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의 겨울 아침, 맑은 공기와 밝은 볕을 품은 찻집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그는 별안간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나타났다.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3박 4일 일정으로 고창으로 향한다 했다. 농악에서 상모의 물채 끝에 새털이나 종이로 만든 장식인 부포를 달고 돌리며 펼치는 상모놀이를 배우러 간다는 거다. “다채로운 서식지에서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해온 그의 예술 활동이 또 다른 길을 틔우는 듯했다.
‘노래하는 옥수수’라 스스로를 호명하는 김주혜는 “아름다운 노래, 정상적인 음악, 예술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성매매 여성과 노동자, 장애인 등의 곁을 지키며 여러 현장에서 노래해 왔다. 예술 활동의 과정이자 결과로서의 예술교육이란 어떤 모습일지, 예술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어떻게 가능할지 그의 진심을 귀 기울여 경청했다.
‘노래하는 옥수수’ ‘구례 옥수수’ ‘떠도는 별 옥수수’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옥수수를 명패 삼은 계기와 의미가 궁금하다.
대학 시절 풍물패 동아리에서 선배들이 붙여준 이름인데, 옥수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건 성매매 여성,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면서부터다. 성매매 여성들은 대부분 일하면서 쓰는 이름이 따로 있다. 성소수자 공동체 내에서도 사회적 편견과 차별 때문에 법적인 이름을 쓰기를 꺼렸다. 그런 공동체 문화 속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옥수수라는 이름이 더 쓸모 있어 졌다. 최근 기후위기나 동물권에 부쩍 관심을 두고 몰입하게 되었는데, 옥수수라는 이름이 가진 생명력이 더더욱 좋아졌다.
6년 전부터 지리산 자락, 구례에 뿌리내리셨다. 이 지역이 선생님을 유인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전국 방방곡곡 비어있는 집들을 유랑하며 살아왔다. 지리산이나 섬진강에 이끌렸다기보단 마침 그때 구례에 빈집이 있었던 거다. 처음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을 땐 완벽히 낯선 타인이었다. 저나 이웃들이나 피차 다가가기 힘들어했다. 그런데 동네 꼬마들이 저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귀신이 살 것 같던 낡은 빈집에 낯선 사람이 들어와 신기했던지 이름이 뭐냐, 어디서 왔냐, 이것저것 캐묻더라.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유치원생들이었는데 어린 친구들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그 가족과 연결되고 이웃과의 교분도 점점 더 넓혀 나갔다.
구례의 이웃들과 함께 노래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특히 어린이나 노인분들과의 예술적 교감을 나눴다. 지역주민을 위한 예술교육이 구례에선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구례에 와서 신기했던 점 중 하나가 집집마다 차탁을 구비해 차 문화를 만끽하던 모습이었다. 도시에서 으레 마시던 커피와는 또 다른 멋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섬진강을 뜻하는 이름을 붙인 ‘잔수 농악’도 흥미로웠다. 생업의 노동이 영적이면서도 예술적 의례로 발전된 훌륭한 음악적 사건이라 여겼다. 구례의 오일장도 각별했다. 씨앗을 심고 농작물을 키우고 시장에 내어놓는 장면까지 문화적 양식이 스며있었다. 그렇게 고유의 문화가 튼튼한 뿌리를 내렸는데도 문화예술교육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문화예술 소외지역이라 자조하면서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선진문화를 습득한다는 의의를 내건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인가 하면,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며 관광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교육도 만연했고. 그런데 문화예술은 어떤 것이 앞서 있고 뒤처지는 것이 아니잖나. 지역의 다양한 삶과 좋은 문화적 씨앗을 키워가는 것이 아닐까. 시인과 화가, 줄풍류, 바느질장인, 여성농악 고수 등 풀뿌리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구례의 문화를 많은 이들과 공평하게 펼쳐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구례의 예술가들과 다양한 협력을 일구고 있다.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구례 고유의 문화적 DNA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2020년 여름, 심각한 수해로 구례 읍내 전체가 물에 잠겼던 적이 있다. 아무리 비가 내려도 평소 섬진강 댐의 물을 꾸준히 방류했더라면 괜찮았겠지만, 대도시와 산업단지 위주로 전기와 물을 관리하다 보니 뒤늦게 한꺼번에 방류하다 큰 피해를 보았던 거다. 구례에서도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았던 사람 중에는 1인 가구 어르신들이 있다. 댐에서 방류한 물이 구례까지 다다르면 어디까지 잠길 거라는 정보를 가장 늦게 접하셨으니까. 홍수가 난 이후 정상 생활로 되돌리기 위한 여러 대책이 가동됐을 때도 지원품과 지원금 같은 혜택을 가장 부실하게 제공받은 분들도 홀로 사시는 노인들이었다.
