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이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되면서 음악 세계에서도 여러 음악인들이 그 대열에 함께 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는데요. 바로 자연과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음악인들의 대답 ‘사운드스케이프’ 운동입니다. 사운드스케이프 운동을 하는 음악인들은 지금 당장 문을 열고 귓가에 들리는 다양한 소리들이 곧 음악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을 닮은 음악을 넘어 도시를 닮은 음악, 소음 환경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한 이 아름다운 운동에 대해 김병오 음악학자와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한해 가운데 가장 풍성한 절기인 한가위, 이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길을 나설 바쁜 채비를 한다. 조상들 모신 자리를 찾아가 깔끔하게 벌초도 하고 차례도 지낸다. 현대 대도시를 근거지로 살아가는 이들은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게 되면 청각적으로 매우 낯선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현대 도시에서 청각적 풍경의 주인은 자동차와 상점, 공장의 기계들이겠지만 전통적인 시골 마을의 청각적 풍경은 아직도 자연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새소리, 벌레소리, 바람소리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청각적 풍경 속에서 평온과 안식을 느끼곤 한다.

 

청각적 작용이라는 연장선 속에서 바라보자면 음악 안에도 그와 같은 특성이 있을 게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자연을 닮게 마련이라 그렇다. 초원에서는 초원을 닮은 음악이 바다에서는 바다를 닮은 음악이 등장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대적인 도시에서 그 도시를 닮은 음악이 등장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근 들어 크게 유행하고 있는 기계음, 전자음 중심의 음악들이 바로 그러한 사례가 될 수 있을 터인데, 매우 경쾌하기도 하고 강렬한 톤이 전해주는 매력이 적지 않은 음악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마음의 안식을 얻듯이 음악 분야에서도 번잡한 대도시를 벗어나 자연 친화적인 심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은 계속되어 왔다.

 

시대의 흐름을 감안할 때 1960년대에 이르러 음악 분야에서 도시의 음악, 음향적 풍경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지닌 이들이 등장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캐나다 출신의 작곡가 머레이쉐퍼(R. Murray Schafer)와 그의 동료들은 현대 문명에 대한 반성적 입장으로부터 비롯된 환경운동에 대한 음악적 대답으로서의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운동에 나섰는데 현대 도시 사회의 음악, 음향적 환경 혹은 풍경에 대한 비판과 대안 운동의 출발이었다. 이들은 일상에서 발생되는 소리들을 기조음(keynote sound), 신호음(sound signals), 사운드마크(soundmark: 랜드마크의 비유적 표현) 등의 요소로 분별하고 도시의 음향적 오케스트레이션을 위한 소재로 삼았다. 전통적으로 악음(樂音)이 아닌 소음(騷音) 영역의 요소들이었지만 한 세대 앞선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쉐퍼(Pierre Schaeffer)의 구체음악(musique concrete) 실천에 의해 이미 그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운동의 출발을 알린 머레이쉐퍼의 저서 사운드스케이프 및 그가 창작한 현대음악 악보

 

돌이켜보면, 우리가 늘 접하며 살아가는 거리의 자동차들, 기차와 공장, 공사장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음들은 현대 도시 문명이 형성되기 전에는 만날 수 없었던 낯선 음향적 풍경이다. 20세기와 더불어 느닷없이 등장한 오디오 기기들 또한 마찬가지다. 새로운 발명품들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늦은 밤까지 거리 골목골목에 시끄러운 소음을 야기했다. 이렇게 형성된 현대 도시의 음향적 환경은 공해의 일종으로 다루어지게 되었고 개선이 필요한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1968년 일본에서 소음공해 관련 법안이 세계 최초로 제정된 이래 지구촌 대부분의 법과 제도가 낮과 밤, 주거지와 공장 지구 등의 구분에 기초하여 음량(dB) 상한선을 책정하는 규제 방법만을 제시해 왔다면, 사운드스케이프 운동은 소음 환경을 감성적인 질료들로 간주하여 다루기 시작했고 청각적 풍경을 재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하였다. 이는 환경 위기에 대한 음악인들의 가장 적극적인 대응이었다.

 

사운드스케이프 운동은 이후 많은 관심과 동조자들을 이끌어냈고 음향생태학(Acoustic ecology)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탄생시켰다. 환경보호를 위한 실천이 대체로 그렇듯 단기간에 성과를 과시할 수는 없었지만 몇몇 선진국들은 사운드스케이프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포용하였고, 그 결과 공공 행정 및 예술 분야에서 음악, 음향적 대상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게 되었다. 장르와 취향으로 분화되고 서정으로 개인화된 여타 현대의 음악들과 달리 모두를 위한 음악을 꿈꾸었고 한편으로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갖는 경쟁의 논리에서 벗어나 전통 사회의 음악적 본령인 치유와 공동체성의 회복을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풍수지리학에서 명당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했던 것처럼, 고향 가는 길에서만 아름다운 청각적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늘 아름다운 청각적 환경으로 만들어 나가려는 것, 바로 사운드스케이프 운동이 주창하는 바다.

 


요세미티국립공원(미국) 사운드스케이프 지도와 음향설치작품 The Singing Ringing Tree (영국)
 

– 세계 음향 생태포럼 :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

 


김병오 음악학자





글쓴이_ 김병오 (음악학자)

전주대학교 연구교수, 라디오 관악FM 이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음악사를 전공했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OST 작업 및 포크 음악을 토대로 전통음악과의 퓨전을 추구하는 창작 작업을 병행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소리의 문화사』가 있고, 「한국의 첫 음반 1907」, 「화평정대」, 「바닥소리 1집」 등 국악 음반 제작에 엔지니어 및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