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움트고 피어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장면들을 포착합니다.

꽃을 피우듯 함께하는 마음, 평화를 향한 모두의 외침

우크라이나를 돕는 예술 활동

작은 움직임이 평화의 불씨가 되길 이선철_감자꽃스튜디오 대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은 압도적 우위의 대국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거나 곧 어떤 식으로든 적절한 합의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거세어 양국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국제사회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이나 핵전쟁 또는 우크라이나의 만성적 내전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현실적 우려를 하게 되었다. 또한 전황이 전개되는 양상을 지켜보며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감하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부당한 침공에 맞서 기꺼이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에

몸과 마음을 울려 세상과 공명하기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 ‘보이스 테라피’

세상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시끌벅적한 목소리, 자동차 경적 등 여기저기서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고자 볼륨을 높인다. 경쟁하듯 끝도 없이 커지는 바깥소리에 정신없이 귀 기울이다 보면, 우리는 우리 안에도 어떤 소리가 있다는 것을 잊는다. 가령 목소리를 낼 때 미세하게 공명하는 몸의 소리라든지, 힘들 때 신음하듯 흘러나오는 소리라든지, 마스크 안에서 작은 호흡으로 뿜어져 나오는 소리 말이다. 이 작고 미세한 소리는 쉽게 지나쳐버리지만 그 어느 소리보다 중요하다. 나의 몸과 세상이 연결되는 통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이스씨어터 ‘몸MOM소리’(몸맘소리)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상’ 가족에 관한 질문

극단 신세계 <한(부모)가족의 동행>

“그 시간을 통해 ‘한부모가족은 차별적 시선을 받을 거야, 그들로부터 차별적 시선을 극복하게 만들어줘야겠어’라는 생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프로그램 설계를 완전히 전환했어요. 원래는 편견의 시선을 극복하기 위한 연극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했었는데, 사전연구 기간에 대상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피해자로서 규정 짓고, 동정받아야 하는 존재로 보고 있구나’ 깨달았어요.” 극단 신세계 부대표 김보경의 말이다. 당겨 말하면, 저 몇 문장이 이 긴 원고의 결론이다. 이 원고는 아마도 저 결론에 대한 각주가 될 듯하다. 자존감 회복? 인식개선? 인터뷰 전 작성한 질문지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이런

예측할 수 없어도 본능적으로,
그게 춤이야!

비접촉 시대를 건너는 프로젝트 곳곳의 모험

“반항심이요.”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하는 ‘프로젝트 곳곳’(이하 ‘곳곳’) 윤가연 대표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당장 누구를 만날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수업을 이끌어온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반항심이라. 나는 마치 기다렸던 답을 들은 사람처럼 신이 나서 마스크 속으로 몰래 씨익 웃었다. 궁금하다 곳곳, 넌 어떤 돌아이(경외심을 담은 의미다)냐. 더 알고 싶다. 곳곳은 무용수 세 명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팀으로, 2019년부터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 수진동 일대의 놀이터와 골목길을 누비며 우연히 만난 동네 아이들과 춤을 추고 댄스

세상 모든 나무 아래서, 놀고 쉬고 기대고

퐁낭아래귤림 <마을의 고목, 팽나무 아래에서>

2021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덧 일 년이 넘게 지속 되었다. 2인 이상, 4인 이상, 6인 이상 모임 금지와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면서 집을 벗어나는 것이 민폐처럼 여겨졌다. 비대면의 새로운 시도들이 여러 방면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얼굴을 맞대고 목소리를 교환하는 것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이루어지고 제한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마스크와 방역의 체계가 잡히면서, 제한적이지만 어느 정도 일상적 만남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지역의 장소성을 바탕으로 문화예술 기획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던 공간으로서는 이러한 팬데믹 상황이 고민이면서도, 어느 순간 이것을 새로움으로 받아들여

