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예술기관에 있어 문화예술교육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왔을까?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 설립 이후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 국공립예술기관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자체적인 콘텐츠와 인프라를 활용하여 감상이나 실기교육을 넘어서 일반 시민의 주체적인 참여와 예술향유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진화하고 있다. 주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4명의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들로부터 국공립예술기관 문화예술교육의 현황과 변화, 제언을 들어보았다.
일 시| 2016. 9.28.(수) 오전 10시
장 소| 국립중앙박물관
참석자| 이수현(정동극장 공연기획팀 팀장), 정선희(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문위원), 제환정(국립현대무용단 자문, 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조교수)
사 회| 황지영(국립현대미술관 교육분야 학예연구사)
장 소| 국립중앙박물관
참석자| 이수현(정동극장 공연기획팀 팀장), 정선희(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문위원), 제환정(국립현대무용단 자문, 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조교수)
사 회| 황지영(국립현대미술관 교육분야 학예연구사)
주요 국공립예술기관에서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는 분들을 한자리에서 뵙게 되어 반갑다. 웹진 [아르떼365]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각 기관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소개를 부탁드린다.
정선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아시아문화전당)은 작년 11월 개관 후 이제 막 1주년을 앞두고 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5개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콘텐츠 중심의 운영 체계를 갖고 있다. 설립 전부터 10여 년 정도 콘텐츠 구축과 시설공사에 노력을 기울였다. 주요 콘텐츠는 전시, 공연, 창‧제작이 있으며, 개관 이후에는 어린이에서부터 청소년, 시민, 예술가 또는 예비 전문가 등 다양한 타깃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해오고 있다.
이수현 1995년 설립된 정동극장은 현재 주로 관광형 상설 극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공익사업 파트에서는 교육, 페스티벌, 공연 제작, 인큐베이팅 과정이 있고, 경주 정동극장에서도 동일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사업은 주로 경주에서만 추진해왔으며, 서울에서는 올해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이하 꿈다락)를 계기로 본격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동극장은 오랫동안 전통을 기반으로 공연 제작을 해왔기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도 이러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구성하고 있다.
제환정 3년 전부터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외부 전문가로서 지역사회 연계 활동(community outreach)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무용 전문가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용학교’ 프로그램, 어린이 대상 꿈다락 등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무용을 통한 지역사회 연계 활동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예술기관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다. 각 기관의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셨는데, 최근에 특히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얘기해주면 좋을 것 같다.
정선희 아시아문화전당은 10년 전부터 ‘어린이 문화원’이란 공간을 함께 구상해왔기 때문에 개관 이후 어린이 프로그램 개발을 주로 해왔다. ‘어린이 문화원’에는 콘텐츠를 체험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어린이 창작 실험실’이 따로 있다. 그 외에도 ‘어린이 도서관’, ‘다목적홀’, 국내 유일의 ‘어린이 극장’ 등이 있어 공간을 중심으로 어린이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다. 프로그램은 4주 이상 진행하는 정기형과 당일 진행하는 수시형 등으로 분류되고, 문화다양성과 예술적 창의성을 주제로 단체나 유아·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최근에는 교육사업본부가 생겨 어린이와 함께 청소년이나 일반 시민 대상 프로그램을 전체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동시대 예술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규모도 크고 콘텐츠도 광범위하여 일반 시민이 다가가기 어려운 공간일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중심 콘텐츠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복합 예술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 일반 시민과 청소년, 광주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든 찾아와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올해 상반기부터 시작해 현재는 어느 정도 체계를 잡아서 내년도 사업을 구상 중이다. 주로 아시아문화전당의 콘텐츠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대상별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이것이 숙제이다. 자체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국공립기관에서는 문화예술교육을 어느 선까지 끌어내야 하는지 고민된다. 생산되는 콘텐츠와 참여자 간의 연결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연결 지점은 미술관에서의 전시연계 프로그램과는 또 달라야 한다. 그걸 풀어야 하는 것이 숙제이지만 교육이기 때문에 조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시작해서 단계를 올려 나가고 있다.
왼쪽부터 제환정, 이수현, 정선희, 황지영
아시아문화전당은 공간을 중심으로 굉장히 복합적인 요소들을 고려해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기 때문에 힘든 점이 있을 것 같다. 정동극장은 외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극장으로서 외국인 대상 교육에 대한 인식이 남다를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부분에서 최근에 변화가 있었는가?