당시 구례 오일장 근처에 개관한 지 1년도 안 된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이름이 ‘산보고 책보고’라 줄여서 산책 도서관이라 불렀는데, 1층은 물에 잠겼어도 2층은 그나마 상황이 나았었다. 도서관 운영진이 이 도서관을 구례의 거점 대피소이자 휴식처로 전환하자며 뜻을 모았다. 코로나까지 겹쳐 웬만한 공공기관이 문을 걸어 잠그며 공적 시스템이 시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때 서로를 따뜻이 보살필 수 있는 자치적이고 자발적인 공간을 내어드리고 싶었다. 도서관 문을 활짝 열어 복구 작업하시는 분들께 물품과 쉼터를 제공하고 독거노인들께도 반찬을 만들어 드리는 등 지역주민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던 거다. 어린 친구들도 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었는데, 이웃 수재민에게 물품을 나눠드릴 때 어떻게 하면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예쁜 포장 방법 등 미적 양식을 고민하게 되더라. (웃음)
수해가 복구되고 구례에서 첫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고생 끝에 오랜만에 가게들이 열리는 순간을 기념해 노래로 기원을 해드리고 싶었다. 지역의 작은 풍물패를 섭외해 모든 액운이 물러나길 바라며 고사를 지냈다. 나도 노래를 불렀다. 아직 피해가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풍악을 울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주민도 계시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의외로 따뜻한 호응을 얻었다. 재난으로 전환되었던 도서관의 역할. 달랑 지원품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를 이웃과 함께 모색했던 이런 순간들이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술이 나아갈 방향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재난 상황에서 구례 공동체가 지닌 유연하고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전환능력을 느꼈다. 스스로 삶을 존엄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실천을 ‘예술’이라고 해석한다면, 이런 재난이 닥쳤을 때 도서관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린 쉼터이자 지원센터로 전환할 수 있는 공동체의 능력이야말로 예술의 실천을 번성하게 하는 좋은 토양인 것 같다.
‘낙인찍힌 사람들이 가진 특별한 서사’에 주목하며 노래를 지었다. 평택이나 소성리 등 다양한 쟁의현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음악 작업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고발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사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불의에 맞서기보다는 오히려 피하고 싶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려온 동료나 지체 장애가 있었던 남동생의 삶을 외면했던 일도 있었다. 곁에 있어 달라고 도움을 청한 사람을 거절했던 수치심과 패배감에 싸인 채 살 수는 없어서 여러 활동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취약한 구석이 있다. 내가 취약했던 순간에 내 곁에 있어 준 사람 중에는 장애를 가진 남동생도 있다. 초라하고 작아 보이더라도 누구나 자신이 가진 힘으로 다른 존재를 돌보는 거다. 내가 특별한 능력이나 감각이 있어서라기보다 다른 존재들이 내게 줬던 것을 나 역시 돌려줄 뿐이다.
장애여성합창단과 함께한 경험도 있다. 음악적 소통이 발달장애인에게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일반인이 가진 선입견을 타파할 고유의 경험이 있다면 공유해달라.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목이라는 자신의 꿈을 얘기하며 희망에 차 있던 남동생의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왜 그런 꿈을 갖게 되었을까, 여러 생각에 골똘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고 장애여성으로 구성된 합창단과 협업을 제안받았을 때도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다. 남동생 덕택이다.
