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 하기’의 실제 : 현장기고


 

이제는 사회적 기업이다?! ① 전문가 대담 바로가기

이제는 사회적 기업이다?! ② 사회적 기업 탐방 바로가기

 

2010년 1월 대학로에서 40여 개의 문화예술분야 예비 사회적 기업 운영자들을 모아 진행한 단체 교육에서 노동부 관계자는 “이 중 사회적 기업이 될 수 있는 단체는 하나 있을까 말까입니다.”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드러냈다. 예술가와 예술단체의 경영합리화와 성공가능성에 대한 정부기관의 불신을 체감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다.

 

사회적 기업, 그 어려운 발걸음

 

사회적 기업이 예술단체에게 걸맞는 옷이냐, 아니냐는 논쟁과 우려 속에서 문화부-노동부의 MOU체결을 통해 예비 사회적 기업주 1을 시작한지 1년하고 8개월이 지났다. 필자가 소속된 단체의 구성원들은 처음에는 사회적 기업을 “국가에서 예술인들에게 월급을 주는 제도다”라고 이해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신규고용창출’이라는 정책 목표를 위해 기존 단원들은 이미 고용된 근로자로 간주되어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체에 소속된 예술가라 할 지라도 어차피 ‘고용 & 임금’과는 거리가 먼 삶이니, 그들을 일자리사업의 대상으로 참여시키는 것 역시 사실상의 신규고용창출로 볼 수 있을 법도 하지만, 예술단체만 예뻐할 수 없는 포괄적 정책의 틀은 그리 유연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예비 사회적 기업 운영의 어려움은 출발했다.

 

단체를 일군 이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없다는 한계를 감수한 후 부딪힌 큰 어려움은 주 40시간 근무제 도입이었다. 예비 사회적 기업 지원금(매달 나오는 임금 지원금)은 시간급 단위로 계산되는데, 2010년을 기준으로 주 40시간을 일해야 한 달에 858, 990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80만 원대의 초라한 월급보다 예술가들에게 더 곤욕스러운 것은 하루 8시간씩을 꼬박꼬박 연습실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업종의 특성상 공연기간과 아닌 기간의 근무시간은 고무줄처럼 달라지게 마련인데, 80만 원이라도 받으려면 거두절미하고 주 40시간을 채워야 했다. 단원들에게는 예비 사회적 기업 제도를 설득하고, 노동부에게는 예술계의 특성을 반영해달라고 호소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한쪽에서는 빡빡한 기획자로, 다른 쪽에서는 온갖 떼를 써대는 예술단체 담당자로 찍히기를 반복했다. 대안을 찾아보기 위해 노동법도 찾아보고, 노무사에게 수차례 문의도 해보았다. 하지만 애초에 예술가를 노동자로 고려하지 않고 만든 노동법에서 예술단체에 적합한 근로체계를 찾을 수는 없었다.주 2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적게 일하고 적게 받아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풀타임’으로 일해서 받아가는 돈이 80만 원 남짓인 상황에서 그보다 더 적게 받아가면 되지 않냐고 말하기가 운영자로서는 참으로 민망하고 미안한 일이었다.

 

예술은 과연 시장 경쟁에 적합한 것일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돈 많이 벌어서 노동부 지원금에 회사가 더 보태서 주면 될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공연예술로 매월 고정급을 채워줄 수 있을 만큼 수익창출이 안정적이라면 뭐하러 굳이 절차도 운영도 까다로운 지원금 사업에 참여하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본다. 보통의 사업가 입장에서 바라보면 ‘정부가 임금도 지원하고, 세금감면도 해주는데 상업적으로 성공을 못한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고민이 여기에까지 이르면 이야기는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과연 문화예술이 시장경쟁에 적합한 아이템일까? 예술단체에 임금을 지원해 주고,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아보라고 하는게 정당한 요구일까? 드물게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문화상품은 특이사례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상업적 성공을 못하고 있는 우리가 특이사례인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사회적 기업 정책에 참여하는게 맞는 일일까?

 

예비 사회적 기업에 뛰어든 많은 이들이 이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지 못한 채 “우선 지원해 주는 기간 동안은 최대한 지원금을 받고 보자”는 마음으로 사업을 지속한다. 즉 매 정권마다, 시기마다 이름과 형식이 조금씩 바뀌는 예술지원정책의 또 다른 형태로 사회적 기업을 바라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시각이 “최대 지원기간인 5년이 끝나면 뭔가 또 다른 정책이 시행되겠지”라는 안일한 기대감을 부른다는 것이다. 이런 안일함이 자칫 “문화단체는 지원해줘 봐야 질적 성장을 이룰 마음이 없더라”는 정책적인 역풍으로 돌아올까 걱정한다면 지나친 우려인 것일까.

