아 집어넣는 형식으로 곡을 완성했다. 가족부터 직접 지어낸 소설까지, 다양한 소재가 곡으로 선보였다.

 

수업시간의 즐거움을 표현한 김이안 꼬마작곡가의 ‘꼬마작곡가’나 줄넘기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딴 이야기의 이민규 꼬마작곡가의 ‘줄넘기 대회’는 일상의 관찰에서 주제를 찾았고, 백예원 꼬마작곡가의 ‘상상 속의 새’나 김은수 꼬마작곡가의 ‘신나는 세계’, 석승호·남윤재 꼬마작곡가의 ‘무제’, 김영훈 꼬마작곡가의 ‘마음의 비’는 가상의 세계를 통해 기쁘고 신나고, 무섭고, 슬펐던 이야기를 펼쳐갔다.

 

꼬마 작곡가꼬마 작곡가

꼬마작곡가들의 악보에는 음표가 아닌 한글과 화살표, 동그라미, 선 등이 그려져 있다. ‘삘리리’라는 귀여운 표현도 눈에 띈다.

 

꼬마작곡가의 악보를 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음표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작은북 두 번, 호른 낮은 소리로 최대한 길게, 바이올린 위이이잉’ 이라는 마치 암호 같은 기록들이 악보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걸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처음에는 처음 악보를 보고는 ‘당황’스러웠을 정도였다고.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조다니엘씨는 “워낙 특이한 작곡가들도 많지만 이렇게 신기한 악보는 처음이었다. 음악인으로서 참신한 발상이 좋았다”고 전했다.

 

특히 12명의 꼬마작곡가가 모두 함께한 단체곡 ‘돌을 던지자’는 아이들과 강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꼬마작곡가 수업 중 아이들이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사방치기’였는데, 당시의 상황을 곡으로 만든 것이다. 백예원, 이채원, 김이안 꼬마작곡가가 작사에 참여했고 멜로디는 다 같이 만들었다. 적극적으로 음악창작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은 ‘스마트폰 게임보다 더 재미있었다’며 즐거워했다.

 

꼬마 작곡가꼬마 작곡가

오늘의 주인공, 열 두명의 꼬마작곡가들

 

성취감 통해 자신감과 행복 얻어

 

발표회가 있던 날은 중부지방에 첫눈이 내렸다. 아이들과 15주라는 시간을 함께한 이소라 강사가 발표회를 끝낸 꼬마작곡가들의 소감을 들려주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다’라는 반응이에요. 스스로도 자랑스럽고 대견했겠죠. 특히 작곡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일상의 소리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상상력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내년에도 또 만나자고 우리끼리 약속했답니다.”

 

곡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었던 계기가 아이들의 정신적, 음악적 성숙을 도운 모양이다. 이 날, 발표회를 앞둔 3명의 꼬마작곡가와 강사를 만나, 곡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이후의 느낌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게임보다 더 재밌어요, 진짜예요!”
‘이수의 하루’ 김이수 꼬마작곡가 & 김효신 강사

 

꼬마 작곡가

김이수 꼬마작곡가 & 김효신 강사

김이수 꼬마작곡가는 ‘이수의 하루’라는 주제로 곡을 만들었다. 하루가 재미있어서 선택했다는 이 주제는 학교에 가서 시작되는 1교시부터 5교시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루한 수업시간, 신나는 체육시간, 사이사이 친구들과 떠들고 뛰노는 쉬는 시간의 이야기까지 플롯을 비롯해 클라리넷, 호른, 바이올린, 첼로, 타악기를 두루 사용해 상황과 감정을 표현했다.

 

“저는 체육이 세상에서 제일 좋거든요. 하지만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이 게임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이건 진짜예요.(웃음)”

 

누나를 따라 피아노 학원에 다녔지만 재미는 느끼지 못했다는 김이수 꼬마작곡가. 하지만 꼬마작곡가 프로그램 참여 후 음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후로는 피아노 수업도 ‘놀이’처럼 한결 재미있어졌다. 마음 속의 이야기가 곡으로 연주될 때는 스스로가 대견할 만큼 뿌듯했다고.

 

이수의 작곡을 도왔던 김효신 강사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틀이 없는 아이들의 상상력에 크게 놀랐다고 했다.

 

 

“들리는 소리를 따라 하는 건 쉬울 수 있지만 ‘지루함’이라는 느낌을 악기로 선택해서 그 악기의 특정 음역대로 선택하는 과정을 보며 저도 참 놀랐어요. 그리고 강사로서 아이들이 제 의도와는 전혀 다른 질문을 할 때, 자칫 나의 대답이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제한하게 될까 조심스러웠어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생각을 막지 않는 반응과 대답을 해 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여겼어요.”

 

자유로운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그저 멍석을 깔아줬을 뿐이라는 김효신 강사의 말처럼 아이들은 수업을 놀이, 체육시간으로 생각했다. ‘꼬마작곡가’ 수업의 많은 부분이 신체 활동을 통한 놀이로 진행됐기 때문에 게임과 축구가 좋은 10살의 사내아이들도 ‘작곡이 재밌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건넬 만큼 꼬마작곡가 프로그램과 친해지게 된 모양이다.

 

 

얼음아가씨 말문을 열다
‘너구리의 여행’ 이채원 꼬마작곡가 & 하이정 강사

 

하이정 강사 역시 ‘잘 놀아야 좋은 수업이 된다’라고 강조했다.