장애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특별한 소리가 있다. 어느 때는 괴성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각자의 호흡과 속도로 말하면서 호흡 사이사이 신체적 장애 혹은 고유함에서 나오는 다양한 소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소리를 ‘정상성’이란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는 것이다. 합창 시간이 시작되면 우선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는데, 본인이 가진 몸의 고유한 특징,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다양한 선호도를 보여준다. 개인별로 언어적 습관이나 신체적 조건이 다르니까 대화법을 터득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들의 대화 중 자주 쓰는 단어는 무엇인지 그 의미와 맥락이 특별하진 않은지 서로 학습해야 하고. 그렇게 공유한 노래나 단어 중에서 유의미한 낱말을 추려 가사집을 만들었다. 그리곤 가장 편하게 풀어갈 수 있는 음정과 호흡을 찾아 노래를 짓는다. 소위 정상성이란 굴레에 갇히지 않고도 장애인 고유의 신체와 언어를 반영한 음악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거다.
대학에선 미술비평에 주력하는 ‘예술학’을 전공했고, 졸업 이후에도 ‘미술 속 페미니즘’을 강연하는 등 본디 활동영역이 미술에 가까웠다. 그러다 음악으로 전격 전환했는데, 사회적 불평등을 고발할 매체로 미술이 아닌 노래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순간을 함께 한다는 ‘감각의 공유’에서 음악은 대체 불가한 힘을 가지고 있다. 힘겹고 고독한 순간에 누군가 옆에 있어 주는 일이 문화예술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 노래가 그렇게 취약한 순간과 현장에서 잔잔한 공명으로 힘을 불러일으키길 간절히 바란다.
후대 사람들이 ‘노래하는 옥수수’를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는지 궁금하다.
기억에 남지 않고 사라지는 게 가장 좋겠지만(웃음) 그보다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내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이 각자 자기 방식대로 나를 기억하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다. 트랜스젠더인 친구의 장례식이 기억난다. 법적으론 여성이지만 남성으로 살아가던 친구였는데, 가족부터 그 상황을 숨기길 원하는지라 친구의 이름도 친구에 대한 기억도 제대로 나눌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까웠다. 그러니 내 장례식에선 사람들의 모든 기억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옥수수는 굉장히 웃기는 사람이었고, 어떤 이에겐 난잡하고 더러운 사람이었는가 하면, 누군가에겐 나약하고 쓸데없는 짓을 잘하는 사람으로 떠올릴 수 있겠지.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구례에서 어떤 예술 활동을 펼쳐가고 싶은가.
주변 지인들과 나눈 작은 약속을 꾸준히 지켜가려고 한다. 우선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여성농악에 제대로 몰입해 보고 싶다.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아이들과 ‘지리산게더링’이라는 모임에서 만든 숲에도 가끔 가기로 했다. 클라리넷을 배우고 있는데 수업 끝나고 선생님과 가끔 막걸리도 마시고 싶다. 이렇게 약속으로 이어진 작은 관계들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길 바란다.
김주혜(옥수수)
김주혜(옥수수)

대학에서 예술학을, 대학원에서 문화학을 공부했다. 전남 구례 동네 가수로 살며 지역 문화를 일구려는 사람들과 공연도 하고 노래도 짓는다. 초등학생, 마을 어르신과 노래를 듣고 만들며 불안하고 답답한 일상을 서로 다독인다. 성매매·성폭력 피해자, 홈리스, 노동자, 장애인과 연대하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고, 최근에는 지구의 다양한 생명과 이어질 노래와 소리, 진동을 찾고 있다.
조은아
조은아
지속가능한 음악생태계를 위해 연주뿐만 아니라 강연과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음악 분야 첫 강의를 진행했고, 한겨레의 ‘문화현장’, 경향신문의 ‘세상 속 연습실’, 한국일보의 ‘조은아의 낮은 음자리표’등의 칼럼을 꾸준히 연재했다. KBS 클래식FM 방학특집, 서울시향 퇴근길 토크 콘서트, KBS 교향악단 실내악시리즈 등 인문학과 연계한 공연을 기획하며 2018년 문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젊은 청중의 성장을 북돋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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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김주혜(옥수수)
사진_채홍필 빈둥협동조합 pathos189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