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 담긴 삶과 여가 [영국편]


 

2012년 3월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서 주5일 수업제가 시행되었다. 2004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던 주5일 근무제의 완결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주5일 수업제의 취지는 ‘충분한 휴식으로 학습효과를 증대’시키고 ‘다양한 취미를 계발’하기 위한 것이다. 결과는?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시정명령과 행정조치에 따르면 주5일 수업제 전면 시행에 따른 학원 특별지도·점검을 실시한 결과 311건의 불법행위를 적발했다고 한다. 여가를 여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과 스키휴가의 차이

 

국내에선 중징계가 내려졌지만 영국에서는 재판이 벌어졌다.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전 스키휴가 기간 동안 싼 요금으로 휴가를 떠나려는 부모들 때문에 교실에 자리가 줄줄이 비어서 담임선생들의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오는 수요일에는 모두 13명의 부모들이 무단결석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서게 된다.’ (The Observer, 2003년 2월 23일).
가족휴가를 떠나려고 아이를 무단결석 시킨다? 주5일 수업마저도 사교육비 증대의 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영국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여가문화를 정착시켰을까? 그리고 영국사람들은 여가시간에 뭘 하고 놀까? 우리 보다 먼저 놀기 시작했고, 우리가 지금에야 직면하게 된 여가문제에 먼저 직면해 그 해결책을 찾아나갔던 영국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상당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영국인들의 여가 활동과 정부지원

 

2009년 ~ 2010년 영국의 문화, 여가, 스포츠 국민조사(National Survey of Culture, Leisure and Sport)에 의하면 영국인이 가장 자주하는 10가지 여가활동은 텔레비전 시청, 사교, 음악감상, 쇼핑, 독서, 외식, 외출, 인터넷, 스포츠, 정원 가꾸기, 펍, 영화관 등이다.

영국인이 많이 즐기고 있는 여가활동 중 음악감상은 영국만의 독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여가활동조사 또는 생활시간조사에서 음악감상이 이렇게 높은 수치로 나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네 차례의 국민여가조사를 실사한바 있는데, 국민들이 가장 즐기는 10가지 여가활동 중에서 단 한 번도 음악감상이 등장한 적이 없다. 영국인들이 음악감상으로 여가시간을 선용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활발한 예술교육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 예술교육은 다양한 차원에서 여러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이루어진다. 중앙정부는 예술위원회(Arts Counsil)를 통해 예술교육을 지원한다. 지방정부 역시 주로 문화여가스포츠 부서를 통해서 예술교육을 지원한다. 자선단체도 예외는 아니다. Youth Music은 정부의 예술위원회로부터 재정을 지원받아 작곡, 공연 등의 예술교육을 지원한다. 예술위원회는 복권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통해서 예술교육기관에 지원하고 있다. MFY(Music for Youth)의 활동은 특별하다. 각종 음악활동을 지원하는 이 단체는 주로 콘서트관람과 공연을 지원한다. 현재 School Prom을 통해서 3,000명의 연주자를 발굴하여 오는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Royal Albert Hall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활발한 예술교육, 여가는 곧 문화예술적 삶

 

찰스 황태자는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재단(The Prince’s Foundation for Children and the Arts)을 설립하여 매년 100만 파운드의 기금으로 예술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모두 세 종류의 퀘스트 프로젝트(Quest Project)를 통해 각급 학교와 예술가 그리고 공연장을 연결하여 스토리텔링, 댄스, 음악공연 등을 지원하고 있다. 먼저 학생에게 음악가, 시인, 무용가 등 전문 예술인을 연결하여 예술교육을 시키고, 최종적으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젝트다. 영국인들이 음악감상으로 여가를 선용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자연사박물관, 대영박물관, 사진박물관, 회화박물관, 장난감박물관 등 런던에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박물관들이 거의 무료이기 때문에 수첩을 들고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박물관을 관람하는 가족단위 관람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킹스크로스에는 뮤지컬극장과 영화극장이 집중되어 있어서 영국의 브로드웨이라고 할만 한데, 여기에서는 수 십편의 뮤지컬들이 쉴 새 없이 공연되고 있어서 뮤지컬을 보러 나온 가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렇듯 영국은 목하 열렬히 여가 중이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정도다. 반면에 우리는 아이들에게까지 ‘월화수목금금금’ 생활화를 훈련시키고 있다. 토요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매일 노는 영국은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고 있다. 우리가 여가에 대해, 바쁜 시간 중 잠깐의 휴식 또는 빈 시간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휴식과 여유, 문화예술의 삶을 통해 더 즐겁고 행복하기 하기 위한 시간으로서의 여가로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글_ 최석호 aSSIST 레저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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