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구를 만나며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요즘은 성인 발달장애인분들 20명과 ‘발달장애인 독립공간 예술쉼터’ 활동의 맥락으로 미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충남 서천에서 저의 집이자 작업실이었던 공간을 ‘예술쉼터’라는 이름으로 3년 동안 운영하며 이분들과 미술 작업을 계속해 왔었죠. 그런데 올해 서천군 평생교육과에서 ‘장애인 평생학습 도시’ 사업을 예술쉼터 활동으로 해보자고 제안해 와서, 여기 서천군 종합교육센터로 공간만 옮겨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 4년 동안 지역 초등학교에서 자원봉사로 아이들 수업했던 것을 토대로 『우리는 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을까』라는 책을 집필했어요. 그리고 서천문화관광재단이 생기면서 올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시범사업 ‘꿈의 스튜디오’의 일환으로 장애·비장애 통합 미술 활동을 곧 시작하려고 해요.
장소를 서천군 종합교육센터로 옮긴 예술쉼터 활동도, 예술쉼터가 활동하던 이곳에서 운영하게 될 ‘꿈의 스튜디오’ 사업도 프로그램보다는 공간 중심의 활동으로 보여요.
예술쉼터는 이제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동아리 활동으로 완전히 정착되었죠. 발달장애인분들이 시간 되면 오셔서 알아서 활동하다가 끝나면 가세요. 그냥 일상 활동으로 자리가 잡힌 상태예요. 한두 시간 하는 게 아니고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간을 열어둬요. 저와 보조강사가 번갈아 공간에 머물지만 참여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거나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아요. 참여자들이 각자 하던 게 있고 재료 보관함에서 필요한 걸 꺼내서 작업하죠. 우리는 매년 총회도 하고 각자 1년에 회비도 1만 원씩 내요. 반장 같은 임원, 운영위원도 뽑고요. 그래서 참여자들이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하면 회비를 사용해 물품을 사드리죠. 여기는 그냥 참여하시는 분들이 이 공간의 주인이고 활동의 주체로 함께 하는 것이 완전히 자리 잡혔어요.
그리고 ‘꿈의 스튜디오’는 장애·비장애 통합으로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생까지 15명 정도를 대상으로 진행해요. 예술가의 전문 작업실에서 아동·청소년이 예술가와 함께 시각예술 창작 활동을 경험하는 것을 지향해요. 이 사업 역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공간에 아이들이 와서 활동하고 그 과정에 제가 개입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해요. 그래서 최종적으로 결과물이 남는다면 공간이겠죠.
오랜 활동 안에서 지금의 공간 중심 활동은 어떻게 시도하게 된 걸까요?
제가 발달장애인분들과 같이 활동해 온 게 15년째고 중고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를 한 게 한 30년 정도 됐는데, 최근에 일종의 결론 같은 상황에 도달한 것 같아요. 이런 고민이 깊어졌던 첫 시기는 초등, 중등 발달장애인 10명 정도와 미술 활동을 시작했던 2011년이에요. 당시에 장애인부모회 소속 자녀들과 미술 활동을 하게 됐는데 부모들의 기대가 상당히 높았어요. 우리 아이도 비장애 아이들처럼 뭔가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 거죠. 저도 발달장애인의 발달을 자극하고 뭔가 촉진하는데 미술 활동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장애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있었단 말이죠. 그래서 프로그램을 어떻게 짤까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운영)하면서 좌절이 오는 거예요. 왜냐하면 사소한 활동을 제안하는데도 참여자들이 못 하는 거예요. 가위질도 못 해, 심지어는 풀칠도 못 해. 아무리 설명해도 안 돼요. 그때 내가 뭘 할 수가 있지? 이걸 그만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한 1, 2년 고민하다가 참여자에게 뭘 안 시키기 시작했죠. 그냥 재료만 주고 팔짱 끼고 이렇게 쳐다보는 위치로 물러섰어요. 내가 참여자의 상태를 알아야 뭘 하더라도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것을 알고자 하는 데 더 집중하자. 그랬더니 참여자들이 나름 뭔가를 하는 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근데 한 명 한 명 다 다르고 독특한 거예요. 그전에는 참여자가 무언가를 못 하니까 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생각을 거두고 바라보니까 그 사람이 뭔가를 한다는 걸 발견하기 시작한 거예요. 자기 나름대로 뭔가 하고자 하는 의지나 충동이 있구나. 그리고 참여자들이 그 과정에서 즐거워한다는 걸 느꼈고, 그 즐거움을 내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재료를 제공하거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두었어요. 그러면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학생들이 하는 것을 내가 지원하고 촉진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이건 장애, 비장애의 문제가 아니고 참여자를 대하는 교사의 태도가 문제였어요.
