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통하는 모양이야

모두의 예술교육① 보완대체의사소통 AAC

까치발을 들고 활짝 웃음을 띠며 손 흔드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누구나 그의 반가움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맞추는 사람을 보면 그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느낀다. 조심스레 누군가의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에서는 따뜻한 위로가 전해진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것까지도.
  • 전시 《말하지 않아도 : Without Words》
    우리가 통하는 모양이야: 함께 만드는 AAC 그림상징
보완대체의사소통이란
보완대체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이하 AAC)은 말(구어)과 글(문어)로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겪는 제한과 한계를 연구하고, 이를 보완하거나 대체하기 위한 모든 시도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요컨대 말과 글을 대신하거나 보완해 주는 다양한 형태의 의사소통 방식이 모두 AAC에 속한다. 때문에 AAC에는 다양한 방식이 포함된다. 그림 상징이나 음성 발생 장치, 스마트 기기의 애플리케이션처럼 외부 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손짓이나 표정, 발성, 수화처럼 신체를 이용한 비도구적 소통 방식 또한 모두 AAC에 해당한다. 나의 의사를 전하기 위해 손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이고 어깨를 토닥이는 행위까지도 AAC라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미 자연스럽게 AAC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AAC는 누구나 사용하고 있고 누구든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개인의 구어 사용 능력에 따라 AAC에 의존하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AAC를 언어 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특수한 도구로 여기거나 말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이용하는 보조수단으로만 인식한다. 의사소통에 대한 구어 중심적 사고가 말 이외의 다양한 소통의 가능성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다큐멘터리 <말하지 않아도>(2025)
말하지 않아도
나는 서로 다른 신체적, 인지적 조건을 지닌 세 주인공이 AAC로 새로운 표현 방법을 습득하고 소통의 경험을 쌓는 여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말하지 않아도>(2025)를 연출했다. 대상자별로 주 1~2회 진행되는 언어치료를 관찰하며 처음 얼마간은 일종의 ‘성과’를 내심 기대했다. 말을 알아듣고 말을 따라 하고 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나타날 거로 예측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말보다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에 더욱 눈길이 갔다.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 없이 대답하는 표정과 입김을 호 불며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눈빛과 마음을 담아 꾹 눌러보는 엄지손가락까지, 그제야 말 없는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한 순간들,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대화의 감각이 실은 지나치게 빠르고 무신경했던 것은 아닌지, 말이라는 일방적이고 제한적인 매개 속에만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했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의미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마음을 기울이고 들여다보아야 한다. 느리게 전달되는 의미를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는 머무르고 기다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화의 감각은 더욱 정밀해지고 태도는 유연해진다. 구어 중심적 사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섬세하고 더 넓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 전시 《말하지 않아도 : Without Words》
예술과 AAC, 더 넓은 연결을 위한 실험
AAC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일은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가 깨달은 것은 소통은 본래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이토록 당연한 소통의 본질을 나는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새롭게 마주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말하지 않아도>의 연계전시를 기획하며 이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말은 본질적으로 합의이자 약속이다.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인 감각과 감정은 말의 틀 안에서 종종 누락되거나 왜곡된다. 보편성 속에 함몰되기 쉬운 개인의 특수성을 발굴하고 드러내는 일이 예술의 역할이라면 구어 중심의 소통 체계에서 쉽게 배제하는 수많은 표현의 가능성을 발견해 내는 일 역시 예술로 확장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AAC가 예술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시와 연계해 예술교육 워크숍을 열어 AAC와 예술을 연결해 보기로 했다. ‘예술가의 가방’ 송지원 대표와 함께 기획한 전시 연계 워크숍 ‘우리가 통하는 모양이야’에서 주목한 것은 개별적인 감각이었다.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사용할 수 있는 말의 폭이 제한적이다. 따라서 아무리 풍부한 감정을 느껴도 ‘재미있어요’ ‘좋아요’ ‘싫어요’ 등의 말에 함몰되거나 눌리기 쉽다. 이와 같은 일상적인 언어 표현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워크숍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이 되기로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계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감각을 활용했다. 감정을 표정과 움직임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색과 모양으로 바꾸어 보기도 하고 촉감과 연결해 표현해보기도 했다. 다른 외계인의 표현에도 반응하도록 활동을 확장했다. 움직임에는 움직임으로, 이미지에는 이미지로 응답하며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소통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 워크숍 ‘다르게 다다르게’
  • 워크숍 ‘우리가 통하는 모양이야’
성인 대상의 워크숍 ‘다르게 다다르게’에서는 AAC로 편지 쓰기를 시도했다. 수신자를 명확히 하고 메시지를 구체화한 후, 직접 그림 상징들을 그리고 이으며 저마다의 편지를 완성했다. 말 없는 편지에는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약속, 추억, 공유된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다른 사람의 편지를 보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유추해 답장을 써보는 활동도 이어 나갔다. 편지를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상징을 만들고, 쓴 사람을 상상하며 편지에 담긴 마음에 이입했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소통이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님을 경험했다. 말로는 쉽게 건넸을 표현 하나하나까지도 깊이 고민하고 세심하게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통하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
AAC는 단지 말의 부재를 메우는 보조수단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있는 또 하나의 소통 방식이다. 예술이 타인이라는 낯선 세계에 닿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찾고 실험하는 과정이라면, AAC는 더 다양한 몸과 마음에 연결될 수 있는 통로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닿고자 하는 마음이다. 머무르고 기다리고 바라보고 노력하며, 조금 더 다정하고 애틋하게, 우리는 연결될 수 있다.
신이명
신이명
작은 서사에 주목하는 창작자. 읽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일을 한다. 2023년 개인전 《모든 슬픈 것들은 길 위에 있다》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글과 영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책과 이야기가 머무는 작은 도서관 ‘효창서담’을 운영 중이다.
corrocorrorider@gmail.com
사진제공_신이명 미술작가, nc문화재단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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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욱 2025년 06월 23일 at 7:06 PM

