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시로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현황조사에 응답해달라는 메일과 전화를 받는다. 대부분이 매출은 얼마인지, 조직을 어떻게 건전하게 운영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내용이다. 사실 조사하는 부처만 다를 뿐이지 거의 다 같은 내용이라 관성적으로 작성하는데, 2년 전에는 직접 대면조사를 하러 온 한 기관의 조사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생존 사회적기업 현황조사’. 조사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제목이었다. 운영과 사업, 활동을 하고 ‘생존’해 있는 우리 같은 곳이 많지는 않은가? 우리는 희귀종이 되어버린 것인가? 2004년 시작으로 올해까지 16년을 자바르떼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의지를 모아 한 걸음씩
2004년 신나는문화학교 프로젝트 사업으로 시작한 자바르떼는 문화예술교육 역량강화와 교육 방법론 등의 교육과 워크숍을 통해 문화예술인들에게 문화예술강사라는 ‘두 번째 일거리’를 만드는 것을 기획했다. 이렇게 진행되는 문화예술교육은 참여하는 대상들이 전문예술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사회를 다르게 보는 가치관을 가지게 하고 자존감을 되찾게 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다. 단기 프로젝트로 시작한 이 사업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연속 지원의 가능성도 꿈꿨지만 안타깝게도 꿈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전체 40여 명의 문화기획자와 문화예술인이 모여 이 상황을 공유했고 향후 지속적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의지를 모아 2005년 문화체육관광부에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신청하였다.
이후 프로젝트 그룹에서 ‘신나는문화학교교사협회’라는 법인은 아니지만, 법인으로 간주하는 조직으로 운영하게 된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주 사업으로 진행하면서 강사비와 교구 교재로만 구성된 공공기금 재원의 한계성으로 인해 단체 운영에 어려움을 발견한다. 법인의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단체의 행정 실무자, 기획 진행 인력에 대한 비용 지원/사용이 배제된 재원의 한계는 매월 일정 부분의 적자를 쌓이게 하고 사업의 지속성을 고민하게 했다. 하지만 해결은 쉽지 않았고 공공재원을 활용한 ‘찾아가는 문화예술교육’ 사업 중심에서 주변 사업 영역의 확장, 재원의 다각화 등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 12월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고 지금까지 13년이다.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법 제도의 시작에서 몇 개월 빠지는 기간이다. 사회적기업 일자리 지원 기간을 통해 조직의 운영구조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개선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고 사회적기업에 진입했고 지금까지 인증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실 이런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지원제도를 통해 얻은 것은 일자리 지원을 받는 3년 동안 30여 명의 일자리와 일거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사업개발비를 통해 홍보 마케팅과 몇 가지 콘텐츠를 시험하고 활용할 수 있었던 것, 지원 종료 후 공공시장에 진입하여 계약과 입찰을 진행하는데 사회적경제 지원 조례 등을 통한 가산점을 받은 것, 그리고 현재 자바르떼가 입주해 있는 서울혁신파크와 같은 공공 공간 입주 시 입주비 감면을 받은 것 등이다. 사실 상당히 많은 지원이다. 혹시 이 지원을 적절히 활용하고자 하는 단체가 있다면 국민의 세금, 우리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사업이니 잘 기획해서 잘 쓰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이 지원체계에서 피로도가 발생하는 부분은 우리가 지원받은 것에 대한 증빙이다. 재정지원을 통해 고용을 어떻게 유지/관리하고 있는지, 성과는 어떻게 내고 있는지에 대한 보고와 증빙을 상시적으로 진행해야 했고, 거기에는 시스템과 인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면서 이런 행정에 대한 피로도가 많았다. 오히려 인건비와 사업개발비를 지원받지 않는 지금이 사회적경제 지원 조례를 통해 공공 시장 진입과 공공 공간 입주 등을 활용하며 사회적기업으로서 가장 혜택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직접 금전적 지원이 중요한 부분도 있지만, 환경과 시스템이 사회에 자리 잡고 인식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 부분이다.
