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관점을 이해하며 재구성해가는 미래

유네스코 문화예술교육 국제규범의 흐름과 함의

올해 초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성과 향후 전략에 있어 새로운 계기이자 근거가 될 수 있는 국제규범 발표가 있었다. ‘유네스코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UNESCO Framework for Culture and Arts Education, 이하 프레임워크)가 그것이다. 이 ‘프레임워크’는 유네스코가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한 국제규범으로 발표한 2006년 ‘예술교육 로드맵’(Road Map for Arts Education, 이하 로드맵)과 2010년 ‘서울 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Seoul Agenda: Goals for the Development of Arts Education, 이하 서울 어젠다) 이후 세 번째다. 이전 발표들이 그랬듯 ‘프레임워크’는 향후 각국 문화예술교육 정책 및 현장 실천에 준거의 하나로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약 18년에 걸쳐 유네스코의 문화예술교육 국제규범이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 그 흐름을 개괄하고 구체적인 개념과 내용을 정리하며 문화예술교육 정책과 현장에 던지는 방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2006년 로드맵부터 2024년 프레임워크까지 : 국제규범의 목적과 취지
유네스코가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제화한 것은 2000년대 초부터라고 볼 수 있다. 1999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학교에서의 예술교육과 창의성의 고양을 위한 국제적 호소’가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2006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처음으로 ‘세계예술교육대회’를 개최하면서 예술교육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모아 예술교육의 방향성과 실행전략으로서 ‘로드맵’을 채택하여 발표하였다. 국제기구를 통해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한 전 지구적 과제이자 실천임을 공표하는 시작인 셈이다. ‘로드맵’은 ‘학교에서의 예술교육과 창의성의 고양을 위한 국제적 호소’와 연계된 국제규범으로 자연스럽게 학교 예술교육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부제인 ‘21세기를 위한 창의적 역량 구축’에서 알 수 있듯, 예술교육이 창의성 등 역량을 구축하고 일반 교육(주로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어린이·청소년 대상 교육)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에 예술교육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4년 뒤 2010년 서울에서 개최한 제2차 세계예술교육대회에서 발표하고 2011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한 두 번째 국제규범인 ‘서울 어젠다’는 ‘로드맵’과의 연계성을 지니되, 학교 예술교육에 중점을 두고 교육 영역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제한적 관점을 벗어나 대상, 범주, 목표, 교육 주체 등을 보다 다각화하고 확장했다. ‘로드맵’과 마찬가지로 교육 시스템 및 구조의 변화를 염두에 두되 참여자(학습자)의 범위를 어린이·청소년 외 다양한 참여자로 확대 설정하고, 학교 외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 개념을 들여오면서 다양한 참여자의 여건을 반영하며, 다양한 사회 공간에서 예술 분야를 접할 수 있도록 물리적·내용적 접근성을 높이는 관점을 반영했다. 또한 문화다양성과 문화간 대화 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사회문화적 현안의 이해와 해결에 예술교육이 기여할 수 있음을 명시하여, 교육뿐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가치로 그 의미와 역할을 포괄할 것을 강조하였다.
‘서울 어젠다’ 발표 이후 약 12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국제 전문가 회의 및 설문조사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올해 2월 제3차 유네스코문화예술교육대회(World Conference on Culture and Arts Education)에서 ‘프레임워크’가 채택되었다. ‘프레임워크’는 제목부터 ‘예술교육’이 아닌 ‘문화예술교육’(Culture and Arts Education)으로 ‘문화’를 포함하여 이전 발표와 차별성을 보였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정의를 통해 협의의 예술교육 성격을 지녔던 이전 발표에 비해 그 범위를 확장하였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프레임워크’는 문화예술교육의 목표 및 가치 측면에서도 문화가 글로벌 공공재(global public good)임을 최초로 선언한 2022년 ‘몬디아컬트 선언’(MONDIACULT 2022 Declaration)에 공감하며, 지역사회를 넘어 인류와 미래 비전을 반영한 전 지구적 사회·문화·교육적 대응의 맥락으로 확장하였다. 