말씀해 주신 내용이 예술가적 성찰과 고민의 흐름으로 들리는데, 한편으로 그것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반적인 교육학의 패러다임과는 충돌했을 것 같아요. 보통의 교육은 목표가 있고 그에 따라 활동을 설계한 후 참여자가 그것을 하도록 하잖아요.
보통 교육이라고 하면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부터 사고해요. 그러니까 교육 내용이 이미 딱 정해져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학생을 한 명 한 명의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학생’이라는 하나의 추상적 집단으로 상정하는 거죠. 그다음에 가르쳐야 할 교육 내용이 있고, 그다음에 이 교육 내용과 학생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이냐, 이렇게 사고하는 거죠. 저도 이런 사고를 바꿔야 했는데 지역 초등학교에서 자원봉사로 미술 교사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런 실험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소집단 아이들의 3학년부터 6학년 성장기를 따라가다 보니 무언가가 더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특히 교육학에서는 연령별 성장 발달 단계에 따른 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잖아요. 문화예술교육도 생애주기별 활동을 강조하기도 해요. 근데 저도 활동을 하면 할수록 그런 전제가 아예 안 맞는 건 아니지만, 개별자를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을 가르칠지 미리 다 계획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연령별로 교육 내용이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교사의 사고도 그렇게 구조화가 되는 거예요. 근데 교사가 아이들을 만나서 겪는 어려움은 그 사고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교사가 아이들을 모르는 가운데 그냥 ‘아이들은 이래’라고 교육학적으로 배운 대로 그 사람을 추상적 집단으로 설정해 놓고 교육하는데, 이게 배운 것과 안 맞는단 말이에요. 여기서 엄청난 충돌이 발생하는데 그 원인이 아이들한테 있다면서 ‘아이들이 왜 이래?’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무엇을 교육할지 그 내용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 그 사람에서 출발해야 해요. 그러면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과 어떻게 만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 거죠. 이 만남에 있어 미술이라는 과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 봐야 해요. 그래서 미술에 대한 전문성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만남에 관한 전문성이죠.
선생님께서 최근에 집필하신 책 『우리는 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을까』를 보면서 제일 공감이 됐던 게 방금 말씀하신 내용과 연결돼요. 무엇을 참여자에게 전달할지부터 생각한다는 것은 참여자가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전제로 들려요. 그 사람의 바깥에 의미 있는 무언가, 특히 ‘좋은 예술’이 있다는 것처럼요. 그래서 그 좋은 예술을 프로그램으로 더 좋게 개발하는 움직임도 많고요. 그런데 선생님의 책이나 활동을 들여다보면 개발된 무언가를 특별히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참여자 안에 무언가가 있다고 여기시는 것 같아요.
4년 전에 유치원에 자원봉사로 미술 활동 지원하러 갔을 때 아이들한테 재료만 주고 저는 한 명 한 명 바라보는 일에 집중했죠. 그랬더니 유치원 선생님이 “이렇게 수업해도 돼요?” 그러시더라고요.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하대요. 그래서 지금 많은 걸 하고 있다고 했죠. 왜냐하면 아이들이 하는 걸 지켜봐 주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교사가 아이들에게 재료를 제공하면 아이들은 무언가를 해요. 교사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내적 욕구로 인해서 하게 된다는 거죠. 활동은 거기서 시작돼요. 그리고 그 내적 욕구가 일어나는 요인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재료(물질)이고 또 하나는 그걸 봐주는 선생님의 시선이에요. 관계 속에서 선생님이 나를 봐주고 있기 때문에 하는 거죠.