    현장에서 도움이 되는 기사인 것 같아요. 따뜻한 기술이란 이런거네요. 잘 읽었습니다. .:)

  • author avatar
    이주한 2025년 06월 24일 at 5:01 PM

    ‘말하는 방식이 아닌 닿고자하는 마음‘ 표현이 너무너무 좋네요. 일상에서 크고 작은 표현들을 더 주의 깊게 보고 관찰해봐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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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례 2025년 06월 26일 at 9:14 AM

    구어로만 소통수단을 한정했을때 소통의 폭과 깊이가 현저히 축소된다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되네요. 다양한 매체와 방법으로 소통해나간다면 개인도 세계도 더욱 확장될 것 같습니다.

  • author avatar
    김양남 2025년 06월 30일 at 2:10 PM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통하는 모양이야
    모두의 예술교육① 보완대체의사소통 AAC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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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6월 30일 at 3:19 PM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통하는 모양이야
    모두의 예술교육① 보완대체의사소통 AAC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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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욱 2025년 06월 23일 at 7:06 PM

    현장에서 도움이 되는 기사인 것 같아요. 따뜻한 기술이란 이런거네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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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한 2025년 06월 24일 at 5:01 PM

    ‘말하는 방식이 아닌 닿고자하는 마음‘ 표현이 너무너무 좋네요. 일상에서 크고 작은 표현들을 더 주의 깊게 보고 관찰해봐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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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례 2025년 06월 26일 at 9:14 AM

    구어로만 소통수단을 한정했을때 소통의 폭과 깊이가 현저히 축소된다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되네요. 다양한 매체와 방법으로 소통해나간다면 개인도 세계도 더욱 확장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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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6월 30일 at 2:10 PM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통하는 모양이야
    모두의 예술교육① 보완대체의사소통 AAC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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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6월 30일 at 3:19 PM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통하는 모양이야
    모두의 예술교육① 보완대체의사소통 AAC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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