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오브피스(piece of peace), ‘평화의 조각’이란 뜻이다. 공동의 일을 위해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모이는, 천근성 작가가 꾸리는 예술 콜렉티브의 이름이다. <자투리 잡화점> <이웃집 홈리스> <서울아까워센타-유기사물구조대> <수원역전시장커피> 등 개인 천근성의 예술작업과 피스오브피스의 예술 활동은 모두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특성이 돋보인다. 예술교육자 파블로 엘게라(Pablo Helguera)의 저서 『사회 참여 예술(socially engaged art)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예술가와 공동체가 협력하며 사회적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을 사회 참여 예술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동시대 예술의 최전방으로서 그의 예술 실천이 사회 참여 예술의 전형으로 흥미롭게 읽히는 대목이다.
예술가 천근성과 필자와의 인연은 비교적 최근이다. 지금은 사라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인사미술공간에서 2023년 ‘아트토크 2.0’ 프로그램의 공동 멘토로 만나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눈 바 있다. 같은 해 아르코미술관의 전시 《그림이 된 커피가루》에서는 피스오브피스 이름으로 친환경 전시 공간을 구성했고, 히스테리안 기획의 공공예술 프로젝트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 출몰지>에 작가 천근성으로 참여하여 전시장에서 그를 마주친 적도 있다. 예술교육가, 전시 설치업체, 작가 등 경계 없는 정체성으로 활동하는 그의 모습을 하나로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피스오브피스의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그간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적정한 예술을 위한 문제의식
천근성 작가 개인과 피스오브피스의 교차점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행위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이는 피스오브피스를 소개하는 ‘적정예술그룹’이라는 표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적정예술’이란 레비 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의 ‘브리콜라주(bricolage)’라는 개념어를 한국말로 변환한 거예요. 적정한 기술 혹은 예술이란 쉽게 말하면 웬만하면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만들거나 용도를 변경해서 쓰고, 만약 재료를 사더라도 여러 차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리고 비전문가인 우리끼리 열심히 꽁냥꽁냥 해보자는 차원이었죠. 원래는 ‘문화예술단체 피스오브피스입니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저한테 오히려 무게감이 있었어요.” – 천근성 작가·피스오브피스 대표
브리콜라주는 손에 닿는 대로 어떤 물건이든 이미 가진 것과 뒤섞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실천이다. 특히 모든 것을 전문가에게 위임하고 쉽게 구매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위의 주체가 돼보는 경험과 연결된다. 레비 스트로스는 자원이 부족한 원시 부족사회의 이러한 실천을 20세기 초반에 발견했지만, 기후위기 시대의 우리 역시 그러한 실천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값싼’ 자연으로부터 자원을 마구 가져다 쓰던 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 한정된 자원을 나눠 쓰는 행성적 차원으로의 이행 속에서, 그의 예술실천의 가치는 더 빛난다.
이러한 만들기의 시작은 2012년 한 정크아트 대회에서 수상한 이력에서 기원한다. 재료의 업사이클링이라는 측면에서는 지금의 활동 기조와 비슷해 보이지만, 정크아트는 기념비적인 조형물로서 다분히 결과 중심적이다. 행위 중심적이고 과정 중심적인 지금의 예술 활동과는 거리가 있다. 처음과 지금 활동 사이 변화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작가는 고(故) 신승철 소장이 운영하는 ‘생태적지혜연구소’의 전신인 ‘철학공방 별난’에서 2016년 정도부터 참여한 공부 세미나를 꼽았다. 여기서 그는 기후위기, 공동체, 소농 등 다양한 생태철학을 공부했다.
“2012년에 서울시에서 캠페인 차원으로 일산 호수공원에 해체된 장난감 부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100명의 작가가 24시간 동안 작품을 만드는 대회가 있었어요. 운이 좋게도 1등을 해서 그 이후로 업사이클링 관련한 곳에서 연락이 많이 왔어요. 재료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단순히 손기술로 철저히 조형적인 것들을 만들다 보니까 어느 순간 숙연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요청하는 곳에서도 문제의식이 없는 경우도 많아서 그다음부터는 일절 거부했어요. 업사이클링과 정크아트 작업을 하면서 문제의식의 부재가 있었음을 깨닫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에 공부를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난 거죠.”