이수현 정동극장은 한동안 교육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운영하지 않았고, 경주 정동극장에서만 <천으로 배우는 우리 무용> 같은 체험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곤 했었다. 2010년에 특성화 사업으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포맷을 시도하다가 관광형 상설공연을 여는 극장으로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 그 전에는 복합극장처럼 여러 공연을 해왔는데, 7~8년 동안 큰 변화가 생긴 셈이다. 말씀하신 것처럼 외국인이 많이 찾는 극장이 되었는데, 외국인 대상 교육은 깊이 있는 문화예술교육이라기보다 일차적인 체험교육, 체험사업에 가깝다. 예를 들면 외국인 대상 장구 체험 같은 프로그램인데, 한국 문화를 알리는 것보다는 티켓 판매를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 구성 중 하나에 가깝다. 올해부터 꿈다락에 참여한 이유는 내국인 관객에 대한 극장 이미지를 높이기 위함도 있다.
정동극장은 제작극장이기 때문에 공연 제작 시스템과 인큐베이팅 하는 과정이 있다. 따라서 강연 형식이 아니라 우리 극장의 콘텐츠에 맞게 공연 제작 프로세스 자체를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게 어떨까 싶었다. 예를 들어 공연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콘텐츠를 정하고, 그 텍스트를 공부하고, 표현을 연습하는데, 그걸 교육이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접근을 하면 아이들과 재미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보통 이런 형식으로 진행하면 강사가 이야기나 주제를 전달하고 실행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우리는 어린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 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앞으로 2~3년 동안 그런 부분을 세부적으로 견고하게 만들어나갈 것이다.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지 10여 년 정도 되었지만, 아직까지 공연장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활성화에 아쉬운 부분이 많다. 백스테이지 투어, 관계자 특강 등에서 나아가, 말씀하신 부분처럼 극장의 콘텐츠에 맞게 공연제작 프로세스 자체를 교육프로그램화 하는 부분이 더 활성화되어야 하겠다. 그런 점에서 정동극장은 극장 규모와 자체적인 콘텐츠를 제작하기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기 좋은 환경인 것 같다.
이수현 실제 공연을 만들려면 매일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에 가기 때문에 주말에만 참여한다. 그래서 연계성을 갖기가 굉장히 어렵다. 이번 프로그램을 공연으로 마무리했는데, 무대에서 리허설하고 연습하는 순간까지 일반 공연처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전체적인 공연의 제작과 교육이 같이 가는 프로세스는 만드는 것도, 참가자를 설득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좀 더 해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정선희 예술 콘텐츠를 교육 용도로 사용하면 작품 관계자들이 부담스러워하지는 않나? 작품 제작 프로세스가 있는데 교육 과정을 연결하고 협업하려고 하면 연출자, 관계자, 기획자들이 불편해하고 벽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수현 이번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전통’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로 아이들에게 접근할 때 다양한 의견을 나누다 보니 무대에 한 번 서보는 게 재밌지 않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무대에 서는 게 목적이 되면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즐겁게 놀아보자는 방식으로 접근하되 전체적인 구성의 모양새는 공연을 제작하는 과정처럼 진행해보자는 목표가 있었다. 교육만을 목적으로 공연을 제작한다면 아티스트와 교육적인 목적 사이에서 굉장히 많은 충돌이 생기고 접합 지점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17~18회차 동안 단순히 강의 형식의 교육을 했을 경우 어떠한 결과물이라고 불릴만한 성과를 만들기가 어려웠겠지만 우리는 교육을 재미있는 놀이처럼 하고 결과물로 공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오히려 고민이 되었던 지점은 주강사가 연극 연출가이기 때문에 공연을 만들 때 완성도를 민감하게 따질 수밖에 없어서 이 부분의 밸런스를 어느 정도 선까지 조절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었다.
정동극장은 극장 내 예술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공연 제작 프로세스 자체를 교육프로그램화 하는 과정, 놀이로서의 예술교육의 관점 등 최근 동향을 말씀해주셨다. 국립현대무용단 또한 최근 다양한 교육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환정 국립현대무용단은 극장이 아니라 예술창작단체이다 보니 교육을 위한 공간이나 인력이 제한적이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프로세스를 아주 잘 계획하고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소규모 엘리트 관객 외에 대부분 일반인은 국립현대무용단을 잘 모를뿐더러 현대무용에 대한 개념도 거의 흐릿하다. 우리의 첫째 명제는 어려운 현대무용과 관객과의 갭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이며, 그 갭을 메우기 위해 지역 기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어떤 정해진 스타일이나 양식이 없는 것이 현대무용의 특징인데, 어떻게 보면 장점일 수도 있지만 가르칠 때는 난감하다.
