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은 아르떼진으로부터 태어났다.”고 말한다면 다소 과장일지 모르지만, 문화예술교육이 아르떼진과 함께 성장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 입시와 경쟁의 가열, 학교 붕괴의 조짐 등이 위기의식을 갖게 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문화교육의 패러다임이 대두되었다. “분과학문 체계가 한계에 봉착하여 변화를 꾀하고 있고, 경쟁 과잉의 사회가 공동체의 유지에 필요한 사랑과 봉사, 연대와 신뢰 라고 하는 사회문화적 자원의 파괴를 불러일으키면서 ‘위험사회’를 조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위험사회에 대한 대처로서 문화교육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학교 교사로부터 문화예술의 각 장르가 이러한 문제인식에 공감하면서 논의의 불을 지폈다. 기능 중심, 장르 위주 예술교육의 방향 전환, 비판적 문해력의 함양, 문화예술을 통한 전인적 교육 등이 회자되었다.

글_ 아르떼진 편집팀

 

아르떼진의 탄생

 

그런 중에 2004년 문화관광부와 교육인적자원부가 협력, 정책사업으로 문화예술교육 허브사이트 ‘아르떼(artE.Ne.kr)’를 띄웠다. ‘지식 중심의 교육과 입시 교육에서 벗어나 감성과 일상이 흐르고 사람과 사회와의 관계를 학습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표방한 이 사이트는 ‘웹진 땡땡’과 문화예술교육 우수사례를 중심 콘텐츠로, 문화예술계와 교육계로부터 기대와 주목을 받았다. 2005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설립과 함께 허브사이트 ‘아르떼’라는 이름과 콘텐츠를 계승하였고, 웹진 땡땡은 아르떼진으로 이름을 바꾸어, 매일 2,000명이 접속하고 회원 6만 9,000명이 함께 하는 문화예술교육의 허브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르떼진이 만난 사람들

 

아르떼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첫 해의 ‘지혜를 나누는 인터뷰’ 코너에선 우리 사회의 존경할만한 ‘어른’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 국어교사 출신이자 역시 문화부 장관을 지낸 영화감동 이창동, 시인 김지하, 지금은 고인이 된 건축가 정기용 등 어른들을 만났다. 또한 ‘학교는 죽었다.’고 선언하며 온갖 불온한 낙서로 가득한 앰뷸런스를 몰고 다니는 괴짜 교사, 악조건에서도 열정으로 끊임없이 문화예술 교육사례를 만들어내며 분투하는 교사, 박사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각종 교사들의 공부모임도 소개되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극단 사다리의 유홍영 대표, 노래, 특히 어린이 노래를 만드는 백창우 등 이미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미래의 세대와의 연결고리로 삼아 활동해온 예술가들을 알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소프라노 조수미, 발레리나 강수진, 마임이스트 유진규, 소설가 박범신, 명성왕후 연출가 윤호진 등 유명 예술인들이 아르떼를 통해 교육과의 만남을 갖게 되었고 아르떼진을 통해 이를 알렸다. 그 밖에도 ‘나는 선생이 싫다’고 선언한 톡 튀는 청년부터 첼리스트 과학자나 스마트폰 밴드 같은 최근의 트렌드를 반영하여 문화예술로 노는 것이 익숙한 타 분야 전문가와 일반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아르떼진의 무대에서 활약했다.

 

 

 

현장 공유에서 담론 생산까지

 

 

초창기 아르떼진은 상상력과 창의성, 소수자나 다문화 문제, 문화적 리터러시, 매개자, 파트너십 등 문화예술교육의 핵심적인 키워드들에 대한 전문가의 기고를 통해 문화예술교육에 대한학습장(場)으로서의 역할도 했다. 아울러 아르떼진의 기획에 따라 아직 사유되고 정리되지 않은 문화예술교육의 다양한 주제들이 담론화, 정책화되는 측면도 있었다. 이제 막 시작한 문화예술교육의 지원정책 방향과 내용에 대한 좌담, 해외 지원정책의 소개, “지역에서 중앙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의 제언들이나 지금은 ‘전문인력’ 이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매개자’를 정의한 글 등이 그것이다.
지원기관으로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담은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다시 보다”, “소수자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말하다”, “학교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 평가는 어떻게 진행되나?” 및 “사회 문화예술교육 컨설팅 제도 1년, 무엇을 남겼나?”, “예술강사의 미래를 고민하다” 등 몇 차례의 좌담도 이루어졌다. 정책 소통의 공간으로서 아르떼진의 한 방향을 보여준 시도였지만 웹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아쉬운 시도로 끝났다.

 

아르떼진의 도약을 앞두고

 

>2004~2005년의 초창기 아르떼진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가’에 주목하여 철학을 만들고, 취재자, 편집자, 통신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진행되었다면, 2006년~2009년 과도기의 아르떼진은 더 폭이 넓어진 관계망을 구축하고 이를 활용하여 문화예술교육을 더 많은 대중에게 알려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 아르떼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부응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문화예술교육 진흥원이 선언한 재도약의 시기에 합류하여 아르떼진이 목적하고자 하는 편집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제기된다. 교육진흥원의 사업의 성과를 성찰하고 새롭게 과제를 설정하는 과정 안에서 역할과 위치를 재조정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글의 작성을 위해 그동안 아르떼진을 만들었던 담당자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문화예술교육의 읽을 거리로서의 아르떼진, 보다 정치적인 매체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르떼진, 연구보고서로서의 아르떼진 등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드러냈다. 문화예술교육의 성장과 함께 커온 아르떼진이 교육진흥원의 재도약과 함께 훌쩍 자라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