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2학기>가 개봉했다. 상반기에 ‘전국 수학여행’으로 직접 공동체 상영을 기획하고 또 여러 영화제나 기획전에서도 상영되었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영화가 구체적으로는 직업계고 3학년 학생의 현장 실습기를 다루고 있어서 직업계고의 노동 환경에 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분들이 있다. 반면 누구나 경험하게 될, 혹은 경험한 첫 노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 특이하게 느껴지는 건 영화 상영 후 Q&A 시간에는 대부분 어떤 의미로 그런 설정을 했냐는 질문들이 많기 마련인데, <3학년 2학기>에서는 관객들이 자기 경험을 들려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곤 한다. “저도 직업계고 나와서 현재 일하고 있는데요.” “우리 애가 이제 직업계고 들어갔는데요.” “저도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 중인데요.” 같은 식이다. <3학년 2학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뭔가 말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인 것 같다.
전작인 <휴가>에서도 그렇고 <3학년 2학기>에서도 주인공들이 뭔가 열심히 하는 장면이 많다. <휴가>의 재복은 대사보다 일하는 장면이 더 많다. <3학년 2학기>에서도 창우가 일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창우가 일을 하고 있다, 일을 배우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 쓱 지나갈 수 있는데, 그 컷들을 그렇게 찍는 게 아니라 공들여서 찍고 싶었다. 고속 절단기로 쇠 파이프를 자르는 장면이면 쇠 파이프를 기계에 놓고, 기계를 작동시키고, 불꽃이 튀는 걸 지켜보고 꺼내서 사이즈를 재고 사이즈가 안 맞는 것을 확인하고 왜 안 맞는지 모르겠기에 머리를 긁적이고 사수가 왔을 때 실수한 걸 속이려고 하고, 그 과정들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그 장면은 창우가 실습 현장에서 힘들게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도구랑 어떤 투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담고 싶었다. 어떤 작업장에서 한 명의 노동자가 n분의 1의 노동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 그 현장이 쇠를 자르는 제조공장이건 콜센터이건 누구나 겪는 과정, 어떤 일을 할 때 시행착오를 겪는, 모든 인간이 겪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 현장 실습생들이 이렇게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장면이 아니다. 한 명의 노동자가 탄생하고 있는 장면이다.
일하는 장면을 공들여 찍고 싶었다고 했는데, <휴가>에서 재복이 일하던 가구 공장에서 일을 마무리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는 ‘과연 재복이 농성장으로 돌아갈까?’라는 질문을 끌고 간다. 결국 재복이 결정하고 마지막 일을 마치고 떠나는 장면인데, 자신이 일할 때 쓰던 도구들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하는 노동자의 어떤 순간을 포착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노동의 소중함이라는 말은 쉽게 하지만, 노동자는 투쟁하고 있거나 비참한 사고의 피해자일 때만 등장한다. 반면 이 장면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순간을 우리 앞에 당겨놓는다.
그 장면은 현장에서 만들었다. 시나리오에는 자기가 그동안 만들었던 물건들을 바라보고 불을 끄고 문을 닫는 것이다. 그냥 시선을 주는. 내가 뭔가 저렇게 만들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나가는 거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저렇게 뭔가 결과물이 쌓이는 것은 관리자나 사장님 입장에서 좋은 거지 노동자 입장에서 무슨 의미이지 싶었다. 노동의 결과물이 아닌 다른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당일 오전 촬영을 마치고 오후에 그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여전히 해결이 안 되는 거다. 다들 점심 먹으러 가라고 하고 혼자 고민해 보려고 하는데 스태프 몇몇이 현장에 남았다.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일이 다 끝났잖아. 그러면 정리하고 가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동선과 행동을 정리했다. 다시 모여서 해보니 괜찮았다. 그리고 촬영을 들어갔는데 너무 기가 막힌 순간을 경험했다. 끌을 가는 장면에서 그 소리가 무척 중요하니까 모두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감동적이었다. 각자 다 다른 느낌으로. 나도 사실 눈물이 핑 돌았다. 재복은 끌을 갈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거다. 농성장으로 돌아갈 거라고 결심은 했지만, 아직 딸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야기할까, 큰딸의 예치금은 어떻게 전해줄까, 오늘 반찬을 뭘 해서 농성장에는 뭘 가져가고 애들 먹을 거는 뭐를 놓고 갈까. 정말 많은 생각을 했을 거다. 머릿속으로 자기가 할 일들을 계획하는 건데 그 사람이 그런 처지에서 이성을 딱 붙잡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되게 감동적이었다.