창의성, 비판적 사고, 문해력 및 사회적·정서적 역량 강화 등과 더불어 민주적이고 비판적인 견해의 함양, 편견의 지양, 신식민주의에 맞서는 저항정신, 문화다양성·인권·사회적 결속에 대한 인식, 세계시민의식과 환경의 가치를 함양하고 시민의 민주적 참여와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로드맵’이 개인적 성취와 교육에서의 예술교육 강화 같은 개인적이고 교육 내적인 관점의 목표를 제시하고, ‘서울 어젠다’가 불평등, 평화, 문화다양성 등 거시적인 사회문화적 이슈에 대한 예술교육의 기여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구체적 방안보다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도였다면, ‘프레임워크’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개인적인 영역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추구하고 달성하고자 하는 지향가치와 역량을 분명하고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예술교육 국제규범의 함의
문화예술교육 위상의 확장
유네스코가 세 차례에 걸쳐 발표한 문화예술교육 국제규범은 이전에 발표된 방향성을 포괄하면서 시기별 예술교육 혹은 문화예술교육의 내적 이슈와 외부환경 등을 반영하여 전략을 수립해 왔다. ‘로드맵’과 ‘서울 어젠다’ 및 ‘프레임워크’로 나아가면서 ‘예술교육’에서 ‘문화예술교육’으로 대상의 범주를 확장하며 그 역할을 확대해왔다. 각 국제규범의 방향성은 교육의 관점에서 사회적 가치의 관점으로, 더 나아가 국가 공통 혹은 초국적 이슈에 대한 공감과 공동대응의 관점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문화예술교육은 예술교과로서 교육체계 내에서 기여할 수 있음을 환기하고(로드맵), 학교와 커뮤니티에서 예술교육 실행과 이를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예술교육의 영역을 확대하며(서울 어젠다), 인권·포용·지속가능을 위한 문화적 역량 증대 및 세계시민으로서 상호이해와 실천(프레임워크)으로 그 의미와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참여자(학습주체)의 포괄성
문화예술교육 참여자(학습자) 범주의 경우 ‘로드맵’에서는 학교 예술교육의 참여자인 어린이와 청소년으로 보는 것에 비해 ‘서울 어젠다’에서는 연령대와 사회적 배경에 상관없는 모든 참여자로 확장하였다. 이와 함께 소수집단 및 이주민 등 소외되거나 배제된 계층을 별도로 언급하며 포괄하고 있다. ‘프레임워크’는 모든 참여자를 포괄하면서도 특별히 배제된 참여자와 이들의 환경에 대해 세부적으로 열거(인구학적 배경, 정치·사회·민족적 요인, 지역, 장애, 무력분쟁, 재난, 이주, 기술격차 등)하며 포괄해야 할 참여자의 범주를 더 구체화하여 접근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에 접근하기 어렵거나 배제된 이들에 대한 추상적인 대상화를 피하고 그들이 지니는 접근의 장애 요인과 맥락적인 이해를 통해 참여자 중심의 관점을 강조한다. 이는 포용적 문화예술교육으로서 당사자성과 개별성의 의미를 상기하게 한다.
시간적 지속성 및 공간적 편재(遍在)
문화예술교육을 일회성 혹은 이벤트형 체험으로 볼 것인지 혹은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일상적 활동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접근방식은 매우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학교 교육에서의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로드맵’에서는 생애에 걸친 문화예술교육 지속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 ‘서울 어젠다’는 지역사회(커뮤니티)를 통한 평생학습으로 추진하도록 하고 있고, ‘프레임워크’는 더 나아가 전생애(lifelong)의 시간적 지속성과 함께 공간 측면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환경(social settings)을 반영하여 일상적으로 여러 공간에서 접근할 수 있는 범생활적(lifewide)이고 편재적 실행을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교육매개물의 다원성
문화예술교육의 교육내용이나 교육매개물에 대한 범주 역시 최근의 발표문으로 올수록 확대되었다. 이전 두 발표문과는 달리 ‘프레임워크’는 문화와 예술이 교육내용뿐 아니라 이를 매개로 다양한 개인적·사회적 목적에 활용될 수 있다고 보며, 기초예술·장르예술 외에 다양한 문화·창의적 표현물과 문화산업 분야까지 포괄한다. 이러한 다원성(plurality)은 본문에서 예술 장르의 위계에 대한 비판을 명확히 한 부분에서도 확인된다. 더불어 교육공간도 전문적인 문화예술시설이나 교육 시설 외에 일상적이고 다양한 공간으로 확장하여, 물리적·심리적 접근의 진입장벽을 해소하고 각 공간 특유의 자원을 활용한 유연한 기획과 자유도 높은 실행이 이루어질 여지를 열어놓고 있다.