 

“수업이긴 하지만 저희는 ‘놀자’ 이게 취지였어요. 그러다 보니 사방치기도 하게 되고, 술래잡기도 하게 됐죠. 아이들은 마음껏 놀고 단 다음 ‘아! 재밌다’라는 느낌을 가져야 스스로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거든요.”

 

말수가 유난히 적었던 이채원 꼬마작곡가도 과정이 끝난 지금, 하이정 강사와 메신저를 주고받을 만큼 속내를 드러낼 수 있게 됐다. 말이 없어 소극적이지 않을까 염려스러웠지만 ‘너구리 인형’의 좌충우돌 지구별 여행기에 대한 스토리를 가장 먼저 완성했을 만큼 열정이 강한 아이였다. 표현하는 힘이 탄력을 받자 곡을 만드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집에서 오선지에 음을 그려 오면 선생님께서 높낮이를 조절해 주시기도 하고, 악기소리를 들어가면서 직접 표현해 보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방법을 몰라 어려웠는데 점점 쉬워졌어요.”

 

수줍게 말문을 연 이채원 꼬마작곡가는 그 이후로 ‘좋아요’라는 대답 이외에는 말이 없었지만 곡만큼은 누구보다 길고 드라마틱했다. 특히 너구리 인형이 태양과 달, 인공위성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하는 부분에서는 흥겨운 리듬이 한참 동안 반복되는 ‘장난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채원 꼬마작곡가는 이번 꼬마작곡가 수업에 쌍둥이 동생 이민규 꼬마작곡가와 함께 참여했다. 둘은 닮은꼴 남매였다. 둘 다 말수가 적고 낯을 가리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수업에 참여할수록 조금씩 말수도 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두려움 대신 자신감을 얻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채원이는 처음 만났을 때 한 두 마디가 전부였는데 수업을 하면서 나중에는 시시콜콜 자기이야기를 할 만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 강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해줬죠.”

 

하이정 강사는 몇 번이고 이채원 꼬마작곡가의 눈을 마주보며 웃었다.

 

 

“악기 소리를 들으면 가족들 얼굴이 떠올라요”
‘우리가족’ 김민 꼬마작곡가 & 이소라 강사

 

꼬마 작곡가

김민 꼬마작곡가 & 이소라 강사

가족의 모습과 성격을 악기와 접목시켜 관객들의 주위를 집중시킨 작곡가도 있다. 맏언니이자 ‘우리가족’을 작곡한 김민 꼬마작곡가다.

 

“아빠는 무뚝뚝하고 배가 나왔지만 부드러운 성격이라 ‘호른’, 엄마는 웃을 때와 화날 때 목소리가 달라서 ‘첼로’, 저는 무뚝뚝할 때도 있고 활발할 때도 있어 ‘클라리넷’, 은수는 많이 웃고 울어서 ‘바이올린’, 막내 동생 해인이는 귀여워서 ‘플룻’으로 정했어요.”

 

나름대로의 정의지만 김민 꼬마작곡가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가족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질만큼 재미있었다. 이소라 강사는 이런 아이들의 창의적인 생각이 음악을 배우지 않은 틀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전문적으로 음악을 공부한 친구들은 자기 스스로 제한하는 경우가 있어요. 표현하고 싶은 음을 기존의 틀에서 찾는 거죠. 화음이 맞지 않거나 조화롭지 않으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친구들은 그런 게 없어요. 안 되는 게 없는 친구들이다 보니 기상천외한, 그리고 너무나 신선한 음악적 접목이 이뤄졌죠. 그리고 그런 아이들과 함께여서 저 역시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사물의 소리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습관도 생겼다. 김민 꼬마작곡가는 밥을 먹다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면 그 순간 어떤 악기가 어울릴까를 무의식 적으로 생각한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 독서 마니아인데 최근에는 악기와 관련된 책을 빌려서 읽어보기도 했다. 관심의 폭이 넓어진 셈이다.

 

발표회에 참석한 김민 어머니는 “아이들이 무슨 작곡을 할까 싶었는데 프로그램을 하고 돌아오면 흥분해서 한참을 이야기한다”며 “아마 너무 좋고 재미있어서 그러지 않았겠냐”고 일상의 변화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꼬마 작곡가
 

음악의 진정한 힘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정해진 방식 안에서 교육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좋은 조짐’.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나도, 당신도 느낌으로 행복해 질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 그것이 꼬마작곡가 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니었을까.

 

꼬마작곡가 아산 결과발표회 작품 목록

김민 꼬마작곡가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김태민 꼬마작곡가 〈형아〉
김영훈 꼬마작곡가 〈마음의 비〉
김은수 꼬마작곡가 〈신나는 세계〉
김이안 꼬마작곡가 〈꼬마작곡가〉
이채민 꼬마작곡가 〈피아노 오르골〉
이채원 꼬마작곡가 〈너구리의 여행〉
백예원 꼬마작곡가 〈흑룡의 습격〉
석승호·남윤재 꼬마작곡가 〈무제(無題)〉
김이수 꼬마작곡가 〈이수의 하루〉
이민규 꼬마작곡가 〈줄넘기 대회〉
모든 꼬마작곡가 〈꼬마작곡가(사방치기노래)〉

김다빈

서희정 _ 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