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나요? 우리 일상과 현장에 영감을 주는사례와 시도를 소개합니다.

물왕멀296엔 이야기가 물결친다

예술가의 책방② 물결서사

2022년 3월 15일 화요일 저녁 6시. 메일 수신확인란에 ‘읽음’ 표시가 하나둘 늘 때마다 뱃살이 1mm씩 줄어드는 듯한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느끼며 책방을 빠져나왔다. 5월 31일까지 계속될 연재 프로젝트 ‘주간 봐라물왕멀296’은 3개월간 구독료 3만 원을 내면 매주 화요일 저녁 6인의 창작물(그림·시·소설·희곡·노래·비보잉 영상)을 메일로 받아볼 수 있는 유료 구독 서비스다. 일찍이 이슬아 작가가 발명한 [일간 이슬아](2018~현재)의 구독형 메일링 연재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왔다. 무엇보다 ‘창작물 직거래 메일링 구독 서비스(=선불)’로 정리되는 두렵고도 매력적인 거래 방식을 통해 새로운 동력을 얻고 싶었다. 2년 넘는 코로나 시국

사물에 담긴 마음의 흐름

예술가의 감성템① 연필깎이, 콤파스, 도토리

프랑시스 퐁주라는 사람은 비누를 25년간 관찰하고 책 한 권을 썼다. 조약돌의 일종, 마법의 돌, 하늘빛을 띤 안개의 핵, 황홀의 발레, 매혹적인 연출과 그 뒤로 사라지는 기억, 굳어지고 갈라진 이마, 무기력하지만 민첩하며 수다스럽고 열정적인 돌…. 그는 아마도 매일 아침 단단한 비누를 비비고 주무르고 미끄러운 거품을 느끼고 녹는 것을 보면서 계속해서 부풀어 오르고 사라지는 마음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퐁주처럼 나도 흩어지는 감정과 어지러운 생각 사이에서, 미끄러지지만 잡아야만 하는, ‘그 무언가’를 잡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을 사물에 담아 표현하거나 행위를

혼자가 아닌, 슬기로운 협업

어쩌다 예술쌤⑨ 학교 예술강사 프로젝트 공동개발

대학원 시절 생계를 위해 낮에는 문화센터 강사를, 밤에는 작품활동을 하며 알바 아닌 알바 같은 직업을 갖고 있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도전한 학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나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이른 아침 출근하고 교과 시간에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과 나를 선생님으로 불러주고 따라주는 아이들이 나에겐 너무나 큰 행복이었다. 대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에게도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추천할 정도로 ‘예술강사’라는 직업을 사랑했고 자부심도 있었다. 하루 이틀이 쌓여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학교 예술강사 워크숍 날이었다. “선생님은 전공이 어떻게 되세요?” “그 학교는 어때요?” “저는 이런저런 문제로

쓸고 닦고 조이고 보듬고 – 유기사물구조대 출동!

오늘부터 그린⑥버려진 물건을 구조하기

2020년 늦가을, 피스오브피스 멤버 일곱 명은 각종 청소 도구와 연장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일명 ‘서울아까워센타 : 유기사물구조대’(이하 서울아까워센타)! 이름 그대로 길거리에 버려진 멀쩡한 물건들이 아까워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거리를 수색하다가 ‘유기사물’이 발견되면 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 그 자리에서 뚝딱뚝딱 고친 뒤 매무새를 잡아주곤 유유히 떠나는 게 콘셉트다. 삼만리 뒤에서도 눈에 띌 듯한 소방관 복장을 하고 일곱 명이 우르르 몰려가, 아무도 눈길 주지 않았던 것에 힘을 쏟는 광경을 시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미션이었다. 길거리는 무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관람객이 되는 일종의 퍼포먼스. 무심히 일하는

