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 물음은 ‘5 + 7 = 12라는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로 쉽게 바꿀 수 있다. 이 질문을 통해 칸트는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순전히 사유의 기능만으로 전제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지식이 결론에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종래의 경험론적인 입장에 맞선다. 글의 초입에서 이 예를 든 이유는 칸트의 인식론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고전이 제기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읽는 일은 고전의 핵심으로 진입하는 데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질문하는 존재이다. 고전, 특히 인문 고전은 ‘인간의 문제’를 품고 이에 대해 심층적으로 ‘답변’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은 ‘물음과 답변의 연쇄 고리’로 이루어져 있다. 고전 속의 물음과 답변은 고전의 보이지 않는 뼈대이다. 그래서 일반 독자의 경우 고전에 담긴 문제와 이에 대한 답변을 찾으면 고전 읽기는 일단 끝난다. 물음과 답변은 고전이라는 텍스트가 갇혀 있는 의미공간이다. 그런데 고전이 담고 있는 문제와 답변을 찾는 일은 순탄치 않다. 작품에서 ‘의문부호’로 끝나는 문장에 주목하여 ‘문제’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본질적인 문제가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답변이 모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음과 답변을 찾지 못할 경우 적어도 ‘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다.

 
고전은 어떤 ‘물음’을 담고 있을까? ‘이 책’은 대체 어떤 ‘문제’에 답하고자 하나? 앞서 언급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논제 혹은 문제를 처음부터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지만, 대개의 작품은 ‘물음’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문학작품의 경우 저자의 문제의식은 작품 안에 녹아들어 있어서 이야기 전개과정에 충분히 동참해야만 문제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고전 텍스트에 드러난 혹은 감춰진 물음을 찾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고전의 ‘문제’는 텍스트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층위를 지니고 있어서 ‘문제’가 하나로 국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핵심문제와 주변문제 그리고 상위문제와 하위문제 등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텍스트 전체를 재구성하여 독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체의 논지를 파악할 수 있는 ‘문제 리스트’를 작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 리스트는 해당 텍스트의 내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그 역사적 의미를 가늠하는 실질적인 근거가 된다.

 
하지만 고전이 ‘다루고 있는 문제’를 찾는 일이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 고전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생각의 창출’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역사에서 획을 긋는 생각을 담고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이전의 생각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독서 도중에 저자가 감정을 실어 비판하고 있는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 우선 긴요하다. 바로 여기에서 ‘쟁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질서의 문제’,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싸움을 특징으로 하는 자연 상태에서 어떻게 질서가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이에 대해 ‘국가’라는 전제군주를 답변으로 제시한 이후, 근대의 정치철학은 인간의 자연상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자연법’에 대한 논쟁이 활발해진다. 그리고 사회학의 저자들도 ‘질서의 문제’를 축으로 스펜서의 사회 유기체론을 필두로 특히 파슨스는 <사회적 행위 이론>에서 이 문제에 대한 재구성을 출발점으로 구조기능주의 사회학의 초석을 다진다. 또한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경제가 고도로 발전한 지역들은 왜 하나같이 교회의 혁명에 우호적이었나?”라는 문제를 두고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에서 노동과 금전에 대한 가치를 인정했던 ‘개신교의 직업윤리’를 원인으로 규명하지만, 이후 동아시아권의 사회학자들은 ‘서구 자본주의의 기독교 윤리’에 대응하는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유교적 가치’를 발굴하여 ‘자본주의의 특성과 발생’에 대해 새로운 논의의 지평을 연다. 이들의 저술을 읽으면서 이들이 ‘동일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하는지 그리고 하나의 문제가 저자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판단되는지 등,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에 접근하는 상이한 방식과 시선을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고전 읽기의 요체라 할 수 있다.

