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로 향하는 가장 짧은 길, 시
“Le poème est le plus court chemin d’un à un autre” – 폴 엘뤼아르(Paul Eluard)
현대는 어쩌면 시를 잃어버린 사회이자 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회다. 시는 일상에서 멀어졌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시를 읽는다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고 또 덮어두었다 순서 없이 때론 반복해서 몇 번이고 읽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시다.
프랑스에서는 15년 전부터 매년 3월이면 “시인들의 봄”이라는 축제를 열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시를 접하고 프랑스의 문화활동 영역에 시의 자리를 돌려주는 기회를 마련해 왔다.
“시인들의 봄”은 올해로 15회째를 맞는 프랑스 시축제의 공식 명칭이자 축제를 주관하는 센터의 공식명칭이기도 하다. 1998년 당시 문화부 장관 자크 랑(Jack Lang)은 단 하루의 이벤트로 ‘시 축제’를 개최한다. 그리고 2001년 축제를 주관하는 상설 기관인 쁘렝땅 데 뽀에뜨 (Printemps des Poètes, 이하 “시인들의 봄”)를 설립, 3월에 열리는 보름 간의 축제이자 연중 시 관련 행사의 매개자로서 시가 일상 속에서 적극 장려되고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를 규칙적으로 읽고 있는 사람은 인구의 단 1%에 불과하다. 다른 장르에 비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시인들의 봄”은 이러한 시 출판업을 장려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현대 시들의 가치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특별한 노력으로 탄생되었다. “시인들의 봄” 경영팀장 마리즈 피에송(Maryse Pierson)는 상업적 유흥 산업들이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어떤 기계 장치 혹은 연출 없이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시의 매력을 공유하는 것이 바로 “시인들의 봄” 축제라고 말한다.
인류 최초의 순간부터 언어는 시를 싹 틔웠다. 그것이 속삼임이든 외침이든 또는 노래이든 시는 언제나 본연의 구전성을 담고 있다. 그것은 세상의 소리에 화답하는 시 내면의 소리이다. -“시인들의 봄”의 예술감독, 장-피에르 시메옹(Jean-Pierre Siméon)
올해 축제는 ‘시의 목소리Les Voix du poème’ 라는 주제로 3월 9일부터 24일간 열렸다. 프랑스 전역은 물론 루마니아, 터키, 독일 등 다른 유럽국들과 중국, 미국 및 아랍에 이르기까지 약 60여개의 국가가 참여했다. 루마니아, 캐나다, 룩셈부르크 같은 몇몇 국가는 “시인들의 봄”과 자체적인 협력기관이 있어 강연회, 공연, 전시 및 공공장소와 교육기관에서의 문화활동을 기획하였다. 그리고 미국, 홍콩, 중국, 아랍에미레이트, 요르단, 한국, 벨기에, 캐나다, 스위스 등의 국가에서는 외국주재 프랑스 문화원들의 협력으로 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 등에서 여러 행사들에 동참하였다.
시의 광장
약 2600여 명의 기획자들은 공연, 전시, 영화제, 콩쿨, 강연회, 낭독회 등을 기획하였다. 그 중 올해 “시의 목소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행사는 바로 우체국에서 시가 적힌 엽서를 제작하여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누구나 시를 읽고 또 읽어줄 수 있도록 하는 행사이다. 프랑스 전역의 약 100여 개의 도시와 마을에서 ‘시의 광장’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공공장소에서 배우, 학생, 자원봉사자, 연극인들이 간단하고 직접적인 다양한 방법으로 거리, 까페, 광장, 시장, 문화센터 등에서 시를 읽어주며 거대한 시의 물결을 일으킨다. 가까이서 직접 읽어주거나, 좀 더 넓은 장소에서 마이크를 잡고 읽거나, 방송 매체를 통해 들려주거나, 배경음악에 맞춰, 혹은 곡을 붙여 시를 읽고, 어둠의 한가운데서 읽어주는 것은 물론 학교, 도서관, 대중교통, 상점이나 대기실 등 일상의 공간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시민들은 우연히 시와 만나는 것이다.
