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길, 치유하길, 변화하길

2025 도시숲 예술치유 <자연의 틈에서 다시 만나다>가 남긴 발자국

누구나 멈춰 서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번 <자연의 틈에서 다시 만나다>(2025 도시숲 예술치유)는 일상 속 관계가 느슨해지거나 잠시 멈춰 선 ‘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지향했다. 사회와 단절되어 있거나 자신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는 청년들이 도시 숲이라는 자연과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다시 마주하고, 사람·공간·예술과 새롭게 연결되는 예술치유의 여정을 함께 떠나보고자 했다. 나 역시 예술을 접하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을, 잠시 멈춰 선 청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비대면 프로그램 4회와 대면 프로그램 1회 그리고 토크콘서트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었다. ‘예술은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어요. 그리고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멈춰 선 마음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되어
프로그램은 단계적으로 기획·운영되었다. 비일상적 일상을 보내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처음부터 대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참여자 입장에서 너무 높은 문턱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었다. 이에 첫 만남은 무엇보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비대면으로 시작했고, 이후 자연과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대면 프로그램으로 확장했다. 마지막 순서로는 참여자와 전문가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를 마련해, 멈춰 선 청년들에게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고자 했다. 비대면-대면-토크콘서트의 흐름은 돛단배가 순풍에 파고를 넘듯, 사회적 관계 회복이라는 육지로 점점 다가올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었다.
가을에 접어드는 10월 중순, 우리는 비대면으로 처음 만났다. 모니터 안 10명의 얼굴이 내 마음에 등사되었다. 나는 우려했다. ‘저활력의 청년들이 쉬는 시간 없이 비대면으로 2시간 동안 이어지는 프로그램에 힘들어하면 어떻게 하지?’ 이 걱정은 프로그램이 시작하자 가을바람 낙엽 날리듯이 흩어졌다. 참여자들의 얼굴이 보이는 모니터 속 눈동자들은 매 회차 2시간 내도록 반짝이고 있었다.
비대면 프로그램은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되었다. 처음 진행한 것은, 겨울부터 시작하여, 여름, 가을, 봄 순서로 계절에 맞는 감정 카드를 찾고, 찾은 감정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1~3장의 감정 카드를 뽑아 자신의 경험과 연결 짓는 시도는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감정 카드 발표가 끝나면, 나의 ‘네컷만화’를 보고, 그림 속의 상황과 유사한 경험을 겪었거나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지 말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계절마다 다른 그림을 준비했지만, 관통하는 주제는 한 가지였다. ‘시련 뒤에도 희망은 있다.’ 참여자들은 그림을 보며 경험과 감정을 말했고, 마치 자신의 감정을 대변한 그림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프로그램은 참여자 간 공유 없이 각자 진행했다. 예술치유는 본인의 감정, 상처, 생각을 마음속에만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글이나 그림 등 다른 어떤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감정의 승화를 얻는다는 의미가 있다. 참여자들은 앞서 발표한 감정의 단어를 활용하고, 내가 제시한 첫 문장을 시작으로 각 계절에 맞는 에세이를 적어 내려갔다. 다른 참여자와 공유하지 않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 솔직히 적어낼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은 ‘달력 삽화 그리기’로 계절과 월(月)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키트로 제공된 채색 도구함과 종이는 한 장 한 장 참가자들의 개성을 담은 달력 그림들로 채워져 갔다. 매 회차 다 그린 그림은 온라인 플랫폼 ‘패들렛(padlet)’에 올리도록 했다. 나는 참여자들의 그림에 일일이 감상 글을 남겼다. 진심으로 놀라고 감탄했다. 쉬이 생각할 수 없는 구도와 색감 표현, 생동감 등이 느껴지는 그림들을 보며,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단을 갖게 되면, 그것을 반드시 표현해낸다’는 것을 말이다. 네 번의 비대면 만남은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빠르고 밀도 있게 지나갔다.
  • 비대면 프로그램 사진
  • ‘패들렛’에 업로드된 참여자의 작품과 작가의 피드백
  • 권현우 작가의 네컷만화
자연에서 대면한 위로와 공감, 치유의 현장
대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날, 나주의 햇살은 따스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무색하게도 수은계는 20도를 찍고 있었다. 대면 프로그램이 진행된 복합문화공간 ‘3917마중’은 전라남도 나주에 정원과 고택이 어우러진 곳을 복원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만든, 역사와 정취가 있는 곳이었다. 폐가로 남을 뻔한 옛 건물을 다시 살려냄으로써 새로운 활력을 갖도록 한 3917마중의 노력은 ‘도시숲 예술치유’의 목적과 유사했다. 새로이 재생된 공간에서 새롭게 변할 참여자들의 마음은 이미 통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한 명 한 명 참여자들이 도착했다. 모니터 화면 속에서 서로를 바라봤던 기억 덕분인지 실제로 마주하니 반가움에 벅차올랐다. 우선 3917마중 공간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산과 숲이 어우러진 장소에 고즈넉하게 앉아 있는 고택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참여자들에게 공간을 둘러보며 이후 진행될 에세이 쓰기 시간에 각자 글 쓸 장소를 찾아보자고 했다. 3917마중을 둘러보고 다시 모인 우리는 『인생, 네컷만화』 마지막에 실린 그림을 보며 감상을 나누었다. 마이크를 통하지 않고 육성으로 듣는 참여자들의 이야기는 더욱 마음속 깊이 다가왔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 끝에는 다 같이 박수로 화답해 주었다.
