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듯이 노래하자
“마음 속의 ‘한 문장’들이 쌓여서 삶의 ‘이야기’가 된다(약 : 마음 속의 ‘한 문장’)”는 긴 제목은 즉흥적으로 지은 것이지만 한 편으로는 오랫동안 제 속에 있던 감동적인 문장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슴을 울리는 ‘한 문장’을 발견한 적이 있나요? 저는 가끔 기억의 감퇴가 마음의 감동을 배신해서 흐릿해지고, 먼지 덮인 듯 희미해지더라도 빛이 바래지 않는 한 문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한 문장은 어느 때 꺼내보아도 생생한 울림이 여전하지요. 그런 마음 속의 한 문장들이 쌓여서 풍요로운 삶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 ||
중학교 1학년, 처음 ‘토스카Tosca’를 보았다. 그것이 내가 본 첫 오페라였다. 여름 저녁 국립극장 행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토스카를 상상했다. 그건 크리스마스의 ‘호두까기 인형’만큼 예쁜 것일까? 막이 열리고 연기를 읽어야 할지, 한글 자막을 보아야 할지, 소리를 들어야 할지 허둥지둥하는 사이 잠이 들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에는 죽고 죽이는 오해 속에서 테너가 ‘별은 빛나건만’ 탄식하고 있을 때였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이모는 창피해서 다시는 이런 곳에 데려오지 않겠다고 투덜대셨고, 나의 오페라와의 만남은 덜떨어진 문화인이 된 죄책감과 함께 시작되었다.
11일 저녁 8시, 강남의 한 골목 삼겹살집 지하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날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카페 ‘오페라 사랑방’의 회원들과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친구들. 성악가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부터 음악관계자, 그리고 오페라, 성악, 클래식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맨 바닥에 둘러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이 날 오페라의 대중화와 저변확대의 꿈을 꾸는 사람들 ‘오페라 사랑방’ 사람들이 기획, 진행하는 소박하고 도란도란한 모임의 초대손님은 유럽에서 활동 중인 오페라가수 테너 나승서. 오페라가수와 성악가 중에는 조수미, 신영옥을 꼽고 나면 아는 사람이 없는 나에겐 낯선 이름이다. ‘오페라 사랑방’ 카페 지기를 맡고 있는 로비와 루카라는 두 사람이 테너 나승서를 무대로 초대했다. 나승서의 제안으로 세 사람은 바닥에 앉아 관객과 눈높이를 맞추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유럽으로 성악공부를 하러 떠나기 전 70년대 말 문오근 등과 함께 했던 ‘음악극’이야기를 시작으로 ‘오페라는 뮤지컬과 같은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노래는 말하기의 다른 기법이고, 이야기하기의 다른 장르라고 이야기한다. 나폴리에서 머물 때 역시 노래하는 사람 주제페 디 스테파노와 함께 몇 번의 식사와 술자리를 갖으며 나폴리어를 배웠던 시간을 떠올리며 오 솔레 미오 O Sole Mio를 부른다. 피아노 반주임이도 불구하고 특별히 만돌린의 현악 느낌을 살린 연주를 주문했다. 우리는 음악회에 갈 때 무엇을 기대하며 가는 걸까? 아마도 이런 나폴리의 햇살과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노래를 통해 가슴을 울리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Chebela cosa ‘na iurnata’e sole 오 맑은 햇빛 너참 아름답다
N’aria serena dop po’na tempesta! 폭풍우 지난후 너 더욱 찬란해
Pe’ll’aria fresca paregia’na festa!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올때
Chebela cosa ‘na iurnata’e sole 하늘의 밝은 해는 비치인다
Man’atu sole cchiubello ohine 나의 몸에는 사랑스러운 나의 got님뿐
‘O sole mio stanfrontea te! 비치인다 오 나의 햇님
‘O sole ‘o sole mio stanfrontea te 비치인다 오 나의 나의 햇님
Stanfrontea te! 찬란하게 비치인다
한 관객이 어떻게 고음을 내는 특별한 비법에 관해서 물어왔다. 오히려 나승서는 왜 고음을 내는가라고 되묻는다. ‘악보에 있기 때문에’부터 ‘표현하고 싶어서’라는 정직한 대답까지 여러 가지가 나온다. 이야기꾼 나승서는 라 보엠의 아리아 중에 ‘라스페란자’라는 대목을 예를 든다. 아리아가 고조되는 가운데 이탈리아어로 희망 ‘라스페란자’라는 가사를 부르는 때 ‘도’, 희망의 ‘도’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고음은 생각을 사람이라는 악기를 통해 내는 것이기때문의 희망의 ‘도’는 무대에 서는 순간 ‘희망’을 이루고 싶은 의지로 내게 된다는 것이다.
희망으로 ‘도’를 낸다는 말에 예전에 친구에게서 보았던 ‘노래하는 마음’을 떠올린다. 피던 담배를 비벼 끄고 선물로 노래하나 불러준다고 일어나서 ‘흠흠’ 목을 갸르릉 거리더니 ‘체베라 코사-’라고 목소리를 뽑아냈던 그 친구. 테너 나승서가 노래를 통해 나폴리의 바다와 만돌린의 사랑스러운 떨림을 보여주었다면, 이 친구는 ‘노래하는 것은 언제라도 정말 즐거워’라는 것을 보여줬다. ‘말’이 아닌 ‘소리’가 ‘언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노래라는 것은 음정에 가사를 얹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언어적인’ 장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 해설이 있는 발레 등의 공연이 등장하고 있다. 나는 음악회에 왜 가며, 우리는 음악회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오페라를 뮤지컬에 비유한 테너 나승서의 지적은 예리하며 즐겁다. 이런 시각은 보다 많은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노래할 이유와 즐거움을 주고 노래를 듣는 사람과의 코드를 조율해줄 것이다. 토스티라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의 ‘이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리(Non t’amo piu)’라는 노래를 부르기에 앞서 토스티의 작곡하던 배경과 그 노래를 부르는 나승서의 마음과 태도, 그것을 느꼈냐고 재차 확인하는 관객과의 상호작용, 노래가 스토리텔링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오페라에 대해, 노래를 듣는 다는 것에 대해 무지했지만 누구도 마음으로 들어보라고 힌트를 주지 않았다. 덜떨어진 문화인이라고 자책했던 그 때로부터 10년 후, 적극적인 ‘노래하는 사람’들이 주도한 ‘상호작용’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래와 다시 화해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이런 모임이 100개 정도로 늘어났으면 좋겠다. 노래하는 사람과 노래를 통해 마음을 연주하는 관객이 만나 ‘노래’의 즐거움을 맛보는 자리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오페라의 창법 중에 레치타티보(recitativo)-노래하는 사람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강조하는’ 기법이 있다. 말하듯이 노래하는 것, 말하듯이 노래하는 마음을 강조하는 것, 노래 속의 이야기를 듣는 것 오랫동안 잊었던 노래하는 마음이었다.
말하듯이 노래하자, 그리듯이 노래하자. 노래하는 가수의 즐거움과 노래로 가슴을 연주하는 관객의 즐거움이 살아날 때, 오페라에게도 관객에게도 나에게도 나폴리의 햇살과도 같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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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