천천히 걷는 골목, 이야기가 머무는 자리

예술가의 책방① 효창서담

미군기지의 황량한 시멘트 담장, 분주한 기차역 풍경, 아이템 일번지 전자상가, 대한외국인들의 고향, 핫플의 성지로 대변되는 용산. 서울의 중앙부에 자리한 만큼 크고 작은 소란이 끊이지 않는 용산의 한 가운데,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동네가 있다. 편의점보다 구멍가게가 익숙하고 집집마다 고무 양동이에 키운 상추며 고추가 골목의 풍경을 만드는 곳. 자동차 소리보다 바람 소리가 가깝고 60년 넘은 운동장에서 메아리치는 함성이 여전히 골목을 메우는 곳.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에는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 산다. 효창동의 느린 시간을 쫓아서 고백컨대, 효창동과의 첫 인연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지난 10년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다르게 말하면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새벽 어스름이 스러져 가고 있는 한겨울 들판을 기차가 달리고 있다. 유일민, 유일표 형제는 중학생 나이에 처음으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고 한강철교를 건너고 있다. 선잠을 자던 동생이 깨면서 얼결에 “성, 여그, 여그가 워디랑가?” 하고 내뱉자, 형은 동생 입을 틀어막는다. 서울 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사투리부터 고쳐야 한다는 담임선생의 말 때문이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의 첫 장면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을 꿈꾸던 전라도 아이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투리를 버리는 일. 카페에 앉아 ‘나는 보아뱀이라카능 기 정글에서 젤로 무스븐 기라꼬 생각했데이.’로 시작하는 『애린

지구의 위기에 맞서 싸우는
첫 번째 행동

기후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호주의 예술프로젝트

한여름의 더위 속, 시드니의 하늘에 얼음 한 덩어리가 띄워졌다. 에어리얼(공중) 공연과 신체극 창작을 주로 하는 호주 ‘렉스 온 더 월(Legs On The Wall)’의 신작 공연이다. 2022년 1월 시드니 항구 상공에는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2.7 톤의 얼음조각과 한 여성이 외롭게 매달려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그녀는 얼음 위에서 비바람과 산업용 크레인으로부터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얼음은 조금씩 녹아 아래로 흐른다. 관객들은 그녀가 직면한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몸부림을 바라보며 어떤 영감을 받게 될까? 은 기후 비상사태에 각자의 역할에 고심하고

진정한 ‘식덕’이 된다는 것

흙의 예찬④ 식물의 삶 이해하기

어쩌다 보니 ‘생태·환경’ 책을 주로 펴내는 1인 출판사를 시작해 9년째 일단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출판사를 시작할 때 그 많고 많은 주제 중에 왜 이 비인기 주제에 꽂혔을까, 생각해 보니 식물에 관한 ‘의미 있는’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하루가 멀다고 새벽 야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날도 새벽에 일을 마치고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에 서 있었는데,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아직 추운 날씨인데 동글동글 작고 예쁜 하트 모양을 한 연둣빛 이파리를 나뭇가지에서 밀어내고 있는 그 나무가 너무

공존을 모색하는 ‘약하고 꾸준한 연결’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대부분의 현대인은 의뇌(義腦)를 가지고 있다. 손상된 신체의 연장으로서의 의수나 의족처럼 인간은 불완전한 뇌를 보완하기 위해 스마트폰이라는 의뇌를 장착하고 사이보그로 살아간다. 노화되어가는 생물학적 뇌에 비해 주기적인 신상 제품으로 교체되는 의뇌라는 신체 부속은 인간의 기억을 더욱 스마트하고 강력하게 보조해줄 것 같은 환상을 준다. 검색을 통해 뉴스를 제공하고, 소통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기억이 강화되는 게 아니라 소멸되는 경우가 많고, 소통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강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뇌를 통해 시대와 더 많은 경로로 접속하려 할수록 잠재적인 가능성의 관계는 상실되어 간다. 우리가 검색하는 정보는

바닷길 따라, 지속가능한 예술의 미래를 향해

스칸디나비아 ‘기후를 위한 행동’의 예술적 실천

​덴마크에서 핀란드, 러시아, 에스토니아, 스웨덴까지 발트해를 가로질러 바다를 항해하며 공연하는 예술단체가 있다. 단체의 이름은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기후를 위한 행동’(Acting for Climate)이다. 이름에서 눈치를 챘을 것이다. 이들의 항해가 그저 독특하고 낭만적인 기획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기후를 위한 행동은 컨템포러리 서커스 단체이다. 덴마크 출신의 시인이자 수학자이며, 가구 디자이너인 피트 헤인(Piet Hein)이 “예술은 해결되기 전에 명확하게 공식화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라고 예술을 정의한 것에 영감을 받아 2014년 노르웨이에서 시작되었다. 이 단체는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행동하도록 영감을 주는 것을

식물과 기계와 나

흙의 예찬③ 불완전함의 자연스러움

얼마 전, 우리 집에 식물등이 생겼다. 우리 집은 오후 한 시 반 정도만 되어도 햇빛이 이미 잘 안 들기 때문에, 언제나 식물들에게 햇빛이 부족했다. 겨울에는 특히 창가 자리에 찬 바람이 들어와서 온도가 내려간다. 그래서 온도를 높이려고 집 안쪽으로 들여놓으면 햇빛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시간대에 따라 일일이 화분들을 모두 옮겨주는 것도 일이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몸이 그에 따라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작년에는 식물들에게 최대한 ‘자연스러운’, 흙에 뿌리를 내리고 물을 먹고 햇빛을 맞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식물등을

