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 학교

전효관|시민문화네트워크 대표, 기획운영단장<!– | nanaoya@hanmail.net–>


교장이 없는 학교, 청소하는 교사.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등교와 하교 시간의 모습.

사물과 타자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요구하는 수업시간.

놀이와 예술을 통해 배우는 학습과정.

역사 속 인물이 되어 편지를 쓰고 있는 역사 수업.

교사와 학생 사이의 거리가 소멸해버린 듯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중앙방송에서 만들어진 <이것이 미래교육이다> 시리즈 1편인 <슈타이너 학교-교육은 예술이다> 편은 상상 속의 학교 하나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삶과 배움이 일치해야 한다는 교육 목적이 구현된 현장 사례를 통해, 활기찬 학생들의 모습과 ‘영성’이 넘치는 교사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한 경쟁을 합리화하는 우리의 현실을 아프게 상기시킨다.


물론 해외의 사례를 보면서 그것을 이상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거나, 또 그러한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은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 불구하고 안되는 이유를 현실이나 조건의 문제로 환원하는 방식 또한 무력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영상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교육 철학이 스며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밀도있는 준비와 지속적인 성찰 작업이다. 교사는 평생을 통해 자신의 방식을 계속 완성시켜가야 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그렇기에 교사교육과정에서 자신의 특성을 알아가는 작업이 거듭 강조되고 있다. 배움은 상호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에 상호작용 능력을 향상시키는 과정이 교사의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되고 있다.

이 학교를 관통하고 있는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높은 예술의 단계가 교육이다”라는 정식화일 것이다. 슈타이너 학교에서 예술을 강조하는 것은 예술의 교육적 가치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감각을 일깨우고, 자신을 자각하고, 다양한 감정을 경험함으로써 사물에 대해 구체적인 이해를 돕는 것, 그리고 나아가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자발적 체험을 통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예술이 가지는 교육적 가치에 주목한다. 몸을 움직이고, 작은 소품을 만들어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일상의 소리를 느끼는 모든 학습과정에서 미적 체험을 강조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기를 요구하는 것 등은 “교육은 예술이다”라는 정신이 학습과정에서 구체화된 사례들이다.



슈타이너 학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밌는 사례는 교과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사는 학습과정에서 경험한 것을 기록하고, 학생들은 학습한 것을 나름의 방식대로 정리한다.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노트들은 수업을 통한 상호작용의 기록물이고, 이 경험 자료들이 교과서로 기능한다. 서로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는 그 과정 자체가 좀더 창의적인 수업을 가능하게 하는 재량 범위를 허용하고 있고, 그 여지를 채워가는 것이 학습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하자면 허용된 자율성의 공간은 교육이란 섞이는 것이라는 철학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술 시간에는 젖은 도화지를 사용한다. 그것은 색이 섞이는 경험을 제공하고 나아가 그 속에서 색을 조절하는 방식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음악 수업에서 오케스트라가 강조되는 것도 각각의 소리를 찾되 그 소리의 어우러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개인과 전체와의 관계, 나와 공동체와의 관계를 찾아야 한다는 교육의 소망 자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잘 고안된 장치들이 인상적이다.



슈타이너 학교, 발도로프 교육의 철학에 관한 글들이나 강의는 우리 사회에서도 적지 않게 소개되었다. 인간의 발달단계를 구분하는 근거들이나, 그에 따른 학습 목적의 설정 등의 이야기도 여러 가지 이론적 근거로 논의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논의를 적용시켜내면서 현장지식, 경험지식으로 만드는 실천이 아닐까.



문화예술교육, 그 과제의 달성 여부는 서로의 경험과 딜레마를 공유하고 이를 번역가능한 형태로 자료화하는 데 달려있을 것이다. 단순히 학교 교육을 문제화하기보다는 작은 실천의 경험들을 격려하고 조건을 개선해나가는 실천 속에서 ‘교육’을 둘러싼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슈타이너 학교에 대한 영상물은 바로 이런 생각들에서 머물게 한다.


[사진출처 <기전 문화예술> 2003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