또, 좋은 예술가가 모두 좋은 예술교육가(Teaching Artist)는 아니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게 사실 예술교육에서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아티스트들이 많은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가르치는 경험을 갖게 되지만, 예술가를 꿈꾸지 않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떤 목표로 가르칠지 질문을 던져보면 명확한 답이 없다. 현대무용은 재미있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고 예술가들에게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다. 그러나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공연이 목적이 되다보면 아이들에게 결과를 강요하게 된다. 그런데 예술교육은 결과만이 아니라 프로세스에 관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정교한 완성도에 이르는 것보다 다양한 것과 충돌하는 방식 자체가 참여를 유발하는 현대무용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지금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의 결과물 자체가 그 경계 선상에 있다고 본다.
현대무용 자체가 일정한 양식이 아닌 모든 것이 모이는 사이트에 가깝기 때문에 강사가 어떤 것이든 가져올 수 있게 한다. 무용학교에서는 일반인을 프로세스로 끌어들이고 꿈다락에서는 뮤지션 혹은 다른 장르의 전문가를 게스트로 초청하는 식이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노래 부르기, 이야기하기 같은 것을 억지로 넣는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녹아들게끔 한다. 그래서 모든 프로그램을 할 때 항상 상주하는 뮤지션이 있고, 앉아서 발 만지고 몸 풀 때 뮤지션들이 건반과 드럼을 연주한다. 가장 중요한 건 춤추기(dancing)를 위한 수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춤추기는 이미 너무 많다. 많은 무용교육기관들이 ‘춤이 곧 춤추기(dance = dancing)’임을 표방한다. 보고 따라 하고 학습해서 재생하는 수업이다. 그런데 그 프로세스는 창의성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꿈다락이나 무용학교에서는 춤추기가 아닌 ‘춤 만들기(dance making)’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문화예술과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전공자를 위한 예술, 또는 장르 중심의 예술을 떠올렸지만, 현재는 창의성, 삶의 요소로서의 문화예술, 결과물 중심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 현장에서 이러한 변화를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는 지점이 있는지, 혹은 변화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서 얘기해주시면 좋겠다.
이수현 공연을 제작하고 올리면서 관객과 직접 만나는 지점에서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져야 한다. 실제로 공연 제작 프로세스를 부분적으로 쪼개면 문화예술교육의 측면에서 같이 갈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본다. 우리 프로그램은 무언가 지식을 얻고 배움을 얻어가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거칠게 표현하자면 아이들이 와서 진을 다 뺄 정도로 미친 듯이 놀고 가는 프로그램이다. 무조건 목적을 향해 가기보다는 과정이 완성될 수 있도록 한 스텝, 한 스텝 완성도 있게 가야 목적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부분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가야 하지 않을까. ‘교육에서 공연까지’라는 타이틀에 대해서도 참여자마다 초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을 동일하게, 평균치를 유지하면서 진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개별화시키는 방법이 나와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선희 우리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창작 과정과 교육을 결합시켰을 때, 창작하는 예술가의 입장에서 교육은 왠지 귀찮은 것인 듯하다.(웃음) 정동극장과 국립현대무용단의 사례를 보면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시아문화전당은 개관 전부터 아시아문화전당이 가진 ‘문화다양성’이라는 지점과 예술교육이 가진 ‘창의성’을 활용해서 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프로그램의 방향성이 있었다. 한 때 ‘에듀컬쳐’ 사업을 통해 교과서 내용을 활용해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연구도 있었으나, 개관 전 개발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큰 방향성을 다양한 예술의 형태와 놀이가 접목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풀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갖고 있었다. 최근 3~4년 사이에 이슈가 된 게 장르 통합이다. 어떻게 보면 아시아문화전당 자체가 장르 예술을 말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장르가 사라지고 경계도 없어지고 있다. 콘텐츠는 광범위해졌지만, 교육 커리큘럼이나 기획은 여전히 2개 장르를 섞어 보는 형식에서 멈춰있다. 단순 장르 통합을 넘어 아시아문화전당의 융복합 성격을 살려서 아이들의 ‘문화다양성’과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을 개발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웃음) 최소한 미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무용은 춤을 추는 것이라고 분류를 하지 않게끔, 내 안에서 창조해낼 수 있게끔 몸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말 큰 과제인 것 같다. 이런 부분과 함께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아시아 문화 자원, 문화다양성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3~4기 수료를 마친 상태라 어느 정도 사례들이 쌓이긴 했다. 아시아문화전당의 환경, 공간의 특성, 콘텐츠의 특성을 토대로 계속해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의 피드백이 궁금하다.