매개자(교육주체)의 다양성
‘로드맵’이 학교 교사(예술교사 및 일반교과 교사)를 중심으로 이에 협력하는 예술가를 주된 교육 주체로 논의하는 반면, ‘서울 어젠다’는 여기에 지역의 예술교육 촉진자(facilitator)를 추가했다. ‘프레임워크’에서는 ‘문화’예술교육으로 개념이 확장되는 연계 선상에서 이들 외에 문화 전문가 및 실무자(cultural professionals and practitioners)와 유산 보유자, 지역사회(커뮤니티) 조직 관계자 등도 포괄한다. 교육공간과 교육 주체의 다양성은 교육방식 및 내용이 더욱 유연하게 변화되는 것으로 연결된다. 교육매개물의 다원성과 교육 주체의 다양성, 그리고 앞서 논의했던 접근의 편재성 등은 문화예술교육의 내용적 경계를 확장하고 다양한 관점을 나누는 유연하고 풍부한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조건이 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높은 자유도가 실제 현장에서는 기존의 제도화된 교육공간이나 방식과는 달리 모호함이나 혼란 등 불확실성으로 인지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역할과 전문성에 대한 이러한 혼란이나 긴장, 그리고 협력을 위한 방안 등은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실험이자 성찰적 계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일례로 2020년 열린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에서는 각자의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적 실천을 하는 국내외 예술가·예술교육가가 ‘언러닝’ ‘문화활동가와 예술교육가 사이’ ‘길을 잃기 위하여’ 등을 테마로 혼란과 실험에 관한 새롭고 도전적인 경험과 생각을 나눈 바 있다.
문화적 시민으로의 역능화(empowerment)
각 국제규범은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실행할 때에 요구되는 요소의 구성적 측면(학습주체, 시간성, 공간성, 교육매개물, 교육주체 등) 외에, 내용적 측면에서 포용성, 문화다양성, 문화민주주의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로드맵’과 ‘서울 어젠다’, ‘프레임워크’ 모두 문화예술이 교육내용으로서(in) 혹은 이를 매개로(through) 개인적·사회적 목적에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프레임워크’는 교육내용(about)과 교육과정에서의 활용(with), 이를 통한(through) 개인적·사회문화적 가치의 인식 측면을 더욱 강조한다. 프레임워크에서 문화·예술을 통해서 획득되는 인식의 변화와 실천의 역량으로 제시된 내용은 4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수행적 역량(창의성, 비판적 사고, 혁신, 문해력, 표현력), 관계적 역량(사회적·정서적 역량, 고정관념·편견의 지양, 문화다양성, 인권, 공감과 연대, 사회적 결속 및 협력), 문화적 역량(문화 도구화의 지양, 표현과 창작의 자유, 다원적 사고), 참여적 역량(민주적·비판적 관점, 시민 참여, 민주적 참여, 사회적 책임, 세계시민의식, 식민주의에의 저항정신, 환경의 가치)이 그것이다. 이는 곧 시민으로서의 역능(力能)화에 대한 것으로, 문화적 시민성 교육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참조하고 재구성하기
여러 국가 간 논의를 바탕으로 유네스코에서 세 차례 발표한 문화예술교육 국제규범은 각각의 발표 시기의 환경요인과 요구가 담겼다. 최근으로 올수록 문화예술교육의 범주와 참여 주체, 시간적·공간적 운용 환경이 확장되었고, 문화예술교육의 의미와 역할도 교육체계의 변화와 커뮤니티 내에서의 역할, 국가와 국제적 수준에서의 사회 이슈에 대한 대응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문화예술교육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의가 확장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기여할 수 있는 기회와 영역이 확대된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최근의 이러한 흐름과 그 맥락이 닿아있는 ‘프레임워크’는 다양한 정책적 협력관계와 전략 수립의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이러한 측면이 정책과 실행 현장에서도 구현되도록 하기 위한 요건도 다각적으로 검토되어야 함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만큼 현실화의 영역에서는 다양한 해석과 불확실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명료한 과정이 요구된다. 다양한 연구에서 논의되었듯이 우리나라 문화예술교육 개념의 포괄성 혹은 모호성이 문화예술교육의 범주와 방향을 다양하게 운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명쾌한 전략 방향 수립의 어려움과 혼란을 가중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책 방향의 수준에서 영역과 범주를 명확히 한다고 해도 개념적 언어로 기술된 문화·예술·교육의 광범위한 해석이 실제 전략 수준의 계획이나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는 명확한 방향성을 갖기가 쉽지 않다. 문화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정책 간의 유사성도 포괄적으로 묶어 해석할 여지가 많아지면서 정책 간의 중복성 등의 문제 역시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과 전략을 얼마나 어떻게 국가별 상황과 지역별 수요에 맞게 실현해가는가에 대한 성찰과 기획이 필요하다. ‘프레임워크’를 참조하되 우리 사회에 맞는 맥락적인 해석, 다양한 참여 주체와 논의와 실험,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의 적용과 유연성을 반영한 기획을 위해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향으로 재구성해 나가야 한다.
※ 이 글은 필자가 한국문화사회학회 ‘2024 가을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홍유진
홍유진
문화사회학 연구자, 사회학(문화사회학)을 공부했고 20여 년간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정책과 현장 간의 연계를 고민하고 경험했다. 대학에서 문화예술정책, 문화매개, 문화예술교육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문화예술 관련 연구 및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yjhfore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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