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판사로 새 삶을 살게 한 감동의 명곡

 

내가 정식으로 노래 레슨을 받기 시작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 프리마돈나로 한 시절을 풍미한 소프라노 곽신형 교수님께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는 곡이 무엇이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당시 곽 교수님은 “글쎄, 어떤 한 곡을 꼭 집어서 말하기가 곤란하네요. 노래를 하면 할수록 곡마다 갖는 맛과 아름다움 때문에 그 곡들을 다 사랑하게 되거든요.”라고 답변하신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 ‘내 마음을 움직인 한 곡의 음악’이라는 주제의 원고청탁을 받고나서 그동안 성악의 거장들로부터 들었거나, 내 단골 레퍼토리였던 수많은 아리아와 가곡들 중 어떤 곡을 선택할 지 고민에 빠졌다. 돌이켜 보면 내가 성악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지평을 넓히면서 접했던 수준 높은 곡들도 모두 소중하지만, 그보다는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시절, 내게 음악적 감동을 선사해서 성악가의 꿈을 꾸게 하고 성악인생의 길로 이끌었던 곡이야말로 ‘마음을 움직인 소중한 곡’이라고 할 수 있을 듯싶다.

 

통일에 대한 염원을 드라마틱하게 담은 우리 가곡

 

당시 고교시절 숭실합창단 천상의 화음으로 들려준 ‘평화의 기도’, ‘주의 크신 은혜(미국 민요 ‘애니로리’를 개사한 성가곡)’, ‘그리운 금강산’도 떠올랐고, 고등학교 때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World famous arias’ 테이프를 통해서 들었던 주옥같은 아리아들, ‘O sole mio’ 등 이탈리아 가곡과 칸초네, 성악곡이 아닌 피아노 음악에도 심취하게 해주시고 정식 노래레슨의 길로도 인도해주신 피아니스트 서혜경 교수님의 애창곡 Lizst 편곡의 ‘Widmung(헌정)’과 ‘Rachmaninov 피아노협주곡 2번’도 생각난다. 이 곡들과 음악가들이 법관생활을 하면서도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틈틈이 무대에 오르게 하는 초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 곡을 뽑으라면 불후의 한국 가곡인 ‘그리운 금강산’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숭실고등학교 입학 무렵,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나 또한 질풍노도의 시기와 함께 온통 학원폭력으로 얼룩진 주변상황으로 인해 숨이 막혀가고 있었다. 그때 입학식과 함께 들을 수 있었던 숭실합창단의 노래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입학생의 갈급한 영혼에 뿌려지는 한줄기 오아시스와 같은 천상의 소리였다. 그 감동이 오죽했으면 그 혈기방장(血氣方壯)한 남학생들이 주로 중창연습을 하면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보냈겠는가!

 

그중에서도 ‘그리운 금강산’은 우리 가곡 특유의 애상적인 분위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한반도 최고의 명산인 금강산으로 상징되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드라마틱하게 담고 있는데다 굵은 베이스음과 가녀린 테너음으로 엮여진 남성합창이 그 호소력을 배가시켰다. 1980년대 초반, 아직 사회적으로 통일이나 남북교류의 분위기는 전혀 태동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나 또한 현실사회에 대해서는 아는바 전혀 없었지만,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나의 청춘의 열정을 불사를 수 있었고, 어렴풋하게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도 담을 수 있었다.

 

성악인생의 시작과 끝을 장식할 노래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던 1984년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 크고 작은 각종 모임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고, 부르는 나와 듣는 친구들 사이에 나름 감동의 물결이 흘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인 2004년 사석에서 피아니스트 서혜경 교수님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반주를 해줄 테니 노래를 해보라는 권유에 곧바로 내 마음 속에 늘 담겨 있던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그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음악관계자로부터 자신이 개최하는 음악회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서혜경 교수님의 권유로 정식 노래레슨을 받은 뒤 처음 선 공식무대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첫 곡으로 불렀다. 또 지난해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렸던 생애 첫 독창회에서 특별출연한 서혜경 교수님의 반주에 맞춰 피날레 앙코르곡을 장식한 곡도 바로 ‘그리운 금강산’이다.

 

2007년 모교인 숭실고등학교에 초대되어 ‘선배와의 대화’ 시간을 갖고 전교생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재단이사장이신 김창걸 장로님(나의 재학시절 교장선생님으로 계셨다)의 요청으로 후배들에게 불러준 노래도 그리운 금강산이다. 그리운 금강산은 나의 성악인생에 있어서 시작이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마지막이다.

 

지난 6월에 열린 ‘테너 김신환 국제성악콩쿠르 개최 기념 음악회’에서 출연자 모두가 마지막 곡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합창할 때는 벅찬 감동을 갖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그날 국제성악콩쿠르 발기인이었던 작곡자 최영섭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뵐 수 있어 감개무량했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내한공연 때마다 그리운 금강산을 한국사람보다 더 똑똑한 발음으로 들려주어 벅찬 감동을 선사한 것처럼 그리운 금강산이 세계인들 사이에서 애창될 날이 곧 올 것을 기대해본다. 아울러 음악을 통한 전인교육을 지향하셨고, 자칫 암울할 수도 있었던 나와 친구들의 학창시절을 살맛나고 풍요롭게 해주셨던 김창걸 장로님의 명복을 빈다(지난 7월에 고인이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