정선희 장르교육이든 통합교육이든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린이나 학부모들에게 우리가 인식할 수 있을 만큼의 피드백이 오진 않는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은 처음이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아시아문화전당의 모든 프로그램은 유료로 진행된다. 사설 기관이나 대학 영재 교육원이 아닌 이곳에 등록해서 12주 이상 참석한다는 것은 스스로 어떠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고, 우리 전당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는 것이다. 고학년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해킹’을 주제로 현대미술의 핫이슈를 교육 관점으로 풀어갔다. 여기서 아이들은 단순히 자전거를 뜯어보는 체험을 하는 게 아니라 테이프를 가지고 놀면서 접착의 수단이 아닌 다른 용도로 해킹하여 창작하는 것을 알게 되고 집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용도를 변경해 보면서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지점이 있었다. 융복합이 잘 실현되었다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변화와 피드백들이 오고 갔던 것 같다.
제환정 초창기에는 참가자 모집도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마감도 빠르고 경쟁이 치열해졌다. 꿈다락이나 무용학교 프로그램 마지막은 항상 쇼케이스로 끝나는데, 조명도 준비하고, 티셔츠도 맞춰 입는다. 그리고 타이틀에 ‘12번째 수업에 관객을 초대합니다’라고 꼭 쓴다. 초반에는 조금 더 나은 퀄리티의 춤을 배우기 위해, 혹은 아티스트에 대한 동경 때문에 국립현대무용단 수업에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참여자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전에는 관객으로서 체험하고 배우려는 참여자가 많았다면 지금은 도전하려는 모험가가 많아졌다. 나는 이들을 참여자가 아니라 ‘댄서’라고 호칭한다. 무용학교의 슬로건이 “모든 인간은 무용수다”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은 모두가 무용수이다. 현대무용을 통해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 자신의 결정에 관한 부분을 준비하고 오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의 경우 그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기존에 다른 것을 많이 배우고 지나치게 학습해서 오히려 자신의 결정을 말하지 않거나 굉장히 세련된 방식으로 모방하는 아이들이 있다. 수업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행위는 사실 도구일 뿐이다. 이러한 도구를 활용해서 스스로 지도를 만들어보고,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을 그려보고, 바닥에 맨날 그림을 그리듯이 노는 것이다. 결국은 자신의 결정,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끝날 때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어땠는지 물으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이 “행복했다”는 것이다. 그게 정말 감사하다.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고, 자기 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자기 취향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 사실은 그게 미학의 기본이고 예술을 배우는 이유이다. 아이들이 고급단어로 이야기하진 않지만, 예술가들과 보내는 시간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수업이 끝난 뒤 강사들과 간단한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그날 했던 활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게 된다. 그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언어로 문화예술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과정은 중요한 지점이다. 말씀하신 내용을 들으며, 현장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개념도 많이 변화하고 있고, 문화예술교육의 본연의 의미에 점차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말씀 중에서 꿈다락 이야기도 많이 나왔는데 기관별로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교육 프로그램과 꿈다락 간에 다른 점이 있는지, 어떤 부분이 차별화되는지에 대해서 얘기해주면 좋을 것 같다. 또한, 고민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기존에 운영하던 프로그램과 유사한 점이나 다른 점에 대해 말해 달라.
정선희 아시아문화전당은 내년부터 교육진흥원과 협업하여 꿈다락 참여를 준비할 계획이다. 꿈다락이 국공립예술기관으로 왔을 때는 아시아문화전당의 특성을 반영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웃리치 형태와 아시아문화전당의 공간 특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계획해보고 싶다. 아시아문화전당은 지역의 예술가들과 연계되는 부분이 많다. 현재 자기 사업으로 꿈다락을 진행하고 있는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아시아문화전당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등 호남권의 지역성을 가지고 허브 역할을 하면 어떨까. 아시아문화전당의 특성과 지역 예술의 특성을 연계하여 공간과 콘텐츠를 교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꿈다락 프로그램을 계획해보고자 한다.
