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예술센터에 거는 기대

남산에 있는 옛 드라마센터(현 남산예술센터)에 처음 가본 것은 대학에 입학하던 지난 1983년의 일이다. 같은 해 서울예대에 입학한 ‘예술가 지망생’을 친구로 둔 덕분에 당시 서울예대 캠퍼스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던 드라마센터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던 것인데 그때 나는 두 가지 사실에 크게 놀랐다.


하나는 수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학교치고는 캠퍼스가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사실 서울예대는 1962년 문을 연 드라마센터를 터전으로 세워진 한국연극아카데미와 서울연극학교가 그 출발점이다. 이후 영화과, 무용과, 문예창작과, 사진과, 국악과 등이 생겨나면서 규모를 키우고 이름도 서울예대로 바꿨지만 대학 캠퍼스는 여전히 드라마센터를 중심으로 한 몇 개 부속 건물에 한정됐다. ‘미래의 예술가’들이 원대한 꿈을 키우기엔 캠퍼스가 너무 좁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때 나는 했던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드라마센터라는 그 작은 공간이 줬던 아주 특별하고도 강렬한 인상이다. 나는 아직도 그곳을 ‘마법의 공간’으로 추억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반원형의 개방형 무대와 그곳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계단 형태의 객석, 그리고 극장 안을 가득 채웠던 젊은 예술가들의 뜨거운 열정이 주는 묘한 기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좀 과장하자면 그곳에서 연극의 기초를 다졌던 젊은이들의 열정이 한국 연극의 미래를 예비하는 힘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드라마센터의 새로운 변신그런데 지난 2001년 서울예대가 경기도 안산으로 캠퍼스를 이전하면서 드라마센터는 텅 빈 공간으로 버려진 채 방치됐다.

젊음을 잃은 드라마센터는 을씨년스러운 ‘헛간’으로 변해갔고 새로운 연극을 꿈꾸며 남산으로 모여들던 학생들의 모습도 자취를 감췄다. 1970∼80년대 한국 현대연극의 거점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드라마센터가 긴 잠 속에 빠져든 것이다. 그러던 드라마센터가 ‘남산예술센터’라는 새로운 간판을 내걸고 9월부터 다시 문을 연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일에는 이달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시즌작을 발표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남산예술센터 운영을 맡게 된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정통연극 중심의 명동예술극장과 함께 연극 제작 전문 중극장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며 “남산예술센터는 더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무대를 꾸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9월 11일 첫 무대에 오르는 개막작 <오늘, 손님 오신다>에서부터 한국 공연예술의 실험무대를 자임하는 <페스티벌 장(場)>, 노래에 연극적 요소를 가미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드라마 콘서트, 12월 선보이는 창작극 <운현궁 오라버니>까지 올 한 해 선보일 레퍼토리들도 기대를 모은다. 오래전 그곳에서 연극을 올렸던 젊은이들이 보여줬던 열정과 패기, 그리고 자유로움이 이들 작품에서도 어렴풋이 읽힌다는 건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쪼록 남산예술센터가 새로운 문화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