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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과 서경덕의 ‘줄 없는 거문고’ 이야기 _신정근 동양철학자⑦

딸아이가 어릴 때 TV에 나오는 기타 치는 장면을 보고 기타를 사 달라고 졸랐다. 자기도 TV속의 연주자처럼 폼을 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도 기타를 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말문 겨우 뗀 아이가 기타를 어떻게 기타를 칠까 싶어서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래도 딸아이는 지치지 않고 기타 타령을 했다.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나는 기타를 만들기(?)로 했다. 집에 있던 우유곽을 붙이고 잘라서 기타 모양을 내 시트지로 전체 모양을 고정하고, 공명통을 뚫은 뒤에 줄을 매달아서 그럴듯한 기타를 만들어 주었다. 딸아이에게 종이 기타가 소리를 내는지는

장자, 천뢰天籟의 소리를 듣자
_동양철학자 신정근⑤

노자는 대음희성大音希聲을 통해 제도화되고 양식화된 음악이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존의 음악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것이 과연 진정한 음악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셈이다. 그는 이렇게 커다란 충격을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음악의 정체를 새롭게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음악 예술에서 공자가 치유를 강조하는 반면 노자와 장자는 충격을 내세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계속해야 한다. 그들은 이어서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음악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노자는 “그건 음악 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경제적인 고전 독서법: 고전 속의 물음과 답변을 찾아서!
인문고전비평가 유헌식③

“선천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칸트의 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 물음은 ‘5 + 7 = 12라는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로 쉽게 바꿀 수 있다. 이 질문을 통해 칸트는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순전히 사유의 기능만으로 전제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지식이 결론에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종래의 경험론적인 입장에 맞선다. 글의 초입에서 이 예를 든 이유는 칸트의 인식론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고전이 제기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읽는 일은 고전의 핵심으로 진입하는 데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질문하는 존재이다. 고전, 특히 인문

노자, 양식화된 음악을 부정하다
_동양철학자 신정근④

클래식음악, 대중음악, 국악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다. 서로 음악의 구성과 특징이 많이 다르다. 극단적인 경우 서로 자신의 음악이 진정한 음악이고 나머지는 음악이 아니라고들 한다. 가수도 마찬가지다. 인디 가수, 아이돌 가수, 록커, 통기타 가수 등은 하나같이 팬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이다. 서로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한다. 옛날에 글 짓는 사람들이 서로를 얕잡아본다고 해서 문인상경(文人相輕)이라 했다. 자존심이라면 예술인도 문인에 못지않은 만큼 예인상경(藝人相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자와 음악,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조합이다. ‘노자’라는 책이 모두 5000여 자로 분량이 적을 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