이어 ‘10월’이라는 주제가 담긴 문장으로 시작하는 에세이 쓰기. 참여자들은 3917마중을 둘러보며 자신의 마음속에 담았던 장소에서 에세이를 썼다. 자연 속 고택에 앉아 글 쓰는 모습을 보니 마치 어린 시절의 백일장에 참여한 듯한 느낌도 들었다. 다시 모인 참여자들과 ‘달력 표지 그리기’를 이어갔다. 열두 달의 달력 삽화를 그리니 달력의 표지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혼자 그리지 않고, 다 같이 모여 앉아 서로의 채색 도구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눠가며 각자의 개성이 담긴 달력 표지를 완성했다. 대면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감을 한마디씩 부탁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울컥거림을 참아야만 했다. 내가 느낀 바를 이들도 느낄 수 있길 바랐던 나의 목표에 도달한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표현할 수 없었던 답답한 마음들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되는 경험을 했어요. 이번 프로그램을 계기로 계속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생각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알찬 시간이었어요. 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했고, 저 역시도 다른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위로와 공감을 받았어요.”
“마음이 힘들 때, 집 안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항상 존재하는 자연으로 나와 자연이 주는 순환과 치유의 힘을 느낄 생각입니다.”
자연의 숨을 호흡하며 함께 걷다 보면
저녁 5시부터 시작된 토크콘서트는 참여한 청년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함께 했다. 본격적인 토크콘서트에 앞서 ‘극단 해’의 즉흥극이 펼쳐졌다. 즉석에서 사연을 말하고, 그 사연을 연기로 선보이는 형식이었다. 사연을 말한 이는 프로그램 참여자 중 한 명이었다. 쉬이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공유해 주었고, 즉흥 연기는 그 이야기를 또 다른 감정으로 승화해 표현했다.
즉흥극이 끝나고 본격적인 토크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전문가로 초대된 DF정신건강의학과 오진승 전문의는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과 예술치유의 정신건강의학적 효과 등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진승 전문의는 예술치유가 스트레스 완화뿐만 아니라, 자기 이해와 자존감 향상에도 도움이 되며, 자기 인식과 자아 탐색의 수단으로서도 큰 효과가 있다고 언급했다. 실시간 채팅으로 질문을 받았는데, 다양한 분들이 겪고 있는 번아웃 증상, 완벽주의 성향, 직장에서의 힘듦에 대해서 나는 예술가적 입장에서, 오진승 전문의는 의학적인 접근으로 해답을 줄 수 있었다. 해가 지면서 서서히 어두워지는 공간 속 토크콘서트는 프로그램 참여자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도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은 말했다. 자신이 글을 완성하고, 그림을 끝까지 그려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예술이라는 수단을 통해 타인과의 접점을 만나고, 사회와 소통이 가능해진 것은 덤이 아니라 목표였다. 소외되었던 개인이 더는 외롭지 않고, 공동체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예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짧은 프로그램이었지만, 참여자들에게 프로그램 이전과 이후는 분명 다르게 느껴질 것이고, 예술은 이들의 삶에 충분히 젖어 들어갔다.
홀로 낸 발자국이었다. 한 걸음 나아가니 다음 걸음을 내딛을 용기를 얻었던 나의 과거. 어제 걸었으니 오늘도 걸을 수 있고, 내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 속에 걸었던 혼자만의 길을,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참여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고개 숙이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며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고 자연의 숨을 깊게 호흡하며 걸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이제 뒤를 돌아보니 내 발걸음은 보이지 않고, 함께 걸어왔던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발걸음이 옹기종기 귀엽게 모여 있다. 걷다 보면 넘어져 쓰러질 때도 있겠지만, 그때에도 사라지지 않는 발자국을 따라, 적은 힘이라도 들여 일어설 수 있게 되는 계기와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일상으로의 회복이 필요한 청년들을 다시 사회와 연결함에 있어, 일시적으로가 아닌 지속가능한 청년 대상 프로그램으로서 ‘예술치유’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지와 장기적 시각이 요구된다. 그 중요성과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권현우
권현우
콘텐츠형 인간. 글을 적고 그림을 그린다. 소외된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노력한다.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출판사 닿’을 운영하고 있다. 강연과 워크숍 등으로 출판 및 독서, 글쓰기, 삶의 방향성에 관한 생각 등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고 살아가는 중』(공저), 단편소설집 『틈』, 『반가움에 꼬리를 흔들었다』, 그림 에세이 『인생, 네컷만화』 등이 있다.
greenboy36@gmail.com
인스타그램 (개인)@louis36kwon (그림)@kwon_sun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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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르 2025년 12월 09일 at 1:10 PM