 
어떤 작품이 ‘고전’으로 평가되는 것은 그 작품이 이전의 문제에 대해 ‘질적으로 새로운 답변’을 제시하는 경우 그리고 이전에 제기되지 않았던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경우이다. 전자에 비해 후자가 역사에서 기여하는 정도가 더 크다. 후자의 경우 ‘문제’ 자체를 바꿈으로써 질문의 방향을 새롭게 할뿐더러 새로운 사유의 패러다임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물음’은 ‘잘못된 답변’보다 더 치명적이다. ‘잘못된 물음’은 탐구의 방향을 오도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물음은 새로운 답변을 능가한다. ‘새로운 물음’은 종종 시기적인 구분, 이를테면 전(前)근대-근대-탈(脫)근대를 나누는 준거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양철학에서 고대 이후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인 물음에 집중하다가, ‘인간이 과연 존재에 대해 물을 권리가 있는가?’를 반성하여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적인 물음으로 철학적 사유가 전환하면서 철학사는 ‘근대’로 진입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거대담론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차원의 물음에서도 고전의 저자들은 이전의 물음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새로운 물음을 던짐으로써 사유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다.

 
고전이 안고 있는 문제상황과 해법을 파악하는 일은 고전을 경제적으로 읽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많은 고전들이 문제를 밖으로 노출하지 않고 있다는 데 독해의 어려움이 있다. 물음과 해법 찾기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문의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고전은 소모임을 만들어 같이 읽을 필요가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여럿이 같이 읽어감으로써 텍스트의 물음과 답변에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어 어느 정도나마 독해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텍스트에 담긴 물음과 답변을 찾기 위해 애쓰다 보면 자연스레 텍스트의 부분과 전체를 연결하여 이해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잘못 이해한 부분도 드러나게 된다. 소모임을 통해 고전의 문제와 답변을 찾는 일은 텍스트에 대한 부분적인 자구해석에서 벗어나 책의 전반적인 의미구조를 읽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거의 모든 고전의 내용은 ‘비판’과 ‘서술’이라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독자는 ‘비판’에서 물음을, ‘서술’에서 답변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고전의 텍스트는 양자를 친절하게 구별하여 보여주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서술 속에 비판이 숨겨져 있다. 노자 <도덕경>의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에는 도가의 입장을 서술할 뿐 비판의 대상이 명시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道’와 ‘名’에 대한 기존의 이해방식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다. 이 문장 하나에서 독자는 노자의 문제의식과 답변의 실마리를 동시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독서 중에 핵심적인 구절에 주목하여 그 구절이 기존의 입장에 대한 ‘비판’인지, 새로운 시각에 대한 저자의 ‘서술’인지, ‘비판과 서술’을 동시적으로 내포하는지를 구별하는 작업은 고전을 물음과 답변의 틀에서 읽는 데 필수적이다. 고전 텍스트에서 ‘감추어진 의미구조’를 찾는 일이 긴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답변 중심의 고전 읽기는 단지 해당 텍스트의 핵심으로 진입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향한 발견적인 사고의 토대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고전의 역사는 곧 인류의 문제와 답변의 역사이다. 따라서 고전에 드러난 문제-답변의 연결고리를 이해하는 일은 과거 인류의 문제의식에 동참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문제상황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문제-답변 중심적인 책 읽기는 인류가 고민해 온 문제를 파악하고 그 출구를 모색해 온 여정을 살피는 일이며 또한 현재의 문제의 뿌리를 인식하여 그 해법을 찾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고전의 문제의식은 시간 속에서 변형되고 수정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아 지금의 시대적인 문제상황을 돌파하는 데 필수적인 참고자료일뿐더러 미래의 해법을 제시하는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이다.


 
 
 
 

글 | 단국대학교 교수, 인문고전비평가 유헌식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괴테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헤겔의 역사적 사유에 나타난 새로움의 문제”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요즘은 철학을 넘어 인문학 전반과 예술분야까지 기웃거리고 다닌다. 한국헤겔학회 부회장 겸 <헤겔연구>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이 일상의 삶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저서로는 <통합적으로 철학하기 1권 고독>, <통합적으로 철학하기 2권 성장>, <죽음아 날살려라>, <역사이성과 자기혁신>, <한국인의 일상행위에 나타난 의미구조 연구> 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텍스트해석연구소장 및 단국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