재복이 작업실을 정리하는 동안 내내 대사 한마디 없다.
그렇다. 감독이 대사를 준다거나 상황을 설명하는 미장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집중하고 있는 것만 보여준다. 끌을 갈면서 재복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객이 그 대사를 채울 수밖에 없다. 관객을 바보로 만들지 않는 장면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장인, 노동자, 노가다 같은 말을 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몇 대째 내려오는 육수 끓이는 불이 꺼지지 않는 우동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장인이라고 엄청 존경심을 보인다. 한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인생 막장이라고 생각한다. 연민만이 아니라 혐오의 시선이 동시에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아무리 단순한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익숙하게 하려고 노력할 거다. 20대 때 호프집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처음에는 맥주 거품 조절을 못 해서 욕도 많이 먹고 이거 하나 못하나 해서 창피했다. 그러다가 익숙해지면 일하는 쾌감이 있다. 여러 힘든 일이 있지만 이런 쾌감이 나를 살게 한다. 노동이라는 것이 단지 시급 얼마로 내 목숨, 생존을 연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런 순간들이 있기에 견디고, 해내는 거다. 정말 작업 조건이 좋은 일을 한다면 하루에 3분의 1을 노동하는 데 쓴다. 나머지 3분의 1은 수면, 3분의 1은 놀거나 씻거나 먹거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인생의 3분의 1을 존중받지 못하고 사는 거다. 이건 너무 참담한 거다.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 싸움을 할 때 사람들은 공부 못해서 공장 다녔으면서 저렇게 비생산적인 인간들이 해고당했다고 떼를 쓰고 있구나, 그까짓 일이 뭐라고 다른 데서 구하면 되지 널린 게 그런 싸구려 일인데 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그 장면은 재복이 자기 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선택이 그때도 좋았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장면을 찍던 순간이 떠오른다.
나 역시 그 장면에서 훅 끼쳐오던 감동이 다시 떠오른다. 그런 섬세한 순간이 영화의 장소성과도 연관되는 것 같다. 드라마가 전개되는 공간에서 드러나는 장소성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휴가>에서 재복이 집에 돌아와 열심히 집안일 하는데, 집이 좁다 보니 카메라와 재복 사이에 거리가 안 나와서 거의 화면의 3분의 2가 재복의 등이 차지하고 있는 장면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공단 주변의 작은 집들, 그 장소성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재복의 동선 구석구석에서 감독이 이 장소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것이 다가온다.
시나리오를 쓸 때 ‘바닷가 어느 섬마을’ 이런 식으로는 시작을 못 한다. 장봉도인지, 강화도 동막 해수욕장인지 그런 구체적인 것들이 잡혀야 이야기가 풀린다. 내가 지금 인천에 살고 있고 인천에 공단이 있는데 굳이 창원이나 마산까지 취재하러 갈 이유가 없다. <3학년 2학기>는 거의 인천에서 인터뷰했다. 직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선생님들, 인천교육청, 인천에서 실습생들을 받는 업체 관리자, 사장님 등등. 경기, 서울 지역 특성화고노동조합에 있는 분들도 인터뷰했는데, 인천 이야기를 들을 때와는 다르다. 그 동네에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어도 구체적인 장면이 안 떠오른다. 그런데 인천에 사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학교 끝나고 구월동 어느 구석에서 뭘 먹고 뭘 하고 노는지 동선이 그려진다.
인천은 이란희 감독이 사는 곳이라고 했는데, 인천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는 것만이 아니라 인천에서 많은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안다. 특히 문화예술교육 활동도 꾸준히 해온 것으로 아는데, ‘소금꽃프로젝트’에 대해서 소개해달라.
한창 <휴가>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을 때다. 우리 동네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에서 노동자도서관 ‘사람’을 만들었는데 지역 노동자들의 삶을 인터뷰해서 아카이빙하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 영상 찍어서 도서관에 넣기만 하면 재미없으니까, 상영회를 하자고 다시 제안했다.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에서 노동자들을 추천해 줬다. 집배원, 마트캐셔, 타워크레인 기사 등 네 분을 찍었다. 우리가 일하는 현장 가서 일하는 모습을 찍기도 하고, 대부분 회사에서 일터를 개방하지 않으니까, 본인이 셀카로 찍어오기도 했다. 상영회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자기가 일하는 모습이 자신도 처음 보는데, 제법 멋있는 거다. 집배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아파트 단지에 들어와서 우체통에 우편물을 착착 꽂는 장면을 보면 신체가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는 게 되게 아름답다. 내가 하는 노동이 멋있고, 그 일을 통해 식구들이 먹고살고, 내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 책임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내가 일할 때 겪는 문제들, 되게 답답하고 억울해도 그걸 말할 데가 없었는데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내가 그 얘기를 할 수 있고, 상영회 때 관객들이 매우 공감해 주는 걸 본 거다. 더 하고 싶었지만, 천주교 노동사목에 예산이 없어서 인천문화재단 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이어가고, 또 인천영상위원회 사업으로 이어가면서 새로운 감독들도 참여해서 몇 해 이어갔다.