지원에서 계약으로
생각해보면 재원의 다양화는 의외의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지역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지역의 여러 기관과 네트워크를 상시적으로 운영하던 시절(당시는 지역아동센터 네트워크 모임에도 참여하여 문화예술교육 분야의 의견과 센터의 의견도 공유하였지만, 현재는 활동과 사업으로 연계되어 있다.) 아동청소년 캠프를 기획 운영해줄 수 있냐는 요청이 있었다.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구청의 사업이고 재원이라 계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때 수의계약을 처음 알았다. 심지어 나라장터에 가입해야 하는 것도 계약하기 2주 전에 알았다. 당시 기획자였던 나는 멘붕에 빠져서 행정담당자와 방법을 연구하고 계약을 준비했다. 기금이 아닌 방식으로, 나라장터라는 시스템에서, 공공기관과 처음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밤을 새워서 캠프 재료와 아이들 간식을 직접 포장하고 프로그램 예행연습을 하며 만족스럽게 진행하기 위해 쏟는 노력과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위한 노력은 전혀 다른 영역이고 지금도 잘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사업영역의 개발은 내적 동기도 있지만 외부, 지역의 요구가 맞물려 작동했다. 지역의 작은 축제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해줄 수 있냐는 요청에 상근예술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만든 것이 콘텐츠가 되었고, 또 자바르떼에 예술인들이 많은데 축제에서 공연을 좀 해줄 수 있냐는 요청에 공연팀을 구성했다가 본격적으로 음악감독을 영입해 밴드를 만들고 음반을 냈다. 처음 EP 음반 발매 콘서트를 하기 위해서 문래예술공장 옥상을 빌려 공간을 꾸미고 파티 준비를 하느라 활동가들이 밤을 새웠던 그날이 기억난다. 이 과정에서 자바르떼는 기금이나 사업개발비 등의 재원을 활용하지 않고 자체 재원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항상 부족한 부분으로 남아있는 홍보마케팅 영역에 나름 역량을 쏟았지만, 1년에 약 1천만 원의 운영 적자가 발생하는 요인이 되었다. 2013년 자바르떼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공연팀이 독립했지만 자바르떼에게는 중요한 교훈으로 남아있다.
서로의 온도가 다르면
2013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후 운영방식의 변화에 익숙해지고 시스템을 만드는 데 시간이 상당히 필요했다. 전환 전에는 상근기획자 중심의 기획 구조였다면, 상근인력이 줄어들면서 기획을 조합원과 함께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다. 창립총회 다음 주부터 매주 조합원 모임을 하고 조합의 운영과 사업을 논의했다. 하지만 조합원 참여율이 점점 저조해졌다. 전체 30명의 조합원 중 27명이 참여했던 모임이 나중에는 10명으로 줄어 운영진인 나는 ‘무슨 문제가 있지 않나?’ ‘왜 참여율이 저조해질까?’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야 조합도 운영하고 조합원들도 함께 일거리를 나누는데…’ 걱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 협동조합적 운영 방식을 배우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조합원의 책임과 권한을 나누는 조합원 규약도 이 시기에 만들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사회투자지원재단 장원봉 박사님께서 이 워크숍에 강의를 맡아주셨다. 잠시 쉬는 시간에 “왜 조합원들이 조합원 모임에 참여하지 않을까요? 저희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요?”라고 질문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는다. 장 박사님께서는 “조합을 만들면 매주 조합원 모임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조합원들이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참여하는 조합원들이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다른 조합원들이 보면 그 결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모든 조합원이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다. 자바르떼에 대해 알아 온 기간도 다르고 활동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온도가 다르다. 그러기 때문에 비슷한 온도끼리 모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우리는 조합에 참여하는 온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소규모 모임을 진행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작은 모임을 진행했다. 디자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조합원들이 모여 디자인 작업으로 무언가 활동과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통해 몇 가지 시범사업을 기획했었다. 자바르떼의 가치를 디자인과 접목한 기획 상품을 만드는 작업으로 멸종 위기 동물을 그래픽 작업 후 일상에서 입고 다니는 티셔츠로 시제품까지 만들었었고, 이 활동은 시각매체(그림+사진)를 통해서 지역을 다르게 보며 지역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 ‘사진을 그리고 그림을 찍다’라는 프로젝트로 성장하게 했다.
