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부처간 협력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중에서도 예산이나 규모에서 가장 큰 사업이다. 전국에서 26개 문화예술단체가 선정되어 569개소의 지역아동센터에 강사를 파견하는 이 사업은 33억 원의 정부예산이 투여된다.
나는 이 사업에 전문가 모니터링 그룹의 일원으로 3년째 각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각 사업주체의 의견을 청취하여 소통을 촉발하고 문제해결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돌아보면 첫해에는 가는 곳곳마다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이 늘 그렇듯이 각 주체별 서로의 관점의 차이와 소통의 어려움, 미숙한 경험으로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80% 이상이 빈곤가정인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강사들은 그 만남 자체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든 경험이었다. “선생님은 누구세요?”라고 물어오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준비한 강사들의 커리큘럼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이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과도한 행정업무에 허덕이는 지역아동센터 교사들과 강사 모집만도 벅찬 운영단체들은 허둥대는 강사에게 마음써줄 여력조차 부족했다.
이렇듯 초기 혼란은 서로에 대한 낯섦과 모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와 같았다. 모니터링 그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주체의 소통의 통로를 만들고, 지역아동센터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강사 교육의 기회를 만들도록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지역아동센터와 운영단체, 강사들로부터 공히 사업의 지속성에 대한 요구가 있었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선생님은 누구세요?”라고 묻는 것은 “얼마나 있을 거예요?”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몇 개월 보고 못 볼 강사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그냥 스쳐 지나는 사람이지 선생님은 아니었다. 강사와 사업의 지속성은 사업 안정화를 위한 정책과제가 되었고 다행히도 올해부터는 3년 단위의 지원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각 주체들은 나름 안정적인 상황에서 새로운 단계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초기 혼란을 극복하고 나름 틀을 갖추어 안착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더욱 열심히 현장을 뛰고 있는 여러 강사들과 한 고비 넘겼다고 한숨 돌리고 있을 운영단체나 진흥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안정이 되었다고는 하나 이 사업이 가야할 방향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또 사업의 최종 목적인 예술교육을 통한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 문제는 결국 근본적 고민 지점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리는 예술, 예술의 사회적 역할
즉,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예술교육은 왜 필요한가? 그 교육내용에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고 변화를 일으키는 예술교육은 어떻게 가능할까?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누가 추진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 물음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실제적으로 구현된 경험이 없는 한국사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개인적 향유를 위한 예술에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삶의 예술 또는 사람을 살리는 예술에 대한 담론조차 형성이 안 되는 마당에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위한 예술은 사람을 살리는 예술이어야 한다. 예술의 의미는 그 과정에 참여하는 대상에 따라 다른 목적을 구현하는 것이지 원래부터 결정되어진 바는 없다. 예술의 기원이라고 할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는 집단 사냥을 위한 비언어적 생존 전술의 전달체계이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공동체적 교육이다. 따라서 예술은 원래 공동체 교육의 성격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다.
얼마 전 끝난 K팝스타4에서 Top4까지 올라간 릴리M의 스토리는 생존을 위한 예술의 역할에 대한 단편을 보여준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초롱초롱한 눈빛과 때 묻지 않은 맑은 목소리로 듣는 이를 감동시키는 릴리M의 노래를 들으면 ‘타고난 가수란 이런 아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구나’하고 쉽게 생각된다. 그러나 릴리M이 스스로 밝힌 노래하게 된 동기는 뜻밖에도 자신의 깊은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한다. 2009년 발생한 호주 빅토리아 대화재는 릴리M이 사는 작은 시골마을 주민의 절반을 앗아갔다. 그 중에는 릴리M의 친구들과 선생님도 있었다. 어린아이에게 닥친 깊은 트라우마는 심각한 우울증과 대인기피를 겪게 하였고 이것을 치유하기 위해 어머니의 권유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릴리M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깊은 마음의 병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당연한 기회
청소년 행복지수 OECD 최하위, 청소년 자살률 세계1위인 대한민국의 아이들의 모습은 릴리M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비참한 상황이다. 특히 빈곤의 대물림이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은 이미 많은 상처를 입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말하는 그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아이들을 살리는 것이 그리고 꿈꿀 수 있는 당연한 기회를 주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다. 그리고 분명 예술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1975년 시작된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El Sistema)는 예술교육을 통해서 예술이 어떻게 아이들을 살리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연주자를 다수 배출하고 현재 26만 명이 가입한 국가적 음악교육 시스템으로 성장을 하였으며 UN으로부터 빈민교육의 모델로 인정받는 등 화려한 외적인 성과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얼마 전 내한하여 “악기 빌리고, 임대료 내고, 동참할 사람들을 모으고, 이렇게 해서 시스템이 스스로 움직이게 될 때까지 30년이 걸렸다”고 한 엘 시스테마 창시자 아브레우 박사의 말이 더 큰 울림을 준다. 지역아동센터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이제 3년이 되었다. 이제 30년을 바라봐야 할 때이다. 문제는 누가 이 사업의 담론을 만들고 메시지를 던질 것인가이다.
지역아동센터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교육’이다. 소외된 아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공동체적 가치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사회교육은 시민사회와 함께 가야하며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려야만 지속 가능하다. 수혜인원을 늘리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정부 정책사업과는 경로와 방식의 차이가 있다. 급수차를 돌려서 물을 배급하는 것이 아니라 우물을 파는 것이 사회적 교육의 방법이다.
이 사업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예술교육이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의 기회를 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또 그것을 위해 더욱 열정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예술활동가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각자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곳곳에서 힘이 커가고 있다. 사업을 잘 하는 것만큼이나 멀리 보고 힘을 모으고 사회적 메시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 때가 온 것 같다.
- 조주현_학교밖청소년배움공동체디딤돌 대표
- leo1968@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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