저도 여러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각자 자기 욕구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죠. 근데 교사는 자꾸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을 먼저 제시하려는 욕망이 있어요. 교육자의 욕망 같아요. 그건 교사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유능해서 생기는 욕망이죠. 잘 안 되는 게 보이는 거죠. 근데 아이에게는 그것이 안 되는 이유가 있고 나름대로 뭔가 시도한 게 있어요. 교사는 자신이 가르쳐야 할 내용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들이 활동을 벌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여겨야 해요.
교사든 예술교육가든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런 성찰이나 통찰은 누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일종의 역량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요. 누군가는 참여자를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기도 해요. 방법보다는 태도나 관점이 중요한 건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하고 교실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면 아이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나도 성장해요. 어떤 사람은 성장이 느릴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좀 빠를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모든 것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해요. 교사가 현재 아이들을 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규정하려고 하죠. 그래서 ‘내가 실패하면 나는 교사로서 실패자다’ 이렇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결코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가르치는 능력에 있어서 성공적인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해야 해요. 그러니까 한 아이가 지금 내 교실에 들어와서 수업을 시작한 순간 그 아이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만큼 나의 성장도 기대해야 해요. 내가 성장하는 만큼 아이도 같이 성장하는 거니까 교실에서 나의 성장을 먼저 기대하면 좋을 것 같아요.
교사는 못해도 돼요. 교사가 무언가를 잘해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어떤 면에서 아이들은 알아서 해요. 어떤 나이가 되면 관찰하고 그리기도 해요. 교사는 그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이들이 뭘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관찰해 줘야죠. 그리고 오히려 교사가 잘 못해야 아이한테 질문할 수가 있어요. 자신이 방법을 알고 있을 때는 “이렇게 하면 돼”라고 하겠지만, 잘 못할 때 “이건 어떻게 하면 될까?” 고민의 현장에 교사가 같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럼 아이는 같이 고민해 주는 그 사람의 힘을 받아서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교사가 어떤 방법을 알려주는 순간 아이는 알려준 그대로 하게 돼요. 그러면 자기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어져요. 그래서 오히려 교사가 좀 못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제가 미술을 전공하긴 했지만, 미술학원도 다닌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짠’하고 멋지게 시범을 못 보여요. 근데 오히려 그게 나를 성장시켜 준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가 정해진 패턴대로 안 배웠고 그렇게 가르칠 능력이 없다 보니까 다른 방법이 없을까 더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그리는 걸 잘 못했기 때문에 미술 교사를 더 잘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죠.

블로그 김인규 교사의 미술수업

- 최선영
- 문화예술기획자. 2007년부터 창작, 기획, 교육, 연구 등을 해오고 있으며 현장의 어려움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최근 장애인 예술교육 강의 노트 『같이 좀 모르자』를 집필했다.
블로그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 인터뷰 영상‧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김인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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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하시면서도 교육가로 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시키려고 하는 순간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 , 난 미술을 못해 라고 말 한다는것,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무엇을 가르칠까? 먼저 사람을 보라!
김인규 작가·예술교육가
잘보고 갑니다
무엇을 가르칠까? 먼저 사람을 보라!
김인규 작가·예술교육가
기대만점이네요
교육자로서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교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을 향하는 문화예술에 대한 교육가치관에 대해 잘 들어보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예술은 미적 경험을 풍성히 하고 더욱 더 몰입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열망과 욕망을 채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주체와 함께 그 향유의 목적도 결국 사람이다라는 점을 잘 강조해주신것 같네요.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다른 이의 처지를 헤아리며 그 감정에 공감함으로써 좀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예술이 될수 있도록 우리 교육가들이 많은 노력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개인의 생각은 다양하기 때문에 똑같은것을 해내기를 바라는 것보다 개인의 역량을 이끌어내는 교육이 좋은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