사업으로 확장되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조합은 조합원에게 신호를 보내고 관심 있는 조합원들을 만나게 했고 서로의 욕구와 조합의 미션과의 접합점을 찾았다. 그 첫 번째 성과는 ‘그림을 그리는 슈퍼고양이’라는 작품이다. 그림책 작가인 고정순, 연극하는 고윤희, 뮤지션 고명원, 이 세 조합원이 모였던 날이 기억난다. 새 책을 출간한 고정순 작가는 이 책이 읽히기만 하는 책이 아닌 움직이는 책이 되었으면 했고, 고윤희 조합원은 1인극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을 좀 더 가까이 만나고 싶어 했다. 뮤지션 고명원 조합원은 조합에서 공연을 만들면 음악은 직접 쓰~윽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쓰리고 프로젝트’ 파일럿 공연을 올리기 위해 조합원들의 시간과 노력이 투여되었고, 조합에서는 준비할 수 있는 공간과 부족하지만 약간의 재원을 마련했다. 지역의 마을예술창작소에서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모시고 짧은 공연을 올렸다. 약 2년의 시간 동안에 다양한 방식의 공연 형태를 실험해보고 음악을 입히며 준비한 사람들의 땀으로 만들어진 공연이다. 지금도 조합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기획하고 다시 공연을 무대에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팎에서 밀고 당기며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은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된다는 말의 사자성어다. 생명의 가치는 내부적 역량과 외부 환경이 적절히 조화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우리가 문화예술단체로 지속하는 것에도 이런 내적 욕구의 충만과 외부 요건의 활용이 중요하다는 뜻에서 아주 적합한 말인 것 같다.
‘버티면서 알아보면서 준비하자.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잊지 말자!’
자바르떼가 2020년 아직도 생존하고 있다는 것은 수익이 많이 나는 사업 아이템이 있어서도 아니고 멤버십이 훌륭하고 능력 있는 인프라를 갖고 있어서도 아니다. 버티고 버티었다. 고비마다 단체의 임원과 구성원들은 그 시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재원과 사업을 기획했고 넘어왔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사회적기업 인증을 통해 재정지원을 받았지만, 반대 작용으로 정부의 지원에 대한 각종 보고와 증빙 업무에 익숙해지는 데는 쉽지 않았다. 한편, 2010년 지역 중심의 사업과 지속적인 운영을 고민하면서 인천과 경기 자바르떼가 독립했다. 이후 서울, 인천, 경기 안산 3개의 자바르떼는 각각의 사업과 운영은 지역 중심으로 고민하며, 생존에 대한 고민은 함께 이어왔다. 매년 상근자, 기획자 네트워크 워크숍도 진행하고 공동사업도 모색하고 있다.
2013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 후 조직 구성의 변화로 상근 활동가, 조합원의 수가 줄어듦에 따라 사업을 기획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했고, 생산자조합원 기획자들이 조합의 사업을 기획하는 시스템으로 가동했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으로 단체의 모든 사업은 시작되지도 못했지만 직접 얼굴을 못 보면 전화, 메일, 화상회의를 통해서 비대면 시기를 버티는 방법으로 작은 워크숍과 새내기 기획자 워크숍도 진행했다. 가만히 버티지 않고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버티고 있다. 지금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때에, 협동조합 7대 원칙 중에서 요즘 가장 필요한 부분은 교육, 훈련 및 정보 제공과 협동조합 간의 협동이라 생각한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버티고 해야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고, 협동조합 간 협동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가려고 한다.
자바르떼의 정관에는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는 … 문화소외계층의 창조적인 자기문화활동과 문화공동체를 실현하는 공공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토대로 문화예술인들의 안정적인 활동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문화예술인들의 일, 나의 일을 기획하고 함께 만드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는 자바르떼에게는 두 가지 미션이 있다. 창조적 문화예술인들의 안정적 활동기반을 만드는 것과 문화 소외계층의 문화 소외 해소를 통한 문화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버티기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동력은 우리 주변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고자 하는, 멀게 느껴지지만 다가올 ‘문화로 평등한 세상’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 이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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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기획자. 현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 기획이사, 전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 이사장. 대학 때는 학회 활동으로 연극을 했다. 복학 이후 아르바이트를 한 곳이 노동문화기획하는 곳이어서 문화기획에 발을 들여놓고 잠시 집안이 어려워 앤젤컴이란 컴퓨터 회사에서 일했다. 인사동 민예총 문화아카데미에서 간사로 활동하며 술도 많이 먹었다. 2009년 5월부터 지금까지 자바르떼에서 공정한 문화기획, 지역문화기획에 대해서 고민하며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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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 arteplay.net
사진 _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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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민예총 문화아카데미에서 간사로 활동하며 술도 많이 먹었다.”라고 자기 소개를 하셨는데,
본래 술을 많이 자셨던 분으로 압니다.