    무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방 안에 갇혀있는 상태인 청년들이 많은데, 글로 그림으로 내면에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게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첫 발걸음인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author avatar
    김수현 2025년 12월 14일 at 12:59 AM

    이 프로그램은 예술이 멈춰 선 마음에 말을 건네고,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비대면이라는 안전한 거리 속에서 시작해 점차 연결로 나아가는 과정이 청년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존중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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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2025년 12월 15일 at 9:59 AM

    미술 치료가 가진 깊은 힘을 잘 느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복잡한 감정을 밖으로 꺼내어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 참 매력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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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2월 15일 at 1:14 PM

    표현하길, 치유하길, 변화하길
    2025 도시숲 예술치유 가 남긴 발자국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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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2월 15일 at 4:37 PM

    표현하길, 치유하길, 변화하길
    2025 도시숲 예술치유 가 남긴 발자국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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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르 2025년 12월 09일 at 1:10 PM

    무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방 안에 갇혀있는 상태인 청년들이 많은데, 글로 그림으로 내면에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게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첫 발걸음인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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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2월 14일 at 12:59 AM

    이 프로그램은 예술이 멈춰 선 마음에 말을 건네고,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비대면이라는 안전한 거리 속에서 시작해 점차 연결로 나아가는 과정이 청년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존중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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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2025년 12월 15일 at 9:59 AM

    미술 치료가 가진 깊은 힘을 잘 느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복잡한 감정을 밖으로 꺼내어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 참 매력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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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2월 15일 at 1:14 PM

    표현하길, 치유하길, 변화하길
    2025 도시숲 예술치유 가 남긴 발자국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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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2월 15일 at 4:37 PM

    표현하길, 치유하길, 변화하길
    2025 도시숲 예술치유 가 남긴 발자국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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