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딛고 있는 세계는 예전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은 우리가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돌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삶과 생태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멈추지 않고 지탱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유를 통해 내면의 힘을 키우고, 외면의 기술을 익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릴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전환을 위한 실험과 실천을 소개한다.
타성을 벗어난 발상의 전환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기술로 인해 동료가 늘든지,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든다든지, 자기 삶에서 힘이 생긴다든지, 풍요롭고 아름다운 라이프 스타일로 연결될 때 빛이 납니다. 비전화공방이 추구하는 기술은 바라는 삶을 누구나 구현할 수 있고 손쉽고 친절한 기술이어야 합니다.”
– 후지무라 야스유키 비전화공방 창립자
2017년, 서울혁신파크에 자리한 비전화공방서울(이하 ‘비전화공방’)은 ‘전기나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고도 행복한 삶의 방식’에 가치를 두고 스스로 삶을 구성하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실험할 수 있는 곳이다. 매년 12명의 비전화제작자가 입주하여 1년 동안 건축·농사·제품에 관한 기술 워크숍과 수행을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동료를 발견하며 자립력(자발력+자급력+자활력+동료력)을 키운다.
비전화제작자들이 건축 수업 차원에서 짓고 운영하는 비전화카페는 나무와 볏짚, 흙을 재료로 미장을 해 뼈대를 만들고 왕겨로는 단열을, 삼나무 껍질로는 지붕을 얹어 지은 생태적 공간이다. 건물의 생성부터 심상치 않은 이 공간은 전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해가 떠 있는 시간에만 운영한다. 플러그도 와이파이(WiFi)도 없다. 비전화카페에서는 제품 수업에서 만든 커피 로스팅을 사용해 가스 불 위에 직접 볶아 커피를 내리고, 야자 껍질과 활성탄을 이용해 만든 정수기를 사용한다.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어 적용해볼 수 있는 이런 기술은 시민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비전화공방은 타성적 삶에서 벗어나 내가 바라는 삶에 어떻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가고 바꿔나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상상하고 질문하는 시간을 열어 준다.
가치 공유를 위한 실천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
서울 망원동에 위치한 알맹상점은 ‘생활 속에서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세 사람이 만든 공간이다. 시민 환경운동가이자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망원동 에코하우스』저자 고금숙, 유기농 천에 밀랍을 코팅하여 ‘칙 포켓(cheek pocket)’이라는 밀랍 가방을 만드는 이주은, 생활 속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일상을 담는 유튜브 채널 ‘친절한 래교’를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양래교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곳은 이름처럼 빈 용기를 들고 가 필요한 만큼의 세제, 샴푸, 살균제 등 알맹이를 구매하는 리필 스테이션이다. 페트병, 우유팩, 병뚜껑 등을 가져다주면 알맹상점에서 분류해 재활용품이 필요한 업체에 보내기도 하고, 말린 커피를 모아 화분과 연필로 재탄생시킨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에 대한 사연을 적어 ‘알맹상점 공유센터’에 넣어 두면 필요한 사람이 물건을 가져갈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알맹상점에서는 제로웨이스트와 플라스틱프리를 외치며 사람들에게 에코백과 종이가방을 기부받아 망원시장 상인과 소비자에게 장바구니를 나눠주는 ‘비닐봉지 쓰지 않기’ 캠페인을 한다. 금이 간 그릇을 고쳐 쓰거나 습기제거제 만들기 등 기술을 알려주는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한다. 또한, 환경 전문가를 초청해 재활용의 중요성에 관해 강의도 연다.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고 공유하고는 곳을 넘어 지역의 자원순환 거점으로서 사람들에게 쓰레기를 줄이는 삶에 대한 가치를 전달하고 변화 행동을 독려한다.
누구나 스승이 되고, 학생이 되는
논어에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나온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으로 받들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배울 점이 있다. 서울 은평구평생학습관에서 2012부터 시작된 ‘숨은고수교실’은 지역의 숨은 고수들이 자신의 재능과 기술, 지혜를 이웃과 공유하고 기부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학생이 스승에게 배우는 기존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누구나 가르치고 누구나 배울 수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휴관이 장기화하면서 ‘자기를 쓰고 독립출판하기’ ‘데이비드 위즈너 그림책과 함께 하는 북아트’ ‘대바늘코바늘손뜨개’ 등 수업을 축소하여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평소에는 생활, 예술, 어학, 공예, 건강, 아동·청소년 등 분야별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주변에서 쉽게 배우기 어려운 동양 채색 민화, 붓글씨나 사군자를 그리는 문인화 강좌가 열리기도 하고, 드론의 구조 및 조종법을 익히는 드론 입문 등 은평지역 숨은 고수들의 다양한 강좌가 진행된다.
은평구평생학습관은 올해 10주년을 맞이하여 학습관에서 마을강사로 활동했던 ‘그때 그 사람’을 찾아가 현재의 근황을 전하는 영상을 제작했다. 한국무용 프로젝트에서 고흥동류 소고춤을 가르쳤던 서용석 교수를 찾아가 숨은고수교실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묻기도 하고, 숨은고수교실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60세에 전업주부에서 바리스타로 전업하고 ‘홈카페 나도 바리스타’ 수업을 통해 다시 배움을 나누는 노정열 강사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선생과 학생의 경계를 없애고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물면 배움과 세계의 폭이 넓어진다.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과정을 정해진 선생에게 안정적으로 받던 기존의 수동적인 교육에서 나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이웃과 함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능동태로서의 교육으로 바뀌는 것이다.
변화는 아주 미세한 실천이 모여 이루어진다고 한다. ‘미세한 실천’은 정말 미세해서 어쩌면 이미 스스로 변화를 위한 실천이나 실험을 하고 있음에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어떤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 그 모든 것이 미세한 실천의 첫걸음일 수 있다. 지금 나의 일상에서의 변화를 인지하고 한 번 더 생각하는 것부터 가까이 있는,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까지 하나씩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성효선
성효선_프로젝트 궁리
hyosundrea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