사물 보수를 통한 돌봄의 과정
인터뷰 간간이 언급되는 주요 작업의 키워드는 사각지대, 자투리, 홈리스 등이다. 이처럼 소외되고 배제된 대상을 발견하고, 작가 개인 혹은 예술 콜렉티브로서 재료의 순환이나 돌봄의 자리를 환대하는 예술을 실천한다. 언뜻 보면 타인을 위한 수혜적인 행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행위가 스스로의 돌봄을 위해 시작되었다는 것이 흥미로운 대목이다.
“제가 일생일대의 슬픈 일로 우울증에 휩싸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길거리에 너덜거리는 금연 표시 같은 사인물을 보고 내 마음 같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글루건과 선물로 받은 캠핑용 보조 배터리를 들고 보수하고 다녔거든요. 그게 저에게는 자기 돌봄 같은 느낌이었어요. 피스오브피스의 <서울아까워센타-유기사물구조대>라는 프로젝트도 거리에서 망가진 가구들을 고치고 다니는 거였죠.”
너덜거리는 길거리 사인물이나 망가진 가구들을 고치는 행위가 스스로를 보듬는 돌봄의 과정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사뭇 진지하다. 돌봄이 상대로부터가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작가적 욕망’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전했다.
“대구예술발전소의 프로그램 참여했던 때였어요.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를 읽고 작업을 하는 거였죠. 저는 고깃집에서 많이 사용하는 송풍관을 사서 제 작업실의 에어컨 바람을 대구예술발전소 환경미화원분들의 휴게실로 옮기는 작업을 발표했죠. 그분들이 시원하다고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예술이 사회적 문제를 전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가의 말대로, 예술이 사회문제 해결에 별난 힌트가 될 수 있다.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에 탁월하다는 것을 작가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이 자신의 ‘욕망’, 다시 말해 지극히 인간적인 개인의 필요에서 출발한다는 지점에서 많은 공감을 얻어내는 게 아닐까.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직조하기
수혜적 관계는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주로 이익이나 혜택을 베푸는 관계를 의미한다. 사회복지 분야와 비슷하게 공공예술 작업에서도 제공자인 예술가와 수혜자인 주민이라는 비대칭적 힘의 관계가 만들어지곤 한다. 그러나 천근성의 작업은 호혜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쌍방이 노동을 교환하며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에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이웃집 홈리스>의 경우 서울역 인근 노숙자들의 공간을 고쳐주는 대신 그림을 받았다.
“<이웃집 홈리스>의 경우도 8년 동안 후암동에서 살면서 서울역 인근의 노숙자들을 얼마나 많이 봤겠어요. 교회나 지역 활동 단체에서 나오시는 봉사자들과는 달리,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는 교회에서 나온 사람도 아니고 도시락 단체도 아니고 그냥 여기 동네 사는 사람이야’로 관계를 맺고 싶었던 거예요.”
“요즘에는 위생적인 관계를 추구하잖아요. 예를 들면 톨게이트 징수원보다 하이패스를 선호하고,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죠. 저는 오히려 반대로 가보고 싶었어요. 피스오브피스의 첫 프로젝트인 <자투리 잡화점>은 물물 교환 방식이거든요. 내가 필요 없는 것을 가져오고 필요한 자투리를 가지고 가면 돼요. 내가 많이 가져갔다고 느끼면 부채감이 쌓이고 내가 많이 퍼줬다고 생각하면 손해 봤다고 느끼겠죠. 이런 불공평함에서 오는 어떤 것 때문에 계속 관계를 맺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계속 얽히고설키는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말하는 얽히고설키는 관계는 조율과 교환을 통해 주체적인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건강한 관계다. 그러나 매번 다른 관계는 예측 불가능한 지점이 뒤따른다. 이러한 관계적 예술 실천 속에서 작가로서 그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관계라는 건 언젠가는 느슨해지거나 끊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항상 좀 우려스러웠어요. 확실한 맺고 끊음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언제까지 합니다’, 그리고 ‘이런 거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를 분명하게 말해요. <이웃집 홈리스> 작업이 마무리되었을 때, 칼같이 끝내기가 싫어서 ‘홈리스 야학’ 활동을 자원했어요. 1년 동안 매주 ‘사물돌봄’이라는 수업으로 쪽방에 사는 분들께 스스로 하는 주거 개선 방법을 알려드렸죠.”
평등한 관계에 기반한 해방된 교육
천근성 작가는 예술교육가로서 활동이 많다. 그러나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 일반적인 교육 형태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방향적인 교육이 아닌, 특수한 상황을 설정해서 참가자들이 직접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역시 그답다. 서울예술교육센터 용산에서 진행한 청소년 대상 도구 창작 워크숍에서 작가는 <백두산을 향해: 기후위기시대 브리콜뢰르 되기>라는 제목의 과몰입형 세계관 상황극을 기반으로 한 교육 체험을 기획했다. 통일 후 2100년을 배경으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수 위기의 서울을 벗어나 백두산으로 갈 캠핑카를 만드는 미션을 수행하는 내용이었다.