재난의 시간, 가족의 클리셰와 터부를 깨다

만물작업소 <유연하고, 단단한 발자국>

재난 영화 속에는 익숙한 장면들이 있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재난의 징후들이 조금씩 나타나지만 대다수의 외면 속에서 방치되다가, 결국 재난이 일어나고 일상은 끝내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자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고군분투하는 부모가 나온다. 이 가족들은 대부분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었으나, 재난 속에서 가족애를 재확인하고 위기상황들을 헤쳐나간다. 영화에서 수없이 익숙하게 반복된 서사적 클리셰다. 특히 거대 자본이 투입된 재난 영화들에서는 아이들과 동물의 구조는 반드시 이루어지고, 그들의 희생에 관한 직접적인 묘사는 터부가 되는 경향이 있다. 재난 영화에서 담기지 않는 또

이어지고 달라지며 삶을 엮는 노래

예천통명농요보존회 <노세 노세 캥마쿵쿵 노세>

20여 년 전에 서울의 작은 극장에서 경상도 지역 보존회의 농요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그때 ‘모심기’라는 것을 처음 봤고, 하얀 삼베 옷을 입고 머릿수건을 두르고 모심기 소리를 부르는 모습이 한 편의 연극처럼 느껴졌다. 보유자 선생님의 작고 단단한 몸에서 나오는 구성진 소리는 극장 밖을 넘어가는데, 무대 바닥에 놓인 가짜 모는 묘하게 어색한 광경이었다. 아마도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 노동의 이야기, 파란 하늘과 황금빛 논의 드넓음을 담기에는 네모난 극장이 너무나 작았던 게 아닐까. 20년이 지난 지금도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민의 삶을 비추는 창작소의 불빛

울산 북구예술창작소

나의 유년 시절을 보낸 이곳 울산 북구 염포는 조선 세종 때에는 일본과 교역을 담당하던 삼포 개항지 중 한 곳이었고 근대 이후 자동차 산업과 조선업이 들어오면서 현재는 우리나라 자동차·조선산업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염포는 노동을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이주민이 터를 잡아 뒤에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공장을 바라보며 위에서 보면 산과 공장 사이 기다란 꼴로 독특한 형태의 마을을 이뤘다. 마을 끝자락에는 염포의 여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공장을 바라보고 있는 시각예술 레지던스 공간인 ‘북구예술창작소’가 있다. 어릴 적 친구를 기다리던 그 골목에 이런 멋진 공간이

노동·정치·문화를 연결하는
일상의 예술

강서양천민중의집

강서양천민중의집이 위치한 곳은 예상과는 달랐다. ‘공장이 밀집한 곳의 허름한 건물’을 상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8차선 대로변 깔끔한 외관의 건물 2층은 낯설었다. 인터뷰를 위해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관계로 먼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문방구, 분식집, 작은 카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고 작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여럿 보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TV 프로그램 에 나온 ‘등촌동 골목’이 인근이었다. 하지만 강서양천민중의집 주변은 유동인구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입지가 그리 좋지는 않은데’라는, 불과 30분 만에 내린 섣부른 판단을 스스로 경계하며 강서양천민중의집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강서양천민중의집 ‘민중의집’이라는

‘우리’를 실감하게 하는 힘

상상창고 숨과 마을 식구들의 꾸준한 걸음

공간에서 소통과 교류가 일어난다. 공동체 공간에 문화나 예술을 매개로 교류가 일어나고, 이곳을 이용하는 시민(주민)의 활동과 경험을 통해 일상의 삶에 ‘틈’이 생긴다. 이 틈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쌓여 그 공동체의 ‘문화’가 된다. 문화란 무엇인가. 작은 혹은 큰 어느 공동체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해되고 즐기게 되는 놀이나 정서로 설명될 수 있다. 이 안에서 일어나는 소통은 이 그룹의 성격이 되기도 하고, 결속력을 갖게도 하며, 그 일체감이 확장되어 다른 공동체에 새로운 문화로 전파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힘’을 갖는다. 요즘 우리 모두에게는

주민부터 행정까지,
마음을 얻고 스며들기

문화지소 해남

남도를 향하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남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언제나 나를 지지해 줄 것만 같은 든든한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짭조름한 신안 지도의 오일장, 사성암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의 곡류천, 해 질 무렵 반짝이는 바다가 일품인 영광 백수, 강진 차밭에서 바라보는 가을 월출산. 오늘은 땅끝 해남이다! 다리 하나 사이에 두고 완도를 마주하고 있는 해남군 북평면 해월루로 향했다. 해월루는 수군의 정박 장소이기도 하며 제주도를 왕래하던 사신들이 머물렀던 객사(客使) 역할을 하던 곳이다. 저녁에 물이 들어차면 마치 바다에 달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골목의 일상, 그곳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의 시간과 경험들