 

‘직장인’이 된 ‘예술가’들의 낯선 모습

 

그나마 이런 거시적 고민은 공개적인 논의의 ‘깜’이라도 된다. 행정이나 정책으로 가시화되지도 않으면서 지속적이고 근본적으로 단체를 흔드는 일은 오히려 멤버들 사이의 관계 변화였다. 예비 사회적 기업 이후 새로 뽑은 단원들과는 이전과 달리 고용주-피고용인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처음에는 그 의미가 와닿지 않았다. 헌데 이런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식대는 회사에서 제공하나요?” “명절 휴가비는 나오나요?” 물론 당연히 물어볼 만한 질문이다. 하지만 이전에는 빠듯한 사정인 걸 다 아는 처지에 써도 같이 쓰는 것이고, 아껴도 같이 아끼는 것이었다. 즉 ‘지급할 의무’와 ‘받을 권리’라는 긴장감이 없었다. 그러나 고용관계 성립 이후에는 양자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생겼고, 이것이 때로는 사람을 난처하게도 때로는 섭섭하게도 했다. 이후 회계자료 공개, 비전 공유, 운영원칙 토론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2년 차에 접어들 무렵부터는 단원들에게도 오너십Ownership이 생겼다. 이를 통해 다행히 ‘예술적 동지’와 ‘직원으로서의 멤버십’ 간에 균형을 이뤘지만, 초기에 이런 갈등을 잘 갈무리하지 못한 몇몇 단체들은 잦은 인력교체로 사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예술가들에게는 낮설기만 한 지출결의서, 휴가신청서, 결재선, 성희롱예방교육 등 경영시스템 구축 과정의 피곤함을 다 열거하기란 끝이 없다. 그렇다고 예비 사회적 기업을 통해 힘겨운 기억만 쌓은 것은 아니다. 예술가 ‘동인’에서 ‘기업’으로 전환을 하는 과정은 우리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콘텐츠 제작부터 판매 및 재판매 유도에 이르기까지의 수익창출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체계적이지 못한 관리로 조직의 역량이 낭비되고 있는 영역은 어디인지 등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따져보게 했다. 현재 필자가 속한 단체의 업무분장과 회의체계, 단체 자금 사용 및 관리, 인력 관리의 원칙 등은 이런 낮선 질문들에 대답하고, 논쟁하고, 설득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구축한 것들이다. 사회적 기업을 다른 기금 사업과 동일한 지원사업으로 보지 않고 조직의 질적 전환의 계기로 삼는 단체라면 이런 과정을 동일하게 거쳐 가리라 짐작한다.

 

‘시즌 2’의 전환기가 될 수도

 

칼럼을 쓰면서, ‘사회적 기업 하기’의 실제에 대해 뭐라 딱 꼬집어 정리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가 뭘까? 그러다가 복잡한 양상 그 자체가 사회적 기업 하기의 실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기업은 먼저 겪어본 선배 ‘사업가’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것처럼 “조직 전체를 들었다가 놓는 일”이다. 조직의 한 영역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모든 부분을 바꾸는 것이다. 하나를 해결하려고 손을 대면 고구마 줄기처럼 고민거리들이 줄줄이 엮이어 나오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래서 필자 역시 사회적 기업 하기에 대한 권고가 조심스럽다. 다만 내공 쌓기에 이미 충분한 시간을 쏟은 단체라면, ‘시즌 2’를 찍는 마음으로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게 시즌을 거듭하다 보면, 정말로 예술이 사회를 바꾸는 가장 적합한 매개체가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주 1) 혼란을 피하기 위해 미리 용어를 정리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사회적 기업’은 임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기업에 대한 인증제도다. 일종의 KS마크 인증처럼 “이 회사는 나라에서 인증한 사회적 기업입니다”라는 보증인 것이다. 한편 ‘예비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는 실질적으로는 근거법이 없는 임의 명칭으로 사회적 기업 인증을 목표로 정부의 일자리창출사업에 참여한 회사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예비 사회적 기업의 정확한 명명법은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 참여 단체’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업이 임금을 지원받는 사업이다. 필자가 소속된 단체도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단,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가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정부 일자리창출사업의 지자체 위임 형태이다.

 

주 2) 흔히 ‘노동법’이라 불리는 현행 근로기준법은 과거 열악했던 공장근로자의 처우 개선과 최소한의 권리 보장을 위해 만든 것으로, 예술노동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노동부도 이러한 배경 하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으로 예술단체를 관리하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껴, 재택근무 일부 허용, 보상휴가제의 유연한 적용 등 대안을 강구하고 있다.

 

글_이진혁(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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