“비바람 치는 영상을 교육 중간에 상영하며 “서두르십시오”라고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도구 같은 경우도 다른 팀이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해서 일종의 게임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죠.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해보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냥 두니까 드릴이 잘 안되면 드릴로 망치질을 하더라고요. 저는 그것도 되게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뒀어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저서 『무지한 스승』 서두에 나오는 자코토의 일화가 생각났다. 19세기 초 1818년 네덜란드 대학에서 불문학 외국인 강사가 된 조제프 자코토는 문법이나 어휘 등 프랑스어 규칙을 “설명하지 않고” 오직 최소한의 지침만 제시한 채, 학생들이 스스로 이해하고 익히도록 했다. 학생들은 설명 없는 교육과 반복 훈련만으로 프랑스어 문장을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코토 일화는 ‘지식의 설명’ 없이도, 누구나 지적인 평등을 바탕으로 자기 의지와 능력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 교육에서 맺는 스승과 학생 간 관계의 전복이자 해방이다.
“사실 예술은 그냥 긴가민가하면서 하거든요. 저는 알고 하는 게 아니라 더듬으면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교육은 누군가에게 언어화해야 하고 송달 혹은 하달하는 식으로 전달해야 하는 게 잘 안 맞는 거 같아요. 그래서 설명하지 않고 교육하는 나름의 방식을 찾기는 했지만, 여전히 난제입니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
천근성은 예술작업 안에서 수리점 기사가 되기도 하고 커피숍 사장님이 되기도 한다. 올 10월에는 수원 경기상상캠퍼스에서 다람쥐가 되어 택시를 운행하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단다. 그에게 예술은 단순한 자기표현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현재 존재하는 질서나 제도를 당연히 받아들이기보다는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라는 유쾌한 상상력을 제안한다.
“예술은 의도적인 행위를 만들어서 사건을 빚어내는 건데 결국엔 (연)극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어느 순간 무대에 내려와야 해요. 그 무대와 무대 사이에 있는 시간이 삶으로 따지면 훨씬 더 긴 거예요. 삶에 내재된 것들이 응축돼서 예술로 나오기도 하고 삶으로 나오는 거죠. 예를 들면 지금 하고 있는 <수원역전시장커피> 같은 경우, 저는 이 극에서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이에요. 근데 극이 끝나면 그냥 인간 천근성이란 말이에요. 예술가는 일종의 탈맥락화 혹은 탈영토화해서 다른 것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아요. 좀 더 다양한 삶들을 살아볼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어요.”
천근성에게 예술가의 삶과 개인의 삶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일상의 시간을 예술로 끌어오고, 예술 속에서 다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렇게 삶과 예술은 서로를 비추며 함께 자라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사소해 보이는 행위를 통해서도 묵직한 성찰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천근성
예술을 일상과 연결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로 주목받아 왔다. 2019년 예술가 기획자, 제작자 등과 문래창작촌에 자투리 잡화점을 열면서 ‘피스오브피스’ 활동을 시작했다. 개인 프로젝트로 서울 문래동에서 ‘먼지’를 소재로 한 전시 《In-dust-real》(2016)를 통해 산업 지역의 사회적 쟁점을 다루었고, 주거 취약 계층과 함께하는 <이웃집 홈리스>(2022~2023)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과 사회의 접점을 탐구해 왔다. 2025년에는 시장이라는 일상 공간에서 사람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시장커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과정과 결과를 담은 작품 <수원역전시장커피>(수원시립미술관)을 발표했다.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로 <LET’S GO! 깐따삐아: 지구별 대모험>(2022~2023,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서울아까워캠프>(2022,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모두의 나무 : 자투리 마을 건설 작전>(2025, 용인문화재단) 등을 기획·진행했다.
· 인스타그램 @geunsun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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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미
- 예술학을 전공하고 문화연구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사립미술관에서 약 9년간 일하며 예술현장을 익혔고, 이후 독립기획자로서 예술의 사회적 실천에 주목한 시각예술 분야의 기획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퍼블릭 퍼블릭(PUBLIC PUBLIC)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 활동하며, 스페이스 2045를 운영하고 있다.
mia.oneredbag@gmail.com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천근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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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성 작가·피스오브피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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