2020년, 느닷없이 우리를 찾아온 거리두기의 시간은 해가 바뀌고도 여전하다. 만나지 않고 모이지 않아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시대적 요구 아래, 비대면과 언택트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들이닥쳤다. 개념조차 생소했던 화상회의, 1인용 교육키트, 영상으로 제작한 프로그램과 원격교육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여러 대안을 접하고 연구하며, 어떤 면에서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조금 더 다채로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것이 우리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수용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이 과정에서 대면과 비대면, 만남과 거리두기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대두되었다. 특히나 거점 공간을 세우고 유지하며, 대면과 만남을

감각의 교차 속,
비로소 듣고 들리는 것

아트엘 <듣다> 프로젝트

스며들다 ‘듣는다는 게 대체 뭘까?’ 올해로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든 아트엘의 <듣다> 프로젝트를 리뷰하기에 앞서, ‘듣는다’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듣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감각 기관, 그중에서도 특히 청각기관을 통한 소리의 알아차림을 뜻한다. 그런데 만약 이 같은 일반적·사전적 의미 밖에서 듣는 행위를 사유해본다면 어떨까. 만약 듣기의 대상이 ‘소리’에 한정되지 않는다면, 만약 듣기의 이유가 ‘의미나 정보의 전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면, 만약 듣기의 방식이 귀를 비롯한 ‘청각기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듣기’라는 명사적 상태를 ‘듣는다’는 동사적 행위로 전환할 때에서야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감각하기

배희관밴드 장애인을 위한 음악교실 <비비웨이브랩>

우리는 음악을 어떻게 감각할까. 청각을 통해 들리는 소리로?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로? 음악을 처음 배우던 순간은 어땠는지 떠올려보자. 계이름과 악보 보는 법을 먼저 익히기도 하고, 혹은 악기를 다루는 손 모양을 통해 음악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음악을 감각하는 것은 아니다. 종종 그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감각하는 사람에게는 불친절한 방법으로 음악을 안내하기도 한다. 가령, 영화 속에서 음악이 나오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비장애인은 영상 속에서 음악이 나오는 순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고 느낄 수 있겠지만, 청각장애인에게는 고작 폐쇄자막에 [음악] 또는

상상을 자극하는 새롭고 깊은 생각

애이비씨랩 ‘프로젝트 42 : Z플래닛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특별히 SF소설 팬이 아니라면, 더글러스 애덤스가 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모를 것이라고 짐작한다. 더구나 컴퓨터 ‘깊은 생각(Deep Thought)’이 칠백오십만 년 고민 끝에 내놓은 삶과 우주에 대한 해답이 ‘42’라니. 스토리의 힘은 꽤 많은 상상을 자극하는 데 있다. 삶과 우주에 대한 해답이 고대 철학자 누군가가 내놓은 관념의 정수이거나, 개념으로 정의 내려져야 한다는 생각은 단지 편견이었나 싶다. 대체로 그런 해답은 논리적으로 설득되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진부하거나 식상해지는 경우가 있다. 허나 ‘42’라는 그 엉뚱+모호성은 생각을 환기하고 묘한 끌림을 발생시킨다. ‘프로젝트42 :

남겨진 것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쓰레기를 남긴다> 속 만남과 연결

‘팬데믹과 기후위기 그리고 쓰레기 문제’라는 대전제를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이때, 2021년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에서 이와 같은 주제로 문화예술교육을 염두에 둔 워크숍 기획을 제안받고 나서 사실은 무거운 책임감과 동시에 무력감이 들었다. 그동안 보았던 환경교육은 대부분 경각심을 일으키는 콘텐츠를 나열하고, 그래서 “너 때문에 북극곰이 곧 멸종될 지경”이라는 죄책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버려진 것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것으로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내는 듯 마무리되는 사례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 콘텐츠와 방식을 제외하고 우리가 ‘교육’이라는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