이수현 어떻게 보면 정동극장에선 꿈다락이 있었기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 점에서 고마운 사업이다. 올해는 <우리 놀이와 이야기로 북치고 장구치고>, <천으로 배우는 우리 무용> 처럼 공연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함께 경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운영했다. 내부적으로 우리가 가진 소스를 어떻게 견고하게 만들 것인가, 어떠한 포맷으로 만들고 어떠한 아이디어들이 변주되어 들어갈 수 있는가가 가장 큰 고민이다. 2~3년 차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고민이 생기는 것 같다. 작년 경주에서 시작했고, 올해 서울에서 꿈다락을 운영하며 기본적인 포맷은 잡힌 것 같다. 올해 했던 방식을 견고하게 만들고 대신 조금 더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내용과 구성 자체를 매년 바꾸기는 어렵다. 서울과 경주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돌리고 지역 차를 확인해보면 좋겠지만 현재로써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서울은 서울 시내 중심가에 있고, 경주는 외곽에 있어 프로그램을 이원화시켜서 운영했을 때 반응의 차이가 확실하게 나올 것 같았다. 이런 차이를 살펴보고 지역에 맞게 적용해볼까 생각한다. 꿈다락은 연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큰 도움이 된다.
제환정 연결해서 말하자면 꿈다락은 융통성 있게 진행할 수 있도록 열려있는 제도여서 나름대로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었다.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예술교육가가 드문데, 꿈다락을 통해 예술가들이 변화하는 지점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게 가장 보람이 있다. 사전에 가이드라인을 드리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아이들과 만났을 때의 반응과 피드백을 통해 예술가들의 교육적 관점이 많이 변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관객에 대해서 학습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러한 교육 경험이 공연을 만들 때의 관점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관객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진 셈이다.
예산에서는 가장 크게 쓰이는 항목은 인건비로 재료나 물리적 자원은 최소화해서 무용단에 있는 걸 활용한다. 12~13주차 안에 공연하는 것을 강사들이 부담스러워하지만, 프로세스를 통합해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3주 외에는 공연 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 강사들은 마지막 2~3주에 아이디어를 함께 생각하고 평소에 수업에서 생각한 것을 엮어 쇼케이스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립현대무용단, 정동극장이라는 각 기관의 특성이 드러나는 문화예술교육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작년은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추진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그동안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큰 성장이 있었고 최근에는 다양한 기관·단체와 협력하며 문화예술교육의 질적인 측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또한, 전문인력에 대한 큰 정책적 이슈를 가지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그동안 추진된 문화예술교육 사업들은 현장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역할과 기대하는 바에 대해서 말해 달라.
제환정 저는 무용 전공인데 교직을 이수하면서 체육 교사 자격증을 받았다. 축구를 몇 명이 하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웃음) 지금까지의 예술 전공교육은 예술가 만들기 위주로만 이루어져 있었지만 최종 전달자인 예술교육가에 대한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예전에 비해 예술교육가를 준비할 수 있고 예술교육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경로도 많아진 것 같다.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동기부여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예술교육가들의 가장 큰 숙제인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을 말할 때 치료(therapy)나 치유(healing)가 종종 사용되는데, 문화예술교육은 치료적(therapeutic) 접근이지 치료 그 자체는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이 더 길게, 전문적으로 깊이 있게 가려면 사용하는 용어부터 정리가 되어야 한다.
정선희 아시아문화전당의 경우 교육 기능이 굉장히 큰데, 현실적으로는 예술교육을 하는 강사의 전문성 문제가 있다. 프로그램 운영 초기에는 개발에 참여한 예술가가 전체 프로그램의 주강사로서 끌고 가고, 문화교육가(educator)가 보조강사로 들어갔다. 현재는 문화교육가였던 선생님이 주강사가 되고 특강같이 전문가가 필요할 때 예술가를 초대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한데, 광주에도 문화예술교육사 양성기관 2곳이 있지만, 아시아문화전당의 변화하는 방향성을 재교육 해야 해서 우리 기관 자체적으로 교육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내년 사업에서는 아예 조금 더 구조화하려고 한다. 예술을 전공한 예술교육 예비인력, 지역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예술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문화교육가를 위한 재교육을 체계화하는 단계에 와있다. 자체 전문교육인력 시스템을 구성하고 개발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는 우리가 품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제환정 우리는 자체적으로 제작한 자기 평가서를 강사들에게 나눠준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눈을 마주쳐야 해요.”, “아이들이 손들지 않아도 얘기하게 해 주세요.” 말로 하면 잔소리처럼 들린다.(웃음) 그래서 항상 수업 전에 그 날 강의 계획서와 자기 평가서를 보고 스스로 진단할 수 있게 해드린다.
