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와 슈베르트가 살았던 18세기 유럽, 예술에 대한 관심과 음악적 소양이 있는 가정에서는 ‘가정 음악회(하우스 콘서트)’가 곧잘 열리곤 했다. 가정 음악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어린이와 청소년. 유명한 음악가를 초빙해 콘서트를 여는 것이 아니라, 가정 음악회는 생활 속에서 항상 음악과 함께 성장하는 자녀의 예술적 기량을 높이기 위한 장이었다. 후대 사람들은 ‘가족의 사랑 속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어린이가 자라서 좋은 음악가가 될 수 있었다.’라고 가정 음악회의 가치를 평가했다.

 

자녀를 위한 멋진 음악 선물

 

이러한 전통에 따라 오늘날 유럽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는 가정 음악회가 일반적인 풍토로 자리를 잡았다. 비록 고사리손으로 서툰 연주를 하는 것이지만 온 가족의 사랑과 관심 속에 칭찬을 받으며 자라난 어린이들은 음악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마음 속 깊이 가질 수 있다. 따뜻한 가족의 전통이자 가정에서 실시할 수 있는 최고의 음악 교육인 가정 음악회가 우리나라에서도 열리고 있다. 전라북도 전주시 중인동에 위치한 한 가정에서 이웃 가족과 함께 올해로 6회째 가정 음악회를 갖고 있는 것이다.

 

 

2008년 12월 처음으로 열린 전주 가정 음악회. 그 시작은 아이들과 함께 특별한 연말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진우 어머니 최순우 씨의 제안에서 비롯했다. 최순우 씨는 아들 진우와 딸 수영, 그리고 이웃 친구인 영훈이네, 은서네를 모아 가정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다른 학부모들 역시 흔쾌히 참석 의사를 밝혔다. “당시엔 아이들이 음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진우 아빠가 피아노도 쳤다가, 더블베이스도 연주했다가, 플루트도 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실력이 부쩍 늘어서 오롯이 아이들 힘만으로 연주회가 가능합니다.” 매일 볼 때는 잘 느끼지 못하다 연주회를 가져 보면 실력이 향상된 것이 보인다며, 그것이 가정 음악회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하는 최순우 씨다.

가정 음악회는 입소문을 타고 아이들의 친구로 그 멤버를 넓혀 갔다. 지금은 아이들의 친구 민엽이, 재혁이, 용현이, 지원이와 지우에 이르기까지 총 열 두 명의 어린이가 음악회에 참석한다. 내년이면 멤버의 동생들이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한 번 모여 ‘작디 작은 연주회’를 가질 생각이었지만 어린이들의 뜨거운 호응과 감동이 있어 연 2회 실시하고 있다. 올해는 거기에 더해 크리스마스 맞이 특별 콘서트 ‘하모니가 있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음악 실력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하여 음악회의 구성과 진행에도 아이들의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엄마들이 준비하고 아빠들이 도와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음악회 진행은 물론 어떤 곡을 연주할 것인지, 합주 연습은 어떻게 할 것인지 아이들이 직접 결정하고 진행한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가장 열렬한 팬이지 든든한 지원군이다. “여기 모인 아이들과 부모님은 음악이라는 공통분모 외에도 독서에 관심이 많아요. 지난 음악회에선 연주 외에 위인전을 읽고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과 미래 희망’에 대해서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지요. 이번 음악회는 ‘책 교환 파티’도 함께 기획했습니다.” 은서 어머니 문정선 씨는 아이들이 음악뿐 아니라 책을 비롯한 문화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성장하기를 바란다며 이야기를 전했다. 책 교환 파티는 꼬마 음악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각자 그간 읽었던 재미있는 책을 하나씩 가져와 내용을 설명하고 자신의 감상을 덧붙였다. 이후 자신의 책을 경매에 내놓는다. 최소 경매가 200원부터 최고 경매가 2,000원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치열한(?) 입찰을 통해 원하는 책을 얻었다.

또한, 가정 음악회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각 가족이 준비한 맛있는 음식이다. 엄마 손으로 만든 정성 어린 음식이 풍성하게 차려졌다.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이야기꽃을 피우며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 드디어 오늘 모임의 하이라이트인 가정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함께 웃고 즐기는 행복한 시간

 

오늘의 진행자는 은서. 평소답지 않게 야무진 말솜씨로 첫 번째 연주자를 소개했다. 아이들은 이날을 위해 직접 고른 멋진 연주복(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옷)으로 갈아입고 무대에 등장했다. 피아노, 클라리넷, 오카리나, 기타, 바이올린, 플루트에 흔히 접할 수 없는 더블베이스 등 연주하는 악기도 다양하고 연주 레퍼토리도 드보르자크, 모차르트에서 비틀스, 우리나라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참여 어린이 중 초등학교 6학년인 재혁이와 진우는 전북어린이오케스트라 베이스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가정 음악회의 레퍼토리도 다양했지만, 진짜 재미는 앙코르 공연에 있었다. 아이들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준비한 아리아를 부르고 비틀스와 트로트 ‘무조건’을 춤과 더불어 선보였다. 모두가 박수를 치고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앙코르 무대까지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가정 음악회. 그 뜨거운 열기는 전문 연주자의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이날 공연은 다음 공연 날짜와 다음 번 사회자를 결정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과연 어린이들에게 가정 음악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두 번째 공연을 마치고 나서, 사회자가 아이들에게 ‘제3회 가정 음악회를 갖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주세요.’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모든 어린이가 일제히 손을 들었어요.” 진우 어머니 최순우 씨가 회상한다. 참여 학생 중 한 명인 정환이는 “수학 문제를 풀다가 막혀서 굉장히 답답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제 옆에 바이올린이 있었거든요. 갑자기 연주를 하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벌떡 일어나 바이올린을 연주했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절로 풀렸어요. 음악은 답답할 때나 화날 때 저를 위로해 줘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음악은 마음을 달래 주고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좋은 벗이다. 이제는 다음 번 가정 음악회를 열지, 열지 않을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고 한다. 가정 음악회 자체가 기다려지고 설레는 행사가 되었고, 음악은 아이들의 제일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요즘 어린이들은 사교육에 선행학습으로 어른보다 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악기를 배워도 전문 연주자를 꿈꾸며 프로처럼 고독하게 레슨을 받고, 아이들이 팀을 짜서 모일 때라곤 수학, 영어 과외를 받을 때뿐이다. 학원을 가지 않으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는 이 시대의 어린이에게 함께 모여 만들어 가는 예술은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작은 사회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예술이 주는 감동과 뿌듯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또한, 평생 함께하며 삶의 구비마다 위안을 주는 음악의 참된 힘을 경험할 수 있다. 아이들은 가정 음악회를 준비하며 초대장에 이런 글을 적었다. “음악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롭게 하는지, 언젠가 우리 스스로 깨닫는 날이 있을 거에요. 우리가 용기를 잃지 않도록 계속하여 애정과 미소로 지켜봐 주세요.” 전주 가정 음악회는 이 시대 어린이를 위한 최고의 음악 교육, 예술이 삶 속에 자리를 잡고 숨 쉬는 터전이었다.

 


 

글.사진_ 최정미 전북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