시의 바벨탑
그리고 또 한 가지, “시의 바벨탑 (Babel Poétique)”행사는 학교 등의 교육 기관 또는 공연장에서 외국 시인이 자신의 모국어로 시를 낭독하고, 전문 통역가가 프랑스어로 통역을 해주는 것이다. 축제의 경영팀장 마리즈 피에송은 “이민자가 많은 다문화 사회 프랑스에서 자신의 모국어로 된 시를 경험하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이 될 것이다. 그것은 모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동시에 서로 다른 다양성을 존중하여 사회 통합의 길을 모색하는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시가 자라는 학교, 시가 된 마을
“시인들의 봄” 센터는 축제의 주관 뿐 아니라 연중 열거 교육 기관 및 도서관 등과 협력하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들과 교육자를 연결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 특히 학교협력중앙사무소(OCCE)와 협력하여 시를 장려하는 학교와 마을에 각각 “시의 학교(Ecole en poésie)”와 “시의 마을 (Ville et village en poésie)”이라는 인증서를 발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시의 학교”인증서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일상적으로 시를 흡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주력한 약 40여개의 교육기관에 부여하는데, 이 교육 기관들은 학교와 학급에서 시를 읽고 쓰는 것은 물론 시인과 학생들의 직접 만남의 장을 마련하여 시를 읽어주고 또 이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할 수 있도록 하거나 시를 활용하여 학급을 꾸미는 활동 등을 연중 기획하고 장려한다.
자치단체의 적극적 지원으로 시와 관련해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한 39개의 시, 읍, 면에서는 “시의 마을” 인증서를 취득했다. 그 활동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거리의 벤치에서 한줄 시를 만나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시가 되어 골목에 울려 퍼지는 그런 소소하고 일상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자치단체들에서 얻게 된 인증서이다.
“시 하나 읽어드릴까요?” 양귀자의 소설을 보면 순수하다 못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시인이 이웃들을 붙들고 할머니 주머니에서 나오는 소중한 천원짜리 지폐처럼 꼬깃꼬깃 종이에 적힌 시를 들이민다. 우리 마을에도, 내 가까이에도 이런 시인이 한명쯤 있어 동네 슈퍼 앞 작은 평상, 지하철, 버스정류장, 그리고 까페와 골목 공터에서 시를 읽어준다면 나의 하루는 언제나 봄날이지 않을까.
숫자로 보는 “시인들의 봄”
ㅡ 최엄윤 해외리포터 (프랑스)
– 850여명의 시인, 560여개의 시 관련 출판사가 4,400여권의 시집
– 250개의 서점에서 시집을 전면 진열
– 1600 릴레이 교사가 연중 학급 내에서 활동을 기획
– 2600 프로젝트 기획자가 프랑스 전역에서 이벤트를 제공
– 15년 간 50000명의 교사, 사서, 서적상, 출판업자, 시인, 예술가들이 토론, 실습, 강연, 대담 등에 참여
– 10년간 약 3500명의 자원봉사 낭독자가 40000명의 아이들을 위해 45개 지방에서 시를 낭독함
– 제 15회 시인들의 봄이 인증서를 발급한 공연, 전시, 이벤트 110개
관련 정보
–시인들의 봄 공식 홈페이지 (사진 출처) http://www.printempsdespoet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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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으로 향하는 가장 짧은길, 시’란 인용말도, 우체국에서 시가 적힌 엽서를 나눠주는 것도, 시의 바벨탑도 다 너무 좋네요! 아침 출근 시간에 너무 즐겁게 기사 읽었습니다. ^^
‘타인으로 향하는 가장 짧은길, 시’를 충실하게 반영한 축제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날씨가 참 좋네요’ 대신 사람들이 시 한구절 한구절을 읊어주며 낯선서로에게 말을 걸었을 때 서로 어떤 교감이 오갔을까 궁금하기도 하구요. 즐거운 기사가 되었다니 아르떼365도 힘을 얻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