이수현 오늘 나온 얘기 중 좋은 예술가가 곧 좋은 예술교육가는 아니라는 말에 정말 공감한다. 예술교육에 관심 있는 예술가는 조금 다른 측면으로 다가가고, 대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연극배우 중 예술강사를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10~15년 전까지만 해도 예술교육을 부수적으로 생각하는 연극배우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진로를 아예 문화예술교육 쪽으로 바꾼 사람들도 많다. 이제는 문화예술교육이 독자성을 가지고 인정받고 있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순수예술을 하는 예술가나 공연단체가 예술교육과 만나는 지점이 더욱 많아져야 하는데 아직은 실질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다.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예술교육도 좋지만, 이러한 문화예술교육이 결국 예술을 향유하기 위한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앞으로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단계적으로 향유의 지점까지 도달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과 사업화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정선희 정책적 지원이 시작된 2005년에 비해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인지도나 필요성이 크게 높아졌고, 성과도 정말 많았다. 교육진흥원의 공모지원사업이 문화예술교육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프로그램이나 운영방식을 정형화시켜버린 점도 있는 것 같다. 대상만 확대하다 보니 프로그램의 질이 평준화되어 버린다. 문화예술단체가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보다는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방법과 정산에만 몰두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정책적 방향과 지원의 방식을 다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제환정 교육진흥원에 제안 드리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안전에 대한 부분이다. 특히 성인이 아닌 참여자들과 수업을 할 때는 신체적인 안전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인 부분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안전 문제가 발생한다. 대상의 특성을 고려해야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참여자들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내부에서 담임교사들과 사전 인터뷰를 해서 아이들의 특성과 성격, 장점 등을 미리 파악한다. 교육진흥원에서 이런 부분에 도움을 주거나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사업 보고에서 정량적인 보고 외에도 현장에서의 정서적 반응이나 강사들에 대한 자기 평가 진단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선희 오늘 다른 두 기관의 활동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공감이 되고 연계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걸 알았다. 이러한 소통창구가 앞으로 많았으면 좋겠다. 사례발표 외에도 조금 더 깊이 있게 논의하고 이런 구심점에 대해 어떻게 협력하고 함께 연계할 수 있는지, 서로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수 있는지 얘기해볼 수 있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한다.
바쁘신 가운데 참석해주시고, 좋은 의견을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국공립예술기관의 문화예술교육의 현재와 앞으로의 방향성, 고민의 지점들에 대하여 논의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저는 오늘 사회자이지만 국공립예술기관에서 교육사업을 기획하는 입장에서 교육진흥원에 바라는 점에 대하여 제언을 덧붙이자면, 문화기반시설에서 프로그램을 기획·운영 하려고 할 때 관련된 콘텐츠와 전문가와의 만남을 늘 기다리고 있다. 관련 콘텐츠를 다루는 기획자, 예술강사, 전문가를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얼마 전 웹진 [아르떼365] ‘만나다’에서 동영상으로 예술강사 인터뷰와 활동 모습을 봤는데 그런 콘텐츠가 강화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콘텐츠를 이야기하고, 의미가 담긴 현장이 촬영된 영상이 많았으면 좋겠다. 문화예술교육 콘텐츠가 공유되고 공개되는 일이 많아져야 다양하게 연결되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 관련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교육진흥원 홈페이지나 웹진 [아르떼365]가 담당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정보의 허브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앞으로 더 많이 고민해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원 대상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열려있는 지원 구조’를 만들고, ‘유연한 콘텐츠의 공유 구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정책 어젠다 보다는, 유연성을 어디서 어떻게 발휘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이수현
정동극장 공연기획팀 팀장. 두산아트센터와 (재)국립극단 프로듀서를 역임했고, 연극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예술분야에서 프로듀서로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정선희
미술관, 지역 커뮤니티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해왔으며 현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어린이문화원과 교육사업의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제환정
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 강의전담교수. 템플대학교에서 무용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부터 국립현대무용단 교육프로그램 자문 역할을 맡고 있다.
황지영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분야 학예연구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창립멤버로 교육개발팀장, 창의사업팀장을 역임했다. 문화예술교육 전문인력, 문화예술교육 정책 효과분석, 미술관교육을 주제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_ 마루스튜디오
- 정리 _ 상상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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