인천에서 실버연극반 활동도 오래 했던 것으로 안다. 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의 발표회를 본 적이 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로 만든 단막이 이어지는데, 짧은 장면인데도 터닝포인트를 두고 관계나 상황이 새롭게 정렬되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지, 연극 교육이 자기표현의 해방감만이 아니라 갈등을 통해 나와 세상을 다른 국면에서 이해하는 거지, 그래서 연극이 드라마가 예술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힘이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버연극반 활동도 이야기해달라.
학산문화원 기획프로그램으로 실버연극반 활동을 시작했다.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일단 가족이 아닌 완전히 타인인 나이 많은 분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그게 가장 어려웠다. 창작이고 교육이고 다 떠나서 우선 호칭은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난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들 개별적인 인격체인데, 처음에는 그 생각을 못 했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어떤 프레임으로 만난다. 어르신, 청소년 이런 식으로. 어떤 만남은 그런 프레임이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그런데 교육은 함께 계속 부딪혀가는 것이라 한 사람으로 만나야 한다. 다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전에도 학교 예술교육을 했는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다. 45~50분 동안 아이들의 개별적인 역사를 알아갈 시간이 없고, 학교라는 공간의 특성상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기는 힘드니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로 했다. 그러다 보니 집단적인 특성만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다른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서로 다른 개인을 드러낸다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어려움도 있을 것 같다.
여러 일이 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로 장면을 만드는데 사회적 맥락을 넣으려고 하면 어르신들 가치관이랑 충돌했다. 처음에는 싸우려고 했다. 말로는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러면 수업이 안 된다. 선생이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면 당연히 오기 싫지 않겠나. 그래서 드라마를 재밌게 만들려고 했다. 한 어르신이 오래된 친구를 만났는데 서로 사는 게 좀 달랐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그 이야기로 장면을 만들면서 둘 사이에 계급적 차이를 캐릭터로 만들어서 사회적 격차를 보여주는 거다. 사람이 착하고 못되고 뿐만 아니라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친구 사이가 불평등할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아무래도 사는 게 다르면 그렇지” 하고 수긍한다. 또 장면을 연습하다 보면 자신의 이야기가 빠지거나 배역이 맘에 안 드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면 아무래도 참여할 열정이 줄어드는데, 그럴 때는 연기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디테일한 연기 지도를 한다. 분위기가 좀 다운되었다 싶으면 복지관 실습생들을 관객으로 앉혀두고 시연회를 하는데, 반응이 뜨겁다. 어르신들 위해서 가장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다. 맨날 학교에서 노인복지 수업만 듣다가 와서 실제로 자기 대상들이 뭔가 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기립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실습생들은 내가 하는 일들이 저분들에게 저런 즐거움을 드리는 일이구나 자부심을 느끼고,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니까 뿌듯해한다.
드라마를 정말 잘 만든다. 자기 작품이건, 교육활동이건. 소금꽃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 작업인데, 다큐멘터리보다 드라마가 더 잘 맞는 것 같다.
극단 한강에서 연극으로 시작했다. 배우 출신이라 다큐멘터리는 머릿속에 없었다. 연극배우이자 연극 기획자였고, 연출에 관심이 있어서 연출 수업도 들었다. 연극을 할 때는 영화를 할 생각도 아예 없었다. 우연히 <웰컴투 동막골>에 캐스팅되어서 영화 현장을 처음 경험했는데, 그전까지 영화마니아도 아니었다. 연극을 할 때는 내가 연기를 진짜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하니까 연기할 때 좀 편했다. 그러면서 독립영화도 찍게 되고, 영화 연출도 배우고, 그러다가 다큐멘터리도 찍게 되었다. 다큐멘터리가 어떤 자유로움이 있을 수 있고, 사회적 발언을 하는 데 있어서 엄청나게 중요한 역사적인 계기들을 만들어 나갔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다큐멘터리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대상에 송곳 같은 질문도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허구가 더 안전하다.
허구가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보통 허구의 진실이라고 말하지 않나.