예술교육가의 모든 활동은
예술이자 교육이다

어쩌다 예술쌤⑧ 예술가와 교육가 사이에서 정체성 찾기

지난 2020년 9월 14일부터 17일까지 나흘간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The 5th International Teaching Artist Conference, 이하 ITAC5)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ITAC5가 개최될 만큼 우리나라 문화예술교육은 다양한 방식으로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룩해왔다. 그 속에는 단연 예술강사, 예술교육가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예술교육가는 여전히 예술가와 교육가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가와 교육가의 정체성을 고루 지속하는 방법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한다. 자신을 마주하고 정의하기 예술교육가로 지난 활동을 돌이켜보면 1~2년 차에는 교육 진행과 목표달성에 집중했고, 3년 차 이후에는 나의 교육 활동에 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나의

지구의 오늘에 함께 기여하는 액션!

탄소중립을 선언한 영국 피그풋시어터

탄소중립극단(carbon-neutral theatre company)을 단체명 앞에 내세우는 연극단체가 있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피그풋시어터(Pigfoot Theatre, 이하 피그풋)이다. 헤티 혹손(Hetty Hodgson)과 비 유데일-스미스(Bea Udale-Smith)가 공동예술감독으로 이끄는 피그풋은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기후에 관한 공연을 만들고 있다. 작품 안에서 전기를 스스로 생산하며, 재활용품을 이용해 무대 세트를 만든다. 작품을 계획할 때부터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재료의 공연 후 쓰임까지 고려하며, 모든 과정에서의 탄소 발자국을 계산하고 기록한다. <How To Save A Rock> ⓒEd Rees | [이미지출처] 피그풋시어터 페이스북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극단의 도전 과연 가능한 일일지

새로운 꿈을 꾸듯,
예술의 기운을 전합니다

2022년 예술가의 새해 소망

구지민 방영경 이승연 이영연 최제헌 [아르떼365]는 임인년(任寅年) 새해, 문화예술(교육)에 바라는 바와 예술적 소망을 이미지로 전달하는 ‘연하장’을 기획했다. 각자의 현장에서, 각자의 매체로 전달하는 시각 이미지는 긴 텍스트로 이뤄진 글과는 또 다른 감동과 아이디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아르떼365]에서 필자로, 인터뷰이로, 사례의 주인공으로 함께 했던 시각 예술가 5인이 건네는 새해 인사는 오픈소스로 독자가 직접 출력하여 연하장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 사과파이 | 구지민 2022년, 예술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닿기를. 지속가능한 삶을 탐구하는 실용적인 교육이 되기를. 길어지는 팬데믹 속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힘을

금쪽같은 문화예술공간
“문세권에 삽니다”

평범한 일상을 반짝이게 하는 동네 예술공간

좀처럼 꺾이지 않는 코로나19 상황과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를 이유로 문화예술과도 거리를 두어야 할까. 각자의 생활 반경에서 소중하게 자주 찾는 다양한 공간을 공유하고자 지난 11월 2일부터 진행한 ‘금쪽같은 우리 동네 문화예술공간’ 설문조사에서는 [아르떼365] 독자들이 전국 각지에 있는 130개 문화예술공간을 추천해주었다. 이렇게 가볍게 마실 나가듯 찾아가 예술로 마음을 채울 일상 속 문화예술공간이 근처에 있다면 다 함께 모이지 못해도 마음만은 풍성해지지 않을까? 그중에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책방과 도서관부터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행사가 벌어지는 지역문화회관, 산책하며 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 야외

살아있는 식물 그림을 그리는 법

흙의 예찬② 생명력을 기록하기

기억 속 모든 모과나무를 떠올리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과차를 마셨다. 일주일 넘게 딱딱한 모과를 채 썰어 모과청을 만들고 있다. 덕분에 평소 먹지 않던 모과차를 요즘 매일 마시게 되었다. 혼자서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모과가 집에 쌓여 있는 이유는 곧 모과를 그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열매를 관찰하려면 줍거나 얻은 모과로는 부족해 농장에서 상자 가득 샀다. 길이와 폭을 재거나 색을 비교하는 등 외형을 관찰하는 일은 끝났고 열매 안에 씨앗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모과를 매일 잘라보고 있다. 절단면에 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