만약에 어떤 극한의 폭력을 겪고 지금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나는 이 사람 얘기를 꼭 누군가에게 전해 주고 싶다. 이걸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이 사람이 드러나야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너무 어렵다. 나는 이런 문제가 왔을 때 드라마의 상상력이 작동한다. 물론 이 문제를 잘 풀어내는 다큐멘터리 감독님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어렵다.
연극과 영화, 창작과 교육을 넘나들면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런 구분은 바깥의 시선일 뿐 본인에게는 다 연결된 작업일 것 같다. 그 가운데에 드라마가 있는 것 같다.
두 장르에서 가르치고 창작하고 있는데, 연극을 했던 경험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다.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영화에서는 초짜지만 공동창작 집단에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를 쓰거나 기획자로서 콘셉트를 잡는 훈련이 어느 정도 된 상태에서 영화를 시작했다. 연극의 극작술을 많이 보고 쌓아온 것도 영화에 담기는 것 같다. 연극은 무대 밖에서 이미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고, 무대에서는 그 엄청난 사건을 감당하면서 사는 모습을 그린다. 이런 드라마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 때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사건들을 생략하는 데 익숙하다. 극영화의 루틴에서 자유로운 창작자인 것 같다. 그리고 연극을 할 때 내가 연기 못하는 배우였기 때문에 배우들이 연기를 잘 못 할 때 그 심정을 잘 안다. 연기와 관련해서 나는 선수보다는 코치인 것 같다. 지금까지 비교적 막 시작하는 배우들, 혹은 연기가 본업이 아닌 이들과 작업을 많이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한다. 극단 한강에서 학생들, 노동자들과 연기 워크숍을 많이 했다. 그런 경험들을 쌓여 있고, 쌓아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화예술교육 활동이나 영화작업에서 날카로운 사회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어떻게 벼리는지 궁금하다.
나의 사회적 상상력의 시작은 관심과 관찰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찰하다가 관심이 가는 사랑하게 되는 존재가 나타나면 그것과 관련된 것들을 거의 스토커처럼 취재하고 관찰해서 뭔가를 만든다. 취재하면서 그 사람이 어떤 사회적 맥락 속에 있는지에 대한 상상력이 계속 뻗어간다. 만약 내가 러브스토리를 만든다고 해도 사랑에 관해서만 쓰지는 않을 것 같다. 가령 누가 청년 전세자금 대출을 받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돈을 못 구해서 어떻게 하냐, 너무 걱정된다’ 보다는 ‘지금 청년들이 주거 문제에 있어서 저런 문제를 겪고 있구나’ 생각한다. 직장 상사랑 부딪치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 청년들이 20살, 40살 많은 사람과 부딪히는 게 아니라 10살 차이도 안 나는 바로 위 사수들과 부딪히고 있구나, 같은 세대라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세분된 갈등이 있군, 그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하는 거다. 그러니까 어떤 사회적 맥락으로 상황을 보는 거다. 한 가지 맥락으로만 가면 너무 앙상해지고 그 사람의 일, 가족 구성원에서의 위치, 세대 등등 그가 관계하고 있는 여러 사회적 맥락을 중첩해서 그 사람을 보려고 한다. 한 사람을 깊게 본다고 사회적 맥락이 딸려 오는 것은 아니다. 여러 맥락을 중첩해서 보아왔고, 그렇게 보려고 노력한다.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한다. 질문이 아니고 부탁이다. 실버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짧은 희곡이 엄청 쌓여있는 것으로 안다. 좋은 희곡 쌓아놓지만 말고 꼭 출판했으면 좋겠다. 부탁드린다.


- 김소연
- 연극평론가.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공연보고 글을 쓴다. 글 쓰는 것 외에 관객과 창작자가 만나는 다양한 방식을 궁리하고 실행한다. <삼인삼색 연출노트> <극작가리서치워크숍> 등을 기획했다.
인스타그램 @sweetdream514 - 인터뷰 사진_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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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단순히 힘든 일이나 사회 문제로만 그리지 않고 한 사람이 성장해 가는 과정으로 담아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창우가 서툴지만 점차 자신의 흥미를 발견해 가는 모습이 진솔하게 다가왔고 특히 작은 순간에 몰두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노동이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허구의 안전함, 허구의 상상력, 허구의 진실됨
이란희 영화감독·예술교육가
공감이 가네요
허구의 안전함, 허구의 상상력, 허구의 진실됨
이란희 영화감독·예술교육가
기대만점이네요
영화와 교육, 노동을 잇는 감독의 시선이 따뜻하고 진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허구의 안전함, 허구의 상상력, 허구의 진실 됨’
잘 보고 갑니다.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